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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6 01:04:40

원호문

금사(金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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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5d7de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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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세기(世紀)」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여진 완안아골타 완안오걸매
4권 「희종기(熙宗紀)」 5권 「전폐제기(前廢帝紀)」 6·7·8권 「세종기(世宗紀)」
완안합랄 완안적고내 완안오록
9·10·11·12권 「장종기(章宗紀)」 13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4·15·16권 「선종기(宣宗紀)」
완안마달갈 완안과승 완안오도보
17·18권 「애종기(哀宗紀)」 19권 「세기·보(世紀補)」
완안영갑속 완안승과 · 완안와리타 · 완안호토와
※ 20권 ~ 58권은 志에 해당. 59권 ~ 62권은 表에 해당. 금사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b82647> 63·64권 「후비전(后妃傳)」 ||
명의황후 · 사황후 · 절황후 · 공정황후 · 위순황후 · 소숙황후 · 익간황후 · 정선황후 · 정선황후 · 경희황후 · 성목황후 · 광의황후 · 흠헌황후
선헌황후 · 소숭비 · 흠인황후 · 도평황후 · 도단부인 · 대부인 · 도단폐후 · 흠자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이원비 · 효의황후 · 소성황후
흠회황후 · 이원비 · 도단왕후 · 왕황후 · 명혜황후 · 도단황후
65·66권 「시조이하종실전(始祖以下宗室傳)」
완안알로 · 완안배로 · 완안사고덕 · 완안사이보 · 완안사리홀 · 완안호고출 · 완안발흑 · 완안숭성 · 완안핵손 · 완안마파 · 완안알대 · 완안알새 · 완안알자 · 완안앙 · 완안조 · 완안외가 · 완안호십문 · 완안합주 · 완안괵보 · 완안충 · 완안제 · 완안출로 · 완안호석개 · 완안종현 · 완안달라 · 완안변 · 완안고 · 완안혁 · 완안아희
67권 「석현등전(石顯等傳)」 68권 「완안환도등전(完顔歡都等傳)」
석현 · 환난 · 산달 · 오춘 · 납배 · 마산 · 둔은 · 유가 · 아소 · 회리보 완안환도 · 완안야가
69권 「태조제자전(太祖諸子傳)」 70권 「완안살개등전(完顔撒改等傳)」
완안종준(宗儁) · 완안종걸 · 완안종간 · 완안종민 · 완안원 완안살개 · 완안습불실 · 석토문
71권 「완안알로등전(完顔斡魯等傳)」 72권 「완안누실등전(完顔婁室等傳)」
완안알로 · 완안알로고발근 · 완안파로화 · 오찰홀 · 완안도모 완안누실 · 완안은출가 · 완안습고내
73권 「완안아리합만등전(完顔阿離合懣等傳)」 74권 「완안종한등전(完顔宗翰等傳)」
완안아리합만 · 완안알종도 · 완안종웅 · 완안희윤 완안종한 · 완안종망
75권 「노언륜등전(盧彥倫等傳)」
노언륜 · 모자렴 · 이삼석 · 공경종 · 이사기 · 심장 · 좌기궁 · 우중문 · 조의용 · 강공필 · 좌필
76권 「태종제자등전(太宗諸子等傳)」
완안포로호 · 완안호로 · 완안아로 · 완안알야 · 완안알본
77권 「완안종필등전(完顔宗弼等傳)」 78권 「유언종등전(劉彥宗等傳)」
완안알철 · 장방창 · 유예 · 완안창 유언종 · 유규 · 시립애 · 한기선
79권 「역경등전(酈瓊等傳)」
역경 · 이성 · 공언주 · 서문 · 시의생 · 장중부 · 장중언 · 우문허중 · 왕륜
80권 「희종제자등전(熙宗諸子等傳)」
완안제안 · 완안도제 · 사묘아리 · 완안돌합속 · 오연포로혼 · 적잔휘 · 대달불야 · 포속월 · 완안아리보
81권 「골모파등전(鶻謀琶等傳)」
골모파 · 적고질 · 아도한 · 협곡사노 · 아륵근몰도로 · 황괵적고본 · 포찰호잔 · 협곡오리보 · 왕백룡 · 고표 · 온체한포리특 · 백덕특리보 · 야율회의 · 소왕가노 · 전호 · 정진
82권 「곽약사등전(郭藥師等傳)」
