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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1:55:24

피딴 문답

1. 개요2. 원문

1. 개요

김소운의 1978년작 수필. 글 전체가 마치 희곡처럼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특이한 형식을 보인다. 대화 이외의 서술이 한 줄도 없고, 대사 한 줄(큰따옴표 한 쌍)이 한 문단씩이다. 때문에 오로지 두 사람이 술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피딴'이라는 것은 중국 요리의 하나로, 오리알을 오랜 시간 염기에 담가 단백질을 응고시키고 특이한 맛을 배게 한 저장식품이다. 이 이국적인 피딴이라는 소재와 대화체 형식, 그리고 김소운 특유의 삶에 대한 고찰이 어우러져 짧지만 인상깊게 남는다. 그래서인지 이 수필의 제목을 "피딴 예찬"이라고 잘못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기사 전체적으로 보면 피딴 자체를 상당히 예찬하니 틀린 건 아니다만.

줄거리는 친구 사이로 보이는 두 화자가 피딴과 쇠고기[1][2]를 주제로 대화하는 이야기. 썩기 직전이 가장 맛있다는 사실이 마치 인생 같다면서 피딴에 경례하기 위해 술 마시러 나가자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짧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수필로, 다른 소재를 이용해 패러디하기 또한 상당히 좋은 형태의 글이다. 덕분에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피천득의 은전 한 닢·고전소설 허생전과 함께 수많은 패러디를 배출했다.

대표적인 패러디로 F-4 팬텀 II를 소재로 한 팬텀문답이 있다.

2. 원문

“자네, ‘피딴’이란 것 아나?”

“‘피딴’이라니, 그게 뭔데……?”

“중국집에서 배갈 안주로 내는 오리 알(鴨卵)말이야, ‘피딴(皮蛋)이라고 쓰지.”

“시퍼런 달걀 같은 거 말이지, 그게 오리 알이던가?”

“오리 알이지. 비록 오리 알일망정, 나는 그 피딴을 대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

“그건 또 왜?”

”내가 존경하는 요리니까…….”

“존경이라니……, 존경할 요리란 것도 있나?”

“있고 말구.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 오리 알을 껍질째 진흙으로 싸서 겨 속에 묻어 두거든……. 한 반 년쯤 지난 뒤에 흙덩이를 부수고, 껍질을 까서 술안주로 내놓는 건데, 속은 굳어져서 마치 삶은 계란 같지만, 흙덩이 자체의 온기(溫氣)외에 따로 가열(加熱)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오리알에 대한 조예(造詣)가 매우 소상하신데……."

“오리알에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껍질을 깐 알맹이는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데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풍미(風味)가 기막히거든. 연소(燕巢)나 상어 지느러미(嗜)처럼 고급 요리 축에는 못 들어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지…….”

“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

“아니야, 생각을 해보라구. 날 것 째 오리 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3]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처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그럴싸한 얘기로구먼.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도 되지 않는다……?”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 자루로 살아 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망건[4]을 십 년 뜨면 문리(文理)[5]가 난다.’는 속담도 있는데, 글 하나 쓸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 망발도 이만저만이지…….”

“초심불망(初心不忘)이라지 않아……. 늙어 죽도록 중학생일 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

“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 잘라 말해서, 피딴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았다는 거야……. 이왕 글이라도 쓰려면, 하다못해 피딴급수(級數)는 돼야겠는데…….”

“썩어야 할 것이 썩어 버리지 않고, 독특한 풍미를 풍긴다는 거, 멋있는 얘기로구먼. 그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 피딴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무슨 얘긴데……?”

해방 전 오래된 얘기지만, 선배 한 분이 평양 갔다 오는 길에 역두(驛頭)[6]에서 전별(餞別)[7]로 받은 쇠고기 뭉치를, 서울까지 돌아와서도 행장 속에 넣어 둔 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나.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고기 뭉치를 꺼냈는데. 썩으려 드는 직전이라, 하루만 더 두었던들 내버릴밖에 없었던 그 쇠고기 맛이 그렇게 좋은 수가 없었더란 거야. 그 뒤부터 그 댁에서는 쇠고기를 으레 며칠씩 묵혀 두었다가, 상하기 시작할 하루 앞서 장만하는 것이 가풍(家風)[8]이 됐다는데, 썩기 직전이 맛이 좋다는 게, 뭔가 인생하고도 상관있는 얘기 같지 않아……?”

“썩기 바로 직전이란 그 ‘타이밍’이 어렵겠군……. 썩는다는 말에 어폐(語弊)[9]가 있긴 하지만, 이를테면 새우젓이니, 멸치젓이니 하는 젓갈 등속도 생짜 제 맛이 아니고, 삭혀서 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 하고, 우리 나가서 피딴으로 한 잔할까? 피딴에 경례도 할 겸…….”


[1] 아는 사람이 전별 선물로 받은 쇠고기를 썩기 직전에야 발견하고 먹었는데 매우 맛이 좋아, 쇠고기를 묵혀먹는 것이 가풍이 되었다는 이야기. 썩기 직전의 소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드라이에이징'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백질 자체에는 맛이 없고 단백질이 분해되어 발생한 아미노산이 감칠맛을 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현대 축산유통업계에서는 애초에 숙성시켜 공급하므로 그냥 먹는 것이 낫다고 한다.[2] 사실 드라이에이징을 하면 더 맛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상한 부분을 잘라내야 하므로 유실률이 높아지고 또, 상할 염려도 있어서 웬만큼 고기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3] 태어나게 됨[4] 선비들이 갓을 쓰기 위해 머리를 올리게 한 머리 장식[5] 글에 대한 깨우침[6] 역 근처[7] 축제에서 나눠주는 상품[8] 집안의 전통[9] 다소 틀린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