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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海東劍道 Haidong Gumdo[1]해동검도는 1980년대 김정호[2]가 창시한 대한민국의 검술, 무술이다.
2. 역사
서라벌고등학교 동창생인 나한일과 김정호는 고등학생 시절인 1970년 무렵에 서울 신당동에 있던 심검도 호법총관에 입관하여 심검도 창시자 김창식[3] 관장에게 심검도를 배웠다. 김창식 관장이 미국으로 이민 가고 나한일은 심검도 도장을 인수하였지만 경영부진으로 1977년에 폐관하였다.김정호는 기천문을 수련하였는데, 나한일도 김정호에게 소개받아 기천문 1대 문주 박대양으로부터 기천문을 배웠다. 나한일은 1980년대 초 현진영화사 김두원 회장의 후원으로 서울 서초동에 도장을 개관했는데, 박대양이 건물 임대 계약자로 자기 이름을 올리고 '기천문' 간판을 달겠다고 주장해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박대양이 떠나고 도장은 '심검도 체육관'으로 개칭했다.
김정호는 안양에서 도장을 운영하다가 1982년에 서초동 도장에서 다시 나한일과 합류, 도장 운영에 참여하고 나한일은 방송국 일에 전념하였다. 심검도 체육관은 현진영화사에게 후원받아 운영되었으나, 영화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김정호는 나종균에게 도움받아 1986년 서울 삼성동에 해동검도도장을 세우고, 나한일은 해동검도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나한일과 함께 해동검도 보급에 나섰다.[4]
해동검도 측에서는 초기에 홍보과정에서 고구려의 사무랑(士武郞)[5]이란 무사단체에서 수련하던 무술을 장백산 스승에게서 배웠다며 기원을 주장하였지만, 김정호와 나한일 간의 법정 소송에서 이 둘이 배웠던 심검도, 기천문과 무예도보통지의 검술들을 참고하여 창작한 무술로 밝혀지게 되었다.
3. 대한검도회와의 대립
해동검도는 80년대 말까지도 일반에도 검도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생도장이었다. 그런데 1989년에 드라마 무풍지대에서 탤런트 나한일이 주인공 유지광 역을 맡아 인기를 끌게된다. 드라마 속 체력단련과정이나 검도 장면이 바로 해동검도라는 것이 알려지자 해동검도에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났다.나한일은 방송에서 자신을 검도 7단이라고 소개했다. 허나 당시나 지금이나 국내 검도계에서 영향력이 큰 대한검도회는 유사검도에 대해 이전부터 신경질적으로 대응해온 터라 1989년 6월 나한일을 사이비검도교습소운영 및 검도 7단 사칭으로 고소했다. 이에 나한일은 자신이 해동검도협회 소속이고 검도는 보통명사인 데다가 해동검도 7단[6]이므로 대한검도회와는 무관하다고 맞고소하고 대한해동검도협회에서 발급한 단증을 제출하여 혐의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었다. 덕분에 이 일로 인해 오히려 해동검도가 홍보된 감이 없잖아 있었다.
4. 내부 분열과 현황
90년대 이후 해동검도는 크게 김정호 계열과 나한일 계열로 나뉜다. 2023년 기준, 김정호 계열은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홈페이지), 나한일 계열은 한국해동검도협회(홈페이지)[7]라고 불린다. 규모나 체계성은 대한해동검도협회 쪽이 앞서고 수련도 조용하게 하는 편이다. 부조리 관련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협회명을 계속 바꾸어서 혼선을 일으키는 쪽은 주로 한국해동검도협회라고 보면 된다.1989년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조직되자 탤런트 나한일의 이름값 덕분에 전국의 여러 도장이 해동검도도장으로 간판을 갈고 대한해동검도협회에 가입하였다. 유사검도 도장들과 협회들은 원래는 '대한검도회' 간판을 달고 싶어했으나, 유서 깊고 그만큼 도장 인가도 쉽게 내주지 않는 깐깐한 대한검도회 밑에서는 몇 년을 해도 도장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기네 유사검도도장과 유사검도협회를 차렸는데, 해동검도가 드라마 무풍지대 덕분에 인기가 올라갔으니 그쪽으로 상호를 교체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대한검도회가 쉽게 수를 늘리지 않아서 유사단체를 난립하게 만들었다면, 해동검도는 반대로 너무 쉽게 수를 늘려서 문제가 되었다. 협회에 수많은 도장들이 가입하자 가입비용과 협회운영을 놓고 대한해동검도협회의 수뇌부끼리 분쟁을 벌였다. 결국 1991년 나한일은 '해동심검도협회'를 만들어 분리해 나갔다가 1992년 다시 대한해동검도협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또다시 1992년 분열되어 나간 도장끼리 한국해동검도협회를 차리자 나한일이 한국해동검도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렇게 협회가 갈라지고 밥그릇 다툼을 벌이자 부실운영을 초래, 여러 병폐들이 일어났다. 아래의 사건항목도 이와 연관이 있다.
