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강병철이 현역 감독 시절 중용했던 선수를 일컫는 말. 후술하겠지만 좀 더 정확히는 2007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성적이 막장인데도 꿋꿋하게 기용했던 선수들을 까는 표현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비하적 의미보다는 중립적 의미로 변화되어 이어지고 있다. 중용했던 선수들 중 대다수가 포텐을 터뜨렸기 때문.2. 역사
강병철 감독의 커리어가 긴 만큼 양아들 소리를 들을법한 선수가 2007년의 롯데 자이언츠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1980~90년대 강병철이 지휘하던 시절 롯데의 젊은 선수들은 물론이고, 한화 이글스나 SK 와이번스 감독직을 역임하던 시절에도 유별나게 중용하던 선수들은 있었다. 특히 1996 시즌에는 송지만, 이영우, 임수민 등 신인들이 대거 파격적인 출전 기회를 얻었을 정도. 그해에는 한화의 성적도 좋아서 성공적인 리빌딩의 선례로 평가받고 있다. 아래 명단에 있는 선수들이 대표적. 롯데에서 중용한 영건들은 두 차례 우승의 밑거름이 되었고, 한화와 SK에서 중용한 선수들 역시나 적잖은 선수들이 장기적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하지만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시기는 2006~2007년 롯데 감독직을 역임하던 시절. 당시 강병철 감독은 강영식, 김주찬, 이인구, 이원석, 강민호, 이승화 등 젊은 선수들에게 꾸준히 1군 기회를 부여했는데, 대부분이 매번 찬스에선 찬물을, 수비에선 실책을, 위기 때는 방화를 저지르는 등, 롯데 팬들의 복장을 뒤엎어버리는 선수들로 강병철 감독은 엄청난 비난을 들으면서도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했던 탓에 '강영식(?)', '강주찬', '강인구'등 강병철의 양아들이라는 식의 호칭이 붙었다. 강민호는 아예 성씨도 같다 보니 강병철의 친아들, 내지는 친척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강병철 감독이 이 선수들을 중용한 이유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의욕적이고 성실했으며, 무엇보다도 확실한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강 감독은 이들 외에도 서정호, 김문호, 손용석 등 롯데의 젊은 야수들은 전부다 몇번씩 기회를 부여하며 테스트를 했지만, 본인의 자질이나 성실성에 문제를 보인 이들은 떨어져 나가고 중용된게 위에 나온 양아들들이었다. 가히
그러나 프로는 실력, 더 정확히 말하면 결과로 말하는 법이다. 물론 양준혁, 이종범, 염종석, 김재현, 박재홍, 류현진, 이정후, 강백호처럼 데뷔와 함께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선수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예외적인 사례일 뿐 대개의 경우 젊은 선수 하나 키우는 데는 몇 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리고 당시 한창 비밀번호를 찍고 있던 롯데는 이러한 유망주들이 성장할 여유를 더 주기 어려웠고, 팬들과 프런트 모두 2007년을 끝으로 강병철 감독과의 이별을 선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병철 감독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유망주만 선호해서 성적을 망친 감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나, 2008년에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뒤 평가가 180도 뒤집혔다. 강병철이 기회를 계속 부여했던 '유망주'들의 이후 결과를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강민호: 장타력이 뛰어난 공격형 포수로 성장하며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이만수-박경완을 잇는 역대급 포수로 발돋움했고, 2022년에 KBO 통산 300홈런을 돌파하며 만 37세인 2023년에도 팀 타선을 멱살잡고 이끄는 레전드가 되었다. 클래식 스탯으로는 잘 알아보기 힘들지만, wRC+로 봤을 때 강민호는 2005년에 54에 불과했으나 강병철 감독이 부임하고 2006년에는 89, 2007년에는 105를 넘기며 이미 리그 평균 이상의 생산성을 가지는 타자로 변모했다. 각성한 2008년에는 무려 wRC+ 135를 찍고 19홈런을 때리며 당당히 롯데의 중심타선이 되었고, 커리어하이인 2015년에는 무려 wRC+ 165를 찍고 포수로 35홈런을 때려내며 OPS가 10할을 넘기는 등, 10년전의 강민호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대기록을 써내려갔다.
- 강영식: 투수조련사 선동열조차 포기했다는 오명을 씻으면서 상시에 랜디영식 모드가 되었으며, 각성한 2008년부터는 롯데가 사상 처음 가져보는 필승계투진의 주축 멤버가 되었다.