곽약사 · 야율도산 · 오연호리개 · 오연오리보 · 소공 · 완안습불주 · 흘석렬호랄 · 야율서 · 곽기충 · 오손와륜 · 안잔문도 · 복산혼탄 · 정건충
오고론삼합 · 이랄온 · 소중공 · 소중선 · 고송 · 완안광영 · 완안원수 · 완안신사아보 · 완안광양
83권 「장통고등전(張通古等傳)」 84권 「완안고등전(完顔杲等傳)」
장통고 · 장호 · 장현소 · 장여필 · 야율안례 · 납합춘년 · 기재 완안살리갈 · 누완온돈사충 · 완안분도 · 고정 · 백언경 · 장경인
85권 「세종제자전(世宗諸子傳)」
완안영중 · 완안영도 · 완안영공 · 완안영덕 · 완안영성 · 완안영승
86권 「이석등전(李石等傳)」
이석 · 완안복수 · 독길의 · 오연포리흑 · 오연포할노 · 오연사랄 · 이사웅 · 이방고초올 · 패출로정방 · 완안영덕 · 포찰알론 · 협곡사랄
87권 「흘석렬지녕등전(紇石烈志寧等傳)」 88권 「흘석렬양필등전(紇石烈良弼等傳)」
흘석렬지녕 · 복산충의 · 도단합희 흘석렬양필 · 완안수도 · 석거 · 당괄안례 · 이랄조삼
89권 「소보형등전(蘇保衡等傳)」
소보형 · 적영고 · 위자평 · 맹호 · 양숙 · 이랄조 · 이랄자경
90권 「조원등전(趙元等傳)」
조원 · 이랄안 · 고기덕 · 마풍 · 완안올불갈 · 유휘유 · 가소충 · 이랄알리타 · 아륵근언충 · 장구사 · 고간 · 고방기 · 정위인
91권 「완안살개등전(完顏撒改等傳)」
완안살개 · 방적 · 온체한이실만 · 신토만 · 이랄성 · 석말변 · 양중무 · 포찰세걸 · 소회충 · 이랄안답 · 패출로아로한 · 조흥상 · 석말영 · 경사휘
92권 「모석등전(毛碩等傳)」
모석 · 이상달 · 조망지 · 대회정 · 노효검 · 노용 · 이시 · 도단극녕
93권 「현종제자등전(顯宗諸子等傳)」
완안종 · 완안괴 · 완안종이 · 완안종헌 · 완안개 · 완안홍유 · 완안홍정 · 완안홍희 · 완안홍연 · 완안홍휘 · 완안특린 · 완안거 · 완안선 · 완안조 · 완안종각 · 완안수충 · 완안현령 · 완안수순 · 독길사충 · 완안승유 · 복산계 · 말연사예탑 · 완안종호
94권 「협곡청신등전(耶律化哥等傳)」
협곡청신 · 완안양 · 협곡형 · 완안안국 · 요리패질
95권 「이랄리등전(移剌履等傳)」
이랄리 · 장만공 · 포찰통 · 점할알특랄 · 정휘 · 유위 · 동사중 · 왕울 · 마혜적 · 마기 · 양백통 · 이방고감
96권 「황구약등전(黃久約等傳)」
황구약 · 이안 · 이유 · 왕분 · 허안인 · 양양 · 노백달
97권 「배만형등전(裴滿亨等傳)」
배만형 · 알륵충 · 장대절 · 장형 · 한석 · 등엄 · 거구 · 하양정 · 염공정 · 초욱 · 유중수 · 이완 · 마백록 · 양백원 · 유기 · 강원필 · 이랄익
98권 「완안광등전(完顏匡等傳)」 99권 「도단일등전(徒單鎰等傳)」
완안광 · 완안강 도단일 · 가현 · 손탁 · 손즉강 · 이혁
100권 「맹주등전(孟鑄等傳)」
맹주 · 종단수 · 완안여산 · 노탁 · 완안백가 · 출호균수 · 장휘 · 고횡 · 이복형
101권 「완안승휘등전(完顔承暉等傳)」 102권 「복산안정등전(僕散安貞等傳)」
완안승휘 · 말연진충 · 복산단 · 경단의 · 이영 · 패출로덕유 · 오고론경수 복산안정 · 전탁 · 완안필 · 몽고강 · 필란아로대
103권 「완안중원등전(完顏仲元等傳)」
완안중원 · 완안아린 · 완안정 · 오고론장수 · 완안좌 · 완안교주 · 석말중온 · 오고론례 · 포찰아리 · 오둔양 · 완안포랄도 · 협곡석리가 · 술갑신가 · 흘석연환단 · 완안아리불손 · 완안철가 · 납란호포랄
104권 「납탄모가등전(納坦謀嘉等傳)」
납탄모가 · 추곡 · 고림 · 맹규 · 오림답여 · 곽오 · 온체한달 · 왕확 · 이랄복승 · 오둔효충 · 포찰사충 · 흘석렬호실문 · 완안우 · 알륵합타 · 포찰이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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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 · 임웅상 · 공번 · 범공 · 장용직 · 유구 · 왕소 · 양백웅 · 소공 · 온체한체달 · 장한 · 임요총
106권 「장위등전(張暐等傳)」 107권 「고여려등전(高汝礪等傳)」
장위 · 가익겸 · 유병 · 출호고기 · 이랄탑불야 고여려 · 장행신
108권 「서정등전(胥鼎等傳)」 109권 「완안소란등전(完顏素蘭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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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권 「양운익등전(楊雲翼等傳)」 111권 「고리갑석륜등전(古里甲石倫等傳)」