크게 김정호의 대한해동검도협회[8]와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협회로 나뉘어졌다가, 이후 분리가 계속되어 국제해동검도연맹, 도법해동검도회, 한국전통해동검도협회, 해동심검도협회 등 수십여 개 단체로 사분오열되었다.
혼란과 밥그릇 싸움(세 확장을 위한 무리한 도장 확장 및 해동검도 단체끼리 알력다툼)이 이어지던 도중 외부적으로 가장 알려져 있던 나한일이 2009년 4월 20일 경제범으로 구속수감됨에 따라 나한일 쪽 해동검도 판 자체가 흐지부지된 감이 있다. 단체가 존재하고 거기서 감투싸움이라도 하려면 수련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야 하는데, 나한일의 구속 이후 해동검도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이다. 거기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최태민과 해동검도 사이의 관련성이 부각됨에 따라 기존 유사검도 사범들도 슬슬 해동검도 간판을 내려버리기 시작했다.
결국 2019년 중소 단체들이 통합하면서# 국내에서 유의미하게 활동중이던 해동검도 협회는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 한국해동검도협회와 대한민국해동검도협회[9]로 정리되었다.
5. 해동검도의 수련
한 마디로 나한일과 김정호가 심검도 도장에서 배운 심검도의 검술을 기반으로, 기천문의 수련법을 따오고 다른 것을 집어넣어 창작한 것이 해동검도다. 중국이나 일본 쪽 기술들도 받아들인 듯하지만, 하다보니 비슷한 점이 생겼는지, 의도적으로 해동검도에 맞는 요소를 차용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하다보니 비슷한 점이 생겼다고 하기에는 맞아떨어지는 게 많고, 일부러 차용했다고 보기엔 안 맞는 게 많다.해동검도에서 수련하는 검법은 시대가 흐르고 협회가 갈라서면서 자주 바뀌는데, 1984년 출간한 ≪해동검법개론≫에 심상검법ㆍ쌍수도ㆍ예도ㆍ본국검법ㆍ장백검법ㆍ쌍검ㆍ격검이 수록되었다. 이것들이 초창기 해동검도의 모습을 간직한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해동검법개론은 나한일 편저로 되어 있으나, 연예인이던 나한일의 이름값을 이용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일 뿐 실제로는 김정호와 김정호의 이모부가 주도적으로 썼다고 김정호 측은 주장한다. 시연도 김정호가 직접 했다고.
또한 김정호는 ≪정본 해동검도≫ (2009)를 따로 출판했는데, 이것 역시 검법개론의 확장이라고 할 만하다.
적잖은 이들이 해동검도의 수련법을 논할 때, '해동검도가 진검을 쓰니까 최고다.' 혹은 '짧은 역사에 대련도 안 하니까 의미 없다.' 며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굳이 진지하게 생각하면 칼을 잘 쓰게 되는 것은 맞는다. 그런데 '무술'로서 칼을 잘 쓴다고 하는 말은 전투기술로서 가치가 있어야 할 텐데, '칼싸움을 잘하게 되느냐?' 라고 묻는다면 단순히 칼을 잘 쓴다고 칼싸움을 잘한다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5.1. 세계해동검도연맹(대한해동검도협회)
5.1.1. 유급,유단자별 검법과 과정
현재 세계해동검도에서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1~4,[10] 예도검법 1~9, 본국검법 1~7, 장백검법 1~7, 음양검법 1~7, 태극검법 1~7, 해동검법 1~7, 쌍검검법 1~7을 가르치는 듯하다.- 유급자-초단: 기본동작과 쌍수검법 1-8번을 수련한다.(1~2년 이상) 기본동작은 기마세, 대도세, 소도세, 금계독립팔상세, 자연세, 조천세, 지하세로 구성되어 있다. 착실히 기본기를 쌓으면 된다곤 하지만...많은 봐주기로 불행히도 2,3단 정도까지의 학생들은 실력이 못 미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물론 초단은 더 많다.
