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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1 23:47:20

해리 오닐

파일:1000022131.jpg
해리 오닐
Harry O'Neill
본명 해리 밍크 오닐
Harry Mink O'Neill
출생 1917년 5월 8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사망 1945년 3월 6일 (향년 27세)
일본 제국 오가사와라 제도 이오지마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다비 고등학교 - 게티즈버그 칼리지
신체 190cm / 92kg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3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PA)
소속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39)
복무 미합중국 해병대
1942년 ~ 1945년
최종 계급 중위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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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야구 선수.

2. 생애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출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게티즈버그 칼리지에서 야구와 미식축구, 농구를 병행하며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졸업 후 야구 선수의 길을 택했고 1939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 계약을 채결했다. 그 해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7월 23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 8회말 대수비로 출장했으나 타석에 들어서진 않았다. 이 경기가 그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경기이다.

애슬레틱스에서 지명할당당한 후 마이너리그 해리스버그 세네터스에서 16경기를 뛰었으나 .238를 기록하고 방출되어 야구를 관두고 농구, 미식축구 세미프로에서 뛰었다.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해병대 장교로 입대했고 제4해병사단 제25해병연대 화기중대 소속으로 배치되었다. 콰잘레인 전투에서 첫 실전을 치렀고 사이판 전투당시 어깨에 총상을 입고 본국에서 치료를 받은 후 원대복귀했다.

1945년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의 저격을 받고 전사했으며 드렉셀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엘머 기디언과 함께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사했던 유이한 야구선수이다.[1]


[1] 유럽전선에서 폭격임무를 수행하다가 대공포로 인해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