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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28 13:36:59

Shieldwall

쉴드월
Shieldwall
<nopad> 파일:Shieldwall.jpg
<colbgcolor=#bc1d1d,#bc1d1d><colcolor=#ffffff,#ffffff> 개발 Nezon Production
유통 Nezon Production
플랫폼 Microsoft Windows
ESD Steam
장르 전략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출시 2023년 4월 19일
한국어 지원 자막 지원
심의 등급 심의 없음
상점 페이지 파일:스팀 아이콘.svg

1. 개요2. 발매 전 정보3. 시스템 요구 사항4. 조작법5. 군단 업그레이드 목록6. 군기 업그레이드 목록7. 스테이지

1. 개요

러시아의 게임 개발사 Nezon Production이 개발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생을 배경으로 한 게임.

2. 발매 전 정보

공식 트레일러
출시 트레일러

3. 시스템 요구 사항

<rowcolor=#ffffff,#ffffff> 구분 권장 사양
Windows
<colbgcolor=#bc1d1d,#bc1d1d><colcolor=#ffffff,#ffffff> 운영체제 Windows 10
프로세서 Intel CPU Core i5-2500K 3.3GHz
AMD CPU Phenom II X4 940
메모리 6 GB RAM
그래픽 카드 NVIDIA GeForce GTX 670
AMD R9 270
API DirectX 버전 11
저장 공간 8 GB 사용 가능 공간

4. 조작법

5. 군단 업그레이드 목록

6. 군기 업그레이드 목록

백부장은 주변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경험치를 얻으며, 일정 이상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 업한다. Q를 눌러 레벨 업으로 얻은 포인트를 소모해 여러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으며, 이렇게 업그레이드 한 항목은 백부장 주변의 모든 아군 병력과 깃발에 적용된다. 주문양은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지만, 일반 문양은 여러 개를 섞을 수 있다. 같은 문양을 연속해서 2번 달면 업그레이드 된다. 군기의 최대 레벨은 10이니 업그레이드 일반 문양 5개를 달 수 있는 셈이다.

7. 스테이지

7.1. 제 1막

갈리아 전쟁을 다룬다.

7.1.1. 아라르 전투

아라르 전투는 기원전 58년에 새로운 터전으로 이주하려던 헬베티족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지휘하는 로마군 4개 군단(제7군단, 제8군단, 제9군단 히스파나, 제10군단 에퀘스트리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로, 갈리아 전쟁의 첫 번째 대규모 전투이다.

헬베티 족은 지금의 스위스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던 부족이었다. 카이사르와 전투를 치르기 전, 헬베티족은 로마가 지배하는 갈리아를 통과해 대서양 해안 쪽에서 정착하기 위해 민족 대이동을 시작한 참이었다.

이에 로마군은 제네바에서 론강의 나무다리를 파괴하고 30킬로미터에 달하는 요새를 구축했다. 헬베티족은 이동 경로를 바꾸어 뗏목과 배를 이용해 아라르(손)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정찰병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다시 헬베티족과 맞붙었다. 헬베티족의 병력의 3/4이 강을 건넌 상태에서 카이사르는 아직 남아 있던 1/4을 쳐 대부분을 섬멸하였고, 살아남은 이들은 숲으로 도주했다.
튜토리얼 격 스테이지. 3개의 세력이 각자 주둔지에서 시작하며, 주둔지 바깥에 3개의 깃발이 있다. 상대인 두 세력 모두 기지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눈앞의 상대에게 닥돌하는 AI니, 괜히 전투를 하는 대신 적당히 피해다니며 기지를 먼저 노려 점령하자.

7.1.2. 보주 전투

베손티오 전투라고도 불리는 보주 전투는 기원전 58년에 아리오비스투스가 이끄는 게르만족의 일파 수에비족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 6개 군단이 맞붙은 전투로, 갈리아 전쟁의 세 번째 대규모 전투이다. 이 당시 게르만 족의 일부가 갈리아에 이주하기 위해 라인강을 건넜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카이사르와 아리오비스투스는 회담을 가졌는데, 아리오비스투스의 기병이 로마군 기병에게 돌과 투척 무기를 먼졌다. 카이사르는 회담을 중단한 후, 수에비족이 회담은 자신들을 유인할 핑계였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로마군에게 반격하지 말라 지시했다.

카이사르는 적진을 지키는 수레들이 병력의 후방을 막는 형태라 게르만족 병사들이 도망칠 데도 없이 싸우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수레에는 통곡하는 여인들이 올라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게르만족 병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원래의 의도는 부족민들이 승리하지 않으면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전멸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었다.
3개의 세력이 각자 주둔지에서 시작하며, 맵 중앙 가운데 언덕에 깃발 하나가 있다. 요충지인 언덕을 확보하고 지키면서 업그레이드를 해 상대를 압도하자.

