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히스 헤링 (Heath Herring)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지 | 텍사스 웨이코 |
거주지 |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
생년월일 | 1978년 3월 2일 ([age(1978-03-02)]세) |
종합격투기 전적 | 45전 28승 16패 1무효 |
승 | 10KO, 13SUB, 4판정, 1실격 |
패 | 5KO, 1SUB, 10판정 |
체격 | 193cm / 119kg / 198cm |
링네임 | The Texas Crazy Horse |
주요 타이틀 | WVC 9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 |
BRI 3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 | |
기타 | WVC 8 헤비급 토너먼트 준우승 |
Superbrawl 13 헤비급 토너먼트 3위 | |
SNS |
1. 개요
미국의 전 종합격투기 선수. Pride, K-1, UFC의 무대에서 모두 활동했다.2. 전적
- 주요 승: 타카하시 요시키, 윌리 피터스, 에반 태너, 밥 슈리버, 톰 에릭슨, 엔센 이노우에, 마크 커, 이고르 보브찬친, 유리 코시킨, 요코이 히로타카, 야마모토 요시히사, 자이언트 실바, 간 맥기, 개리 굿리지, 브래드 아임스, 칙 콩고
- 주요 패: 에반 태너, 트래비스 풀턴, 알렉산드레 페헤이라, 바비 호프먼, 라마잔 메지도프, 비토 벨포트,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3),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미르코 크로캅, 샘 그레코, 제이크 오브라이언, 브록 레스너, 아미르 알리아크바리, 이시이 사토시
- 무효: 나카오 요시히로
3. 커리어
3.1. 중소단체
1997년 4월 12일 USWF 4에서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종합격투기에 데뷔해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서브미션 승을 거두었다.1997년 10월 18일 USWF 7에서 에반 태너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지만, 1997년 11월 22일 PSDF에서 다시 에반 태너와 겨루어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서브미션 승을 거두어 리벤지에 성공한다.
에반과의 2차전 뒤 2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1999년 4월 19일 WVF에서 복귀해 2번의 승리를 얻었으나, 1999년 5월 15일 EC 24에서 트래비스 풀턴를 상대했으나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해 연승이 끊기며 기세가 약간 꺾이게 된다.
이후 1999년 7월 1일 WVC 8에서 개최한 토너먼트에 참가하여 모든 경기를 2분안에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결승전에서 알렉산더 페레이라에게 근소한 차이로 스플릿 판정패를 당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르고 만다.
하지만 1999년 9월 27일 WVC 9에서 개최한 토너먼트에 다시 참가하여 3연속 서브미션 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해 결승 상대인 밥 슈리버에게 펀치러쉬를 하며 TKO승을 따내 WVC 9 토너먼트 우승을 한다.
이후 2H2H와 IAFC를 거쳐 준수한 성적을 내며 2000년 Pride와 계약을 맺게 된다.
3.2. Pride
2000년 6월 4일 PRIDE 9에서 윌리 페타스를 상대로 서브미션 승을 거두며 PRIDE에서의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고, 톰 에릭슨과 엔센 이노우에 등의 강자를 상대로 연승을 하며 조금씩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다.2001년 5월 27일 PRIDE 14에서 비토 벨포트와 겨루었다. 경기는 헤링의 우세였으나 서로 체급이 다른 핸디캡 매치였기 때문에 판정패를 당한다.[1]
2001년 7월 29일 PRIDE 15에서 마크 커를 노스사우스에서 그라운드 니킥으로 떡을 만들며 충격의 TKO승을 거두었다.
2001년 11월 3일 PRIDE 17에서 PRIDE 초대 헤비급 왕좌를 두고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대결하였다. 헤링이 스탠딩 타격으로, 노게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노게이라가 타격을 주도해가는 가운데 헤링이 노게이라의 서브미션을 전부 파해하는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되었으며, 치열한 명승부가 펼쳐졌으나 결국 심판들의 만장일치 판정으로 노게이라의 손을 들어주며 헤링은 아쉽게 패배한다.
이후 2002년 2월 24일 PRIDE 19에서 이고르 보브찬친을 펀치로 두들기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따냈고, 2002년 9월 29일 PRIDE 22에서 유리 코슈히네를 상대로 TKO승을 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가 노게이라의 1차 방어전의 가장 유력한 상대로 꼽혔고, 팬들 역시 두 선수의 재대결을 바라고 있던 바였다.
2002년 11월 24일 PRIDE 24에서 PRIDE 헤비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으로 표도르 예멜리아넨코를 상대하게 된다. 헤링은 공이 울리자 마자 글러브 터치도 하지 않은채 표도르에게 기습적인 미들킥으로 선공을 걸었지만 이내 막혔고 표도르는 헤링에게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그라운드로 끌고 가 그대로 헤링의 안면에 얼음 파운딩을 작렬시키며 경기를 주도시켰다. 헤링은 안와골절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거의 5분이 넘게 경기를 진행하면서 여러번 스윕을 하는 등 나름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닥터스톱 선언으로 TKO패를 하게 된다.
