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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5:41:15

VT신관

VT 신관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K53_fuze.jpg
1950년대의 근접신관 MK 53
1945년에 종전 직후 배포된 교육 동영상
1. 소개2. 상세
2.1. 영국에서의 개발 시작2.2. 미국에서의 개발완료와 양산2.3. 타국에서의 대응과 실패
3. 사용4. 계승5. 여담6. 미디어에 등장

1. 소개

제2차 세계 대전미군이 사용한 근접신관. 주로 대구경 대공포의 포탄용 신관으로 썼다.

2차 대전 기간 중 해군용으론 3인치 (76mm), 5인치 (127mm), 6인치 (152mm), 육군용으로는 90mm, 120mm(대공용)와 105mm, 155mm(대지상 공중 폭발용) 등이 개발되었다. 이 중 해군용 6인치는 양용포로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으나 아직 6인치 양용포 개발을 완료하지 못해서 기존의 경순양함이 쓰던 3연장 포탑을 사용한 사격에서는 실제로 대공 사격에 쓰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 주로 대함/대지 공격용으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생산된 6인치 VT 신관의 양도 많지 않다.

대함/대지 공격시엔 노출된 적의 인원과 비장갑 시설을 파편으로 파괴하는 것보다 함선의 철제 장갑과 구조물, 단단한 지상의 벙커 등 시설물에 직격탄을 꽂아 넣어 파괴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2차 대전 종전 후에 6인치 2연장 양용포탑을 장비한 우스터급 경순양함이 배치되고 나서였고, 얼마 안가 대공 미사일의 시대가 열리는 바람에 조기 퇴역하였으나, 이러한 VT 신관의 기술은 시대의 발전과 흐름에 따라 등장한 로켓미사일에 사용되는 각종 신관의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2. 상세

VT라는 명칭은 Variable Time, 가변 시한 신관의 줄임말[1] 으로, Ian Hogg의 저서 『British and American Artillery of World War Two』에 의해 탄약국의 V섹션에서 개발한 코드네임 T의 신관이라고 잘못 알려졌다.[2]

작동원리는 주변으로 전파를 방사하다가 전파가 되돌아오면 작동한다. 전파가 되돌아 왔다는 것은 주변에 무언가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어 되돌아왔다는 뜻이며, 즉 주변에 무언가 물체가 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전투기에 반사된 전파는 도플러 효과로 인해 주파수가 늘어나는 것인 청색편이를 이용해서 주파수 차이가 발생한 전파의 세기가 회로로 규정된 것을 넘어갈 경우 기폭된다. 청색편이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하면 포탄이 전투기를 향하고 있을 경우, 포탄 신관과 전투기 사이의 거리가 계속 가까워지면서 청색편이가 발생하는 것을 노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원시적인 레이더라고 보면 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신관 껍데기 자체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매우 단순한 구조다. 문제는 그 당시에 그리도 비쌌던 첨단 부품인 진공관을 포탄 하나하나에 다 집어넣었다는 점. 21세기로 치면 포탄 한발 한발에 값비싼 군사용 CPU를 넣은 것과 같다. 현대의 미군은 지금도 비슷하게 첨단 부품이 잔뜩 들어가는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있다.

2.1. 영국에서의 개발 시작

1939년에 방공망을 강화하려던 영국에서 개발이 시작 되었으며, 에드워드 S 샤이어와 F.H. 톰슨에 의하여 기본 개념이 고안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제품이 1940년에 기구를 목표로 한 발사시험에 성공하였으나 이는 일반 포에서 실험한게 아닌 일종의 대공로켓인 7인치 무회전 대공 로켓에서 실험한 것이었다. 이 로켓은 영국 해군에서 잠시 쓰였으나 효과도 없고 신뢰성이 영 좋치 않은지라 1941년에 보포스 40mm 포로 대체된다.