양운익 · 조병문 · 한옥 · 풍벽 · 이헌보 · 뇌연 · 정진 고리갑석륜 · 완안와가 · 살합련 · 강신 · 오림답호토 · 완안사열 · 흘석렬아오탑
112권 「완안합달등전(完顏合達等傳)」 113권 「완안새불등전(完顏賽不等傳)」 114권 「백화등전(白華等傳)」
완안합달 · 이랄포가 완안새불 · 완안백살 · 적잔합희 백화 · 사묘애실 · 석말세적
115권 「완안노신등전(完顏奴申等傳)」 116권 「도단올전등전(徒單兀典等傳)」 117권 「도단익도등전(徒單益都等傳)」
완안노신 · 최립 · 이기 · 섭대기 · 적잔위흔 도단올전 · 석잔여로환 · 포찰관노 · 완안승립 도단익도 · 점가형산 · 왕빈 · 국용안 · 시청
118권 「묘도윤등전(苗道潤等傳)」
묘도윤 · 왕복 · 이랄중가노 · 무선 · 장보 · 장진 · 정안민 · 곽문진 · 호천작 · 장개 · 연령
119권 「점갈노신등전(粘葛奴申等傳)」
점갈노신 · 유천기 · 완안대루실 · 완안중루실 · 완안소루실 · 오고론호 · 장천강 · 완안중덕
120권 「세척전(世戚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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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2·123·124권 「충의전(忠義傳)」
호사보 · 특호 · 복홀득 · 점할한노 · 조규 · 온체한포도 · 와리야 · 납란작적 · 위전 · 완안선양 · 협곡수중 · 석말원의 · 백덕매화상 · 오고손올둔 · 고수약 · 화속가안례 · 왕유한 · 이랄고여열 · 송의 · 오고론영조 · 오고론중온 · 구주 · 이연 · 이덕기 · 왕의 · 왕회 · 제응양 · 출갑법심 · 고석 · 오승가 · 오고론덕승 · 장순 · 마양 · 백덕와가 · 오둔추화상 · 종탄 · 패출로복수 · 오방걸 · 납합포랄도 · 여해열알출 · 시무선 · 온체한로아 · 양지승 · 가방헌 · 이랄아리합 · 완안육근 · 흘석렬학수 · 포찰누실 · 여해열자록 · 조익 · 후소숙 · 왕좌 · 황괵구주 · 오림답걸주 · 타만사열 · 이방고포로호 · 올안외가 · 올안외출호 · 점할정 · 도단항 · 완안진화상 · 양옥연 · 오고론흑한 · 타만호토문 · 희여작 · 애신 · 우현 · 장방헌 · 유전 · 마경상 · 상형 · 출갑탈로회 · 양달부 · 풍연등 · 오고손중단 · 오고손노신 · 포찰기 · 채팔아 · 온돈창손 · 완안강산 · 필자륜 · 곽하마
125·126권 「문예전(文藝傳)」
한방 · 채송년 · 오격 · 마정국 · 임순 · 조가 · 곽장천 · 소영기 · 호려 · 왕경 · 양백인 · 정자담 · 당회영 · 조풍 · 주앙 · 왕정균 · 유앙
이경 · 유종익 · 여중부 · 이순보 · 왕욱 · 송구가 · 방주 · 이헌능 · 왕약처 · 왕원절 · 손국강 · 마구주 · 이분 · 원덕명 ,子 호문,
127권 「효우·은일전(孝友隱逸傳)」
온체한알로보 · 진안 · 유유 · 맹흥 · 왕진 · 유정 · 저승량 · 왕거비 · 조질 · 두시승 · 학천정 · 설계원 · 고중진 · 장잠 · 왕여매 · 송가 · 신원 · 왕여가
128권 「순리전(循吏傳)」
노극충 · 우덕창 · 범승길 · 왕정 · 장혁 · 이첨 · 유민행 · 부신징 · 유환 · 고창복 · 손덕연 · 조감 · 포찰정류 · 여해열수우 · 석말원 · 장구
조중복 · 무도 · 흘석렬덕 · 장특립 · 왕호
129권 「혹리·영행전(酷吏佞幸傳)」
고염산 · 포찰합주 · 소이 · 장중가 · 이통 · 마흠 · 고회정 · 소유 · 서지국
130권 「열녀전(列女傳)」
사리질 · 강주주 · 완안아로진 · 풍묘진 · 포찰명수 · 섭순영 · 장봉노
131권 「환관·방기전(宦官方技傳)」
양충 · 송규 · 반수항 · 유완소 · 장종정 · 이경사 · 기천석 · 장원소 · 마귀중 · 무정 · 이무 · 호덕신
132권 「역신전(逆臣傳)」
병덕 · 당괄변 · 오대 · 대흥국 · 도단아리출호 · 복산사공 · 도단정 · 이노승 · 완안원의 · 흘석렬집중
133권 「반신전(叛臣傳)」
장각 · 야율여도 · 이랄와간
134·135권 「외국열전(外國列傳)」
서하 · 고려 ,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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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好問
1190~1257

