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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항공, Il-86, RA-86078 |
Il-86의 조종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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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yshin Il-86
Ил-86 (일-보솀졔샤쯔쪠스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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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yushin Il-86
Ilyshin Il-86
Ил-86 (일-보솀졔샤쯔쪠스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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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yushin Il-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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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l-86은 일류신이 제작한 소련 최초의 중단거리용 광동체 여객기로 1970년대 일류신 설계국에 의해 개발되었다. NATO 코드명은 "Camber"이다.1976년 12월 22일에 초도 비행을 했고, 첫 운항은 1980년 12월 26일에 모스크바-타슈켄트 노선으로 성사되었으며, 1991년까지 총 106대가 생산되었다.
2. 제원
3. 개발 동기와 역사
Il-86 개발 계획은 1967년, 아에로플로트에서 여객 항공의 대량 수송을 위해 250석에서 350석 사이의 여객기 제작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1967년 10월 소련 장관회의에서 이 결정이 채택되었고, Il-62를 2층화하는 버전과 단층 광동체 여객기의 2개 안이 제시되었으나, 모두 구상에 그쳤다. 그러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 이에 맞춰서[1] 취항할 것을 목적으로 Il-86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된다.[2]1970년에 일류신 설계국에 광동체 여객기 설계에 관한 기초 이론 연구 프로젝트가 배분됐고, 2년 뒤 소련 장관회의에서 본격적인 항공기 제작을 시작하라는 결정[3]이 내려진다. 요구사항은 크게 다음과 같았다.
1. 대형 여객기에 짐을 싣기 위한 장비가 부족한 소형 공항에서의 취항을 위해, 간단한 수화물 정도는 승객이 탑승하면서 동체 하부의 화물창에 직접 짐을 싣을 공간을 보장.
2. 마찬가지의 이유로 비행기 아랫부분에 자체 계단이 나와서 탑승할 수 있도록 만들 것.[4]
3. 짧은 활주로에서의 운용이 가능할 것.
2. 마찬가지의 이유로 비행기 아랫부분에 자체 계단이 나와서 탑승할 수 있도록 만들 것.[4]
3. 짧은 활주로에서의 운용이 가능할 것.
이러한 요구 사항을 맞추기 위해 중앙유체역학연구소(TsAGI)[5]에서도 개발진이 동원되었고, 동체 폭은 당대 서방 광동체 여객기인 DC-10과 비슷한 3-3-3 좌석 배열을 수용 가능할 정도로 넓었다.[6] 플랩 또한 고양력을 발생시키기 위해서, 보잉 747처럼 앞전슬랫과 3단플랩이 적용되었다.
일류신, Il-86, CCCP-86000, Il-86의 프로토타입 |
이러한 흐름에 의해서 서방 측은 공항의 대규모 확장, 탑승용 게이트 설치, 활주로 확장 등의 해결책을 자연스럽게 내놓게 된다. 특히 당대 세계 경제력 1위였던 미국은 이러한 분야에 있어서는 월등한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소련은 영토 넓이가 미국의 2배 가까이 넓지만, 정작 경제력은 미국보다 약했으며, 그로 인해서 수많은 지방의 소규모 공항들을 일일이 개, 보수할 수 없었다.[7][8] 따라서 지방 공항들의 열악한 시설로도 문제 없이 대규모 수송을 하기 위해 Il-86의 개발 목적을 중단거리용 광동체 여객기[9]로 방향을 잡는다.
하여간 1976년 시제기[10]가 출시되었으며, 테스트 파일럿[11]이 시범 운항을 시작했다. 1년 뒤에는 파리 국제 에어쇼에서도 전시되었으며, 첫 상용 운항은 모스크바 올림픽 폐막 뒤인 1980년 12월 26일에 모스크바-타슈켄트 노선에서 CCCP-86006 기체가 비행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4. 기술적 특징
항속거리가 약 3,500km 수준으로, 장거리 광동체 여객기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바다를 건너기 부적절 할 뿐 모스크바 기준으로 주요 국내-국제 대도시 운항에는 지장이 없었다. 전술했듯 소련에서의 해외여행은 제한적이었으므로, 외국발 관광객 정도를 제외하면 그렇게 국제선 수요가 많을 일이 잘 없었고, 특히 바다 건너 미주나 아시아 방면은 더욱 그랬다.당장 Il-86의 첫 데뷔 노선이 당시 소련 제 4의 대도시였던 타슈켄트행이었다. 즉, 국내선이다. 이 외에도 수요가 많은 레닌그라드, 키예프, 민스크 등의 국내 대도시는 충분히 운항 가능했고, 국제선으로 봐도 같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 블럭 내였던 바르샤바, 베를린, 프라하 등에 취항하는데에 문제가 없으며 이는 같은 유럽의 서방 대도시인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등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항속거리보다 더 큰 문제는 연비라고 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Il-86의 연비 수준은 매우 나빠 Il-86의 기름 소모량은 보잉 747과 맞먹는 수준이었음에도 항속거리는 보잉 737-200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연비 문제 또한 사회주의 특성상 항공유를 소련 내부에서 저렴하게 조달했기 때문에 운항에 별다른 지장은 없었다. Il-86이 유럽 취항에 애를 먹은 진정한 이유는 NK-86 엔진의 터무니없이 낮은 바이패스비[12]로 인한 소음 기준 미충족이었다.
