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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0:20:28

폴 앨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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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3><colcolor=#fff> 폴 앨런
Paul Allen
파일:attachment/폴 앨런/Paul_Allen.jpg
본명 폴 가드너 앨런
Paul Gardner Allen
출생 1953년 1월 21일
미국 워싱턴 시애틀
사망 2018년 10월 15일 (향년 65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투자자
경력 Microsoft (창업자)
학력 워싱턴 주립대학교 (중퇴)
재산 203억 달러 (2018년 / 포브스)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3. 빌 게이츠와의 관계4. 군함 발굴 작업5. 사후6. 여담

[clearfix]

1. 개요

Microsoft 공동 창업자로 유명한 미국기업인이다. 그가 15살이고 빌 게이츠가 13살일 때 친구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같이 다니고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때 당시 워싱턴 주립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앨런이 학교 중퇴하고 같이 Microsoft를 차리자고 해서 게이츠도 하버드를 중퇴했다고 한다.[1]

2. 생애

앨런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좋은 고등학교 환경 덕에 당시 메인프레임 컴퓨터로부터 컴퓨팅 성능을 시간 단위로 요금을 내고 쓰는 단말기를 학교와 부모님 지원 하에 마음 놓고 쓸 수 있었다. 그의 개발에 대한 열정은 이때부터 시작하였다. 게다가 실력이 급속도로 향상되어 교사가 가르칠 내용이 없는 수준을 금방 넘어섰고, 개발한 프로그램을 팔아 용돈벌이를 할 수준에 이르렀다. 또 이후에는 디버깅을 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하는 조건으로 메인프레임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꿈같은 환경도 접하게 된다.

빌 게이츠는 변호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다소 논쟁적이며 계산적인 성격이지만 폴 앨런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현실적인 성격으로서 서로의 성격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이후 앨런의 자발적인 퇴사로까지 이어지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초기 단계의 중요한 상황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바탕이 되었다. 개발 면에서는 앨런의 기여도가 훨씬 높았으며 심지어 앨런은 비록 프로그래밍을 위한 핵심 개발 툴까지 제작한 것은 본인이지만, 게이츠가 노골적으로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가는 것을 묵묵히 받아주기까지 했다. 물론 게이츠와 앨런의 사정이 다르긴 했다. 아버지가 시카고 제일 로펌의 주축이고, 어머니가 은행 간부였던 게이츠는 그 인맥을 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는 사업 성공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게이츠가 지분을 더 가져가는 근거가 되어주었던 IBM과의 계약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소프트웨어의 판매는 주로 Apple 같은 하드웨어 기업과 제휴를 통해 B2B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계약 조건이 1회에 모든 사용료가 지불되어 계약 업체는 무제한으로 해당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폴 앨런은 컴퓨터 1대 당 1 소프트웨어 판매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창안해냈다. 이 아이디어는 빌 게이츠의 극렬한 반대로 한동안 실현되지 못 하다가, 오늘날 Windows를 비롯한 대다수 상품의 특징이 되는 수익 모델이 되었다.

1983년에는 호지킨 림프종(혈액암의 일종)에 걸려서 Microsoft를 퇴사하고, 그 다음부터는 Microsoft에서 서서히 손을 떼었다고 한다. 당시 가지고 있던 Microsoft의 주식이 대박을 나면서 그 돈으로[2] 기부와 개인 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중. 이때 걸린 림프종은 수개월간의 방사선 요법을 통해 완치되었다.

그는 이 병으로 인해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회사의 격무에서 떨어져 요양 생활을 하며 마음이 맞지 않는 빌 게이츠와 일 하는 것보다는 남은 삶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1986년에 Microsoft가 기업공개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주식 중 20만 주만 팔아 1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부자가 되었다. 나머지 주식은 미래를 생각하며 갖고있었다. 그의 판단은 잘 맞아 떨어져서 1996년에 Microsoft 주식은 10배 이상 폭등했다.

2009년에는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렸다. 역시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8년에 재발하여 시애틀의 자택에서 65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재직 시절의 생활에 대해 이후 그가 했던 여행이나 연구, 모험에 비해서 1차원적인 생활만 했던 다소 부정적인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그의 핵심 경력인 Microsoft와 관련된 일은 사실상 Microsoft를 떠난 후 전혀 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Microsoft에서의 업적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후의 뇌과학 연구, 우주 개발 사업, 인공지능 개발을 더 중요한 인생의 업적으로 본 것 같다.

3. 빌 게이츠와의 관계

빌 게이츠와는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를 만지면서 놀고 해킹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둘이 영화를 좋아해서 같이 영화도 많이 보고, 만나면 영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게이츠가 앨런을 두둑하게 챙겨줬다거나 앨런이 친구 잘 만나서 부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Microsoft는 처음 창업할 때 둘이 동등하게 1:1 지분으로 시작한 회사다. 게이츠가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게 된 것은 초반에 수익을 많이 가져다준 BASIC 관련 프로그래밍을 자신이 짠 것을 어필하여 앨런에게서 지분을 야금야금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것도 가장 어려운 핵심부인 floating point(부동소수점) 관련 연산은 다른 직원이 짠 것이었다.

