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하종진(河鍾璡) |
이명 | 하종건(河鍾健), 하종진(河鍾進) |
생몰 | 1905년 7월 18일 ~ 1981년 4월 7일 |
출생지 | 경상남도 안의군 현내면 (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
사망지 | 경상남도 함양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배우 박환희의 외조부이다.2. 생애
하종진은 1905년 7월 18일 경상남도 안의군 현내면(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함양군 안의면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1922년 10월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동맹 휴학을 주동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1923년 5월 경성전차회사 파업을 주도해 민족차별대우에 항거했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1925년 9월 29일 대구부 신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거주하는 이금이(李今伊)의 집에서 신재모, 방한상(方漢相) 등과 회합하여 아나키즘 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다음날 대구 서성정(현 서성로) 대구노동회관 내에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했다. 1926년 5월 이금이의 집에서 다시 회합을 가지고 일본과 상하이의 아나키스트들과 제휴하여 8월 10일을 기해 상하이에 거주하는 고삼현(高三賢)으로부터 폭탄을 입수, 대구 시내의 주요관청 폭파, 각 관서의 수뇌 주살(誅殺), 번화가점포 파괴 등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도중에 누설되고 말았고, 그는 경찰에 체포된 후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81년 4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하종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