7.1.3. 사비스 전투

기원전 58년과 57년의 겨울에 카이사르의 귀에 벨가이인 부족들이 로마의 간섭에 대비해 연맹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연맹에는 많은 부족이 가입했으며, 수에시오네스족의 왕 갈바가 지도자로 군림했다. 이 소식은 카이사르가 갈리아 자체를 점령할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으며, 이에 따라 카이사르는 갈리아 키살피나에 두 개의 군단을 편성하고 레미족을 설득하여 한편으로 포섭했다.

이에 다른 벨가이인과 켈트인 부족들은 엔강 근처에 있는 레미족의 도시 비브락스를 공격했다. 카이사르는 반격하여 이 도시를 지켜내고 엔강 전투에서 이겼다. 안 그래도 물자가 부족했던 연맹은 이로써 무너졌고, 앞으로 로마군이 다시 쳐들어오면 서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채 각 부족의 병력은 저마다 고향으로 퇴각했다. 카이사르 군은 진격을 계속했고, 부족들은 하나씩 그 앞에 항복했다. 그러나 네르비족, 아트레바트족, 아두아투키족, 비로이만두이족의 네 부족만은 굴복하지 않았다.
4개의 세력이 각자 주둔지에서 시작하며, 1개의 점령지가 있다. 이 점령지(수레)는 점령하면 자신의 기지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는데, 대부분의 AI가 수레를 우선적으로 노리려 한다. 보주 전투 때와 달리 세 방향에서 병력이 몰려오는데다 수레에선 일반 깃발과 다르게 병력 모집을 할 수 없어[4] 수레를 지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로 아라르 전투 때처럼 우회해서 기지를 먼저 노리는 게 낫다.

난이도는 별로 어렵지 않지만 울창한 덤불이 많아 병력이 여기저기 낑길 수 있고, 컴퓨터 사양이 낮다면 엄청난 렉을 유발한다. 그래픽 퀄리티를 좀 낮추자.

7.1.4. 브리타니아

기원전 56년, 카이사르는 갈리아 점령 과정에서 브리타니아 섬과의 해상무역을 주관하던 아르모리카의 베네티족이 브리타니아의 동지들에게 카이사르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 브리타니아인들이 브리타니아에 있는 벨가이인 정착지로 탈주한 갈리아의 발가이인들과 합세하여 갈리아 본토의 저항군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55년 늦여름, 비록 군사 작전을 벌이기엔 늦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에 원정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카이사르는 2개의 군단(제7군단과 제10군단)을 태운 80척의 수송선과 한 검찰관이 지휘하는 미지수의 군함으로 함대를 구축했다.

항구에 수비대 하나를 남긴 채 카이사르는 8월 23일 한밤중에 '3차 정찰'을 나가고, 기병대가 함선으로 행진하여 승선한 후 가능한 한 빨리 자신과 합류하도록 지시했다.
4개의 세력 중 하나가 주둔지에서 시작하며, 추가로 6개의 깃발이 있다. 이 주둔지에는 뒷문이 있는데, 여기로 뒤치기를 하는 게 핵심. 분당 골드가 무려 240으로 다른 깃발의 4배 가량 되는 수치니 기지를 먹은 상태에서 E를 먹고, 산재한 세력 중 약소한 세력부터 차근차근 멸망시키면 된다.

7.1.5. 알레시아 전투

알레시아 전투는 갈리아 전쟁 중 기원전 52년 9월에 만두비족의 주요 도시이자 갈리아의 요새 도시인 알레시아에서 벌어진 공방전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대와 아르베르니족의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갈리아 부족연합군이 이 전투에서 맞붙었으며, 골족과 로마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전투이기도 하다.

알레시아는 구릉지대에 세워진 요새 도시로, 두 개의 강을 끼고 있었다. 이처럼 수비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카이사르는 포위망으로 적군이 굶주림 끝에 항복하게 만드는 작전을 택했다.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해 카이사르는 알레시아를 둘러 요새 수준의 포위 진지를 구축하라고 명령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갈리아 전역에 전령을 보내 여러 부족에게 참전을 촉구하며 알레시아로 병력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탈영병과 포로들에게서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바깥에 한 겹의 포위망을 추가로 건설했다.
2개의 깃발로 이루어진 성에 갇힌 상대 세력을 둘러싼 3개의 주둔지를 가지고 시작한다. 원래 역사처럼 수시로 베르킨게토릭스를 구원하기 위한 골족 원군이 출현하며, 골족이 점령한 주둔지가 많을 수록 더 강력한 원군이 온다. 침착하게 원군과 성에서 간간히 나오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세력을 격파하면서 업그레이드를 해서 충분히 강해졌다 싶어졌을 때 성문을 파괴하고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상대가 말라 죽기 싫어서 나오면 그때를 노려 백도어 하면 된다. 섣불리 원정을 나갔다간 D만 먹고 E에서 격렬히 저항하는 베르킨게토릭스에게 발목이 잡힌 사이 증원군으로 온 골족들이 바깥 주둔지를 전부 빼앗아버려 오히려 이쪽이 말라 죽으니 신중하게 업그레이드 할 것 다 하면서 천천히 가자.

