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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금 제3대 황제 희종 | 熙宗 | |||
출생 | 1119년 8월 14일 | ||
금 회령부 회령현 완안부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 |||
사망 | 1150년 1월 9일 (향년 31세) | ||
금 상경 회령부 황궁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 |||
능묘 | 사릉(思陵) | ||
재위기간 | 암반발극렬[1] | ||
1132년 4월 26일 ~ 1135년 2월 10일 | |||
제3대 황제 | |||
1135년 2월 10일 ~ 1150년 1월 9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성씨 | 완안(完顔) | |
휘 | 중국식 : 단(亶) 여진식 : 합라(合剌) | ||
부모 | 부황 휘종 모후 혜소황후 | ||
형제자매 | 3남 2녀 중 장남 | ||
배우자 | 도평황후 | ||
자녀 | 2남 6녀 | ||
작호 | 동혼왕(東昏王) | ||
묘호 | 민종(閔宗) → 희종(熙宗) | ||
존호 | 숭천체도흠명문무성덕황제 (崇天體道欽明文武聖德皇帝) | ||
시호 | 무령황제(武靈皇帝) → 홍기찬무장정효성황제 (弘基纘武莊靖孝成皇帝) | ||
연호 | 천회(天會, 1135년 ~ 1138년) 천권(天眷, 1138년 ~ 1141년) 황통(皇統, 1141년 ~ 1149년) | ||
절일 | 만수절(萬壽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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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나라의 3대 황제. 묘호는 희종(熙宗) 또는 민종(閔宗), 시호는 홍기찬무장정효성황제(弘基纘武莊靖孝成皇帝). 휘는 완안합라(完顔合剌). 한자로는 완안단(完顔亶).금태조의 적자였던 종준(宗峻,繩果)의 장자였다. 본처는 여진 귀족 배만홀달(裴満忽達)의 딸 배만씨(裴満氏). 아들은 배만씨(裴満氏)가 낳은 태자 제안(濟安). 어머니는 여진 귀족의 딸 포찰씨(蒲察氏).
2. 생애
금태종이 자기 자식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시도하다 여진족 부족장들의 반발로 실패하자 1132년에 황태자에 책봉되어 1135년 태종이 사망하자 제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희종은 여진족 부족장들의 지원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즉위 후부터는 부족장들을 탄압하고 황제 독재의 확립을 통한 중국풍의 관제를 도입하였으며 과거 제도를 처음 시행했다. 희종 자신도 금나라 황제들 중 최초로 중국식 면류관과 곤룡포를 착용하였다.[2] 또 중앙 집권화로 중국 북부 지배를 강화시켰다. 단 금나라의 중국화 자체는 희종 때부터 시작이었지만 본격적인 중국화는 해릉양왕 때부터였다.이 시기에 남송의 재상 진회와 화평을 맺었는데, 그 결과 금나라는 매년 25만냥의 은과 25만필의 비단을 조공으로 받았고, 남송의 황제가 금의 황제한테 '신하의 예'를 취했다.
여기까지는 나름 잘 통치하던 황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3] 아들들이 줄줄이 요절하고 공신인 완안종한(完顔宗翰)마저 명을 달리하자 국정에 대한 흥미를 잃고 술과 향락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성격도 점점 포악해져서 여진족 중신과 완안씨 황족들을 숙청하는 등 공포 정치를 폈다.
결국 1149년 희종의 폭정을 보다 못한 부하들이 사촌 동생인 해릉양왕 완안양(完顔亮)을 황제로 삼고 반란을 일으켰다. 완안양은 호위 군관을 매수한 뒤 일부 귀족 대신들과 짜고 금 희종의 침실에 뛰어들어 결투를 벌이다 희종을 처형해버렸다. [4] 이 때 희종은 겨우 31세의 젊은 나이였으며 이후 동혼왕(東昏王 : 동쪽의 혼미한 임금)이란 시호를 받았다. 참고로 혼(昏)이라는 이름은 선대 황제인 금태종이 송휘종에게 준 이름(혼덕공)이었다. 그나마 육조 시대의 동혼후보다는 조금 낫지만.
다만 폭군을 몰아낸다며 사촌형의 목숨을 잃게 만든 뒤 제위를 찬탈한 완안양은 사촌형의 막장 행각은 가볍게 뛰어넘은 금나라 최악의 막장 황제가 돼버렸으니...
3. 사후
뒷날 해릉왕이 부장들의 반란으로 처참히 목숨을 잃고 금세종 완안옹(完顔雍)이 즉위하자 다시 황제로 추증받아 희종의 묘호를 얻었다.4. 금사의 논찬
희종이 재위한 시기에는 사방이 무사하였고, 종실과 대신들을 존경하고 국정을 위임하여, 그가 황위를 이어받아 문치를 지켰으니 족히 볼만한 것이었다. 말년에는 술에 빠져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여서 사람들이 염려와 두려움을 품었다. 이른바 앞에는 참언이 있었으나 보지 못했고, 뒤에는 도적이 있었으나 알지 못한 것이다. 그 재앙에 이른 것은 일조일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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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wiki style="text-align: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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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재위 계승 내정자라는 뜻의 여진어로 한자어 황사(皇嗣)라는 뜻이다.[2] 여담이지만 금나라가 멸망시킨 요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태조 야율아보기 치세부터 중국식 면류관과 곤룡포를 착용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화의 정도는 요나라가 금나라보다 덜했다.[3] 사실 이 때도 마냥 상황이 좋은건 아니라서 남송에게는 저렇게 잘 싸웠으면서 하필 당대에 몽골 초원에는 카불 칸이라고 몽골을 세운 군주가 있어서(뒷날 몽골 제국을 세우는 칭기즈 칸의 증조부다.) 금태종 시기부터 금나라와 싸웠고 이 시기에도 싸우고 있었는데 문제는 카불 칸이 너무 잘 싸웠다(...) 그래서 금나라는 할 수 없이 몽골에게 땅 떼주고 가축, 곡물을 바치고 독립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화해했다.[4] 금사에는 당시 황제의 침전 문지기를 맡고 있던 권근시국직장(権近侍局直長) 대흥국(大興国)이 이들과 짜고 침전 문을 열어주었다고 전한다. 대흥국은 성씨에서 보듯 발해인인데, 잎사 황통(皇統) 9년(1149년) 완안량의 생일에 금 희종이 대흥국을 시켜 생일 선물로 사마광(司馬光)의 초상화를 비롯한 여러 물품을 보냈는데, 당시 희종의 황후로 정사에 관여하고 있던 배만씨(裴満氏)도 마찬가지로 완안량에게 선물을 보냈음을 알게 된 희종은 불쾌해져서 선물을 도로 가져오게 했고, 완안량에게 선물을 가져간 사자인 대흥국도 그 화풀이로 곤장 100대를 맞았다. 졸지에 곤장을 맞게 된 대흥국은 이 일로 희종에게 앙심을 품어 희종 시해에 가담했으며, 침입자를 발견한 희종은 평소 침대 머리맡에 세워두던 호신용 패도(佩刀)로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이 패도마저도 대흥국이 어디론가로 치워버린 바람에 결국 희종은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대흥국은 완안량이 즉위한 뒤 크게 출세하지만, 완안량이 쫓겨난 뒤 재산은 몰수되고 그 자신도 금 세종에 의해 희종의 능침 앞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