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00:02:34

僕の中の少年

1. 개요2. 상세3. 수록곡
3.1. SIDE A3.2. SIDE B

1. 개요

파일:僕の中の少年.jpg

LP, CD : 1988년 10월 19일 발매.[1]

야마시타 타츠로의 통산 9번째 스튜디오 앨범.

2. 상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레코딩 장비의 변화에 대한 대응은 전작 POCKET MUSIC 완성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과제였다. 디지털로 바뀌어감에 따라 녹음 해상도가 급격히 향상됐기 때문에, 아날로그 마스터테이프 녹음을 두고 구축해온 방법론이 전혀 통용되지 않았고, 앞으로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한번은 디지털녹음을 내버려두고 아날로그 녹음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날로그 16트랙의 멀티트랙 레코더를 스튜디오에 들이고, 몇몇 곡에서는 레코딩에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컨템포러리한 음악을 제작했을 때, 그 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최신 기술로 제작한다는 야마시타 자신의 신조와 상반되어서, 완전히 아날로그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 때, 마스터링 레코더로 사용하던 SONY의 PCM-1610이 PCM-1630으로 업그레이드되어서 음질이 향상되었다. 이로인해, 야마시타가 느끼던 디지털 레코딩에서의 위화감이 상당 부분 해소되어, 야마시타는 아날로그로 녹음하던 곡들을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여 다시 레코딩하여 본작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개고생한 작품이 된 배경에는 음악 제작뿐만 아닌, 앨범의 제작 방침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REQUEST[2]는 이상하게 작가주의적 앨범이어서, 그런 스타일은 즐기면서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만들기 쉽다. 그래도, POCKET MUSIC과 이 앨범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랄까 사상적인 부분을 퍼뜨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만큼 고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POCKET MUSIC에서 싱어송라이터스럽다고 할까, 내성적인 방향으로 간 거 같지만, 악곡 주체의 작가적인 앨범이 훨씬 만들기 쉽다. 그래서 앨범 편곡에는 헤드 어레인지[3]가 많아서 뮤지션의 연주에 의존한 부분도 상당히 많아. 하지만, 내 앨범의 경우에는 내 나름의 편곡 의도가 있었는데, 거기서 내가 가진 느낌을 내려고 했으니, 사운드메이킹에 미묘한 뉘앙스가 요구됐어. 근데, 그런 뉘앙스가 디지털 레코딩으로 바뀌니 어째 잘 안 나와버리더라고.' 라고 회상한다.

앨범 타이틀이었던 '僕の中の少年(내 안의 소년)'은 딱 첫째 딸이 태어날 즈음에 만들어진 곡이어서, '레코딩 전부터 타이틀로 정해진 건 이 앨범과 POCKET MUSIC 정도.'라고 앨범제작 구상단계에서 이미 이 테마와 타이틀로 가기로 정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아이의 탄생은 개인적인 요소로서 매우 컸고, 그런 의미에서도 '싱어송라이터에 의한 컨셉 앨범같은 작품.'이라며, '내가 이런 컨셉 앨범을 만들 때, 항상 기억하고 있던 건, 리차드 해리스의 A Tramp Shining과, 무디 블루스의 Days of Future Passed같은 거야. 나는 그런 앨범을 항상 달고 살았기 때문에 컨셉 앨범이란거에 대한 로망을 갖고있어. 일본에서는 안먹히지만서도.' 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본인의 제작의도와는 반대로 당시 스태프들은 '여름이다, 바다다, 타츠로다~'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원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았다. 30대 중반을 맞이한 시기에, 스태프가 강하게 밀어붙인 선행 싱글 '踊ろよ、フィッシュ'의 부진, 그리고 스태프로부터 '슬슬 한물 가려고 하니, 리스크가 있다.'고 말한 'ゲット・バック・イン・ラブ'의 히트. 그리고, 내 자신 안의 어른과 아이, 그리고 여러가지가 섞여 이 앨범에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주위로부터 인기도 한물 갔다고 느꼈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이럴 때 이런 앨범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체면치레나 하면 돼.'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의 야마시타는 컨디션이나 인간관계, 뮤지션 초이스 등, 이 앨범을 발매한 후 라이브 투어인 PERFORMANCE 88-89때에는 연주에 항상 불만족스러웠고, 슈가 베이브 이후로 예민한 정신상태에서 투어 일정을 소화했는데, 아예 녹초가 되어버렸다고 회상한다. '앞으로는 조금 더 쉬지 않으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ARTISAN[4] 에서 컨셉을 바꿔, 좀 더 작가주의, 악곡주의로 가자'며, 당시의 장비 및 성능문제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에서 고생도 적잖았지만, 작품 자체의 불만은 없다며, '이제는 너무 성숙해졌고, 이런 앨범은 두 번 다시 못 만들거야.'라고 언급한다. '또 생각이 드는건, 히트만을 노려서 만든 음악은 결국엔 안되잖아. 히트 차트에 대한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물음표랄까, 단순히 소비되는 거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국에는 안된다는 사실을 10년 후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라고 새삼스레 깨달았다고 한다.