- 초단-2단: 쌍수검법9-12, 심상검법 (1~2년 이상)
성실한 수련의 결과가 초단이라면 2단다운 실력을 갖추게 되면 제법 그럴 듯해 보인다. 성실함+ 잘하기가 필요하기 때문, 물론 실력이 못 미치는 사람이 많다. 성인들은 기본적인 진검수련과 대나무 베기를 시작한다. - 2단-3단: 예도검법 (1년 반~3년 이상)
3단쯤 실력이 되면 자기만의 뭔가가 조금씩 나타난다. 실력이 못 미치는 사람이라도 이때쯤 되면 5~10년은 수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 3단-4단: 본국검법 (2~4년 이상)
4단 심사쯤 되면 봐주기가 거의 없다. 아무리 장사가 중요하다지만 4단은 4단이니까. 그래도 고단자답지 못한 이들이 있긴 하지만 크게 줄어든다. 그저 단이나 따려고 해동검도를 시작한 사람들은 3~4단쯤 되면 시들해져서 나가떨어지기 때문인 점도 있다. 이런저런 무술을 진지하게 하면서 해동검도 3~4단이면 볼 만큼 봤다 하고 떠나는 실력자들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비중이 매우, 많이, 엄청나게 적은 관계로... - 4단-5단: 장백검법
지도자들은 심사를 따로 보는데 체육관 운영한다고 운동이 부족해져서 탈락하는 관장들이 소수 있는 듯하다. 그래도 다행히 자정노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 정도까지 온 수련생들은 언뜻 보기엔 지도자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허접한 일부 관장들보다 이론적으로나 실력적으로 나을 정도. 해동검도를 시작한 사람 1천 명 중 거의 한 명이 4단을 따게 된다. 한 가지 운동을 최소 십수년 이상 한 사람들이니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위와 같이 가르치며 장백검법부터, 혹은 그 이후로는 지도자들의 전유물에 가깝다.
5.1.2. 격검
말그대로 검으로 겨루는 것이다. 검도의 대련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나 최근 해동검도의 대련방식을 보면 결국 실전을 가장한 수련을 위해서는 직선적인 움직임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호장비는 협회 및 도장마다 차이가 있으며 검도의 죽도와 호구를 차용하거나 스펀지검 및 플라스틱 호구를 주로 사용한다.위와 같은 자유격검 외에도 교전술이라 불리는 약속격검식의 교육법이 있으며 이 역시 도장마다 상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동검도의 격검은 해동검도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해동검도의 시작은 창시자 나한일과 김정호가 익힌 현대창작무술인 기천문과 심검도이다. 무예도보통지도 일부 참고하였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기천문과 심검도는 결국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현대인이 창시한 무술이고 무예도보통지 역시 술기가 전해져 내려온 게 아니라 정확한 해설이 어려워 창시자의 실전경험에 의지하기 보다는 이론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는 해동검도가 검형에 치우친 수련보다는 격검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지만 제대로 된 대련체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나한일과 김정호가 만든 해동검도 이론 대부분을 갈아 엎어야 하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해동검도의 대부분 기술이 실전성과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 만약 시간이 지나 해동검도가 제대로 실전성을 갖추기 충분한 대련이나 스파링체계를 도입하게 된다면 그건 이미 해동검도가 아니라 결국 검도나 HEMA 토너먼트와 비슷한 무엇인가가 될것이다.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미 대련 시스템 자체를 검도호구와 죽도를 들여 검도식으로 하는 해동검도 도장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대련에서 사용되는 기술과 해동검도의 검형이 전혀 연계되지 않는 현실이 이를 명확하게 증명한다. 검도에서 일본검도의형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검리를 죽도대련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5.1.3. 발도,착검
제대로 운동했다면 필요 없는 교육과정이지만, 어린 수련생들은 발도ㆍ착검이 개판인 경우가 많아 나중에 커리큘럼을 만들었다고 추정. 말 그대로 발도,착검만 하진 않고 뽑아서 베거나 막거나 한 다음 착검하는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었다. 발도 동작은 거합도를 참고해 창작한 듯. 하지만 해동검도에서는 검형의 일부에 불과하다. 거합처럼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수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5.1.4. 물체 베기
성인은 대나무베기를 하고, 미성년자는 목검ㆍ가검ㆍ죽검(대나무로 만든 얇은 검) 등으로 종이베기를 한다.[11]대나무베기는 자기 검만 있다면 들이는 돈 대비 시간이 준수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므로 해동검도를 그만두고도 하는 사람이 많다. 반대로 대나무베기가 하고 싶어서 배우는 사람도 있다. 사실 대나무베기를 배울 땐 전문적으로 베기만 하는 동호회나 작은 협회 등에서 배우는 편이 빠르나, 마음이 급해 그렇게 배우더라도 해동검도도장이나 검도도장, 혹은 기타 검을 다루는 무술도장에서 해당무술과 병행해서 배우기가 자기 자신에게나 검에게도 좋다고 생각한다.
