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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01:35:32

여영풍

흔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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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후궁견환전 등장인물
흔빈
여영풍
파일:견환전_흔귀인.jpg
이름 여영풍 (呂盈風)
배우 만미석
민족 한족
거주지 저수궁[1] → 자녕궁[2]
가족관계 남편 : 옹정제
파벌 중립 → 견환파
품계 흔(欣)상재
흔귀인[3]
흔빈[4]
흔태빈
원작 품계[5] <rowcolor=#FFD700> 정3품 종2품 정2품 태비
흔(欣)귀빈
여소용
흔비
흔공태비(欣恭太妃)

1. 개요2. 작중 행적3. 캐릭터
3.1. 자녀가 있는가?3.2. 성격
4. 기타

[clearfix]

1. 개요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초반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중립이었으며, 비중은 별로 없었다. 부찰귀인이 대놓고 임신을 자랑하자 비꼬는 얘기를 했지만 부찰귀인이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 넘어지자 옆에서 걱정해주며 부축하기도 했다. 견환이 익곤궁 앞에 꿇어앉는 형벌을 받았을 때 견환과 사이가 나빴던 제비부찰귀인, 화비파인 조귀인을 제외하고 죄다 꿇어앉아 견환의 구명을 청했으나 이때 흔상재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견환을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며, 견환이 황제에게 한창 냉대를 받을 때도 멸시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는 등, 항상 겸손하게 행동한다.[6]

중반부부터 기빈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마침내 중립을 깨뜨리고 기귀인과 안릉용을 무너트리는 것을 도와주는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저수궁에 사는 기빈(과이가 문원)이 자신을 찾아온 황제를 몇 번이고 가로채고, 윗전의 지위를 이용해[7] 자신의 시녀인 패아가 견환의 시녀였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구박하고 때리자 울분이 쌓여 환궁한 견환을 만나 직접적으로 돕겠다고 나선다. 견환이 저수궁에서 나오고 싶냐는 말에 그럴 바에 차라리 한 궁의 주인이 되겠다고 직구를 날렸을 정도였다.[8] 한때는 황후쪽에 호의적이었으나 자신과 사이가 나쁜 기귀인의 배후에 황후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지 황후의 편을 들지 않게 되었다. 이후, 기빈을 귀인으로 강등시키기 위해 견환이 황제를 꼬드겨서 기빈의 본색을 황제의 눈으로 확인시켜 줬을 때, 결정타를 날린다. 평소 기빈이 시녀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술술 불었고, 그래서 기빈은 도로 귀인으로 강등당하고, 이후로는 흔귀인이 저수궁의 관리를 맡게 된다. 그 후로도 계속 견환의 편에 섰으며 그 덕으로 단비가 황귀비, 경비가 귀비가 될 때 자신도 빈의 지위에 오른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안릉용의 아버지 안비괴를 탄핵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등장하는 후궁들 중에선 거의 공기 수준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단황귀비, 경귀비와 나란히 최후까지 살아남는다. 주인공 견환마저 온갖 풍파를 겪었던 후궁에서 꿋꿋히 살아남은 것을 보면 이쪽도 상당한 수완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견환이 그토록 바라던 평지풍파가 없는 고요하고, 조용한 궁중생활을 쭉 이어나갔기 때문에 흔상재를 최후의 승자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연이라서 부각되지 않는 거지, 견환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제법 고생을 했다. 처음 언급될 때 갓 유산을 겪은 상태였고, 화비의 견제로 경사방 패가 치워지더니 급기야는 자신보다 품계가 낮은 여답응에게 하극상을 당해 신형사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화비가 몰락한 후 상황이 나아지나 싶더니 기빈에게 갑질을 당하고, 황제가 어쩌다 찾아와도 기빈이 꾀병으로 황제를 불러가는 일이 여러 번 일어나다가 견환이 돌아오고 그쪽에 의탁한 뒤에야 상황이 나아진 것이다.

3. 캐릭터

친정이 멀긴 하지만 부찰귀인과 함께 안릉용을 비웃는 걸로 봐서 집안도 괜찮다. 원문이 "미천한 것들은 미천한 대로 장점이 있죠. (중략) 우린 절대 못하지만요." 인데, 부찰귀인이 자기 가문과 흔상재네 가문을 도매금으로 한데 우리로 묶어 취급한 걸로 보면, 최고 명문가 중 하나인 부찰씨에 맞먹거나 버금가는 가문일 듯하다.

