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폭탄 테러 三菱重工爆破事件 1974 Mitsubishi Heavy Industries bombing |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발생일 | 1974년 8월 30일 오후 12시 45분[1] | |
발생 위치 | ||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 ||
유형 | 폭탄 테러 | |
인명피해 | <colcolor=#fff><colbgcolor=#bc002d> 사망 | 8명 |
부상 | 376명 이상 | |
재산 피해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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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4년 8월 30일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의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에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일으킨 폭탄 테러. 1995년에 발생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전에 일본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사건이었다.2. 배경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본의 극좌 단체로 일본 제국을 절대악이라고 보고 태평양 전쟁을 비판하며 제국주의와 관련되면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 초반에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테러로 시작했으나 1974년부터 폭력을 사용하기로 노선을 변경했다.1974년 8월 14일 쇼와 덴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발각되어 무산되었고 이 단체와 관련된 문세광이 익일 박정희 전 대한민국 대통령을 저격 미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 무기를 수출한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테러 계획을 세웠다.
3. 전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일원들이 45kg 가량의 시한 폭탄을 제조해 화분에 숨긴 채 입구에 배치했다. 폭발 8분 전 교환원을 통해 폭발물 설치 사실을 알렸으나 장난전화 취급해 대피하지 않았고 4분 후 다시 전화로 알렸으나 또 무시당했다. 결국 폭탄 중 하나[2]가 폭발해 5명이 즉사했으며 3명이 병원 이송 후 사망했고 총 376명 정도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반대편에 위치한 미쓰비시전기 건물 유리창이 손상되었고 신주쿠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고되었다.4. 사건 이후
사건 발생 직후 언론에서 크게 보도했으나 정작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를 비롯해 정부에서는 언급을 자제하며 회피했고 일본 경찰도 사건 주동자 수사 및 체포를 신속히 진행하지 않았다.1975년 5월 19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늑대부대 지도자 다이도지 마사시를 포함한 일원들이 체포되었다.
1987년에 다이도지 마사시와 마쓰나가 토시아키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단체는 대피하라는 전화가 무시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아 더 큰 피해로 이어졌다고 밝혔고 다이도지도 이 테러가 실수였으며 유가족에게 사과를 전했다.
2017년 5월 24일 도쿄 구치소에서 다이도지 마사시가 사망했다.
2024년 1월 26일 주동자 중 한 명인 키리시마 사토시가 자수했는데 본격적인 조사를 하려고 했으나 3일 뒤 위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