2003년 6월 8일 PRIDE 26에서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했다. 헤링은 크로캅의 스탠딩 타격에 완벽히 밀려 다운을 당했고 이노키 알리 포지션까지 사용하며 저항하나 결국 KO패를 당했다.
이후 야마모토 요시히사, 자이언트 실바와 같은 한 수 아래의 선수들과 시합을 이어가며 승리를 챙겨갔다.
2004년 4월 25일 PRIDE 토탈 일리미네이션에서 개최한 PRIDE 2004 헤비급 그랑프리에 참가해 1차전에서 타카하시 카즈오를 파운딩으로 떡실신시키며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서 3년만에 노게이라와 경기를 가지며 리벤지에 도전했으나, 노게이라의 스피닝 초크에 탭을 내주며 패배하고 만다.
이후 요코이 히로타카를 상대로 승리한 것을 마지막으로 DSE와 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결국 PRIDE와 결별하며 K-1으로 이적하게 된다.
3.3. K-1
K-1으로 이적한 헤링은 FEG의 종합격투기 프로젝트인 K-1 HERO'S 1에 출전했다. 상대인 샘 그레코는 원래 입식 파이터인지라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시합이었으나 킥을 차다가 그만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이 돌아가 KO로 패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헤링의 셀프 힐훅 사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셀프 힐훅 시전 전까지는 헤링이 그라운드에서 압도하고 있었기에 더욱 황당했고, 그레코 입장에서는 누워서 맞고 있다가 일어나니깐 자신이 승리한 것이였다.
데뷔와 동시에 몸개그와 부상으로 하락세를 탄 헤링이 다시 링에 오른 것은 2005년 12월의 다이너마이트에서 셀프 힐훅 사건 이후 그야말로 심기일전하여 치러야 할 재기전이었는데, 그만 여기서 더 큰 사고를 쳐버렸다. 상대였던 나카오 요시히로가 경기 직전 눈싸움을 하다 그만 키스를 했고 순간적으로 리미트가 해제된 헤링은 그 자리에서 주먹을 날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헤비급의 펀치를 맞은 나카오는 그대로 실신해버렸고 경기는 무효처리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키스 헤링 사건이다.[2]
나카오 요시히로와의 키스 사건 후 인터뷰에서는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나타냈다. 나카오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3] 아예 Kiss를 링네임으로 쓰게 되었는데 본인은 야마모토 노리후미의 링네임인 Kid를 의식한 네이밍이였다고 주장했지만, 누가 봐도 아니라는게 문제다.
K-1 HERO'S에서 시합한 굿리지가 인터뷰에서 이걸 가지고 헤링을 놀려먹기도 했다. 다이나마이트가 12월 31일의 연말 행사였기 때문에 북미권에서는 new year's eve kiss[4]로 유명하다. 이후 2006년 3월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긴 했는데, 어쨌든 K-1과의 재계약도 결렬된다. 저런 짓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터뜨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3.4. UFC
헤링은 UFC와 계약을 맺고 2007년 1월 제이크 오브라이언을 상대했다. 하지만 레슬링에서 밀리며 판정패했다. 하지만 2007년 4월 UFC 69에서 브래드 아임스를 꺾고, 다시금 상위권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이후 상대가 PRIDE에서의 원수인 노게이라. 2007년 7월의 UFC 73에서 만난 두 선수는 3번째의 대결을 벌였다. 헤링은 1라운드를 30초 가량 남기고 미들킥을 적중시키며 노게이라에게 다운을 빼았고는[5] 파운딩을 퍼부었다. 하지만 노게이라가 가드 포지션을 취하려 하자 잽싸게 일어나 버렸는데, 사실 그때 노게이라는 의식이 없었고 거의 본능으로만 움직이고 있던 상태였다. 헤링은 이내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일어나라는 사인을 보냈으나 노게이라는 영리하게 태클로 시간을 끌며 위기를 넘겼고, 시합은 판정으로 넘어가 헤링의 패배가 선언되었다. 헤링으로서는 과거의 패배 때문에 지나치게 노게이라의 가드 게임을 겁낸 나머지 다 잡은 시합을 놓쳐버렸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3월에는 UFC 헤비급의 게이트키퍼인 칙 콩고와 대결했다. 예상과는 달리 타격에서 헤링이 앞서고 레슬링에서 콩고가 압도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그라운드 운영으로, 헤링이 2번의 사이드 마운트에서 콩고의 허리를 니킥으로 난타하며 스플릿 판정승을 거두었다.
2008년 8월에는 브록 레스너와 대결했으나 경기 초반 타격에서 다운을 당하고 레슬링에서 완전히 밀린 끝에 만장일치로 판정패했다. 이후로는 영화 배우, 포커 선수로 활동하며 사실상 은퇴를 했었다.