다만 초창기 캐릭터성이 이래서, 자기보다 윗전에겐 깍듯히 대하고[9] 기귀인이나 여답응처럼 아랫 사람에게 갑질은 하지 않지만, 이 때는 부찰귀인의 비위를 맞춰 준 건지 아니면 당시 안릉룡이 품계가 낮아선지 몰라도 부찰귀인과 함께 인성 문제가 거론된다. 물론 이 때는 부찰귀인과 견환이 유산을 하고 상심에 젖어있는데 릉용이 연회에 드라마틱한 연출과 노래와 함께 나타나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 때문에... 유산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이 더욱 아니꼬와 했던 이유도 있었다. 나중에 견환이 회궁하자, 기귀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사는데다 품계도 여전히 낮은 걸 보면 안 됐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안릉용이 귀인으로 승격되었을 때 부찰 귀인과 뒷담화를 한 일을 제외하면, 기귀인, 여앵아처럼 대놓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언사를 보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중립노선을 탄 탓에 욕을 덜 먹을 뿐이고, 집안만 조금 믿고 살 뿐이지 완전히 신분을 초월하여 사람을 대하는 좋은 인물은 아니란 일부 의견도 있다. 그래도 그나마 옹정황제의 여인에 등장하는 온갖 무개념 후궁들에 비해선 개념은 양호한 편이다.

훗날 흔상재의 부친이 안비괴의 약점을 잡는 것을 보면 한미한 집안 출신은 아닌 데다가 견환보다 먼저 들어온 후궁이기에 함부로 무시할 수준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황제의 총애를 많이 받지 못한 데다가 궁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친정도 멀리 떨어져 있어 영향력을 기대할 수 없기에 견환이나 안릉용, 순상재[10]에게는 물론 훨씬 나중에 들어온 기귀인[11]이나 정빈[12]에게도 추월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오죽했으면 견환이 환궁한 후 "흔귀인이 아직도 귀인이라니 가엽다..." 라고 불쌍히 여겼고, 기빈에게도 "한 사람은 마마이고 한 사람은 아직 귀인이라니?" 라며 품계 승진이 느리다고 까이기도 했다. 심지어 총애를 못받는 후궁이라는 이유로 자기보다 한 단계 낮은 여답응에 의해 신형사로 쫓겨나는 초특급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3.1. 자녀가 있는가?

드라마의 흔상재는 살아있는 자식은 없고, 한 번 이상 딸을 임신했다가 잃은 적이 있다. 원작의 흔귀빈은 1황녀 숙화제희를 낳았으므로[13] 흔상재가 딸이 있다는 설정은 여기서 따왔을 가능성이 크다.

일닫 드라마에서 (초반부) 옹정제의 살아있는 자식은 3황자 홍시, 4황자 홍력, 5황자 홍주, 온의공주 뿐이다. 12화에서 심미장견환에게 "조귀인과 흔상재에게는 공주가 있어 황제가 그들을 챙겨준다고 한다." 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고, 47화에서 흔상재가 사고로 유산했다는 이야기를 어의에게 들었다고 말한다. 52화에서는 태후가 흔상재의 유산에 책임이 있다고 황후를 비난한다. 위의 사정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면, 흔상재가 낳은 딸은 황후의 모략으로 옛날에 사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산되었다면 공주의 봉호도 없고 존재가 언급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만일 그 딸이 살아있다면 나름대로 귀한 신분인 어머니가 계속 상재 계급에 남아있을 리는 없다. 흔상재보다 출신 성분이 나쁜[14], 황제에게 별다른 관심을 못 받은 조귀인도 딸을 낳은 덕에 귀인까지 승진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소설에서도 흔귀빈은 승급이 느리기는 하다. 명목상 견환파이기는 하나 실제론 오랫동안 중립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정3품 귀빈에서 종2품 소용을 거쳐 마지막에 가서야 정2품 비까지 올랐다.[15]

보통 후사가 없는 후궁은 황제 사후에 출가를 하지만, 흔태빈은 궁에 남는다. 단황귀태비경귀태비는 각각 양녀를 들였기에 귀태비로서 남은 것이지만 흔태빈은 양자를 입양하지도 않았으면서 '태'빈이 되었다. 즉, 아이를 가져본 적은 있었단 뜻이다. 혹은 견환이 령서공주나 정화공주 중 한 명을 나눔 입양시켜 주어서 태빈의 자격을 얻었을 수도 있지만.

