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NBA 드래프트
NBA 드래프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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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라운드
<rowcolor=#ffc224> 순위 | 구단 | 선수 | 국적 | 포지션 |
1순위 | 휴스턴 로키츠 | 하킴 올라주원 H M T A | 나이지리아 | 센터 |
2순위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샘 보위 | 미국 | 센터 |
3순위 | 시카고 불스 | 마이클 조던 H M T A R | 미국 | 가드/포워드 |
4순위 | 댈러스 매버릭스 | 샘 퍼킨스 | 미국 | 포워드/센터 |
5순위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찰스 바클리 H M T A | 미국 | 포워드 |
6순위 | 워싱턴 불리츠 | 멜빈 터핀[1] | 미국 | 센터 |
7순위 | 샌안토니오 스퍼스 | 앨빈 로버트슨 T A | 미국 | 가드 |
8순위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 랭커스터 고든 | 미국 | 가드 |
9순위 | 캔자스시티 킹스 | 오티스 소프 A | 미국 | 포워드/센터 |
10순위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레온 우드 | 미국 | 가드 |
11순위 | 애틀랜타 호크스 | 케빈 윌리스 T A | 미국 | 포워드/센터 |
12순위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팀 맥코믹[2] | 미국 | 센터 |
13순위 | 피닉스 선즈 | 제이 험프리스 | 미국 | 가드 |
14순위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 마이클 케이지 | 미국 | 포워드/센터 |
15순위 | 댈러스 매버릭스 | 테렌스 스탠스버리 | 미국 | 가드 |
16순위 | 유타 재즈 | 존 스탁턴 H T A | 미국 | 가드 |
17순위 | 뉴저지 네츠 | 제프 터너 | 미국 | 포워드/센터 |
18순위 | 인디애나 페이서스 | 번 플레밍 | 미국 | 가드 |
19순위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버나드 톰슨 | 미국 | 가드/포워드 |
20순위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 토니 캠벨 | 미국 | 가드/포워드 |
21순위 | 밀워키 벅스 | 케니 필스 | 미국 | 가드/포워드 |
22순위 | 시애틀 슈퍼소닉스 | 톰 시웰[3] | 미국 | 가드 |
23순위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얼 존스 | 미국 | 센터 |
24순위 | 보스턴 셀틱스 | 마이클 영 | 미국 | 가드/포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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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가
지명 당시부터 엄청난 인재풀이라는 평가를 받은 드래프트로, 그 기대에 걸맞게 역대급 선수들을 다수 배출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NBA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 드래프트이다.[4]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존 스탁턴은 NBA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선수들이며, 그 외에는 역사상 최고의 가드 수비수 중 하나이자 올-NBA 세컨드 팀까지 오른 알빈 로버트슨, 올-NBA 팀 경험자이자 무려 44세까지 뛴 케빈 윌리스, 올스타 1회 경력자이자 하킴 올라주원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로서 1993-94 시즌 우승에 공헌한 오티스 쏘프, 준척급 빅맨으로 3개의 다른 팀에서 3번의 파이널을 경험하고 3번의 준우승을 기록한[5] 3점 쏘는 센터 샘 퍼킨스, 사상 최고로 치열한 리바운드왕 경쟁의 승리자 마이클 케이지[6] 등이 유명했다.
이때 드래프트된 선수들 대부분은 1962~63년생이었고 199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았는데,[7] 당시 한국에서는 NBA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시절이라 명전 4인방을 제하면 전성기의 모습이 국내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8] 물론 그 전에도 한국에서 중계가 되긴 했지만 국내에서 NBA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마이클 조던이고 특히 1993 NBA 파이널을 기점으로 팬이 된 사람들도 많은데, 80년대 중반에 데뷔한 선수들은 이 때 쯤이면 30세 전후로 하락세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9] 실제로는 조던을 제하고도 스타급 선수들이 많았던 드래프트다.[10][11]
해당 드래프트는 데이비드 스턴 총재 취임 후 시행된 첫 번째 드래프트이며, 따라서 1픽인 하킴 올라주원은 스턴 총재가 최초로 지명한 선수이다.[12] 이후 올라주원은 스턴 총재의 마지막 드래프트였던 2013 드래프트에서 마지막으로 1라운드 30순위를 호명한 후 그와 포옹을 나눈 바 있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해당 드래프트에서 스포츠 역사상 길이 남을 희대의 삽질을 벌였는데, 바로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마이클 조던을 거르고 2순위로 샘 보위를 지명한 것. 샘 보위는 NBA에서 10년 정도 뛰기는 했지만 대학시절의 활약과는 달리 부상이 도져 출장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고, 성적도 평균 10득점 8리바운드 정도로 포텐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남긴 채 은퇴를 선택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드래프트 실패 정도로 남았을 수 있고 Sam Bowie Picks 자체도 알고보면 이해할만한 요소들이 꽤 많지만, 바로 뒷순위인 조던이 너무 대성해버려 꾸준히 회자되는 사건이다. 포틀랜드의 당시 상황 참고.
