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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30 12:23:36

포르튀네 뒤 부아고베

파일:attachment/220px-Fortuné_du_Boisgobey.jpg

1. 개요2. 작품

1. 개요

통상 포르튀네 뒤 부아고베라고 불리워지는 포르튀네 이폴리트 오귀스트 아브라암-뒤부아는 1821년 9월 11일에 태어나 1891년 2월 26일 파리에서 죽었는데, 추리소설과 역사소설을 쓴 프랑스 작가이다.

유복한 가정 출신인 포르튀네 뒤 부아고베는 생-루이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의 집안이 지지를 했던 7월 왕정 기간에 그는 1844년부터 1848년까지 알제리군의 봉급과에서 복무를 했고 이어서 동방지역을 여행했다.

그가 신문연재 소설가가 된 것은 재무행정공무원직을 그만 둔 뒤인, 그의 만년이 되어서였다. 주르날 다브랑슈라는 잡지에 그 지난 해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이야기한 '시실리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의 연재물을 '포르튀네 아브라암-뒤부아'라는 가명으로 발표하며 1843년 문학계에 입문하여 1863년 '포르튀네 뒤 부아고베'라는 가명으로 르 프티 주르날이라는 잡지에 '두 사람의 코미디언'이란 제목의 이야기를 게재함으로써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그 이야기는 1880년 '노블로즈 여인숙'이라는 제목을 붙여 책으로 발간되게 된다. 그 이야기는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그래서 '프티 모니퇴르'지의 폴 달로즈는 그 이야기의 저자와 7년을 계약기간으로 하는 연 12000프랑의 계약을 맺게 된다.

둘 다 1869년에 발표된 '어떤 신비한 사건'과 '도형수가 된 대령'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그는 인기있는 연재소설가 중 한 사람이 된다. 1877년에는 '피가로' 지가 연재소설 계약을 맺었는데, 그 연재물로 인하여 신문의 발행부수가 증가하였다. 보통 그의 이름과 함께 입에 오르내리는 에밀 가보리오의 소설들 보다는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의 추리소설들은 대량으로 출판되었으며 또 그들 중 많은 책들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포르튀네 뒤 부아고베는 1885년과 1886년 문인협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그의 가명은 사실은 그의 가문의 옛 이름을 그가 다시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니콜라 아브라암이란 조상이 1538년 부아고베라는 귀족 봉토를 획득하였는데, 대혁명 시절에 그의 할아버지가 그 이름을 아브라암-뒤부아라고 줄였던 것이다.

2. 작품



[1] 원제는 Les Deux Merles de M. de Saint-Mars로 직역하면 드 생마르스 씨의 티티새 두 마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