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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3 09:34:56

협의회/제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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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동고와 마탐바의 여왕 은징가 음반데
팔미라의 여제 제노비아
나일강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전사 전쟁의 신 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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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루 왕 샤카 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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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 알프레드 노벨
정치인 페리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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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하얀 쥐 낸시 웨이크
저항의 여왕 부디카
엘 리베르타도르 시몬 볼리바르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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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협의회 의석 주개3. 협의회 의석 전쟁개4. 추가 정보

1. 개요

Zenobia
팔미라의 여제
나는 여왕이며, 살아있는 한 군림할 것이다.
Empress of Palmyra
I am a Queen; and as long as I live I will reign.

2. 협의회 의석 주개

<colbgcolor=#a3cca2><colcolor=#fff><rowcolor=#fff> 고문관 등급 군수품 수레 회복량 중장갑 기병 HP 원거리 공성 병력 데미지 공격 헬리콥터 데미지 및 HP 박격포 보병 데미지
일반 +8% N/A N/A N/A N/A
고급 +10% +9%
희귀 +12% +11% +12%
특급 +15% +14% +15% +9%
전설 +20% +18% +20% +12% +24%

3. 협의회 의석 전쟁개

<colbgcolor=#a3cca2><colcolor=#fff><rowcolor=#fff> 고문관 등급 장벽 HP 타워 데미지 방공 시설 데미지 타워 HP 미사일 격납고 데미지
일반 -5% N/A N/A N/A N/A
고급 -6% -9%
희귀 -7% -11% -10%
특급 -9% -14% -13% -13%
전설 -12% -18% -16% -16% -12%

4. 추가 정보

셉티미아 제노비아는 서기 240년경, 실크 로드의 주요 중심지 역할을 했던 로마의 팔미라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노비아는 자신이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르타고의 첫 여왕 디도와 같은 혈통이라고 믿었습니다. 18세가 되었을 무렵, 제노비아는 팔미라를 포함한 많은 지방을 통치하던 권세 높은 로마 총독,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오다에나투스와 결혼했습니다. 그 후 둘 사이에서 바발라투스라는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제노비아의 아들이 10세가 되던 해 루키우스가 세상을 떠났으며, 이는 암살이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바발라투스는 직접 통치하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제노비아가 섭정이 되어 세상을 떠난 남편과 같은 방식으로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당시 로마는 빈번한 권력 교체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를 기회로 삼은 제노비아는 로마에 공식적으로 선전 포고를 하기보다는 로마의 희생으로 자신의 제국을 확장했으며, 그녀의 군대는 로마령 이집트에 무혈입성해 그곳을 차지했습니다.

이집트를 팔미라의 영토로 선포한 제노비아는 레반트와 소아시아의 군주들과 외교 협상을 시작했고, 두 군주 모두 그녀에게 가담했습니다. 로마가 내분에 대처하느라 바쁜 사이 몰래 제국을 확장한다는 여왕의 계획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새로운 황제인 아우렐리아누스는 제노비아의 계획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경고도 없이 소아시아로 군대를 진군시켜, 제노비아에게 충성을 맹세한 많은 도시와 마을을 파괴했습니다. 그러자 제노비아는 군대를 소집해 그 유명한 임마에 전투에서 로마에 맞서 싸웠지만, 패배해 에메사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제노비아를 추격했고, 다시 벌어진 전투에서도 로마가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팔미라까지 추격당한 그녀는 그곳에서 마침내 생포되었습니다.

제노비아의 최후에 대한 진실은 아직까지 불분명합니다. 당대 역사가들은 그녀가 아우렐리아누스에게 처형당했거나, 독으로 자살했거나, 권력을 포기한 후 계속 살아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노비아가 영리한 외교적 처세술과 정치적 전략으로 유명해졌다는 사실입니다.

Septimia Zenobia was born around 240 CE in the Roman Province of Palmyra, which served as an essential hub for the Silk Road. She claimed that she shared ancestry with Cleopatra VII of Egypt and Dido, the first queen of Carthage. Around the age of 18, she married a powerful Roman Governor, Lucius Septimus Odaenathus, who ruled many provinces including Palmyra. Later, they had a son, Vaballathus.

When Zenobia’s son was 10, Lucius was killed, which has been referred to as an assassination. Vaballathus was too young to rule on his own, so Zenobia took the role of regent and continued to rule in the same manner as her late husband. During this time, Rome was in disarray due to frequent shifts in the ruling powers. Zenobia used this opportunity to expand her empire at Rome’s cost and rather than formally declaring war on Rome, her armies simply marched into Roman Egypt and claimed the territory as their own.

Zenobia claimed Egypt in the name of the Palmyra and began diplomatic negotiations with the rulers of the Levant and Asia Minor, both of which would join her side. The Queen’s plot to covertly grow her empire was working as Rome was too busy dealing with internal strife. However, the new Emperor of Rome, Aurelian, was wise to Zenobia’s plans. Without warning, he marched his forces into Asia Minor, destroying many cities and towns that pledged loyalty to Zenobia. She then rallied her army to defend against Rome at the famous Battle of Immae but was defeated and forced to retreat to Emesa. Aurelian pursued Zenobia, their armies fought again, and again the Romans claimed victory. She was chased to Palmyra, where she was finally captured.

The true fate of Zenobia is unknown. Historians of the time say she was executed by Aurelian, or she poisoned herself, or she continued her life without any further claim to power. What is known, however, is how popular Zenobia became due to her clever navigation of diplomacy and political strate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