당시는 현재처럼 1, 2라운드 제한이 생기기 전이라 무려 10라운드, 228명의 선수들이 지명을 받았다. 물론 이 정도 되면 뒤로 갈수록 아무나 막 지명하는 경우가 많아 도박성 지명은 물론 저축성 지명이나 아무리봐도 반장난성인 듯한 지명도 있었다. 예로 육상 레전드 칼 루이스는 대학 때 농구선수도 아니었음에도 생뚱맞게 시카고 불스에 10라운드 208순위로 뽑혔으며, 당연히 합류하지 않았다.[13] 마지막 순위로 뽑힌 선수는 클라크 대학교의 댄 트렌트란 선수인데, 그는 보스턴 셀틱스에 합류는 했으나 경기에는 한 번도 출장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14]
그 외의 선수로는 평균 득점이 3점을 넘어본 적이 없는 무명이었으나 이후 감독으로 대성한 릭 칼라일이 3라운드 70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에 뽑혔다. 그는 보스턴 역사상 최고의 시즌 중 하나인 1985-86 시즌에는 77경기를 출전했고 심지어 한 경기는 주전으로 나왔으며, 플레이오프에서는 10경기를 평균 6분 좀 안되게 뛰며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보스턴에서 세 시즌을 소화한 칼라일은 CBA를 거쳐 뉴욕 닉스와 뉴저지 네츠에서도 잠깐 뛰었으며, 30세의 젊은 나이에 코치생활을 시작해 일찍이 지도자 루트를 밟았다.
그리고 KBL팬이라면 귀에 익을지도 모르는 이름이 있는데, 훗날 전자랜드의 감독이자 KBL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된 제이 험프리스가 1라운드 13순위로 뽑혔다. 칼라일과 달리 NBA에서 주전급의 활약을 펼친 선수였으며, 커리어 하이인 1990-91 시즌에는 밀워키에서 15.2점 6.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농구 대통령이자 국제 무대의 전설로 꼽히는 오스카 슈미트도 당시 6라운드 131순위로 뉴저지 네츠에 지명되었으나 그는 NBA 진출을 거부했으며, 커리어 통산 49,703득점으로 농구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한 프로선수가 되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2]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트레이드[3] 워싱턴 불리츠로 트레이드[4] 비교되는 다른 드래프트로는 코비 브라이언트, 앨런 아이버슨, 스티브 내시, 레이 앨런 등이 지명된 1996 드래프트와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시 등이 지명된 2003 드래프트가 있다.[5] 1990-91 시즌 레이커스, 1995-96 시즌 시애틀, 1999-00 시즌 인디애나. 이 중 2번은 대학 후배 마이클 조던의 팀에 패했다.[6] 1987-88 시즌 당시 마지막 경기까지 시카고 불스의 찰스 오클리와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28개를 잡아야 리바운드왕이 될 수 있었는데, 무려 30개를 잡으며 타이틀을 차지한다. 평균으로 따지면 0.02 정도 격차로 이 정도면 웬만한 스탯 사이트에선 표기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basketball reference를 포함한 메이저 사이트에선 두 선수의 해당 시즌 리바운드 평균이 동일하게 13.0개로 나와있다.[7] 90년대 후반까지 기량을 유지한 조던 역시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90년대 초반 1차 쓰리핏 시기로 여겨진다.[8] 예로 쏘프는 많은 한국 팬들은 블루컬러워커로만 알고 있지만 1991-92 시즌에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당시 올라주원 옆에서 평균 17득점 10리바운드, 새크라멘토 시절에는 20-10을 기록하기도 했다.[9] 지금 30세는 한창 뛸 나이지만 당시는 선수관리가 지금보다 훨씬 미흡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10] 예로 03 드래프트와 비교해보면 올스타에 한 번이라도 뽑힌 선수는 7명:9명으로 03 드래프트에 밀리지만, 올-NBA 팀은 한 번이라도 뽑힌 선수가 6명:4명, 전체 개수로 따지면 51회:21회로 84 드래프트가 앞선다. (심지어 올-NBA 팀은 1987-88 시즌까지는 세컨드 팀까지 밖에 없었다.) 올-디펜시브 팀은 한 번이라도 뽑힌 선수가 4명:3명, 전체 개수로 따지면 29회:10회로 84 드래프트가 앞선다. 또한 MVP 역시 한 번이라도 수상한 선수가 3명:1명, 전체 개수로는 7개:4개로 84 드래프트가 앞서고, 파이널 MVP의 경우 양쪽 다 두명씩만 수상했으나 84 드래프티는 조던 6회 + 올라주원 2회로 총 8회, 03 드래프티는 르브론 4회 + 웨이드 1회로 총 5회이므로 수상 횟수는 84 쪽이 더 많다. 또한 올해의 수비수상은 84 드래프티 중에선 조던이 1회, 올라주원이 2회 수상했으나 03 드래프티는 수상하지 못 했다.[11] 96 드래프트와 비교해보아도 올스타에 한 번이라도 뽑힌 선수는 7명:10명으로 96 드래프트에 밀리고, 올-NBA 팀도 한 번이라도 뽑힌 선수가 6명:7명으로 96 드래프트에 밀리지만, 전채 개수로 따지면 51회:37회로 84 드래프트가 앞선다. (심지어 올-NBA 팀은 1987-88 시즌까지는 세컨드 팀까지 밖에 없었다.) 올-디펜시브 팀은 한 번이라도 뽑힌 선수가 4명:2명, 전체 개수로 따지면 29회:16회로 84 드래프트가 앞선다. 또한 MVP 역시 한 번이라도 수상한 선수가 3명:3명으로 동률이지만, 전체 개수로는 7개:4개로 84 드래프트가 앞서고, 파이널 MVP의 경우 84 드래프트가 두 명, 96 드래프트 한 명으로 84 쪽이 더 많고 84 드래프티는 조던 6회 + 올라주원 2회로 총 8회, 96 드래프티는 코비만 총 2회이므로 수상 횟수도 84 쪽이 더 많다. 또한 올해의 수비수상은 84 드래프티 중에선 조던이 1회, 올라주원이 2회 수상했으나 96 드래프티는 캠비만 1회 수상한 것이 전부다.[12] 동시에 역대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1순위 지명자이기도 하다.[13] 그는 같은 해 열린 NFL 드래프트에도 뽑혔다.[14] 훗날 트렌트는 9.11 테러 당시 하필 무역센터 건물에서 근무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