엔진은 Il-76에 달린 바 있었던 쿠즈네초프 NK-8을 개량한 NK-86이었다. 개당 13,300kgf 정도의 추력을 자랑했는데[13], 문제는 Il-86에 적용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추력이었다. 따라서 이 추력 부족 문제가 이착륙시에 극심했으며,[14] Il-86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사고 원인이 엔진 문제였다.
과열 문제도 있었는데, 특히 고온의 환경에서 이륙하려 들면 안에 내장된 RT-12 센서가 고열을 감지해 엔진을 꺼먹는 일이 잦았다.[15] 이게 이륙 도중에 발생해서 급히 이륙이 정지된 적도 있었다.
소련 당국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여, 후술하겠지만 롤스로이스 RB211을 영국에서 수입하여 개량을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수입은 수량 문제로 결렬된데다 결정적으로 Il-86의 착륙 장치, 기골이 NK-86 엔진에 딱 맞게 설계된 바람에 결국 Il-86의 개량을 포기하였고, 이후 Il-96을 개발하는 것으로 선회한다.
주익의 후퇴각은 35도였는데, 이는 이착륙이나 순항때에 있어서 상당히 효율적인 각도였다.
승무원 갤리가 어퍼데크가 아니라, Tu-114나 L-1011처럼 동체 아래에 설치되었다. 정확하게는 조리실은 객실 하부에 따로 있고, 승무원 갤리가 객실에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이러한 부분에서는 서비스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부에 있는 조리실 한켠에 하부로 승하기가 가능한 측방 계단형 램프도어가 있다. 모두 좌현으로, 최대 3개소까지 있으며 이 램프도어를 통해서 지상 승하기가 가능하다. 또한 조리실에서 갤리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는 곳 옆에는 수동으로 직접 문을 여는 식의 승강기가 두 대 있는데, 사람이 탈 수 있다. 다만 좁은 관계로 기내식 카트와 승무원 1명 정도만 수용 가능하다.[16]
5. 파생형
5.1. Il-86
시베리아 항공, RA-86097 |
5.1.1. ~Il-86V~(취소)
롤스로이스 RB211을 장착한 동체연장형. 최대 460명 정도를 수용 가능하며 항속거리는 4000km 정도로 기획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5.1.2. ~Il-86D~(취소)
이브첸코-프로그레스 D-18 엔진[17]을 장착한 동체단축형. 최대 330명 정도를 수용 가능하며 항속거리는 9000km 정도로 늘어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단 이 설계안은 이후 Il-96-300의 개발에 승계된다.5.2. Il-80/87
러시아 공군, RA-86147 |
6. 수출
LOT 폴란드 항공에 4대, 동독의 인터플루크에 2대가 수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자는 계속되는 납품 지연 끝에 주문을 취소했으며, 후자는 아예 등록번호까지 할당[18]했으나 정작 1987년에 A310을 대신 들여오면서 무산된다.이후 Il-86은 거의 구소련권 항공사에서만 사용되었으며, 소련권 이외에 Il-86을 사용한 항공사는 3대[19]를 사용한 중국신장항공과 히자베레 항공[20] 2곳밖에 없다.
7. 퇴역
추력 문제, 소음 문제, 수송량 문제 등이 겹쳐 소련에서는 이후 Il-96을 개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아에로플로트는 소련 해체 전까지 Il-86을 상당수 운용했으나, 해체 이후 아에로플로트도 같이 해체되면서 90년대 말~2000년대 초엔 아에로플로트가 보유했던 Il-86들도 각 지역 항공사들로 흩어진다. 러시아 SFSR 밖에 있던 기체들은 방치되거나 스크랩되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2000년대 초까지는 서방 항공기 보유 댓수 제한 규제[21]가 있어 Il-96도 같이 운용되었으나, 이후 규제가 댓수 제한 대신 중과세를 물리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Il-96과 Tu-154, Tu-204같은 여객기들이 조금씩 퇴역하기 시작했고, 결국 Il-86은 2011년에 민간에서 전량 퇴역했다.이후 현 러시아에선 Tu-204, SSJ-100 정도가 적절한 성능으로 인해 소수 운용되고 있으며, 나머지 광동체들은 항공사들이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버뮤다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에서 기체를 리스 해 오는 방법을 쓰며 보잉 777, A330 등의 광동체 여객기를 절찬리에 운용 중이다.