7.2. 제 2막

카이사르의 내전의 시작. 폼페이우스군과의 전투를 다룬다.

7.2.1. 브룬디시움 공방전

기원전 49년 1월 10일, 카이사르는 제13군단을 이끌고 북쪽의 갈리아 키살피나와 남쪽의 이탈리아반도 사이의 경계인 루비콘강을 건넜다. 무장한 군대와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는 곧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간의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카이사르는 로마에 돌아오면서 당당한 개선 행렬을 보였다. 카이사르에게 단 1개 군단만 있다는 걸 몰랐던 원로원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폼페이우스를 지지했다.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수비할 수 없다며 브룬디시움으로 도망친 후 자신의 영향력으로 전쟁에 필요한 군자금과 군대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휘하의 군단을 공화국의 동부 그리스 영토에 있는 에피루스로 옮길 함선을 기다렸다.[5]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쫓아 브룬디시움까지 행진하고, 거기서 그를 붙잡으려 했다. 결국 기원전 49년 3월에 폼페이우스는 탈출에 성공하여 배를 타고 에피루스로 떠났고, 이탈리아반도는 완전히 카이사르의 손에 떨어졌다.
주둔지 없이 총 9개의 깃발에서 3개의 세력이 격돌한다. 지도를 잘 보면 구조상 ABC와 DEF, GHJ의 구성 중, C를 누르면 AB에서 나오지 못하고, F를 누르면 DE에서 나오지 못하며, J를 누르면 GH에서 나오지 못하는 구조다. 즉, C, F, J가 요충지. 이중 F에는 고저차가 있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 보초를 충분히 둔다면 상대가 쉽게 점령하지 못한다. F에서 시간낭비를 하는 세력의 본진을 쳐서 멸망시킨 다음, 남은 세력과 격돌해 한 번 제압한 뒤, 해당 세력이 점령 중인 곳의 요충지를 선점하고 그대로 말려 죽이면 된다.

7.2.2. 일레르다 전투

기원전 49년 3월, 이탈리아반도에서 옵티마테스파를 모두 내쫓은 카이사르는 히스파니아에 있는 공화국의 군세로 눈을 돌렸다. 그는 자신의 레가투스인 파비우스에게 맡겨 미리 선봉군으로 파견했던 3개의 군단을 보강하기 위해 히스파니아 키테리오르로 이동했다.

폼페이우스군은 시코리스 강 서쪽에 있는 일레르다라는 도시의 남쪽에 있는 언덕에 진을 쳤다. 파비우스가 이끄는 병력은 시코리스 강 동쪽에 있었는데, 강 위에 새로 나무다리를 건설하기로 했다. 다리가 완공된 후 파비우스는 병사들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 강둑에 진을 쳤다.

폼페이우스군이 서쪽 강둑에서 보급품이 될 만한 건 모조리 싹쓸이한 탓에 파비우스는 보급품 확보를 위해 종종 병력을 도로 강 너머로 보내곤 해야 했다. 이러한 보급 작전에서 카이사르군은 폼페이우스군과 여러 차례 교전했다.

내전 동안 벌어진 여러 다른 전투와 달리 이 전투에서는 실제 무력행사보다는 기동력이 더 중요한 요소였다.
초반에 오는 지원군과 함께 B를 점령하고 버티면서 돈을 모아 B에 수비병력을 5~6명 뽑은 뒤, 깃발 회복 오라까지 업그레이드를 하면 플레이어 없이도 B를 방어할 수 있다.[6] 이후 병력을 뽑고 배경 설명에 적힌대로 A 옆에 있는 나무 다리를 건너 남은 구역을 전부 점령한 뒤, 성의 뒷문을 부수고 좀 멀리서 기다리자. 점수가 역전되면 AI가 위기감을 느끼고 성에서 나와 다른 지역을 점령하러 가는데, 이때 재빨리 성으로 들어가 깃발을 날먹하고, 놀라서 돌아오는 적의 본대를 없앤 다음, 성 곳곳에 있는 적의 방어군을 몰살하면 끝이다. 성의 구조가 많이 복잡해서 남은 방어군을 섬멸하기 골치 아플 수 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우는 척 하면 방어군들이 도로 성을 탈환하기 위해 깃발로 모여든다. 이때 한 번에 잡으면 된다.