3.2. 성격

대부분의 후궁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는 등 중립적으로 보인다. 누구와도 잘 지내보려고 하는 것 때문인지 실제로 여기저기서 잘 보인다. 황제롱월공주를 데리고 청량대에 방문했을 때 양모인 경비와 동행해 오기도 했고, 화비가 귀비로 올랐을 때 축하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 기귀인과 함께 산책하는 장면도 나온다. 게다가 조용하다. 조용한 탓인지 얌전하다. 오죽했으면 나중에 기빈"평소에 그렇게나 얌전한 흔귀인이 갑자기 내 흉을 보다니!"라며 어이없어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사실 성격은 심미장과 비슷하다. 강직한 면에서 두 사람은 닮아있으나, 자존심이 매우 강한 미장과 다르게 흔상재는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굽힐 줄 안다. 그래서, 조용함에도 불구하고 "흔상재는 화끈하고 열정적이다."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점에서냐면 할 말 다 하는 강직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특히 상대방의 면전에서 돌직구를 날리는 부분이 많다. 견환은 흔상재를 보면서 "패기가 대단하시네요..." 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처음 등장할 때는 유산한지 얼마 안 된 자신을 염려하는 황후에게 지각한 화비 앞에서 "몸이 안 좋아도 문후를 빠뜨릴 수 없지요."라고 말하는데, 딱 봐도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도 뻔뻔하게 구는 화비를 겨냥하는 말이었다. 임신한 부찰귀인이 황제에게 받은 향분을 자랑하며[16] 바르자, "아껴서 바르시게. 그 향분은 황상의 마음이니까 얼굴에 바른 향분이 날아가면 황상의 마음도 날아갈 테니 말이야."라며 조롱한 적이 있다. 직후 부찰귀인을 지나치면서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임신하는 줄 아나? 왜 저렇게 유세를 부려대는 건가?" 라며 깐 것은 덤.

얼마나 당당하게 깠는지 되려 견환이 무안해졌을 정도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흔상재도 임신하다가 유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흔상재의 입장에선 부찰귀인의 행태가 상당히 아니꼽긴 할 거다. 그리고 모두가 꽃구경 나온 자리에서, 황후가 서출이라는 것을 화비가 까자 여영풍은 그 앞에다 대놓고 "또 시작이로군." 이라고 말한다! 안릉용이 갑자기 견환에게 친한 척을 하자 "이제서야 자매의 정이 좀 생기는 모양이군." 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환궁한 희비를 만나는 장면에서 기귀인이 견환에게 시비를 털자 "그 목걸이를 하고 나왔는데 희비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니라 시비걸려고 나오셨는가?" 이러며 까서 기귀인이 감정이 상해 다시 저수궁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으며, 친자 확인 사건 때 견환을 에둘러 까던 안릉용이 갑자기 정백의 혀를 자르라고 정색을 하자 "가장 온순하고 상냥하던 동생이 왜 이리 세게 나오는 겐가?"라고 저격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트집 잡기가 힘든 직언을 날리기도 하며 화비의 몰락 때엔 결국 참고 기다리니 이런 일을 다 본다며 통쾌하다고 한다. 건륭제가 즉위하고 의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경사스러운 날에 재수없이..."라며 고인드립을 시전했다.