종이베기는 아무리 날 없는 검이라도 대상이 '종이'라 쉽게 되리라 다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짚단베기랑 비슷한 느낌이랄까.[12]
5.2. 한국해동검도협회
1994년 한국해동검도협회에서 출간한 ≪해동검도-검도의 원류와 검법≫에는 쌍수검법ㆍ심상검법ㆍ예도검법ㆍ본국검법ㆍ장백검법ㆍ선방검법ㆍ선공검법ㆍ좌방검법ㆍ좌공검법ㆍ와검법ㆍ몽복검법ㆍ비연검법ㆍ쌍검법ㆍ참선검법이 등장,1999년 한국해동검도협회의 서적 ≪해동검도교본≫에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예도검법 1~9, 선방검법 1~20, 본국검법, 선공검법, 쌍검법, 좌검법, 천강검법, 명상검법, 해동검법이 등장.
2005년 한국해동검도협회 정관에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1~4, 예도검법 1~9, 선방검법 1~20, 선공검법 1~16이 나와있다.
2016년 기준으로 유급자는 쌍수 1~12번 심상검법을, 1단은 예도검법과 선방검법 1~5번, 2단은 예도검법과 선방검법 6~9번, 3단은 선방검법10~20번을 수련한다.
5.3. 기타 사항
기타 군소 협회들의 수련은 대한해동검도협회나 한국해동검도협회와 유사하고 거기서 협회마다 가감한 정도이다,참고로 세계심검도협회의 술기로 선방검법 1~20, 선공검법 1~16, 좌방검법, 좌공검법, 와검법, 와우검법, 와좌검법, 와복검법, 참선검법, 몽복검법, 몽검법, 비연검법, 도검법, 검투검법, 심검법이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해동 일부 계파(한국해동검도 계열)에서 하는 선방검법ㆍ선공검법ㆍ좌검법ㆍ천강검법ㆍ명상검법 등은 심검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심검도는 중도 크기 칼을 한 손으로 사용하는 검술이며 양손으로 검을 다루는 기법은 없다.
나한일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심상검법ㆍ본국검법은 나한일과 김정호가 함께 만든 것이며, 쌍수검법은 나한일이 무예도보통지의 쌍수도를 참고하여 만들었고,[13] 본국검법은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김정호와 나한일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해동검도의 본국검법은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과 그 기원은 같으나 실제 내용은 다르다. 무예도보통지 복원 검술이 다 그렇듯이 단체마다 해석과 재현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은 본국검법의 재현도에 있어서는 대한검도회 측의 재현 또한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말 못한다. 대한검도회는 자신들이 하는 일본검도의 검리에 맞춰 왜곡하는 경향이 몹시 강하기 때문이다.
해동검법개론을 보듯이 해동검도의 주요 술기는 김정호가 만들었으며 처음 만들었을 때 심상, 쌍수, 예도, 본국, 장백, 쌍검 등인데, 초창기에 갈라져나간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 계열에서는 김정호의 해동검도의 검법을 전부 익히지 못했다보니 모자라는 기술을 심검도의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검법 등으로 메꾼 듯하다. 내가신장ㆍ소도세ㆍ복호세ㆍ대도세ㆍ개운기공 등은 본래 기천문의 수련법이다. 검술 자체는 심검도를 기초로 쌍수검술로 창작해낸 것이고, 수련기법은 기천문에서 따왔다고 보면 되겠다.
