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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05:59:44

경희궁 숭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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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271호 경희궁
<colbgcolor=#bf1400> 경희궁 숭정문
慶熙宮 崇政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신문로2가)
건축시기 1620년 (창건) / 1991년 (복원)
파일:숭정문.png
<colbgcolor=#bf1400> 숭정문[1]
1. 개요2. 역사3. 구조4. 여담

[clearfix]

1. 개요

경희궁정전숭정전정문이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으로 들어와 금천교를 건넌 뒤 살짝 왼쪽으로 틀어 건명문을 쭉 지나다 동북쪽으로 꺾은 뒤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보인다. 이는 광화문에서 근정문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있는 경복궁과 다르다. 경복궁은 예법에 따라 반듯하게 구획된 정궁인 반면, 경희궁은 이궁인데다 인왕산 자락에 들어서 산세에 맞게 지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당연히 ‘숭정전의 문’이란 뜻이며 ‘숭정(崇政)’ 이름 자체는 ‘정사(政)를 드높인다(崇)’는 뜻이다.

2. 역사

1617년(광해군 9년)에 경희궁 창건 당시에 착공하여 1620년 연간에 완공했다.

이후 여기서 신하가 함께 조회하는 조참, 과거합격자들의 시상, 외국 사신 접견 등 많은 행사를 거행했다. 1829년(순조 29년) 경희궁에 대화재가 일어나 내전 주요 건물들이 불탔으나 숭정문은 숭정전과 함께 다행히 피해를 면했다.

1860년대 경복궁 중건 때 대부분의 경희궁 건물이 철거되고 공사 자재로 쓰였다. 경희궁에는 건물 10여 채 정도만 남았는데 숭정전과 숭정문도 그 중 하나였다. 경희궁 영역에는 창고와 양잠소가 들어섰는데 이 때 세운 곡식 창고를 숭정문 밖에 두었다.# 그나마도 1889년(고종 26년)에 숭정문의 일곽이 화재를 당해 곧 재건했는데#, 1900년 경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엔 숭정문과 행각이 없는 것을 보아 이마저도 그 사이에 철거한 듯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숭정전과 숭정문 언저리에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2]가 들어섰다. 8.15 광복 이후에도 경성중학교가 서울 중,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학교 자체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서울시가 '경희궁지 복원과 시민 사적 공원 조성 계획'를 세워 서울고등학교를 지금의 서초구 효령로로 이전시킨 뒤 1985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1991년 복원했고, 1993년과 1994년에는 행각 공사까지 완료하여 오늘에 이른다.

3. 구조

파일:서궐도 숭정전.png}}} ||
<colbgcolor=#bf1400> 〈서궐도안〉을 채색한 〈서궐도〉에서 묘사한 숭정문과 숭정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총 6칸이며 겹처마 양식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세운 1층짜리 이다.[3] 지형이 높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굉장히 넓은 월대를 두 단이나 쌓았으며 그래서 위압감 하나만큼은 다른 궁궐정전 정문들을 압살한다. 아래 월대의 계단은 9단이고 가운데 이 다니는 어칸(御間) 앞에 서수를 두 마리 놓았으나 답도는 놓지 않았다. 그러나 5단의 계단이 설치된 윗 월대에는 서수는 물론, 쌍용이 그려진 답도를 설치했다.

4. 여담


[1] 사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현재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중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다. 거기는 '景'城.[3] 한옥에서는 주로 ‘단층(單層)’으로 표현한다.[4] 부재(部材)의 두 끝 부분에만 칠한 단청.[5] 창덕궁이 머물 땐, 인정문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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