당시 영국은 VT신관이 적용된 포탄을 일반 대공포에 넣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진공관이 포탄의 원심력과 발사시의 충격에 견디지 못하는 문제점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화포의 특성상 발사시 장약이 순간연소되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하고 그 압력으로 포탄을 날려보내기 때문인 점차적으로 가속되는 로켓과는 달리 발포 순간 20,000G라는 엄청난 가속도가 발사체에 가해진다. 덤으로 강선의 영향도 작용하기 때문에 포탄의 탄도 안정을 위해서 30,000rpm 에 달하는 회전까지 더해진다. 일반적인 진공관은 100G도 못버티니 당연하게도 깨진다.

여기에 더해서 포탄의 신관이라는 좁은 곳에 발신기 겸 도플러 효과 담당의 진공관 1개와 신호증폭용의 진공관 2개와 증폭한 신호를 받아서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판단되면 기폭회로를 작동시키는 사이러트론(Thyratron) 1개를 포함한 진공관 4개가 들어가야 한다. 소형이면서 충격에 강한 진공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소형화된 진공관을 미국 회사가 보청기용으로 개발했단 이야기를 듣고 주문했다가 미국에게 이를 들켜서 미국에게 과학 기술 협력 임무(티저드 계획)를 통해 미국한테 VT신관 설계도를 넘기고 미국은 이를 받아서 자국의 공학기술을 이용해 개발에 성공하고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공관도 더 작은 소형이 필요해서 서브 미니어쳐 진공관이 개발되고 대량생산된다.

2.2. 미국에서의 개발완료와 양산

개발에 B-29, 맨해튼 계획에 필적하는 자금이 투입되었다. B-29에 30억 달러, 맨해튼 계획에 20억 달러, VT신관은 10억 달러였으니 엄청난 금액이었으며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도 생산단가가 매우 비쌌다. 이는 개발 과정에 진공관의 크기를 줄이고 내구성을 대폭 늘리는, 요즘 식으로 비유하면 연산 소자를 새로운 공정으로 개량하는 단계가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말한 진공관의 경우에도 외부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씌우고 케이스와 진공관 사이에 특수한 왁스와 오일을 충전하는 등의 노력을 추가해서 포탄 발사시의 고압력과 고회전에 진공관과 회로가 버틸 수 있도록 개량하였다.

이리하여 1942년도 기준으로 한발당 가격이 732달러로 당시 자동차 한 대값. 현재 가치로는 9347.54달러다. 그러나 이후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1945년도 기준으로는 18달러, 현재 가치로 약 221.13달러까지 내려갔다. 어느 정도나 대량생산에 들어갔는가 하면 1944년까지 미국 전자산업의 상당부분이 신관 제작에 집중할 정도였고 조달 계약도 1942년 6천만 달러, 1943년 2억 달러, 1944년 3억 달러, 1945년 4억 5천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를 통해서 2200만개의 VT신관을 얻을 수 있었으며 대량생산으로 가격도 싸진 것이다. 여담으로 2차대전기 미혼 + 자녀 없는 미군 이병의 수당을 제외한 순수 월급이 54 달러 가량이었다. 즉 초창기에는 이병 연봉보다 비쌌다. 그야말로 미군만이 가능한 미군 전통(...)의 돈지랄 중 하나.