오히려 프로그래밍 작업에 더 많이 공헌한 것은 폴 앨런이고 게이츠는 비즈니스 쪽으로 많이 공헌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는 거의 앨런이 냈다고 한다.[3] 그럼에도 친구 잘 둬서 부자됐다는 인식이 강하니 억울할 수밖에... 앨런은 그런 억울함 때문인지 자서전 제목을 'Idea Man'으로 지었다. 물론 그 아이디어 맨이란 자기 자신.[4]

앨런은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해당 자서전에 빌 게이츠를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고 써서 빌 게이츠의 발등을 도끼로 찍었다. 앨런이 병에 걸렸을 때도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와 둘이 만나 요즘 폴이 하는 것에 비해 가져가는 게 많다며 자신들의 지분을 늘리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것은 폴이 그 대화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나중에 사과의 편지를 썼지만 이미 돌아선 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게이츠는 앨런의 지분을 더 빼앗지 못했고, 앨런은 그대로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하고 말았다. 일단 게이츠는 "내 기억과 폴의 것은 많이 다르지만, 난 둘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의 공헌에 감사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들 둘의 관계는 Apple스티브 잡스스티브 워즈니악의 관계와도 약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링에도 꽤 공헌했다는 점이 차이다.[5] 마이크로소프트는 거기에 전술한 발머[6]까지 창업자 라인에 들어가는 차이가 있는데, 발머와 게이츠는 21세기 벽두까지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과시하곤 했지만 애플의 iPhone 출시 이후 회사의 방향성을 두고 하드웨어 사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 관계가 상당히 소원해져버리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부의 소문만큼 의절 수준은 아니라는 듯.

2018년, 폴 앨런의 림프종이 재발하자 빌이 먼저 연락을 했고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결국 죽기 전에 화해는 한 셈.[7][8]

파일:external/pbs.twimg.com/CC9yc72UgAIJ5_a.jpg

Surface 3 정발을 2주 정도 남기고 마이크로소프트에게서 직접 시애틀 시호크스 커스텀 버전을 선물받았는데, 창립 멤버들과의 갈등과는 별개로 회사와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인의 지분을 뺏어간 건 빌이지 회사가 아니니까

4. 군함 발굴 작업

아버지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여서 당시의 역사적인 군사 기술을 보존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2차 대전시 군용기, 차량들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 박물관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공한 밀덕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태펑양 전쟁 당시 침몰한 군함을 수색하는 발굴팀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은 폴 앨런 사후에도 발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5. 사후

6. 여담


[1] 다만 빌 게이츠와는 40년 우정의 절친으로 알려져 있지만, 말년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다고 한다.[2] 자서전에 의하면 약 12조 원의 자산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어느 시점에서의 12조 원인지는 불명.[3] 이런 점에서 동종업계 라이벌인 스티브 잡스스티브 워즈니악의 관계와 유사하다. 잡스도 비즈니스 쪽으로 기여가 많았지 실무적인 하드웨어 설계는 워즈니악이 거의 다 했다. 그리고 동업자이자 절친을 토사구팽한 것도...[4] 폴 앨런의 천재성은 게이츠의 자서전 ‘미래로 가는 길’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알테어 8800이 출시되고 게이츠와 앨런은 알테어 8800을 위한 BASIC을 만들기로 했는데 문제는 둘 다 알테어 8800의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앨런은 알테어 8800의 기술 메뉴얼만을 참고해 PDP-11에서 알테어 8800 에뮬레이터를 만들고 이 에뮬레이터로 게이츠가 BASIC을 만들었다. 이쯤 되면 뭐가 하나쯤 안 돌아가야 정상으로 보일 지경인데 BASIC은 잘 작동했다.[5]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잡스는 프로그래밍에 기여한 건 거의 없고 비즈니스와 디자인에만 몰두했다. 마찬가지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빌의 엔지니어링 실력은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꽤나 좋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몸집이 비대해지기 전까지는 개발 공헌도도 적지 않았다. 다만 젊었을 때 사람이 너무 독해서...[6] 사실 잡스와 가장 가까운 쪽은 발머다. 엔지니어링 측면을 앨런과 게이츠가 관여했다면 발머는 경제학 출신의 문과로서 마케팅이나 사업안 같은 문과적인 측면에서 공헌했기 때문이다.[7]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에 나온다.[8] 게이츠는 숙적이던 잡스와도 잡스가 죽기 전 그의 병상에 찾아가 이런저런 회고를 한 적이 있다. 이때 잡스는 여전히 자신이 고집했던 엔드 투 엔드 방식이 최고라 믿지만 돌이켜 보면 호환성을 중시한 게이츠의 방식도 나쁘진 않았던 거 같다며 그 강한 고집을 꺾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잡스답게 진정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순 없을 거라며 까기도 했다.[9] 시애틀의 EMP라는 음악박물관도 앨런이 만들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