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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4 18:49:46

후지타 조엘 치마/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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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데뷔 이전3. 도쿄 베르디4. 도쿠시마 보르티스5. 요코하마 F. 마리노스6. 신트트라위던 VV
6.1. 2023-24 시즌6.2. 2024-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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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타 조엘 치마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프로 데뷔 이전

세 살 무렵,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축구공을 받은 것을 계기로 축구를 시작했다. 네 살 때는 원 바운드 리프팅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보육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FC 마치다 젤비아의 홈구장이 있는 공원에서 자주 축구를 하며 놀았고, 인근 초등학교 팀의 체험 연습에도 참가했다.

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지역팀인 마치다 오쿠라 FC에 입단했다. 당시 코치에 따르면, 그는 이미 볼 컨트롤이 뛰어나 눈에 띄는 선수였으며, 어머니는 농담 삼아 “천재를 낳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팀이 개인 기술을 중시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기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고,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센터백으로 뛰었다. 이후 3학년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으며, 6학년이 되면서는 공격수측면 미드필더로도 활약했지만,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그의 재능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역 선발팀에도 뽑히기도 했다.

중학교 진학과 함께 도쿄 베르디 주니어 유스[1]팀에 입단했다. 처음에는 유소년 팀에서 올라온 선수들과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축구관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주변을 살리는 플레이를 익히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성장했다. 주니어 유스 시절 그의 평가는 평범한 편이었고, 고등학교 진학 후 유스팀으로 승격했다.

유스팀 승격 후 첫 2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좀처럼 1군 경기에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공 수거나 비디오 분석 등의 허드렛일을 맡아야 했다. 동기들보다 뒤처지는 힘든 시기가 계속되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말 아오야마가쿠인대학과의 연습 경기에서 수비수로 출장할 기회가 생겼고, 이 경기에서의 활약이 코칭스태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마침내 1군 훈련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후 점차 출전 기회를 늘려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면서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도쿄 베르디 1군[2] 승격이 내정되었다.

3. 도쿄 베르디

2019년 9월 14일, 알비렉스 니가타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했다.

4. 도쿠시마 보르티스

2021년 1월 13일, 도쿠시마로 이적했다.

5.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1년 12월 20일, 요코하마로 이적했다. 2022 시즌 준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6. 신트트라위던 VV

6.1. 2023-24 시즌

2023년 7월 27일, 신트트라위던으로 이적했다. 컵 대회를 포함한 시즌 최종 성적은 27경기 1골 2도움을 기록하였다.

6.2. 2024-25 시즌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였다. 예상대로 프리 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받고 있으며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기용될 전망이다. 다만 올림픽으로 인해 초반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야마모토 리히토랑 주전으로 뛰고 있다. 다만 저번 시즌 핵심 선수들이 빠져 현재 강등권 위기에 놓여있다. 리그 초반 감독이 경질까지 이어졌으나 새로운 감독이 부임되고서도 꾸준히 선발 출전하며 활약 중이다.

플레이오프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저번 시즌[3]과는 달리 강등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해서 아쉽게 패하거나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불운까지 겪고 있다.

클뤼프 브뤼허 KV와의 홈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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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로 일본에서는 중학교 때는 주니어 유스, 고등학교 때는 유스라고 부르며 구분하다.[2] 유스 1군이 아니다.[3] 저번 시즌에는 유럽 대항전 티켓을 획득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고, 이에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