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MBC배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유도훈 | → | 1990 MBC배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이상범 | → | 1991 MBC배 우승팀: 중앙대학교 MVP: 정경호 |
1. 개요
1990년 5월 17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 대해 소개한다.대학농구연맹 소속 12개의 남자부 팀들 중 11팀이 참가[1]하여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전 4월에 열린 춘계연맹전 우승팀 중앙대와 준우승팀 연세대는 각각 주전센터 표필상, 정재근이 국가대표팀[2]에 소집되면서, 각각 기둥센터가 없는 상태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2. 운영 방식
MBC배만의 특수한 방식인 "토너먼트 & 패자부활전"이 적용되었다.- 이 복잡한 토너먼트 방식의 목적은 대회는 토너먼트로 진행하되 모든 팀은 한번까지는 패해도 부활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 대학농구연맹 소속 총 12개의 남자부 팀들 중 11팀이 참가하여 토너먼트를 거치고, 여기서 4강에 가지 못한 총 7팀은 "패자부활전 예선"에 다시 참가하여 토너먼트로 최종 2팀에게 "패자부활권"을 주었다.
- 1차 토너먼트 4강에서 승리한 두 팀은 승자결승전을 치르고, 4강에서 패한 두팀은 "패자부활권"을 얻은 두 팀들과 "패자 3회전" 및 패자준결승전을 치른다.
- 승자결승전의 승리팀은 최종결승에 진출하고 패배한팀은 패자준결승전 승리팀과 대결(패자결승)하여, 여기서 승리한 팀이 역시 최종결승에 진출한다.
- 기본적으로 모든 경기는 단판이나, 승자결승전 승리팀의 경우 "최종결승" 이전까지 단한번도 패하지 않은게 되므로, 만약 승자결승전 승리팀이 최종결승에서 한번 진다면 재대결할 기회를 갖는다.
3. 대회 결과
3.1. 승자 토너먼트
1회전 | 2회전 | 승자준결승 | 승자결승 |
고려대: 승 동국대※1): 패 | 고려대: 승 중앙대※1): 패 | 고려대: 승 경희대※2): 패 | 고려대※3): 패 연세대: 승 |
- | |||
- | 경희대: 승 명지대※1): 패 | ||
단국대: 승 건국대※1): 패 | 단국대: 승 국민대※1): 패 | 단국대※2): 패 연세대: 승 | |
- | |||
홍익대: 승 한양대※1): 패 | 홍익대※1): 패 연세대: 승 | ||
- |
※2) - 4강전 패배팀은 패자부활전 3회전 출전: 경희대, 단국대
※3) - 승자결승전 패배팀은 패자부활전 결승전 출전: 고려대
3.2. 패자부활전
패자 1회전 | 패자 2회전 | 패자 준준결승 | 패자준결승 |
중앙대※1): 승 국민대※1): 패 | 중앙대: 승 한양대: 패 | 중앙대: 패 단국대※2): 승 | 단국대: 패 경희대: 승 |
한양대※1): 승 명지대※1): 패 | |||
- | - | ||
건국대※1): 승 동국대※1): 패 | 건국대: 패 홍익대※1): 승 | 홍익대: 패 경희대※2): 승 | |
- | |||
- | - |
※1) - 승자 토너먼트 1, 2회전 패배팀: 동국대, 중앙대, 명지대, 건국대, 국민대, 한양대, 홍익대 (7팀)
※2) - 승자 준결승전 패배팀 (패자부활전 준준결승 출전): 경희대, 단국대
패자 준준결승전에서 단국대[3]가 가드 이진형[4](3년,176cm), 센터 전병삼[5](3년,194cm) 콤비의 활약속에 춘계연맹전 우승팀 중앙대를 격파하는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다. 비록 센터 표필상(3학년, 200cm)이 국가대표팀 소집으로 빠졌지만 김승기(1년,G,182cm)-남경원[6] (3년,G,185cm)-김상준(4년,F, 184cm)-김영래(4년,C,192cm) 등 주전들이 건재하고 2학년 장신센터 정경호(202cm)까지 있는 중앙대가 단국대에 패한것은 1990년 한해동안 대학농구 최고의 사건이었다.
3.3. 패자결승
경희대학교 (패자준결승 승) | 72 : 69 | 고려대학교 (승자결승 패) |
3.4. 최종결승[7]
연세대학교 | 92 : 73 | 경희대학교 |
3.5. 대회 결산
- 최종 순위
- 우승: 연세대 / 준우승: 경희대 / 3위: 고려대 / 4위: 단국대
- 개인부문 수상자
- 연세대는 주전센터 정재근(3년,193cm)이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공백을 1학년 센터 김재훈(193cm)이 잘 메웠고 오성식(2년,184cm), 이상범(3년,182cm)의 경기운영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빛났던 것은 광신상고 출신 1학년 대형포워드 문경은(190cm)의 활화산같은 3점슛이었다. 이제 1학년임에도 연일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한 문경은은 많은 언론으로부터 김현준을 이을 국대 슈터 재목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 만년 중하위권이던 경희대와 단국대의 돌풍이 주목받았다. 특히 경희대는 센터 이창수(3년,196cm), 포워드 김현국[8](2년,188cm)의 활약속에 승자준결승에서 고려대를 꺾는등, 최종결승전까지 진출하였고, 단국대도 4월 춘계연맹전에 이어 두대회 연속 4위를 차지하는 호성적을 거둔다.
- 반면 시즌 첫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 우승하면서 내심 시즌 전관왕을 노렸던 중앙대는 표필상(3년,200cm)의 국대차출 공백을 정경호(2년,202cm)가 제대로 메우지 못하면서 장신군단으로서의 경쟁력을 잃은채, 고려대와 단국대에 연패하면서 패자 준준결승에서 쓸쓸히 탈락하고 만다.
[1] 성균관대 불참[2] 1990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계선수권 참가[3] 4월 춘계연맹전에서도 중-연-고대에 이어 4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4] 단국대 졸업 후 92년도에 한국은행팀에 입단, 96년까지 활약했으나 KBL이 출범시 한국은행팀이 해체되면서 은퇴했다. 당시 일반 은행원으로 전환한것으로 보인다.[5] 4학년때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뽑힐정도로 유망한 센터였으나, 삼성전자 입단 후 동기 이창수를 비롯하여 쟁쟁한 멤버들에 밀려 거의 뛰지 못하다 은퇴하였다.[6] 삼일상고 출신. 대학때까지는 거의 가드로 뛰다가 졸업반때부터 3점슛을 본격 장착하면서 SBS 입단 후 상무시절 김상식과 함께 슈터로 변모했다. 다만 상무시절 입은 허리 부상의 여파로 인해 제대후 예전같은 활약을 하지못했으며, KBL 출범 직전이던 96년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후 안양SBS 스타즈 농구단 주무를 맡다가 SBS가 농구팀을 매각할 당시 SBS에 남은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현재 SBS 예능국(!!!) 마케팅담당을 맡고 있다고 알려졌다.[7] 패자결승에서 1패를 안고 올라온 경희대가 패했기때문에 1경기만에 종료되었다.[8] 현 경희대 농구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