원래는 적이 불발탄을 노획해서 카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상전이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만 사용되었으나, 이후 일본과 독일 모두 이것을 실용화할만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된 이후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상전에서는 벌지 전투부터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또한 가격 외에도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로선 첨단 기술이 적용되어서, 외부 환경에 민감한 나머지 기존 신관에 비해 신뢰성이 약간 떨어졌다. 그 외에도 실전에서 대량사용되면서 사소한 문제점들이 나와서 현장에서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많은 문제들로 인해서 미국 해군에서는 VT신관의 정상작동률의 범위를 65% ~90%로 넓게 잡았고 불량 신관은 작동률 50% 이하일 때만 적용했다. 정상작동률의 범위를 넓게 잡은 이유는 최첨단 제품인지라 양질품의 범위를 적게 잡으면 충분한 수량 확보가 곤란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 많이 사용해본 결과 50% 수준의 작동률을 발휘하는 VT신관이 100% 작동률을 자랑하는 시한신관보다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도 이유였다. 대공포탄에는 VT신관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시한신관도 들어가니 VT신관이 작동 안해도 일반적인 시한신관을 쓴 대공포탄으로 여전히 작동가능한데다가 VT신관을 쓴 포탄끼리 탄도가 너무 가깝게 접근하다가 서로 적이라고 탐지하고 둘다 허공에서 유폭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미국이 VT신관 대량생산시 품질관리를 느슨하게 한 것이 아니다. 1945년 7월경에 신관이 작동하지 않는 불량 로트 생산품 문제가 발각되었다. 미국 해군은 모든 함정의 VT신관을 수송기로 긴급공수한 다른 로트 생산품으로 긴급교환하기로 결정했다. 불량의 원인은 발화용 콘덴서의 밀봉재가 고온 다습한 함선의 창고에서 열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품 로트를 조사하면서 조사대상을 확대한 결과 특정 공장에서 납품된 콘덴서에 문제가 있었다. 사전에 허가된 정식 밀봉재가 작업자의 손에 상처를 내서 해당 공장이 무단으로 다른 소재로 변경하고 있던 것이 판명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는 콘덴서는 생산 로트마다 고온 다습한 환경의 가속 시험을 통과하도록 품질기준을 더 강화한다.

2.3. 타국에서의 대응과 실패

나치 독일은 1930년대 부터 VT신관 비슷한 물건들을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오히려 영국과 미국보다 개념적으로는 앞서 있었다. 항공기 엔진음향이나 라디오, 정전기라든지 35가지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들고 있었다. 아직 1930년대라 진공관 소형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무진장 깨먹으면서 고생한 끝에 오히려 영국과 미국보다 빠른 1939년에 영국과 미국의 당대 물건과 비슷한 저압력을 버티는 수준의 신관은 만들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영국에게 설계도가 노출된 것[3]과 단가가 장난 아니라는것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물로는 항공기에서 발사하는 유도폭탄의 신관으로 kakadu같은 근접신관을 채용했었다. 다만 항공기에서 발사하는 유도폭탄 자체의 수량도 매우 적었다는 것이 문제 였을 뿐더러 유도폭탄을 탑재한 항공기가 적 근처에 접근하는 것도 힘들어서 전황에 별 도움이 안되었다.

나중에서야 불발탄이나 노획품 등을 통해서 영국과 미국이 잘만 쓰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필요성도 인식해서 다시 만들어서 폭격기 요격에 써먹을려 했지만 그때가 1944년. 폭격에 생산시설과 자금이 박살나고 있었던 나치 독일이 패망을 향해 가고 있던 시기라 결국 실용화와 대량양산에 실패하였다.

일본 제국 역시 유안신관이라는 시한신관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빛반사를 이용한 방식인데, 막상 만들고 보니 답이 안 나오는 가격 탓에 생산 같은 건 무리리고 판단해서 포기했다. 미국처럼 전파를 이용한 근접신관은 미국이 VT신관을 사용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한 관계로 연구가 초기단계에서 머무른 채 패전으로 종료된다.

그러나 두 국가 모두 폭탄용의 100G ~ 200G 정도의 근접신관은 개발에 성공했으나 미국처럼 대공포 포탄용으로 20000G의 고압력과 30000rpm의 회전을 버티는 근접신관은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다.

3. 사용

2차대전 중에는 주로 대공포탄에 많이 쓰였다. 미사일이 없던 2차대전 당시에는 먼 거리의 항공기를 공격하기 위해 대구경 대공포를 쏘아서 '대충 적 항공기 근처에서 터지도록' 시간을 세팅하여 발사했으므로 항공기가 비행코스를 바꾸면 속수무책이다. 측정하고 감 잡아서 신관 조작해 장전하고 쏘는 사이에 슬쩍 코스 바꾸면... 반면 VT신관은 세팅할 게 없으니 그냥 빨리 쏘기만 하면 됐다. 더 많은 사격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대부분 구축함급에도 주력함과 마찬가지로 주포탑 자동제어시스템을 갖추어 반응시간을 더 줄였다.