3.5. Rizin FF
8년만에 Rizin FF에서 아미르 알리아크바리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으나 판정패했다. 알리아크바리는 이란의 세계구급 레슬러로 세계 선수권 2연패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가진 레슬러였는데 1라운드 초반에 밀리다가 가면 갈수록 나름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비록 경기에는 판정패했으나 경기에서 노장의 투혼을 선보여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4. 파이팅 스타일
베이스는 삼보와 무에타이로 미국 내 삼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나름 웰라운드 파이터로 스탠딩과 그라운드의 양면에 걸쳐 밸런스가 좋은 선수다. 타격은 정석은 아니지만 좋은 편이고, 그라운드 운영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그 중에서도 그라운드 니킥과 스윕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다. 특히 특유의 흥분하면 상대에게 미친듯이 달리는 특성상 그라운드 니킥을 화려하게 쓰곤 했는데 이 니킥으로 마크 커에게 TKO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UFC에서는 4점 니킥이 금지 기술이라 많이 사용하지는 못했다.[6]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윕이라는 훌륭한 무기가 있기 때문에 요거 하나로 먹고 살았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보급형 표도르라는 별명도 있었다.다만 타격도 그래플링도 최정상권은 아니라는 것과 레슬링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 약점이다. 또한 한 번 흥분하면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폭주를 하는 것도 문제인데, 중소단체에서는 그 폭발력으로 화끈한 KO를 양산했을지 몰라도 일류급 선수들을 상대로는 그런게 먹혀들기 어렵다.
특이한 점은 그래플러한테는 타격으로 털리고 타격가한테는 이상하게 타격으로 앞서서 이긴다는 점인데, 대표적인 예가 전자는 노게이라와의 1차전, 후자는 콩고전이다. 또한 팀도 세미 슐트까지 있는 입식 명문 체육관 골든 글로리고 본인도 타격을 훨씬 중점적으로 연습하는데도 불구하고 스타일이 타격가 보다는 그래플러에 가깝다.
2000년대 초기에는 노게이라, 표도르와 경쟁했으나 이후 PRIDE 3강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UFC에서는 수문장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5. 기타
초창기의 헤링은 불량아 그 자체였는데, 코너맨도 뭣도 없이 홀로 걸어나와서 미친듯이 상대 선수를 박살내고는 혼자 유유히 걸어나가고는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영락없는 길거리 싸움꾼의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기술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으나 타격을 보완하기 위해 찾아간 골든 글로리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표도르전의 인상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표도르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털린 놈 또는 표도르에게 맞고 브록에게 또 맞은 놈 정도로 기억되고, 셀프 힐훅, 키스 사건에 이어 노게이라 3차전 이후로는 그냥 개그맨이 되어버렸다.
자이언트 실바와의 대결도 은근 개그성이 있는 경기였다. 헤링은 실바의 막주먹에 밀리는 등 엄청나게 고전했는데 그 다음 경기부터 실바를 개나 소나 다 잡아버렸기 때문에 상황이 우스워졌다. 특히 덩크 펀치에 맞아 다운 직전까지 몰리는 등 고생이 많았는데 실은 이때부터 몸개그에서의 재능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이 경기가 자이언트 실바의 첫 데뷔전이라 아직 파해법이 나오기 전 이었고, 실바는 218cm, 175kg에 240cm의 리치라는 사기적인 피지컬을 소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아무리 기량이 떨어진다 쳐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주먹을 맞으면 데미지는 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뒤에 실바를 이긴 선수도 전부 그라운드로 몰고 가서 승리한 것인데 히스 헤링은 1, 2라운드를 괜히 스탠딩에서만 싸우려다가 고생한 것. 실제로 3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그라운드로 가자마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가볍게 승리했다. 비슷한 경우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가 당시 파해법이 나오지 않았던 밥 샙에게 반쯤 떡실신당해 패배 직전까지 갔었던 적이 있다.
레스너전 이후 UFC와의 계약에 불만을 표하며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은퇴한 상태인데, 인터뷰에 의하면 더이상 격투계에서 금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UFC에서 헤링의 파이트머니는 7만~14만 달러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뭔가 문제가 있긴 한 듯. 실은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몇몇 작품에 얼굴을 비추면서도 이렇다 할 대작에는 출연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0년 11월 복귀 의사를 밝혔으나 무산되었다.
이후 포커 선수로 변신했다.
매 시합마다 머리가 변하는 다색의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몸개그와 특이한 헤어스타일에 묻혀 다들 간과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한 미남이긴 한데 노홍철과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6. 관련 문서
[1] PRIDE에서는 판정 채점 기준에 체중이 낮은 쪽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룰이 있다.[2] 많은 격투 매니아들의 추측으로는 제롬 르 밴너와 마이크 베르나르도가 눈싸움 도중 서로 키스했던 사건을 흉내내려 한 것 같다고 하지만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난데없이 키스를 했으니 당연히 저런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3] 물론 알고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후 나카오에게는 한동안 게이 의혹이 따라다니기도 했지만 실제로 게이는 아니다. 참고로 나카오는 2008년 12월에 일반 여성과 결혼해서 유부남이 됐다.#[4] 미국에서 신년이 시작될 때 키스를 하는 풍습에 빗댄 것.[5] 이것도 좀 웃긴 것이 헤링의 킥은 바디킥 궤도였는데 노게이라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하이킥이 되어버렸다.[6] 그래도 두부만 아니면 가격이 가능하기에 칙 콩고와의 경기에서도 니킥으로 승리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