본 앨범은 FOR YOU에 비교하면 인지도는 낮지만, 팬클럽에서 좋아하는 앨범의 앙케이트 1위를 차지해, 특히 앨범 발매당시의 20대 초반이었던 팬들의 지지도가 높다고 한다.

3. 수록곡

3.1. SIDE A

3.2. SIDE B


[1] 이후 CD는 91년에 다시한번 리마스터링되어 발매되었으며, 2020년 11월 25일 POCKET MUSIC 앨범과 함께 리마스터링되어 LP는 2LP 180g 중량반 사양으로, CD와 같이 재발매되었다.[2] 그녀의 7번째 정규앨범이다.[3] 뮤지션들 사이의 간단한 구두타협으로만 이루어진 편곡.[4] 이 앨범의 후속작이다. POCKET MUSIC 앨범부터, 이 앨범과 ARTISAN까지 해서 컨셉 앨범 3부작으로 구분된다.[5] '도쿄 랩소디'라는 제목의 곡 자체가 원래는, 후지야마 이치로 (藤山一郎)라는 가수가 1936년에 발매한 싱글이다.[6] 참고로 일본의 저작권법은 1970년 (쇼와 45년)에 제정되었다.[7] 일본 알엔비의 대부로 불리며, '마티니'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시종일관 선글래스를 쓰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8] 걍 뺀찌먹었단 이야기.[9] Persuasions. 60년대 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아카펠라 그룹.[10] 국내에서는 '잃어버린 전주곡'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11] 원문에서는 'Hobo Song'이라고 적혀 있는데, 호보란, 미국의 19세기~20세기 초 불경기 시절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일하던 철새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12] 2016년 용과 같이 6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였는데, 용과 같이 시리즈의 메인 프로듀서인 나고시 토시히로 프로듀서의 인터뷰에 의하면, 과거에도 야마시타의 곡을 쓰려고 부탁해봤으나 거절당했다가 용과 같이 6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OK를 받아냈다고 한다. 애초에 노래의 제작배경을 생각해보면, 야쿠자 게임과 쉽게 어울릴 수가 없다.[13] The Rascals. 미국의 블루아이드소울 그룹. 65년부터 72년까지 활동했다.[14] Curtis Mayfield. 1942~1999. 미국의 레전드 소울 뮤지션, 그의 히트곡 중 Move On Up의 경우는 저스트 블레이즈에 의해 칸예 웨스트의 Touch The Sky로 샘플링되었다. 이 외에도 Superfly같은 커티스의 히트곡들이 후대 힙합 뮤지션들에 의해 샘플링으로 자주 쓰였다.[15] 사전적 의미로는 제주, 제창으로서 같은 높이의 음을 옥타브에 상관없이 다중으로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16] 당연하겠지만, 사잔 올 스타즈쿠와타 케이스케와 하라 유코 부부를 이야기하는 것.[17] 뮤지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야마시타 타츠로는 떼창문화에 상당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