7.2.3. 디라키움 전투

히스파니아를 정복한 후, 카이사르는 그리스에 있는 폼페이우스에게 온전히 주의를 돌렸다. 필요한 함선의 반밖에 준비되지 않았던 카이사르는 일단 배에 태울 수 있는 7개 군단과 함께 아드리아해를 건넌 다음 배를 다시 브룬디시움으로 보내 나머지 군단을 데려오기로 했다.

그리스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군 함대의 방해로 브룬디시움에서 증원군을 데려올 수 없었다. 이 실수는 카이사르군을 최악의 상황에 부닥치게 했다. 해로가 막히면서 로마에서 보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그리스는 폼페이우스를 지지하고 카이사르에게는 문을 닫았기 때문에 현지 조달도 불가한 상태인 데다, 그의 병력은 적군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폼페이우스는 군대를 디라키움으로 옮겨 후방은 바다가 막고 전방은 언덕이 많아 수비가 용이한 위치에 자리 잡은 후 언덕에서 돌출된 바위 위에 진을 쳤다.
악명 높은 투석기 맵 중 하나. 적 기지에 있는 두 개의 투석기가 수시로 암석을 투척해 아군 병사들을 개박살낸다. 날아오는 돌덩이를 잘 피하기 위해선 병력을 너무 많이 뽑지 않는 게 중요하다. 파랑부터 차근차근 없앤 다음 C나 F 중 한 곳에 방어군을 약간 두고 반대편에서 기다렸다가, 보라가 방어군이 있는 쪽 입구로 나가면 바로 진격해 문을 부수고 깃발을 날먹하자.

7.2.4. 파르살루스 전투

디라키움 근처에서 대치 끝에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 군을 전부 퇴각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워낙 교묘한 함정을 치는 것으로 유명한 카이사르인지라 병사들에게 추격하지 말라고 명했다.

이에 카이사르는 "오늘 적군 중에 승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이가 있었더라면 그들이 승리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폼페이우스는 계속해서 카이사르의 군세에 대치할 뿐,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는 작전을 펼쳤다. 카이사르가 테살리아로 퇴각하자 폼페이우스파의 영향력 있는 원로들은 목소리를 높여 결정적인 슬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냥 포위하면서 시간을 끌어 카이사르의 군대를 굶주리게 하고 싶었던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에는 파르살루스 근처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이 승부에서 이기는 쪽이 로마시와 그 제국 전체를 차지하게 될 터였다.
4개의 기지마다 투석기가 하나씩 존재한다. 기지를 빼앗으면 투석기 역시 우리 편이 되니 기지 강탈이 주전략. 아군 기지를 빼앗기지 않게 6명 정도의 방어군을 두고 갈색을 멸망시키고 다음으로 파랑을 멸망시키면 보라만 남는다. 성문을 부숴놓고 멀리서 기다리면 결국 점수 차이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니 이때를 노려 점령하자. 시간이 많이 끌려서 남은 시간 10분이 되면 AI가 바뀌어서 바깥을 마구 순회하기 시작하는데, 이 경우 각 기지마다 수비군 2명씩을 두고 적 병력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깃발을 도로 따다가 적이 기지에 눈을 돌린 순간 몰살시키면 된다.

7.3. 제 3막

이집트-아시아 전선. 프톨레마이오스 13세파르나케스 2세의 세력과의 전투를 다룬다.

7.3.1. 알렉산드리아 공방전

파르살루스 전투가 끝난 후, 폼페이우스군의 대부분은 흩어지거나 카이사르군에 투항했다. 폼페이우스는 암피폴리스를 통해 이집트로 탈출했다가 이집트 땅을 밟자마자 옛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암살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의 조언자들이 적을 제거해주면 카이사르가 기뻐하리라 생각하고 도모한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폼페이우스의 죽음에 놀란 카이사르는 한때 동지이자 사위였던 그를 위해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후, 로마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버지에게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누이이자 공동 통치자인 클레오파트라의 사이를 중재하기로 동의했다.

