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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11:07:20

황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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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23호[1] 25호 26호
석파정 별당 황학정 석파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
황학정
黃鶴亭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사직동)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수량 / 면적 건물 1棟, 토지 154.1㎡
지정연도 1974년 1월 15일
시대 광무 2년 (1898년)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568123_image2_1.jpg
<colbgcolor=#bf1400> 황학정
1. 개요2. 특징

[clearfix]

1. 개요

黃鶴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아래에 위치해 있는 대한제국 때 세워진 누각 및 정자. 조선왕조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온 유일한 활터이며 원래는 경희궁 내(內)에 있었지만 1922년 일제가 사직단(社稷壇)을 사직공원으로 변모시키면서 지금의 인왕산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사단법인 황학정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대한제국 때인 1898년 고종의 명령에 의거하여 경희궁 내(內) '회상전(會祥殿) 담장에 있던 궁술 연습장으로 사용되었던 사정(射亭)으로 한때 고종이 이곳에서 직접 활쏘기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2]

그러나 1922년 일제가 이곳에 학교를 짓는다는 이유로 경희궁을 철거하고 경희궁 건물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지금의 서울특별시 사직공원(사직단) 북쪽 인왕산 아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은 그 전까지는 국궁 터로 있었던 '등과정(登科亭)' 의 옛 터가 있었던 곳이었다.

조선왕조 때 궁술 연습을 목적으로 한 국궁터 역할을 한 사정이 5개가 있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1894년 갑오개혁 등으로 인하여 활쏘기 무예가 쇠퇴하게 되어 활터가 폐지되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가 활쏘기 금지령[3]을 내리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황학정만이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1950년 6.25 전쟁 때 일부 파괴 및 훼손이 되어 활쏘기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후 보수공사 등을 통해 활쏘기가 재개되기도 했다.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었다.

2. 특징


[1] 24호 석불좌상은 2018년 4월 20일에 문화재청에서 보물 제1977호로 승격시키면서 해지했다.[2] 때문에 황학정에서는 고종 황제를 초대 사두(射頭)로 친다. 사두는 활터의 우두머리로 활터를 대표하는 수장이다.[3] 다만 당시 기사를 보면 강점기 내내 금지한것은 아니고 전쟁이 격화되는 1941년도부터 공출로인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것으로 보인다.http://www.archerynews.net/news/view.asp?idx=286&msection=2&ssection=23&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