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의 [[극중극|{{{#fff 극중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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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녀 |
츠키카게 치구사 버전 홍천녀 | 기타지마 마야 버전 홍천녀 |
1. 개요
만화 유리가면에 나오는 연극 작품의 이름이자 극중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2. 상세
츠키카게 치구사의 은사였던 극작가 오자키 이치렌의 마지막 작품으로, 유리가면의 최종 스테이지이다.과거에 대히트를 기록했던 전설의 명작이며 주연배우 츠키카게 치구사의 심각한 안면부상 이후 상연되지 못 하고 있는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 작품의 상연권을 가지고 있는 츠키카게 치구사는 이 연극을 물려줄만한 재능을 가진 여배우를 20여년 동안 찾고 있었는데, 연기의 천재 기타지마 마야를 만나게 되어 유리가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200회 이상 롱런한 연극 치곤 외부에 알려진 정보가 너무 없다. 상연 당시 시장성과 작품성 모두 고평가 받은 작품이라면 대본을 구하긴 힘들더라도 전문 평론 정도는 찾아볼 수 있어야 정상이다. 헌데 마야와 아유미는 연극의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 아유미의 어머니인 히메가와 우타코 역시 홍천녀 역에 도전하던 배우였다는 것을 생각하자. 홍천녀란 간판은 한 세대 동안 잊힌 적이 없는데도 정작 연극 내용은 20년 넘게 실전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그냥 홍천녀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서 생긴 설정 구멍이라고 봐야한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혼란에 빠진 '남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대 천황은 천년 묵은 매화나무로 천녀상을 조각하라는 계시를 받고, 불상 조각가 '잇신'에게 천녀상을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잇신은 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리고, 우연히 시골에서 아리따운 아가씨 '아코야'에게 구조받는다. 이후 두 사람은 부부로써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 그러다 잇신이 점점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아내 아코야가 매화나무의 정령이자 여신 '홍천녀'가 인간으로 변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 갈등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결말에서 잇신은 매화나무를 베어 천녀상을 조각해 나라의 평안을 되찾고 방랑길에 떠나는데, 클라이막스인 '잇신이 홍천녀가 깃든 매화나무를 베는 장면'은 작중에서 아직 언급하지 않아 둘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었는 지는 아직 원작에선 공개되지 않았다. 단, 오페라 한정으로 클라이맥스가 공개가 되었다.
홍천녀의 연기하기 위해서는 연기력 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신체적 표현 능력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발레를 비롯한 각종 무용을 습득하여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고 있는 히메가와 아유미에게 기타지마 마야가 뒤처지고 있는 듯하나, 두 사람이 배역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홍천녀가 되는 마야, 홍천녀를 연기하는 아유미-탓에 츠키카게 치구사는 아유미가 열세에 있다고 평한다. 아유미도 이 문제를 느끼고 있었는데 눈까지 다쳐서 이 겹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한층 미궁 속으로….
1권부터 '대단한 명작'으로 언급되어 많은 팬들을 설레이게 했다. 그러나 막상 츠키카게 치구사가 펼친 시연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메세지[1], 과도한 주연 여배우의 예술성 의존, 작가 개인의 사상을 어필하는 '와닿지 않는 대사'[2][3] 등으로 인해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평도 있다.
홍천녀는 여지껏 마야와 아유미가 선보인 연극들보다는 확실히 고루하고 재미가 부족한 편이다. 작중 홍천녀가 꾸준히 설파하는 철학도 자연주의에 종교적 색채를 살짝 입힌 것 뿐이다. 배경 설정은 도저히 연극이라 보기 힘들만큼 복잡하고 그에 더해 노가쿠 스타일의 연기를 요구하며, 주연의 알쏭달쏭한 독백도 길다. 다만 극중 잇신과 홍천녀의 관계가 지금의 마야와 마스미와 겹쳐보이는 등의 드라마틱한 효과는 있다. 서로 출신도 나이도 상관없이 이끌리는 ‘영혼의 반쪽‘이라는 홍천녀와 잇신처럼 마야와 마스미 역시도 서로 사회의 꼭대기와 바닥 출신에다 나이차도 크지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강하게 이끌리는 로맨틱한 관계성임이 홍천녀를 통해 확인되고, 둘의 서사를 완결짓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재미가 이전의 연극들보다 좀 부족하다뿐이지, 작품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건 아니다. 되려 '홍천녀'는 '영화'나 '뮤지컬'로 각색하면 재밌을 법한 스토리인데 명색이 작중 최고의 '연극'이며 최종 스테이지(?)이므로 작가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상당히 고심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문제는 정작 홍천녀 파트가 시작된 지금 여지껏 보여준 어떤 연극보다도 더 지고하고 대단한 것처럼 꾸미려다.... 적어도 완결이 나지 않은 아직까지는 '홍천녀' 자체가 보여주는 연극적인 재미는 설레발 친거에 비하면 그닥.. 즉, 독자 입장에서는 주연 여배우의 신들린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 땡인 연극으로 평가받고 있다.[4][5]
홍천녀 자체의 구성보다는 배우가 얼마나 자기 기량을 뽐내느냐를 중점적으로 보게 만들어 1인극이나 다름 없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오랜 휴재 끝에 다시 홍천녀 파트 연재가 시작되면서 '마야'와 '마스미'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와 '홍천녀'의 연습과정, 연극연출의 재미, 극중인물과 닮은 두 사람의 스토리가 얽히면서 다행히 볼거리와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3. 그 외
두 후보자가 서로 부딪친 작품 두 사람의 왕녀가 재미와 작품성 등에서도 더 앞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연중이 길어짐에 따라 두 사람의 왕녀가 최종 스테이지로 취급받는 경우도 생겼다.[7]이 연극과 관련된 사람들 중 불행한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저주받은 연극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극작가는 자살하고, 주연 여배우는 얼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후계자들도 만만치 않다. 한 명은 한 번은 낙사, 한 번은 익사할 뻔하고[8], 다른 한 명은 시력을 잃고, 남자 주인공 역은 차에 치인다.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장애에 빠지고, 경쟁사로부터 고용된 깡패들에게 구타 당해 죽을 뻔한 이 부자(父子)는 또 어떠한가?
