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colbgcolor=#000><colcolor=#fff> 프리츠 폰 에릭 Fritz Von Erich | |
본명 | 잭 바튼 앳킨슨 Jack Barton Adkisson |
출생 | 1929년 8월 16일 |
미국 텍사스 주 쥬엣 | |
사망 | 1997년 9월 10일 (향년 67세) |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 |
신체 | 193cm, 120kg |
배우자 | 도리스 J. 스미스 (1950년 결혼, 1992년 이혼) |
자녀 | 장남 잭 앳킨슨 주니어 (1956 ~ 1962)[1] 차남 케빈 폰 에릭 (1957년생) 3남 데이비드 폰 에릭 (1958 ~ 1984) 4남 케리 폰 에릭 (1960 ~ 1993) 5남 마이크 폰 에릭 (1964 ~ 1987) 6남 크리스 폰 에릭 (1969 ~ 1991) |
손자녀 | 손녀 레이시 본 에릭(1986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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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미국의 프로레슬러로, 본명은 잭 바튼 애드킨슨(Jack Barton Adkisson). 텍사스 출신으로, 대학 시절에는 SMU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AFL팀이었던 댈러스 텍산스(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전신격인 팀)에 입단했지만 오래 못가 방출되었고 미식축구의 길을 포기하고 프로레슬링계로 투신해 하트 가문 인물인 스튜 하트의 지도를 받고, 1954년부터 프로레슬러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프리츠 폰 에릭'이라는 링네임을 사용했으며 나치(...) 기믹을 가지고 힐(악역)로서 활동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왈도 폰 에릭(Waldo Von Erich)[2]과 '형제' 기믹으로 태그를 이뤄서, '폰 에릭 형제'라는 태그팀으로서 냉혈한 나치스 독일인 기믹으로 활동했다.아이언 클로라는 기술의 창시자로 프리츠 폰 에릭은 200킬로그램(자칭)의 악력으로 상대의 머리를 쥐어짜는 기술이라는 설정을 붙였다.[3] 프리츠 폰 에릭이 원조이다 보니 다른 선수들이 쓸 땐 '브레인 클로'라고 부르지만, 아이언 클로가 워낙 유명한지라 중계에선 잘만 아이언 클로라고 부른다.
1966년엔 텍사스 달라스에서 NWA 산하 단체인 NWA 빅 타임 레슬링을 설립해 오너 겸 에이스로서 활동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엔 일본을 방문해 일본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등의 단체에서 경기를 가졌다. 1975년에는 1년간 NWA 회장직을 역임했다. 1980년에 단체명을 WCCW(World Class Championship Wrestling)로 개칭했고, 1982년에는 프로레슬러로서는 은퇴했지만 WCCW의 회장으로서 단체 운영에 전념해서 5명의 아들들을 단체의 에이스로 내세웠다. 1980년대에 WCCW는 흥행이 잘 되어 프리츠 폰 에릭은 사업가로서 성공했다. "달라스 프로레슬러는 에릭의 호텔에서 묵고, 에릭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에릭의 은행 수표로 파이트 머니를 지급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프리츠 폰 에릭은 도리를 벗어난 악덕 프로모터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아버지로서 비정하기가 이를데 없어서 자신의 아들들을 장기말처럼 혹사시켜 그들을 대부분 요절하게 만들었다. 부상을 당한 막내 아들 마이크 폰 에릭을 혹사시킨 결과 열병으로 인해 뇌손상 및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 또 WCCW에서 푸쉬하던 지노 에르난데스와 마이크 폰 에릭이 사망했음에도 녹화 방송 및 홍보 영상에서는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팬들을 속여서 티켓 판매량을 늘리는 등의 짓을 저질러 WCCW 내부에서도 프리츠 폰 에릭을 욕했다. 1980년대부터 NWA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자 단체의 이름을 WCWA(World Class Wrestling Association)로 개칭하고 NWA를 탈퇴했다. 하지만 WWF의 약진으로 사업은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프로레슬링 사업에서 철수했다. 말년에는 부인과 이혼했으며, 199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2. 폰 에릭 패밀리
2009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자식들도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며 '폰 에릭'이라는 링네임을 물려받아 '폰 에릭 패밀리'(The Von Erich Family)라고 불린다. 전원이 '아이언 클로' 등 프리츠 폰 에릭의 기술을 이어받아 사용했으며, '폰 에릭'이라는 링네임을 쓰기는 했지만 프리츠와는 달리 독일인 기믹은 없어졌다.