1. 소개2. 인생3. 문학적 평가

1. 소개

금말원초의 문학가, 시인, 역사가. 자는 유지(裕之). 호는 유산(遺山). 금나라의 사적을 채록하고 저술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원유산선생집(元遺山先生集), 중주집[1] 따위가 있다.

무협팬들에게는 신조협려에서 이막수가 읊는 시인 안구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2. 인생

그의 선조는 북위의 황실 원씨로[2] 장종 명창(明昌) 원년인 1190년에 흔주에서 태어났다. 금사 열전에 따르면, 원호문은 겨우 7살 나이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다. 14세 이후, 원호문은 능천의 학천정(1161~1217)을 스승으로 모시며 공부했고[3], 경전, 역사, 제자백가를 두루 공부했다. 17세 때 숙부 원격이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원호문이 19세로 공부를 마칠 때까지 능천에서 살다가 그 후 그곳을 떠났다. 이때 《기산箕山》, 《금대琴台》같은 작품을 썼는데, 아직 원호문이 나이도 어리고 따로 벼슬을 하지 않아 명성이 널리 퍼지기 전이었음에도 조정의 예부(禮部)에 있던 조병문(趙秉文) 같은 사람들은 원호문의 작품을 보고 "근래에 이런 훌륭한 작품은 있었던 적이 없다." 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여 명성이 수도를 뒤흔들었다.[4]

그러나 이런 젊은 기재 원호문이 무언가 뜻을 펴보기 전인 1211년, 아직 원호문이 21살일 때 칭기즈 칸 세력이 금나라를 침노하였다. 학문을 배우고 이제 세상에 나가려고 할 때부터 눈에 보이는 천하는 이미 도탄에 빠졌다.

금나라와 몽골의 첫 전쟁은 몇 번 큰 싸움 끝에 다시 물러나는 등 간헐적으로 펼쳐졌는데, 이 무렵 원호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원호문은 고향인 산서성 흔주(忻州)로 아버지의 유해를 가져와서 거기서 몇년간 복상한다. 몇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복상이 끝날 무렵이 되어 다시금 원호문이 세상에 나갈 상황이 되었지만, 이때 다시 한번 몽골의 침입이 이어졌다.

1214년, 원호문이 24살일때 칭기즈 칸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등과 함께 금나라를 유린했다. 몽골군은 산서 지역에도 들어왔고, 마침내 원호문의 고향까지 당도했는데 몽골군은 눈앞에 있는 모든걸 불태우고 학살했다. 이때 원호문은 양곡(陽曲) 지역으로 피난을 떠난 상태였다. 하지만 원호문의 형인 원호고(元好古)는 고향에 남아 침략군인 몽골군과 맞서 싸우던 도중에 전사하고 말았다. 나이가 고작 29세에 불과했으니, 아직 한창 나이였던 셈. 이때 혼주에서 죽은 사람만 무려 10여만 명에 달했다. 고향이 문자 그대로 지도에서 지워지고, 부모를 잃은지 얼마 안되어 젊은 나이의 형까지 잃은 상태로 원호문은 정처 없이 피난을 떠났다.