- 김주찬: 2007년에는 wRC+ 70 중반대에 불과한 그냥 발만 빠른 교타자에 불과했으나, 2008 시즌 초반의 롯데 돌풍에 있어서 부상으로 한달간 빠지기 전까지 큰 역할을 했다가 후반기에 다시 큰 활약을 하면서 돌풍의 주역이 되었으며, 처음으로 규정타석 3할을 찍고 wRC+ 108을 기록하는 등 공격력에 있어 큰 발전을 보여주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115가까이를 찍으며 더욱 발전된 타격을 보여주었고, 이후 기아 타이거즈로 이적한 후에는 120~135 정도를 찍을 정도로 준수한 공격력을 보여주는 선수로 더 스텝업했으며, 2020년까지 통산 타율 3할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아름답게 은퇴했다.
- 이인구: 기자들이 경직된 롯데 1군과 2군의 유동성을 말할때 반드시 언급될 정도로 2군에서 상당한 성적을 보여주다가, 2008년 정수근의 이탈로 삐걱거릴 뻔 한 롯데를 위기에서 구해내며 준플레이오프 까지 뛰어난 테이블 세터 로서 크게 활약했다. 다음 해인 2009년에는 훨씬 많은 95경기에 출장하며 작년보다 타격성적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1군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원석(1986): 로이스터 감독의 이대호 3루수 고정으로 출전 기회가 없었으나, 2009년 두산 베어스로 가서 잠재력을 터뜨렸고, 보상선수 최초의 FA라는 기록을 남기며 삼성으로 이적하더니 장타력까지 터지며 늦은 전성기를 누렸다.
결과적으로, 강병철 감독의 양아들들, 특히 2006~2007년에 자주 애용했던 선수들은 2008시즌 후반의 로이스터 매직, 나아가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5년 연속 PS 진출의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임팩트가 짧게 끝난 선수도 있었지만, 상당한 선수들이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일부는 롱런, 일부는 팀 레전드, 일부는 KBO 레전드급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강병철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자신이 감독일 때 활약을 못해줬을뿐이지.
2017 시즌 종료 후 강영식과 이우민이 은퇴하고 강민호는 삼성으로 떠나면서 강병철의 양아들들은 모두 롯데를 떠났으며, 2023시즌 기준 남아있는 현역 선수는 강민호와 이원석 두 명 뿐이다.
3. 여담
이로부터 시작된 양아들이란 표현은 이후 야구계에서 성적이 썩 좋지 않은데 감독이 총애하여 주전으로 붙잡고 사용하는 선수를 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강병철의 양아들과의 차이점이라면, 강병철의 양아들은 진짜로 젊은 유망주들이지만, 현재 사용되는 양아들 표현은 나이에 무관하게 감독이 주전으로 박고 철밥통으로 쓰면 다 양아들이라고 부른다.일본 모 팀의 감독은 강병철이 16년간 써 온 양아들의 2/3 수준을 1시즌 + 1개월 동안 양아들로 키우고 있다(...). 그래도 이쪽은 구단이 처음부터 3년 계약을 해주고 리빌딩할 시간을 준 덕분에 첫 2년간 그렇게 욕을 먹었지만 3년차인 2020년에 기어코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축구계에도 김호의 아이들이라는 유사 사례가 존재한다.
4. 강병철의 양아들 목록
보통 양아들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크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만, 강병철 감독은 그의 양아들 소리를 듣던 선수들이 나중에 팀전드나 크보전드급의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한 경우가 다른 감독들에 비해서도 유독 많은 편이다. 실제로 볼드체로 표시된 선수들을 보면 하나같이 준수한 기록을 남겼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성구회 멤버가 2명이다! 때문에 강병철 감독은 현역 시절에는 "단기전 승부사"[1]로 평가받았지만, 감독 커리어가 끝난 현 시점에서는 "야수 리빌딩 전문가"로 평가되고 있다.팀 | 재임기간 | 선수 | 포지션 | 통산 성적 | 골든글러브 |
1984년 ~ 1986년 | 정영기 | IF | 744경기 .240 472안타 8홈런 162타점 172득점 25도루 | ||
조성옥 | OF | 917경기 .248 532안타 5홈런 211타점 227득점 38도루 | |||
한문연 | C | 663경기 .256 381안타 14홈런 163타점 119득점 8도루 | |||
1991년 ~ 1993년 | 강성우 | C | 1,787경기 .228 407안타 6홈런 167타점 130득점 9도루 | ||
김민재 | IF | 2,111경기 .247 1,503안타 71홈런 607타점 696득점 174도루 | |||
김태석 | P | 250경기 735이닝 35승 47패 3세이브 1홀드 4.63 328K | |||
김태형 | P | 161경기 379이닝 21승 22패 5세이브 4.49 199K | |||