해동검도는 형 수련을 중심으로 하고 대련 시스템이 없다보니, 대련 노하우가 없어서 칼은 잘 쓸지언정 싸움은 못하는 상황. 검도 측과 대련으로 붙으면 질 공산이 매우 크다. 하지만 근래에 대련 시스템 없이는 검술에 발전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해동 쪽에서도 호구[14]와 죽도 대련, 혹은 기타 대련방법을 도입하려다 말았다. 이처럼 해동검도 일선관장들도 자신들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다양한 부분에서 타 무술의 체계나 기술을 흡수하여 보완하려는 시도가 많다. 또는 무예도보통지 무술을 자체적으로 재해석하여 수련하는 단체도 존재한다.
현재의 해동검도는 진검 대나무, 짚단베기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죽도 위주 검도와 비교우위를 내세우는데, 사실 해동검도 초창기의 베기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해동검도의 베기 기술이 좋아진 때는 대한도법협회의 이영식과 교류하면서 부터이다. 이 때 베기를 배운 제자들이 해동검도에 대거 합류하였다. 이영식은 진검 베기를 추구해서 검도계의 원로들로부터 검술을 배우고 나카무라 다이사부로의 책을 독학으로 연구하다, 결국 나카무라 다이사부로와 직접 만나고 초빙해와서 배우는 등 베기술 쪽으로 연구가 깊은, 한국 검도계에서 보자면 매우 경력이 희한한 인물이다. 이영식의 베기 기법은 호산류와 나카무라류 발도도를 원류로 하는데 이영식으로부터 배운 노대래, 김은정 등의 해동도법검도회나 싸우라비도법연구소 쪽 사람들이 해동검도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해동검도의 짚단베기가 일본식 시참, 타메시기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나카무라 다이사부로가 2차대전 때 중국에서 일본 토야마 육군병학교의 군도 사용법을 기반으로 한 거합도, 즉 후대에 토야마류(戸山流)라고 불리는 것을 가르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토야마류는 2차대전 때 일본군에게 보급된 검술이고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는 만주에서 일본군 교관으로 뛰던 인물로서 자신의 토야마류의 실전베기 기법을 닦아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를 창시했다. 한반도 전통 검도를 자칭하며 민족정신 같은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해동검도가 실제로는 일본 제국 검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토야마류, 나카무라류의[15] 진검베기술을 '충실히' 흡수한 셈이니 참 아이러니하다.[16]
그리고 현재는 거합을 배워 포함하거나, 아주 일부이지만 프랑스에서 지팡이술인 깐느를 배워온 경우도 있고, 스포츠 찬바라를 도입하기도 하며, 나카무라류나 그 방계인 발도도 용성검 등과 교류하기도 한다. 그외 여기저기서 다양한 무술들을 참고해서 부족한 컨텐츠와 검리의 보완에 매진하는 듯. 좋게 보면 자신들의 단점을 보완해 가며 제대로 운동을 하고자 하는 것이니 긍정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초기 해동의 컨텐츠 자체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6. 검도와의 차이점
해동검도의 수련 항목에서 보다시피, 검도와 해동검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검도를 해동검도와 구분해서 이야기 할 때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단체명에서 따와서 '대한검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대한검도회'라는 단체명에서 가져온 것일 뿐이다. 오늘날 검도의 정확한 의미는 '대한검도회 소속 도장에서 가르치는 격검 무술'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검도는 본래 검을 쓰는 무술의 보통명사가 아닌, 특정 무도 그 자체를 의미하는 고유명사이므로, 해동검도를 검도에 포함시키기는 힘들다.대한검도회 측의 주장에 따르면, "검도(劍道)라는 단어는 중국한서예문지(中國漢書藝文志)에 '검도삼십팔편(劍道三十八篇)', '수박육편(手搏六篇)'이란 최초의 표현이 있다. 즉, 일본에서 기원한 단어가 아니며, 한자 문화권의 공통된 표현이다."라고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17] 이는 왜색 논란을 피하기위한 단체의 변명일 뿐인지라 다수의 검도 수련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무술에 '도(道)'를 붙이는 것은 유도를 시초로 하는 일본식 명명법이다. 태권도와 궁도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일본에는 발도도나 거합도와 같이 검을 사용하는 별개의 무도가 있으며, 현대 무도와 별개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고류 검술 유파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을 가리켜 검도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국내에 ~검도라는 무술들이 난립하면서 검도라는 단어가 이미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고려해 법원에서 '검도'라는 단어를 독점적인 고유명사로 보기 힘들다고 판결을 내린 바가 있으므로, 적어도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검도라는 단어가 반드시 고유명사라고만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해동검도인들은 나한일이 그랬듯이 그냥 검도 수련자라고 자칭하는 경우가 잦다. 강남 주택가에서 '묻지마 칼부림',TV조선,2013-06-28 이 사건도 '공인된' 검도[18]를 하느냐고 물었다가 벌어진 사건이다.