또한 기본적인 심성은 선하다. 심미장이 조귀인의 처소에서 입덧을 했을 때, 제비와 함께 임신 경험이 있어서 심미장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 사람 중 하나로, 같이 눈치챈 제비는 썩 좋은 표정이 아니었지만 흔상재는 환하게 웃으면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17] 안릉용황후의 지원으로 총애를 독차지할 적에는 제비부찰귀인이 안릉용의 면전에서 출신이 천하다느니 노련하다느니 험담을 하자 "안상재가 비록 미천하다고 해도 관리 집안입니다. 선황의 양비도 노비인데 비가 되었지 않았습니까?"라고 나름대로 두둔해줬다. 물론 부찰귀인의 말에 같이 웃기도 했지만 말이다. 위에서처럼 부찰귀인의 자랑이 아니꼬와서 까기도 했지만 직후 부찰귀인이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 넘어지자 옆에서 부축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단황귀비, 경귀비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모성애가 남다르다. 조귀인이 화비의 악행을 술술 불며 마니옥 사건을 꺼냈을 때 "조귀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자식을 빼앗겠다는 데 어떤 어미가 겁먹지 않겠어요?"라고 한 몫 거든다. 만일 견환이 정말 그녀를 황궁에서 계속 살게 해 주기 위해 령서공주나 정화공주를 양녀로 주었다면 잘 키울 듯.

4. 기타



[1] 기귀인과 같이 거주했다.[2] 옹정제가 죽은 후에 옮겼다.[3] 견환이 완비가 될 뻔했을 때, 겹경사로 같이 승진을 치르자고 했다. 다만 흔상재는 빈이 된 안릉용과 같이 탈없이 귀인으로 승진했다.[4] 견환이 리비로 오르는 안릉용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후궁들의 지위를 승진시킬 때, 같이 승진하였다.[5] 사실 드라마의 흔귀인은 원작의 여영풍+주패+사이운을 섞어놓은 캐릭터이지만 가장 베이스가 된 흔귀빈 여영풍을 중심으로 서술한다.[6] 이때 기귀인은 인사하는 흔귀인에게 인사할 필요 없다며 뭐라고 하고는 견환을 무시하고 지나가버렸다.[7] 작중 초반 빈 이상의 후궁이어야만 궁의 정전에 기거하며 궁을 다스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이와 인성 면에서 흔귀인이 기빈에게 뒤쳐지는 것이 없는데 기빈이 승진을 먼저 하는 바람에 기빈이 저수궁의 주인 자리를 먹은 것이다.[8] 그러나 견환은 흔귀인의 호소를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때는 견환을 유산할 뻔하게 만든 조약돌의 출처가 흔귀인의 분재였기 때문에 견환파는 흔귀인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었다.[9] 그러나 모든 후궁의 공공의 적인 화비만은 면전에서도 슬쩍 깐 적이 있다.[10] 이쪽은 만군기 출신이라 사후에 추증되었다.[11] 만군기인 기귀인은 만주족 팔대 성씨 가문에 속할 정도로 굉장히 근본있는 가문 출신이다.[12] 몽군기인 정빈은 칭기즈 칸의 후손인 보르지기트 가문 출신이다![13] 드라마의 흔상재는 소설의 사이운과 주패, 여영풍이 한데 뭉쳐진 캐릭터이다. 여영풍 위에 사이운, 주패를 섞어놓았다. 원작에서 여답응에 의해 신형사에 갔고 승진이 늦은 인물은 사미인, 고귀한 집안 출신이며 안릉용을 멸시하는 건 흔귀빈, 견환의 시녀를 데리고 있던 사람은 주패이다.[14] 둘의 가문 상황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조귀인은 몰락한 집안이라 언급되고 흔상재의 아버지는 안비괴의 죄증을 수집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데다 흔상재 본인도 본인 친정이 먼 곳에 있어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만 했지 집안이 나쁘다고는 한 적이 없다.[15] 원작 수정판에서는 주패와 설정이 합쳐져서 기귀빈 관문원이 빈으로 강등당하면서 소용으로 승진했고, 현릉 사후에 다른 태비들과 함께 등장한다.[16] 완귀인이 원하면 향분 나눠주겠다고 하다가 견환이 "아니에요. 어떻게 제가 언니 걸 욕심내겠어요?"라며 사양하자 "하긴 나눠주는 건 좀 그렇지? 이건 나에 대한 폐하의 마음이니까~"라며 대놓고 자랑질했다.[17] 그러나 이때 미장은 황제로부터 가장 큰 총애를 받아서 화비에게 찍혀서 화비의 입김이 닿는 강 태의로 하여금 임신 증세만 유발하는 처방을 해준 탓에 졸지에 거짓으로 회임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답응으로 강등되고 연금까지 당한다.[18] 원작에선 1황녀 숙화제희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