그러나 이 VT 신관은 이보다 더 정확하게, 대충 근방에 적 항공기가 있다면 알아서 터진 덕에 명중률이 훨씬 좋았다. 기존의 시한식 대공포탄에 비해서 대충 3배 정도의 명중률 향상을 보였던 모양이다. 전에는 통계상 1천발 쏴서 1기 격추하던 게 100발 쏴서 1기 격추였다고. 다만 레이더와 FCS를 도입한 이후의 대공화기 명중률 상승이 약 100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초보적인 VT신관은 대공화력망 강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다.

VT신관의 최초의 실전은 과달카날 전투 당시 문다 비행장을 포격하고 귀환하는 67기동부대가 사용 한 것이다. 과달카날 근방에 도착했을 때 4기의 99식 함상폭격기의 공격을 받았고 경순양함 헬레나의 대공사격에 1기가 격추되었다. 다만 생산량이 딸렸던 초기에는 전선에 투입되는 양이 적어 그리 많은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던 모양. 일본군의 항공기들이 말 그대로 작살 나버린 필리핀 해 해전 당시도 미군의 전투기들이 무쌍을 찍어버린 탓에 정작 격추된 일본의 항공기 378기 중 대공포화에 격추된 수는 19기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군이 가장 경계하던 대공무기는 VT신관이 아닌 보포스 40mm 포. 실제로 미군이 운용한 대공무기 중 일본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것도 이거다.[4]

결국 VT신관이 본격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 말기에 들어 일본군이 카미카제 특공대를 운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시 기술로는 아무리 VT신관을 소형화해도 기관포탄 신관에 탑재가 불가능한 보포스 40mm 포가 한계점을 드러내면서 이후의 대공포 발전은 최소한 3인치 (76mm) 이상의 구경을 가진 대구경 대공포가 선택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M51 스카이스위퍼다.

이 외에도 VT신관은 독일의 V1을 요격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였으며, 야포탄이나 항공폭탄에 적용하여 포탄이 땅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터지도록 해서 도로나 시설물에 손상을 주지 않고 사람만 제거하는데도 쓰였다. 이런 경우에는 지면에 전파가 반사되어 포탄으로 돌아가므로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한, 공중에서 터지는 VT신관의 출현은 포탄 한발로 사상할수 있는 인원을 더 높혀주었고, 일반적인 포탄의 경우처럼 포복해 버리면 파편들이 위로 지나가서 살상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공중에서 폭발해서 파편을 사방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극복해서 인마 살상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공중에서 폭발해서 플레쉐트를 뿌리는 포탄등의 모태가 되었다. 공중폭발(Airburst)의 개념이 이미 이 때부터 응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https://youtu.be/wDiCFMcDiIo?si=PgQoqjYlqT09Hix2
폭격기에서 VT 신관을 응용한 공중폭발탄으로 대공포대를 제압한 사례

한국전쟁 당시에도 심심찮게 쓰였다. 특히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에선 중공군 상대로 상당한 효과를 냈다고.

4. 계승

현대에도 유사한 포탄이 사용되고 있으며 미사일에도 적용하는 근접신관이 이것의 발전형. 대공사격 뿐 아니라 포탄이 지면과의 거리를 측정해 공중에서 폭발하여 넓은 범위에 파편을 흩뿌리는 용도로도 애용되지만, 그 거리를 오인시키는 전파교란기술도 존재한다. 한참 위에서 폭발해버릴 위험도 있다는 뜻. 대공포에서도 마찬가지라 K-21 보병전투차에도 채용된 3P 포탄은 포탑에서 레이더와 레이저로 목표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포탄이 발사되어 포신을 지나가는 와중에 폭발거리를 입력하는 시한신관 방식이다.