7. 검도 vs 해동검도 삼대논쟁
자세한 내용은 검도 vs 해동검도 삼대논쟁 문서 참고하십시오.정통성, 실전성 그리고 베기 측면에서 해동검도와 검도 사이에 논쟁이 있다.
8. 사건 사고
- 2000년 7월 1일 10시 10분, 서울시 마포구 성산2동에서 술에 취한 해동검도 사범(박모 씨, 21, 해동검도 4단)이 부인과 통화를 하면서 욕설을 하던 행인 이모 씨(41)가 자신을 욕하는 줄 알고 진검을 휘둘러서 이모씨의 팔을 잘라버린 (정확히는 오른쪽 손목과 왼팔을 자르고 머리와 복부에 20cm가량의 상처를 입힘.) 사건이 있었다. 이후 박모 씨는 해외로 도주하려다가 9일 경찰에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다.[기사1] 워낙 임팩트가 컸던 사건이라 일명 '해동검도 월아천충 사건' 이라고 불리면서 해동검도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이 사건에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검도사범 박모 씨는 평소부터 자기과시욕과 피해망상이 심각하여 평소에 자동차에 진검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주변에 벨 만한 것이 있으면 아무거나 베고 다닌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결국 정신병으로 판결났고, 팔을 절단당한 이모 씨의 부인과 합의금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 부인은 합의금을 받자마자 잠적했다고 한다.
이모씨는 팔의 봉합수술까지는 했지만 근로능력은 잃었다.[기사2]. 양팔을 절단당하고도 합의금으로 합의를 보려 한 이유는 이모 씨의 생계가 매우 안 좋았기 때문인데, 아내가 합의금 갖고 도망간데다 자식 둘을 혼자 키워야 하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 2010년 1월 9일, 한 해동검도 계열 관장이 자신의 여제자가 남자친구와 교제하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남자친구를 도장으로 불러 훈계를 하다 진검을 뽑아 복부를 찌르고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참고로 여제자와 남자친구는 둘 다 당시 17세 미성년자였다.
- 2010년 3월 18일, 한국해동검도협회의 수장인 나한일은 불법 대출과 자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기사3] 6월 16일, 5억 원 갈취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기사4] 2015년 5월 법원은 5억 원을 갈취한 나한일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기사5]
- 2013년 6월 28일 해동검도 수련자가 진검을 들고 시민을 추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기사6]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해동검도 수련자의 진검으로 인한 공격사고라는 점에서 지난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
[1] 세계해동검도에서의 정식명칭이지만 해외에선 Haedong Kumdo 쪽이 더 널리 쓰인다. 두 표기 모두 어떤 하나의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영미권의 해동검도 유튜브 영상을 보면 정식명칭으로 쓰일경우 "하이동굼도" 라는 발음이 된다. 물론 특정어권에서의 발음양상을 이유로 로마자 표기법을 바꾸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Haidong Gumdo와 Haedong Kumdo 둘 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과 예일 표기법에 맞지 않다. 물론, 사단법인의 고유명사이므로 표기는 굳이 규범에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2] 현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3] 당시 화계사 주지 숭산 스님의 제자였다.[4] 해동검도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각자가 말이 다르다. 1982년에 경기도 안양시에서 김정호가 운영하던 도장이 "해동검도체육관"이었다는 주장, 1984년 서초동 심검도 도장에서 배우던 최태민[25]이 제안하여 그때부터 해동검도를 상호로 사용했다는 주장, 1986년 삼성동 해동검도도장 때부터 사용했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는 1984년에 최초로 해동검도 관련 기사가 검색된다.[5] 사무랑은 싸울아비와 마찬가지로 사무라이를 본따 현대에 만들어진 조어이다.[6] 다만 대한해동검도협회가 1989년 5월에 조직되었다는 점. 