카이사르는 누나인 클레오파트라의 손을 들어주었고,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조언자들은 이에 불만을 품었다. 결국 그들은 군대를 일으켜 알렉산드리아의 왕궁에 있던 카이사르를 포위했다.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카이사르는 사절을 보내 협상을 제안했으나, 프톨레마이오스는 사절을 모두 죽여 협상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한쪽 성벽에는 12명의 방어군을 두고, 다른 쪽은 6명의 방어군을 두는 대신 본인이 직접 성벽 밖에서 어그로를 끌며 버틴다. 성문 수리 속도 업그레이드와 군기 업그레이드, 군기 속성 업그레이드, 병력 제한 업그레이드를 모두 풀었다면 남은 병사들 및 백부장과 함께 백도어를 나가 뒤쪽의 깃발들을 차례차례 빼앗는다. 이때, 우선 성과 가장 가까운 깃발을 빼앗고, 중앙에 있는 깃발은 패스하며 뒤에 있는 깃발로 쭉 이동하자. 중앙에서 부활한 AI가 성에 가까운 쪽의 깃발로 향해 점령한 뒤 바로 성으로 눈을 돌리니, 이때 뒤에 있는 깃발 2개와 중앙에 있는 깃발, 그리고 성에 가까운 쪽의 깃발까지 전부 뺏어버리면 된다. 이렇게 한쪽 세력을 멸망시켰다면 그쪽의 방어군을 싹 해체하고 그만큼 병력을 더 뽑은 뒤 반대쪽 세력에도 똑같이 해주면 된다.

7.3.2. 나일 전투

기원전 48년 9월부터 기원전 47년 1월까지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4,000명의 병사와 함께 버텼다. 그동안 이집트인들은 로마군의 지원군과 보급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여 성과를 내고 있었다.

페르가뭄의 미트리다테스는 카이사르의 지원군 요청을 받고 소아시아에서부터 육로로 그를 지원하러 왔다. 1월에 나일강의 삼각주에 도착한 미트리다테스는 그를 막으려 한 이집트 군대를 물리쳤다. 지원군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에 소규모의 수비군을 남겨둔 채 서둘러 지원군을 맞으러 갔다. 그렇게 모인 약 2만 명의 연합군은 기원전 47년 2월에 나일강 전투에서 이집트군과 맞붙었다. 그리스 방식으로 무장한 이집트군 역시 비슷한 규모였다.
무난한 3자 대전. 보라를 먼저 점령하고 다른 깃발을 싹 먹은 뒤 하늘의 문을 부수고 멀리서 대기하다가 상대가 나오면 낼름 본진을 집어먹으면 된다.

7.3.3. 니코폴리스 전투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옵티마테스파를 무찌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소아시아를 거쳐 이집트로 갔다. 이때 아시아에서 제36군단을 포함해 대부분 폼페이우스의 휘하에 있다 해산한 고참병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칼비누스에게 맡겼다. 한편,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신경쓰고 로마 공화국은 내전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파르나케스가 자신의 보스포로스 왕국을 확장하여 제 아버지의 옛 폰토스 제국을 재건할 기회를 노렸다.

기원전 48년, 파르나케스는 카파도키아, 비티니아, 소아르메니아를 침략했고, 이에 칼비누스는 병력을 코마나에 집결했으니, 로마의 숙련된 병사들로 이루어진 제 36군단과 소아르메니아에서 막 징집한 신입 군단 2개가 모였다. 파르나케스군보다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칼비누스는 로마의 폰토스 점령지에서 서둘러 징집한 병사들과 합류하기 위해 폰토스를 향해 진군했다. 파르나케스는 외교적인 수단으로 칼비누스를 저지하려 했으나 이에 실패하고 소아르메니아의 니코폴리스 인근으로 후퇴했다. 칼비누스는 니코폴리스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진격하고 파르나케스의 매복군을 피한 후 병사들을 출격시켰다. 파르나케스는 도시 안으로 퇴각하여 로마군이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일 전투의 4명 버전. 언덕 지형의 고저차가 심하고 커브길도 많아 느닷없이 기습하는 적을 마주할 수 있으니 시야 확인에 주의를 기울이자. 보라와 분홍은 AI 상 큰 차이가 없으니 둘 중 아무나 멸망시키고[7] 나머지 하나도 멸망시키자. 다만 마지막 남은 세력인 하늘을 상대하는 게 다소 골치 아픈데, 깃발 간에 거리가 제법 돼서 복귀가 느렸던 다라키움이나 나일, 투석기 때문에 복귀하려다 투석기 얻어맞고 늦어지는 파르살루스 때와 달리, 깃발과 기지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며 별다른 방해요소도 없기 때문에 빈집털이를 하기 힘든 편이다. 도저히 빈집털이 각이 안 나오면 그냥 남은 시간 10분까지 기다려서 AI가 바뀌는 걸 노리자. 상대의 깃발이 없기만 하면 멸망이기에 굳이 아군 깃발을 올릴 필요 없이 상대 깃발만 내리고 바로 쫒아가서 적당히 유인해 이쪽의 기지로 끌어들이면 된다.