이후 금나라는 연경에서 개봉(카이펑)으로 천도했고 몽골은 남쪽으로 이동한 금나라의 행동을 '몽골에 대항하려는 행위'로 여기며 다시 침공을 개시했다. 이 무렵 원호문은 과거 시험을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아 낙방하여 풀이 죽은 상태였는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고향은 이미 몽골군의 침입 루트에 있어 또 다시 초토화가 되었다. 때문에 원호문은 과거에 떨어진 상태로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한채, 숭산 근처에 전답을 구해서 여기서 직접 농사를 짓고 독서를 하면서 지냈다.

금선종 흥정(興定) 5년(1221)에 원호문은 32세 나이로 마침내 진사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 시험장의 분쟁으로 인해 '원씨당인(元氏党人)'으로 모함을 받자 분노하여 벼슬을 거부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원호문은 조병문 등의 추천을 받았고 시험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이로써 그는 벼슬에 나아갔고, 유림랑(儒林郎), 국사원편수(國史院編修)를 지냈으며, 진평(鎮平), 남양(南陽), 내향(內鄉)의 현령으로 벼슬살이를 하였다.

36세가 되던 1225년, 원호문은 적막한 관직 생활에 불만을 품고 장기 휴가를 청해 등봉으로 갔다. 이때 그는 자신의 중요 저서 『두시학(杜詩學)』을 저술했다. 이후 도성으로 가서 금나라의 중앙 정부에서 상서성의 연(掾), 영사(令史)를 맡아 가족들이 모두 변경(汴京, 현 허난성 카이펑)으로 이사하였다. 이후 좌사도사(左司都事)로 상서성 내 기구 좌사(左司)의 모든 일을 맡았고, 상서성좌사원외랑(尚書省左司员外郎)이 되었다.

이후 전쟁이 격화되자 조정이 떠난 개봉성은 얼마간 항전 후 곧 몽골군에 항복했다. 몽골군은 남아있던 고관들이나 주료 관료들은 포로로 잡아 끌고갔고, 나머지 일반 백성들도 노예로 삼을 만한 사람을 잡아서 끌고갔다. 원호문 역시 그렇게 끌려가서 산둥성의 '요성'이라는 곳에 가족들과 함께 유폐되었다. 원호문이 요성에 갇힌 동안 금나라는 멸망했다. 2년 동안 요성 생활이 끝난 이후론 고향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금사 편찬에 큰 도움이 되었다.

3. 문학적 평가

남송 초기에 시인들은 모두들 북송 시대 시인인 황정견(黃庭堅)의 시를 모방하려고 안간힘이었는데, 황정견이 강서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런 추종자들을 '강서시파'라고 한다. 황정견의 작풍은 아주 섬세한 사소설 같은 느낌인데, 아무래도 후대의 추종자들은 재주가 황정견만 못했던 탓에 그만한 맛이 안 났다.

북방의 원호문은 남방의 강서시파들의 자잘한 시인들의 침을 줍지 않겠다고 했다. 필요하거나 모방할 가치도 없다고 표현했다. 송나라 문학에 비해 금나라의 문학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송과 금의 문학은 보통 어느 쪽이 더 높이 평가 받을까? 후대에 이르러서 보면 아무래도 남송의 시문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시인이 누구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원호문의 손을 들어준다.

원호문은 100여 년이 넘는 금나라 역사상에서는 비교할 사람이 없는 대문인이었고, 동시대 남송을 포함한다고 해도 두어 세기를 통틀어서도 가장 위대한, 중국 문학사에서 손꼽힐 만한 거목이었다. 그러나 원호문이 유독 더 위대한 문인이 된 데에는 살았던 시대가 너무나도 참혹했다는 사연이 있다. 훗날 청나라 조식은 원호문을 평가하며 "국가의 불행은 시인에게 있어선 행복"이라고 표현했는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처참한 시대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원호문의 문장들은 그 어느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글귀에도 밀리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1] 원호문은 이 중주집에 무려 시인 200명을 수록했는데, 그는 시를 수록하며 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약전마저 따로 부기했다. 단순히 시집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금나라 당대의 여러 문화인들을 한번에 알 수 있게 한 것이었다.[2]도무제(탁발규)의 자손은 아니고, 도무제의 사촌의 후손으로서 방계이다.[3] 이후 학천정의 손자 학경이 원호문을 스승으로 모셨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험은 몇번 낙방한적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