8. 사건/사고
- 1994년 사하라 항공 보잉 737 추락 사고
- 1998년 아에로플로트 Il-86 경착륙 사고
- 아에로플로트 521편 동체 착륙 사고
- 풀코보 항공 9560편 추락 사고
9. 참고 링크
[1] 같은 이유로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남쪽 터미널, 즉 2터미널도 착공이 결정되었다. 이 터미널의 착공 전에는 북측 터미널만 존재했다.[2] 보잉 747은 1970년, DC-10은 1971년, L-1011은 1972년에 이미 운항을 시작했다. 동시기 소련은 광동체 여객기를 설계하는 대신, Il-62와 Tu-134를 추가 생산하는 식으로 해결 중이었다.[3]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принял постановление № 168-68[4] 이렇게 되니 승객들은 기체 자체에 설치된 계단으로 타면서 자연스럽게 수하물을 화물칸에 놓고 윗층의 메인데크로 올라가는 구조가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이러한 방식을 적극 활용했으나 나중에 가면 지방 공항에 스텝카가 많이 보급되면서 쓸모없는 기능이 되어간다.[5] MiG-29와 Su-27의 공기역학 모델을 설계한 그곳 맞다.[6] 참고로 Il-86의 동체 너비는 보잉 747 다음으로 넓은 6.07m이었으며, DC-10은 2-5-2가 표준배열이었다.[7] 이러한 경향으로 국내선에 탑승용 게이트가 설치되기 시작한 건 10년도 안됐으며 2000년대 초기만 해도 러시아 내 국내선 터미널에 게이트 브릿지가 있는 공항은 모스크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 뿐이었다. 물론 국제선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며,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은 1980년 2터미널 신축 당시 소련 최초로 탑승교를 설치하였다.[8] 물론 주요 공항이 아닌 지방 공항의 경우에는 유럽 공항들도 얄짤없이 버스 탄다. 하지만 소련은 이게 훨씬 더 심해서 인구 500만명의 레닌그라드 같은 대도시에서도 그짓을 해야 했다는 게 문제였다.[9] 서방에서 흔히 에어버스라고 불리는 개념이다.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의 사명이 이것에서 유래됐으며, 실제로 에어버스의 첫 여객기인 A300 역시 에어버스 개념에 정확히 부합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10] 레지번호 CCCP-86000. 현재 키이우 항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1] 에두아르드 이바노비치 쿠즈네초프. Il-86이나 Il-76등에 달리는 쿠즈네초프 엔진을 설계한 쿠즈네초프 설계국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12] 실제로 보잉 747에 탑재된 최초의 고바이패스비 엔진인 프랫 & 휘트니 JT9D는 바이패스비가 5:1에 달하였으나, NK-86은 고작 1.15:1에 불과하였다.[13] 동시기 영국제 롤스로이스 RB211-535는 약 40,000kgf의 추력을 냈다.[14] 추력이 너무 떨어져 활주로 끝에 가서야 겨우 겨우 하늘로 기체를 띄울 수가 있을 정도였다.[15] Yak-38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는 등, 일부 소련산 제트엔진의 고질적 문제였다.[16] 일반적으로 항공기 내 승강기는 기내식 카트만 담아 옮길 수 있을 뿐, 사람은 못타는 조그마한 것이 설치된다. 사람이 탈 수 있는 크기와 성능을 갖추는 경우는 알 왈리드 빈 탈랄 전용기(A380 VIP 수송기 형식)와 같은 VIP 수송기를 제외한 상업운항 중인 항공기로는 이 기종이 유일하다. 단, 현재는 항공기 제조사인 노스롭 그루먼 사가 실험기로 운용 중인 단 1기만이 현역으로 남은 록히드 마틴 L1011기의 경우 상업운항 시절에 똑같이 사람이 탈 수 있는 승강기가 똑같이 2대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불명.[17] An-124에 달려있는 그 엔진이다.[18] DDR-AAA, DDR-AAB[19] B-2018, B-2019, B-2016[20] Hajvairy Airlines,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파키스탄에 존속한 항공사. 참고로 이 항공사는 파키스탄 최초의 민간 항공사였다.[21] 한 항공사 당 20대까지 보유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