7.3.4. 젤라 전투

나일강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군을 격파한 카이사르는 미트리다테스 6세의 아들인 파르나케스를 상대하기 위해 이집트를 떠나 시리아, 킬리키아, 카파도키아를 거쳤다.

파르나케스는 카이사르의 레가투스인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와 그의 소규모 로마 동맹군을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격파한 참이었다. 로마군 포로와 주변의 로마인 민간인에게 잔학무도하게 굴던 파르나케스는 카이사르의 진군 소식을 듣고 사절을 보내 평화 협정을 제안했으나, 카이사르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어서 5일 동안 펼쳐진 파르나케스군과의 전투는 카이사르의 군사 경력에서 정점을 찍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완전한 승리를 안겨주어 카이사르는 로마에 있는 아만티우스에게 보내는 서찰에 그 유명한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구절을 써서 이를 기념하였다. 파르나케스는 자신의 보스포로스 왕국으로 도망쳤으나, 교전 중에 옛 부하 중 한 명에게 살해당했다.
성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필룸을 투척해 방해하는 하늘의 방어군도 골치 아프고, 맵이 하도 넓어서 남은 시간 10분까지 시간을 끌었다간 따라잡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멸망 승리 실패 선고에 가깝다. 시작 자금이 많다는 것을 이용해서 초반부터 적극 전투하며 주황을 빠르게 날려버려야 시간 내에 멸망 승리를 할 수 있다.

시작하자마자 오른쪽(G) 방향으로 이동하면 무조건 초록과 마주하는데, 성 내부에서 출발하느라 초록이 G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아군이 G를 먹은 상황이다. 그대로 초록과 맞붙어서 전멸시킨 다음 H를 무시하고 쭉 가서 B C D 순서대로 점령한다. 이때 주황은 C에서 시작해서 맵을 반시계방향으로 크게 돌고 있거나 (D E F 루트) 중간에 중앙으로 빠져서 하늘의 성을 노린다. (D K L 루트) 어느 쪽이든 주황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주황이 깃발을 먹는 족족 도로 빼앗고, 주황이 초록(전자)이나 하늘(후자)과 대판 싸우는 동안 마지막 깃발까지 빼앗아서 주황을 멸망시키면 된다.

이후로는 초록과 전면전을 해야 한다. 초록은 성에 방어군을 두느라 병력이 적기 때문에 맞붙으면 이쪽이 압도할 수 있다. 차근차근 초록의 영역을 줄여나가다가, 어느 정도 자금이 확보되면 성을 공략하고 약간의 수비병력을 둔 뒤 계속 초록을 추적한다. 우연찮게 순찰 나온 하늘과 만나 멸망하는 걸 기대할 수도 있고, 거점을 확보하겠다고 자기네 성이나 하늘의 성문을 두드리다 멸망하는 경우도 많다. 좌우지간 이렇게 압박하다 초록을 멸망시키면 남은 건 하늘 뿐이다.

하늘의 성은 1층과 2층이 나뉘어 수비병력의 화력이 분산되는 데다가, 성문 체력도 고작 1000에 불과하다. AI가 온종일 성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철통방어처럼 보일 뿐이다. 고로, 하늘이 원정을 나간 사이에 냅다 백도어를 갈기면[8]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다. 깃발 점령이 끝나고 발악하는 수비군과 황급히 돌아오는 하늘을 몰살시키면 끝. 하늘이 영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성문을 부순 뒤 살살 병력을 뒤로 물리면서 하늘을 성 밖으로 빼내 입구만 연 뒤, 얼른 2층으로 올라가 하늘이 오기도 전에 낼름 성을 집어삼키는 것도 가능하다. 컨트롤을 잘 한다면 이쪽이 훨씬 쉽고 빠르다.

7.4. 제 4막

폼페이우스 사망 이후 남은 잔당과의 전투 및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을 다룬다.

7.4.1. 탑수스 전투

폼페이우스가 죽은 후, 아직 포기하지 않고 남아 있던 옵티마테스파 잔당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다시 모였다. 소 카토와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이 저항군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그 밖의 주요 인물로는 티투스 라비에누스,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폼페이우스의 아들인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등이 있었다.