대공 미사일에도 널리 사용되지만 상술한 것처럼 전파는 교란당하기도 쉽고 대기현상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레이저를 사방으로 쏘아 반사광을 측정하는 센서도 개발되었다. 한국에서는 천마 지대공미사일에 처음 채용되었다.

5. 여담

이 신관의 전과 중에서는 6.25 전쟁 당시 아군 오폭도 있다. 바로 김영옥 미 육군 보병 소령과 그 부대를 "너무 북진해서 적인 줄 알았다."며 포격한 미 육군 포병대가 쏜 탄이다. 이 일로 김영옥 소령은 중상을 입고 한국전쟁 전선에서 잠시동안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급에서 누락되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서 생산되는 VT신관이 독일로 노출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VT신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여공이 나치즘 신봉자였고 영국에 잠복해 있었던 게슈타포 요원에게 접근해서 VT신관을 독일로 빼돌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금방 영국 경찰에게 발각되어 둘이 체포 당하게 되는데 사실 그 여성이 접근한 게슈타포 요원은 위장한 MI5 요원이였다고 한다.

자신의 위장신분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같이 체포되는 연기는 이 MI5 요원이 처음 제안한 것이라고 하며, 훗날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모티브가 된다. 이 MI5요원의 이름은 에릭 로버츠로 일명 '잭 킹'이라고 불렀던 사람이다. 게슈타포로 위장해 영국내의 나치 협조자나 스파이를 잡아내는 일을 했으며 1940년대부터 1942년까지 수백명의 나치 동조자를 적발했다고 한다. 이 나치 동조자들은 저마다 VT신관 뿐만아니라 영국의 제트기계획이나 수륙양용 전차계획 등 각종 군사기밀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만일 VT신관을 실제로 독일로 빼돌렸다 하더라도 아직 대공포의 포탄으로 사용하기가 불가능한 초기형이였던데다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산능력 때문에, 열심히 총과 전차 만들어서 싸우기도 힘들던 독일이 비싼 VT신관을 양산해서 재미를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정도의 저압력인 100G ~ 200G 수준만 버티는 근접신관은 이미 독일이 개발에 성공한 뒤였다.

1940년대 중반에는 방위 산업체에서 일하던 소련 스파이인 줄리어스 로젠버그(Julius Rosenberg)가 제대로 작동하는 근접신관을 훔쳐서 소련 정보부에 제공하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공포 포탄용 VT신관은 아니었다.

6. 미디어에 등장

전함소녀에서 래피를 개조하면 얻을 수 있다. 명중+5 대공+5 대공보정+80%로 매우 좋은 대공장비다.

워 썬더에서 함포가 장착된 미국 군함의 언락 포탄으로 등장하며, 다른 국가들도 전후 함선의 포탄으로 써볼 수 있다. 적당히 회피기동을 하면 피해지는 타국의 시한신관과 달리, 화망에 걸려들면 비행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절륜한 성능 탓에 미국 대형함이 뜨면 그 일대는 비행금지구역이 된다. 지상 장비 중에서는 M247, VEAK 40, CV90 시리즈 등이 근접신관 고폭탄이 있는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으며, 전차 중에서는 75식 자주포, M1A2 등이 근접신관 날대탄/고폭탄을 가지고 있다. 해상전과 마찬가지로 항공기를 잡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1] 『U.S. Navy Bureau of Ordnance in World War II』; Lt.Cmdr. Buford Rowland, Lt. William B. Boyd p. 279[2] navweaps.com-《Proximity Fuze - What does "VT" Mean?》; Tony DiGiulian[3] 오슬로 보고서 사건으로 한스 페르디난드 메이어라는 독일 수학자의 의해 독일 군사기밀이 대거 누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위에 판단도 이 보고서로 인한 판단.[4] 다른 기록에 따르면 20mm 오리콘 기관포가 숫자로는 가장 많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