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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0 17:10:17

Ch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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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바이오그래피3. 기타리스트로서 평가4. 여담

1. 개요

1955년 6월 16일, 도쿄시나가와구 출신.

일본의 기타리스트로 블루스,퓨전재즈 계열의 강자다. 일본 최고수급의 기타리스트를 얘기하면 무조건 거론되는 인물이며 본명은 타케나카 히사토(竹中 尚人).

기타 클리닉도 자주 다니고 기타주법 교본도 굉장히 많이 집필한지라 흔히 챠 선생님(チャー先生)으로 불린다.

2. 바이오그래피

부유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원래는 7세부터 피아노 영재교육을 받아 음대를 지향하였으나 8살 때 형의 영향으로 기타를 잡는다. 피아노를 연주하다 갑자기 기타만 주구장창 연주하기 시작하는 아들을 본 아버지가 그의 방에 들어가 '커서 뭐가 될 거냐?' 라고 엄하게 다그치자 벽에 걸린 지미 헨드릭스의 포스터를 가리키며 '이거'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어쨌건 18세까지 피아노는 그만두지 않았다.

원래 피아노 영재교육을 받았던지라 이해가 빨랐는지 기타 실력이 굉장히 빨리 늘어 소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동급생인 신카와 히로시[1]와 밴드를 결성하고 야드버즈도어즈, 롤링 스톤즈의 곡을 카피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미 밴드 경연대회에도 출전해 프로 데뷔 제의를 받을 정도의 천재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는데, 1970년초 당시에는 일본 록의 흐름이 거의 포크로 흘러가던 시절이라 성향에 맞지 않아 거절한다. 그리고 16살에 GAS MASK라는 밴드를 결성해 자작곡으로 야마하 뮤직 콘테스트에 출연해 지역단위 2위라는 성과를 내고 스튜디오 세션으로 카세트가 첨부된 에릭 클랩튼 기타연주 교본에 참여한 것이 프로 기타리스트로 첫 일거리였다고 한다.

1973년 전설이 된 첫 밴드인 스모키 메디신(smokiy medicine)을 결성하는데 기존에 참여하고 있던 밴드인 bad scene의 베이시스트이자 지금은 최고의 슬랩베이스 연주자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는 카시오페아(일본 밴드)의 나루세 요시히로와, 훗날 유명 가수가 되는 카네코 마리[2]가 밴드의 구성원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결성한 스모키 메디신의 데모테이프가 당대 잘나가던 록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우치다 유야에게 들어갔고 다양한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가 되지만 짧은 전성기를 거쳐 1974년 해체한다.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 홀로 남은 약관의 젊은 천재 기타리스트는 정식 데뷔도 하기 전에 엄청난 라이브 경력들을 뒤로한 채 정식으로 프로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동을 개시한다.

1976년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의 수록곡인 데뷔 싱글 NAVY BLUE는 가요와 록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느낌이 기존의 대중음악에 비해 이질적이어서인지 반응이 미미했지만 그 록과 가요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필링을 강화하여 1977년 발매한 두번째 싱글인 気絶するほど悩ましい(기절할 정도로 괴로워)가 3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히트를 치고 다음해 발표한 싱글 逆光線(역광선),鬪牛士(투우사)가 연타석으로 히트하여 세라 마사노리, 하라다 신지와 더불어 록 고산케라고 불리는 위치까지 올라간다.

잘나가던 솔로 기타리스트로의 행보와 별개로 70년대 후반의 경력은 CHAR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당대 일본을 석권한 여성 듀오인 핑크 레이디와 엔카 가수 이츠키 히로시,하시 유키오 등의 상상도 못할 바쁜 스케줄을 직접 눈으로 목격해가며 다소 무시해왔던 댄스, 디스코나 엔카 뮤지션들이 생각보다 음악에 엄청나게 진지하고 프로다운 자세로 임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진짜 프로'란 이렇게 대단하다는 충격을 받아 좀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장르적으로는 다르지만 이렇게나 존경스러운 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락부심을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베이시스트 카베 마사요시 , 옐로우 출신의 드러머 조니 요시나가[3]와 함께 JOHNNY, LOUIS & CHAR를 결성해 잠시 활동하다가 소속사의 의견으로 밴드명을 핑크 클라우드로 변경해 활동하기도 하면서 여러 뮤지션들과의 세션 참여와 협업을 통해 일본 록음악의 역사와 함께 자리를 지켜온 원로 기타리스트로 현재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다.

3. 기타리스트로서 평가

록기타리스트로 유명한데 당시 일본 기타리스트들이 대개는 블루스나 하드록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에 비해 Char는 시작부터 소프트 재즈와 블루스적인 필링을 기반으로 한 연주를 통해 자기 색을 확실하게 내면서도 과하지 않고 정확한 연주를 하는 기타리스트였다. 음악적인 감각도 뛰어난지 RC 석세션의 니카이도 레이치가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예전에 한번 블루스 기타리스트들끼리 모여서 잼(즉흥연주)을 했을 적에 너도나도 리드기타 파트 연주를 할 때 혼자서 칼같이 백킹 트랙을 연주하면서 리듬기타 파트를 소화하는 것을 보고 역시 CHAR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지능적이면서 필링이 살아있는 깔끔한 연주가 강점으로 초기엔 에릭 클랩튼, 제프 벡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점점 실험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톤과 스타일을 찾아나갔다고 한다.

5ch 챠센세 스레의 익명의 세션 기타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챠의 기타는 너무 정석적이라 프로듀서가 '악보대로 치세요.'라고 지시한 그대로 연주하는 무개성한 느낌인데 들을수록 상쾌한 팝도 록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고...

4. 여담


[1] 키보드, 피아니스트로 후일 마츠다 세이코, 마츠토야 유미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며 유명 편곡가로 자리잡는다.[2] RIZE의 노부아키, KenKen의 어머니.[3] RIZE의 노부아키, KenKen의 아버지. 2012년 사망.[4] 재팬 펜더가 아닌 미국 본사 커스텀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