한편, 동부 지방을 평정한 카이사르는 로마에 잠깐 들렀다가 아프리카에 모인 적군을 쫓았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2월 초에 탑수스에 도착했다. 그의 함대는 미리 도착해 탑수스를 해상에서 봉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성 밖은 늪이라 지상 접근로는 두 개밖에 없었는데, 카이사르는 요새화 진지를 구축해 남쪽 접근로를 막았다. 결국 그의 적군은 진격하려면 그 진지를 뚫거나 늪을 돌아서 동쪽 접근로를 통해서 가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옵티마테스파 잔당은 카이사르의 남쪽 진지를 공격하는 대신 동쪽 접근로로 행군하는 쪽을 선택했다. 스키피오는 아프라니우스와 몇몇 병사들을 보내 카이사르군 진지의 맞은편에 배치하는 한편, 주력 부대는 동쪽 접근로로 진격시켜 카이사르군 앞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성 스케일만 커진 나일 전투. 주황>파랑 순서로 멸망시키면 끝이다. 플레이어가 시작하는 기지에는 뒷문이 있으니 파랑과 1대1 상황이 됐을 때 일부로 수비 병력을 두지 않은 채 플레이어의 기지와 파랑의 기지를 맞바꾼 뒤, 뒷문을 부수고 백도어 하는 전략이 유용하다.

7.4.2. 문다 전투

공화파는 기원전 48년에 있었던 파르살루스 전투 직후에 폼페이우스가 죽기 전까지는 폼페이우스의 지도를 따랐다. 그런데 기원전 46년 4월에 카이사르군이 탑수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군을 완전히 격파했다.

그 후, 카이사르를 대적하는 군세는 히스파니아에만 남아 있었다. 기원전 46년 봄,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에 있으며 대부분 카이사르군에 징집되었던 옛 폼페이우스군 병사들로 이루어진 2개의 군단이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아들인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노라 선포하며 카이사르가 세운 총독을 내쫓았다. 흩어졌던 폼페이우스군의 나머지 병사들도 곧 이들에게 합류했다.

결국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아들을 상대하기 위해 히스파니아로 갈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군에는 믿을 수 있는 베테랑 군단이 3개 있었지만, 히스파니아에 이미 주둔하고 있던 새로 모집한 병사들이 주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군에는 총 8개의 군단이 있는 반면, 폼페이우스군에는 13개의 군단이 있었다.

두 군대는 남부 히스파니아의 문다 평원에서 맞붙었다. 폼페이우스군은 수비에 유리한 완만한 언덕에 자리 잡았다. 폼페이우스군을 언덕 아래로 유인하는 작전이 실패한 후, 카이사르는 정면 공격을 지시했다.
F, G, H, J, K를 전부 먹은 뒤 강을 건너는 2개의 다리인 F와 K를 지키는 게 핵심. K에는 망루가 있어 수비에 더 용이하니 방어군을 두다가 적이 오면 지원하러 가고, F는 본인이 직접 병력들과 함께 막으면서 대기하자. 파랑과 주황, 그리고 초록이 건너편인 B C D E구역에서 마구 충돌하는 걸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켜보다가, 한쪽이 약해졌을 때 슬쩍 건너가 마무리만 하고 도로 다리를 지키러 돌아온다. 파랑과 주황이 모두 멸망하면 남은 건 초록 뿐. 늘 하던대로 성문 부수고 멀리서 지켜보다가 상대가 말라 죽기 싫어서 성을 나와 다른 곳을 점령하러 가면 성을 그대로 탈취하면 된다.

이론은 어려울 것 없지만 초반 자원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 병력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시작 직후 왼쪽의 다리를 건너려 하면 파랑과의 전면전이 기다리고 있어서 보통 정면의 언덕이나 오른쪽의 숲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언덕에선 초록을, 숲에선 주황을 만날 위험이 있으며, 파랑이 E를 먹고 아군의 뒤를 바짝 쫒아오면 십중팔구 전투를 피하지 못하고 말라죽게 된다. E에 수비병을 넷 정도 뽑아놓으면 파랑이 우회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이용해 E에서 파랑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왼쪽의 다리를 건너가는 게 편하다. 골드가 아깝다면 아군 군단은 E 안쪽에 대기시켜놓고 다리를 건너오는 파랑을 본인이 직접 C까지 유인해 초록과 맞부딫히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좌우지간 전투를 피하면서 무사히 다리 건너편으로 건너가 깃발 뺑뺑이를 하며 버티다가 어느 순간 건너편 5개 지형을 전부 확보하고 나머지 세력이 전부 건너편에서 투닥거리는 구성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7.4.3. 피날레

문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티투스 라비에누스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사망하면서 카이사르는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당당하게 로마에 돌아가 선출된 로마의 독재관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44년 3월 보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폼페이우스 극장의 폼페이우스 흉상 앞에서 열린 원로원 회의 중에 한 무리의 의원들에게 암살당했다. 암살자들은 카이사르에게 23회의 검상을 입혔다.