2006년 2월 일본 국립 노가쿠도에서 노로 각색되어서[9] 공연되었다. 원작자 미우치 스즈에 본인이 감수했다고. 노 만화 꽃보다도 꽃처럼 17권 후기에 보면 작가 나리타 미나코가 우연히 얻은 곡옥을 알고 지내는 노 악단에 기증했는데 그 곡옥이 쿠레나이텐뇨(紅天女)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꽃보다도 꽃처럼 17권의 일본 발매일이 17년인 것을 볼 때 계속 공연되는 듯.
2019년 10월 24일 일본 오페라 협회가 홍천녀를 오페라로 각색한다고 발표했다. 각본은 원작자 미우치 스즈에가 담당하며, 제작발표회에서 미우치가 직접 만화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홍천녀의 결말까지 그려낼 것이라고 언급했다.[10] 2020년 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상연했다. 관련 기사(일본어) 무려 상영시간이 3시간 45분(...)에 달하여 체력이 없으면 볼 수 없는 대작이라고 한다.
[1] 현대 연극이라기보단 특정 종교의 신화 같다는 느낌을 준다.[2] 초반부, 여신 모드(?)의 홍천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의지와 인간의 탐욕성, 문명 사회의 허무함을 강조한다. 게다가 원본 대사 자체도 고어(古語)로 이루어져 있어 읽기 어렵다. 홍천녀가 노가쿠에나 나올 법한 풍성하고 무거우며 화려한 장식이 달린 헤이안 시대 복장을 입고 무당들이나 할 만한 대사를 치고 있는 걸 보면, 홍천녀 자체가 보편적인 대중 연극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3]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마야와 아유미가 이전까지 했던 작품은 통속성이 매우 짙은 대중용 연극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현실 연극인이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체호프나 입센의 작품은 작중에선 찾아볼 수도 없고 셰익스피어 작품(한 여름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마저도 대중 입맛에 맞추어 각색한 퍼포먼스극이다. 그러니 홍천녀만 유독 재미 없는 극중극으로 취급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4] 실제로 한 장면에서는 '여기서는 여주인공이 천녀처럼 보이지 못 하면 연극 전체를 망치게 된다'라고 한다.[5] 이 홍천녀를 쓸 당시, 오자키 이치렌에게 남아있던 배우는 츠키카게 치구사가 유일했고 연극을 쓰게 된 것도 치구사에게서 홍천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른다. 38권 치구사의 과거 이야기에선 아예 대놓고 치구사만을 위한 역할이라고 하기도 하다.[6] 다만 치구사가 홍천녀를 보여주는 씬에서 "저 혼자 하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미리 사과하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1인극에 가깝게 편집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연습이 진행되면서 잇신 파트도 상당한 비중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데 츠키카게의 마지막의 홍천녀 시연에선 겐조가 나레이션으로 홍천녀나 아코야가 나오지 않는 파트를 흘려넘겼고 도우미로 참여한 극단 츠키카게와 일각수 일행은 종막의 매화나무를 지키는 신령들 역할 정도만 했다.[7] 무대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도 극적이었으며 내용도 이해하기 쉽고 인물과 기승전결이 자세하게 소개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극중극이다. 다만 이 연극은 통속성이 짙으며 배역에 몰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난이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마야든 아유미든 극한의 연기력을 발휘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치구사가 홍천녀를 준비할 목적으로 둘에게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요구한 것이지 이 연극이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마야와 아유미가 각자 배역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역할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성격에 안 맞는 역을 맡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치구사가 교정하는 과정에서 꽤 하드한 트레이닝을 겪었기 때문. 그나마 마야같은 경우는 배역이 배역이다 보니 육체적인 고생은 별로 없었으나 아유미는 자기 자신도 몰랐던 본성을 끌어내려다 보니 좀 많이 고생했다.[8] 낡은 다리를 건너던 중 중간에 발판이 빠져 떨어질 뻔했고, 보트에 매인 줄이 발목에 휘말려 강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데스티네이션이냐[9] 본편의 홍천녀 시연 때 보면 노를 염두에 두고 만든 극이을 알 수 있다.[10] 사실 그렇게 대단히 궁금한 문제는 아니다, 밝혀질 것은 잇신이 매화나무를 어떻게 했을까 뿐인데, 겐조의 나레이션으로 나온 후일담에 다 암시 됐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