아들은 6명이 있었으나, 장남 잭 애드킨슨 주니어는 어려서 요절했다. 차남부터 6남, 그리고 프리츠 폰 에릭 본인을 합쳐서 6명이 '폰 에릭 패밀리'로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10년 동안 연이어 불행을 겪게 되는데, 삼남 데이비드 폰 에릭은 1984년에 25세의 나이로 요절, 5남 마이크 폰 에릭은 1987년에 23세의 나이에 자살, 막내 크리스 폰 에릭은 1991년에 21세의 나이에 자살, 1993년에는 사남 케리 폰 에릭이 33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연달아 일어난 불행에 '저주받은 에릭 일가'라고 불리게 된다.
1997년에 프리츠 폰 에릭도 68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하여 차남 케빈 폰 에릭만 살아있는 상황에서, 2009년에 에릭 일가의 공적을 기려서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프리츠 폰 에릭의 손자 세대 역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는데, 케빈의 장남 로스 본 에릭(4남매중 셋째)과 마샬 본 에릭(4남매중 넷째)이 2012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하여 프로레슬링 NOAH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메이저 리그 레슬링에서 태그팀으로 활동중이다. 케리 폰 에릭의 딸 레이시 본 에릭도 2007년에 WWE에서 선수영입을 담당하는 존 라우리나이티스에 의해 스카웃되어 WWE와 계약맺고 레슬러로 전향해 FCW에서 잠깐 활동하다가 TNA에서 이름을 알렸다.[4][5]
3. 미디어 믹스
근육맨에서 패러디로 갓 폰 에릭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다.마사 마시 메이 마릴린의 감독 션 더킨이 프리츠와 폰 에릭 가문의 전기 영화 디 아이언 클로가 2023년에 개봉되었다. 홀트 매캘러니가 프리츠 본 에릭 역을 맡았다. 국내에선 개봉하지 못해 큰 인지도가 없지만, 북미 현지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프리츠의 아들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케빈 폰 에릭은 영화를 본 후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아버지인 프리츠에 대한 묘사도 사실에 가깝다고 언급했다.
[1] 6살 때 사망한 터라 프로레슬링 활동을 한 적이 없어 본래 성인 앳킨슨으로만 살다가 죽었다.[2] 본명 Walter Paul Sieber. 캐나다 출신으로, 프리츠 폰 에릭과는 혈연관계가 아니다. 왈도 폰 에릭의 자식이라는 기믹을 통해 프리츠 폰 에릭의 아들들과 사촌 형제 기믹으로 활동한 랜스 폰 에릭이라는 프로레슬러도 폰 에릭 가족들과 혈연관계는 없다.[3] 이 기술이 만들어진 계기로 프리츠 폰 에릭이 길에서 만난 강도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자 손목을 잡아 부러뜨려 제압한 일화나 미식축구 선수로 뛸 때 장난삼아 미식축구공을 세게 쥐었더니 공이 터졌던 일화를 떠올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꽤 오래전에 활동한 레슬러인만큼 자료가 부족한데다가, 이 시대의 레슬러들이 자기 신체능력을 다소 과장해 기믹으로 써먹었던 적이 많기 때문에 진위는 불명이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프리츠 폰 에릭은 실제로 사과를 한손으로 쥐어 터트릴 수 있었고 그와 경기했던 선수 중 2명은 아이언 클로를 당한 후 뇌 손상을 입었다는 증언이 있긴 하다.[4] 다만 레이시는 프로레슬링에는 그닥 재능이 없었다. 사실 존 라우리나이티스도 빈스 맥마흔의 따까리였을 뿐 선수보는 눈은 없었다.[5] 존 라우리나이티스(자니 에이스)는 2021년 즈음에 인사 담당 부사장 폴 르벡이 심장병으로 한동안 치료를 위해 경영일선에서 빠졌을 때 빈스의 명령으로 NXT의 쓸만한 선수들을 죄다 방출하는 등 빈스 따까리로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 빈스 맥마흔의 성범죄에도 일조하는 등 빈스의 심복들 중에서도 특히 무능한 데다 양심도 없는 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