이 음모에는 최소한 60명의 의원이 가담했으며, 그 우두머리로는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있었다. 이들은 카이사르가 독재관으로 군림하면서 전례 없는 집권으로 로마 공화국을 해치는 것이 두려워 암살을 단행한 것이라 해명하고, 자신들이 한 짓을 폭군 살해라 칭하며 정당화했다.
역사 뒤집기. 원로원 내부에서 의원들의 습격을 받으며 시작한다. 공격을 피하고 필룸을 던져대며 접근을 저지하다보면 지원군이 문을 부수고 지원하러 온다. 지원군과 함께 깃발을 점령하고 나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9] 대부분의 적들은 자원을 많이 주는 원로원을 적극 노리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원로원 문 바깥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느라 공멸하고 막상 원로원 내부로 들어오는 적은 얼마 없다. 이 점을 이용해 원로원 내부에 어느 정도 방어군을 두면 제법 오래 버텨준다. 그동안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백도어를 해 보라와 노랑 중 하나를 멸망시키고, 남은 세력 또한 이어서 멸망시키자. 보라와 노랑은 닥치는대로 공격하는 AI인 반면, 초록은 다라키움 때부터 익히 봐왔던 '성벽 간수' AI기 때문에 원로원을 먹으면 원로원 근처 깃발만 적당히 먹을 뿐 세력을 크게 확장하지 않으니 초록을 고의로 살려두고 나머지 둘을 견제해야 한다.

이렇게 둘을 멸망시키고 A를 뚫은 초록만 남으면, 남은 깃발을 모조리 싹쓸이 한 뒤 도로 원로원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며 끝없는 전투를 하면 된다. 제한 시간이 아주 넉넉해서 끊임없이 꼴아박다보면 언젠가는 초록의 골드가 말라 버려 친히 브루투스의 목을 따고 원로원을 재장악해 역사를 개변시킬 수 있다.

7.5. 비 시나리오 맵

7.5.1. 산의 교차로

2025년 3월 20일, 얼리 엑세스 5주년 기념으로 출시 되었다. 원 모양으로 기지와 깃발이 번갈아 3개씩 나오고, 가운데에는 세 갈래의 샛길이 있는 커다란 산이 존재한다. 샛길은 깃발과 깃발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며, 산의 한 가운데에서 만난다. 지름길이라고 섣불리 샛길로 들어서면 적 병력을 만나 공멸할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빙 둘러가자니 너무 느린데다 적의 기지 앞을 지나야 하기에 필룸을 얻어 맞게 되는 골치 아픈 맵. 원래도 중요한 기동성이 극단적으로 중요해진다.

7.5.2. 사막 아레나

4세력이 각자 동서남북의 기지에서 시작하고, 가운데 고지 형태의 깃발이 하나 있다. 보주 전투 때와 다르게 가운데 깃발에서는 병력 모집이 안 돼서 요충지를 지켜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을 역이용해 초반에 수비 병력 좀 뽑은 뒤 백부장만 대동하고 가운데 깃발에서 다른 삼세력이 치고 받고 싸우는 걸 구경하다보면 경험치가 쑥쑥 오른다. 아낀 골드로 병력 업그레이드를 하고 문양도 속속 찍어주면 1대1로 상대 세력을 압도할 수 있게 된다. 그대로 차근차근 성을 점령해나가면 된다.

7.5.3. 콜로세움

4세력이 각자의 깃발에서 시작하며, 가운데 위치한 콜로세움 철창 안에 2개의 깃발이 있다. 시작 깃발은 점령이 아예 불가능한 특수 깃발이라 점령 승리는 불가능, 콜로세움의 본 기능대로 끝도 없이 전투를 벌이는 맵이다. 어차피 전투는 피할 수 없으니 무조건 전투 관련 문양을 올리는 게 관건.

[1] 깃발 점령 속도[2] 병사 고용 비용[3] 받는 근접 피해 감소[4] 붉은색 *표시가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5] 항구의 입구인 깃발 J가 점령되는 순간 항구에 있는 이 함선들의 돛이 펴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함선에 올라타는 도전과제가 있다.[6] 지원군의 지휘관이 죽었다면 재시작하는 게 낫다.[7] 운이 좋다면 보라나 분홍이 상대의 성문을 뚫고 전멸해서 기지를 공짜로 낼름 삼켜버릴 수도 있다.[8] 돌격(R)을 누르지 말고 이동(F) 상태로 성문에 붙자. 1층의 수비군을 무시하고 빨리 성문을 부순 뒤 올라가는게 낫다.[9] 도망간다고 냅다 튀어버리면 의원들이 카이사르 본인 대신 깃발로 모여서 점령해버리며, 이러면 해당 세력(초록, 브루투스)이 지원하러 오니 미션 실패다. 적당히 어그로를 끌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