즉, 협회 시작하고 한 달 만에 7단이 된 셈이다.[7] 한국해동검도협회는 아직 활동하고 있다. 다만 홈페이지는 2020년 이후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8] 1996년에 이를 모체로 국제단체인 세계해동검도연맹도 출범. 세계해동검도가 부조리가 일찍 정리된 편이고 운영과 관리가 좀 더 나은 관계로 이후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9] 대한민국해동검도협회와 한국해동검도연합회, 그리고 국제해동검도협회가 통합하였다.[10] 본래 통합되어 있으나 4부분으로 쪼갠 것.[11] 도장에 따라서 미성년자는 유단자 승급심사 및 승단심사 때에 테니스공이나 탁구공 등을 던져 가검으로 베기도 한다. 시범 시에는 가검으로도 베어지는 사과를 쓰기도 한다. 이 또한 바리에이션이 도장마다 달라서 공을 던진 후 두 발 나가면서 검을 뽑고 낮은 자세로 사선베기나 제자리에서 공을 던진 후 횡으로 발도하며 베는 등 난이도와 베는 방식이 다양하다. 또 시범단의 경우 탁구공 던져 뒤돌아베기나 고단자의 경우 BB탄을 가지고 수련하는 경우도 있다. 움직이는 물체를 베는 만큼 난이도가 있지만, 대나무베기나 짚단베기에 비해 접근성이 좋다. 일단 고가의 장비+살상위험이 있는 진검을 쓰지 않아도 되고.[12] 대나무베기는 시작이 어려울 뿐 베냐 못 베냐의 문제지만, 짚단베기는 일단 짚단에 칼을 박아넣는 건 누구나 쉽게 되지만 잘 베기는 꽤나 어렵다. 종이베기 역시 마찬가지로, 종이에 검이 닿는 순간 '찌익' 소리가 나며 깔끔하게 종이가 둘로 갈라지는 것보다,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가 통째로 '뜯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검이 없는 유급자들은 날을 세운 목검으로 벤다. 베기의 원리는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 칼날 각을 최대한 휘두르는 궤적과 같은 각도로 움직이면 날 좁은 부분에 휘두르는 힘이 모두 다 실려서 베는 힘이 강해지고, 검이 물체에 맞을 때 최대한 빠르게 베어 없애야 칼날각이 누워서 물체가 반만 찍히는 일 없이 잘려나간다. 이것이 쇠숟가락, 열쇠고리, 방망이, 두꺼운 생대나무같은 단단한 물체나 전통 닥나무 한지처럼 뒤로 밀려나가면서 베이지 않는, 즉 베기 어려운 물체베기의 공통원리가 된다.[13] 쌍수검법 12번이 무예도보통지의 쌍수도와 그 형태가 비슷하다. 사실상 해동검도식 재해석이라고 봐야 옳다.[14] 일본 검도의 호구가 아니라 좀 기묘한 신소재 호구를 개발했는데 디자인이 참 묘하다. 문제는 이 호구 문제조차도 협회마다 제각각이라는 것. 일본검도 호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도장도 있다.[15] 그전부터 내려오던 전통 검술이 아니라, 기존의 검술들을 참고하면서 군도술로서 정립된 검술이다. 토야마류라는 명칭이 붙고 민간 무술 유파로 출범한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이나, 그 뿌리는 엄연히 일본군의 군도술에 두고 있다. 나카무라류의 경우 아예 창시자인 나카무라 다이사부로 본인이 토야마 육군병학교의 검술교관을 지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6] 이로 인해 나카무라류와 그 방계 유파들은 군도술에서 출발한 유파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과의 관계가 꽤 우호적이다. 외국의 무술인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듯 하다.[17]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 한중일의 고서나 문학작품, 사기 등을 통틀어도 검도라는 표현을 쓴 예는 저 한 번 뿐이고,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의 무술 명칭 끝에 도(道)를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18] 과거에는 각종 시험 가산점에 검술 관련은 대한검도회의 단증만 인정해 주었기에 나온 말. 2012년부터 경찰공무원과 ROTC 시험에서 해동검도 단증도 인정해준다.[기사1] 검도사범이 진검으로 행인 팔 잘라, 국민일보, 2000-07-09[기사2] 한 평범한 가장이 나락으로 빠진 사연, 미디어다음, 2006-09-12[기사3] 한국해동 나한일 총재, '자금횡령' 징역 2년 6개월 법정구속, 무카스미디어,2010-03-18[기사4] 배우 나한일 5억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 연합뉴스, 2014-06-16[기사5] '해외 투자 5억 사기' 배우 나한일에 징역 2년, 연합뉴스, 2015-05-17[기사6] 강남 주택가에서 '묻지마 칼부림', TV조선,201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