박계원 | IF | 717경기 .242 439안타 19홈런 212타점 224득점 55도루 | 1992 유격수 부문 | ||
박정태 | IF | 1,167경기 .296 1,141안타 85홈런 638타점 531득점 22도루 | 1991, 92, 96, 98, 99 2루수 부문 | ||
이종운 | OF | 739경기 .272 580안타 9홈런 212타점 258득점 98도루 | |||
윤형배 | P | 163경기 510이닝 29승 27패 7세이브 4.08 169K | |||
전준호 | OF | 2,091경기 .291 2,018안타 42홈런 577타점 1,171득점 549도루 | 1993, 95, 98 외야수 부문 | ||
2006년 ~ 2007년 | 강민호[2] | C | 2,369경기 .277 2,111안타 338홈런 1242타점 969득점 32도루 | 2008,11,12,13,17,21 포수 부문 | |
김주찬 | OF | 1,550경기 .296 1,634안타 116홈런 655타점 916득점 377도루 | 2016 외야수 부문 | ||
이인구 | OF | 347경기 .245 206안타 10홈런 74타점 114득점 27도루 | |||
이원석[3] | IF | 1814경기 .261 1429안타 144홈런 791타점 650득점 25도루 | |||
이우민 | OF | 1003경기 .234 433안타 15홈런 168타점 275득점 56도루 | |||
강영식 | P | 750경기 679이닝 32승 32패 11세이브 116홀드 4.31 651K | |||
1994년 ~ 1998년 | 백재호 | IF | 1007경기 .245 631안타 68홈런 306타점 278득점 19도루 | ||
이상목 | P | 439경기 1,830⅔이닝 100승 122패 27세이브 7홀드 4.30 1,231K | |||
이영우 | OF | 1,312경기 .293 1,275안타 135홈런 533타점 735득점 112도루 | |||
홍원기 | IF | 1,043경기 .245 566안타 48홈런 284타점 261득점 11도루 | |||
임수민 | IF | 790경기 .241 485안타 54홈런 258타점 236득점 11도루 | |||
송지만 | OF | 1,938경기 .282 1,870안타 311홈런 1,030 타점 1,019득점 165도루 | 2000,02 외야수 부문 | ||
2000년 ~ 2002년 | 이진영 | OF | 2,049경기 .304 2,035안타 166홈런 940타점 939득점 110도루 | 2004 외야수 부문 | |
이호준 | IF | 2,053경기 .282 1,880안타 337홈런 1,265타점 943득점 59도루 | |||
채종범 | IF | 681경기 .262 553안타 50홈런 246타점 279득점 25도루 |
면면이 하나같이 화려하다보니 강병철의 양아들들만 가지고 타선 라인업 짜도 KBO 씹어먹을 수준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더 무서운건 이게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며, 실제로 적당히 라인업을 맞춰보면 아래와 같다.
포수 강민호 : 통산 wRC+ 115.4, sWAR* 62.47
1루수 이호준: 통산 wRC+ 125.5, sWAR* 39.60
2루수 박정태: 통산 wRC+ 122.6, sWAR* 34.43
3루수 이원석: 통산 wRC+ 92.8, sWAR* 21.41
유격수 김민재: 통산 wRC+ 71.6, sWAR* 18.78 [4]
좌익수 이영우: 통산 wRC+ 126.2, sWAR* 33.06
중견수 전준호: 통산 wRC+ 106.2, sWAR* 50.19
우익수 송지만: 통산 wRC+ 126.4, sWAR* 50.65
지명타자 이진영: 통산 wRC+ 116.0, sWAR* 41.90
선발투수 이상목: 통산 1830이닝 100승 122패, sWAR 32.86
장난이 아니다. 커리어 하이만 따져도 물론이고, 통산 성적으로 따져도 핵타선이다. 심지어 김주찬이 빠져있는 라인업인데 이렇다.
5. 관련 문서
[1] 강병철은 KBO에서 2회 이상 우승한 감독 중 유일하게 모든 우승이 업셋 우승인 감독이며 KBO 역사에 한획을 그은 감독들인 김영덕, 김성근, 김응용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해본 감독이다. 말년에 평가가 깎이긴 했지만, 적어도 한창때 쌓은 업적 자체는 무시할 수 없는 감독.[2] 2024년 종료 기준의 기록이며, 39세의 나이에도 19홈런과 5할에 가까운 장타율을 기록할 만큼 타격감이 여전한 강민호인지라 통산 350홈런과 1,000득점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재 통산 안타갯수 15위인데, 100안타만 더 때려내도 통산 7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3] 2024년 종료 기준의 기록이며, 키움 이적후 크게 부진하고 있으며 나이도 많은지라 25년에 반등하지 못하면 통산 1500안타와 150홈런도 장담할 수 없다.[4] 현역 시절에도 최정상급 수비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였지 타격과는 거리가 멀었다.[5] 실제로, 현역인 강민호와 이원석을 제외하면 모두 마구마구에 레전드 카드들이 있는 선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