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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논란/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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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서무오설3. 한국에는 신라 시대에 이미 기독교가 존재했다?4. 3.1운동의 시작은 개신교인이다5. 히로시마의 경고문 괴담6. 소련이 망한 이유7. 타 종파, 종교 교리와 역사의 왜곡
7.1. 가톨릭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종교
8. 극단적 민족주의 또는 유사역사학(환)과의 결합
8.1. 조선은 곧 이스라엘이다8.2. 아리랑은 원래 찬송가다8.3. 모세의 아들 욕살은 단군이고 한민족은 유대민족이다8.4. 샤론의 장미무궁화

1. 개요

개신교의 역사 왜곡 관련 논란이다.

2. 성서무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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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에는 신라 시대에 이미 기독교가 존재했다?

1967년 경주시에서 십자가가 발견되고, 성모상과 비슷한 보살상이 발견되었다고 화제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숭실대기독교박물관에 소장중인 이 '유물'(동십자가 문양, 성모상)은 학술적 발굴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단 발견자가 "우연히도" 개신교 목사 김○○ 씨다.어머 참 신기하네 그가 경주시불국사에서 땅 위에 드러난 십자가성모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1967년 당시에 이미 학계와 타종교계로부터 헛소리라는 욕을 들어먹었으며, 그 여파로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이 한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김 목사가 돌십자가를 발견(발굴이 아니다)한 장소도 처음에는 어느 곳의 암석 위였다가 나중엔 (신라 불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불국사 대웅전 석등 밑으로 바뀌기도 했다. 즉 "우연히도" 개신교 목사"우연히도" 경주시에서 "우연히도" 불국사 대웅전 앞 석등 밑에서 1,500여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기독교의 유물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기적의 결과가 신라시대 기독교 유물인 것이다.

아울러 어쨌거나 신라시대 유물로 인정하여 네스토리우스교가 9세기 이전에 한국에 전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떡밥이 돌지만, 이것이 종교로서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정말 기독교 계통 유물이라 해도 단순히 '외국의 장식품'으로서 생각해서 물건만 들여온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주에서는 신라 황금보검이나 여러 유리공예품 등등 유럽에서 만들어 실크로드아라비아 상인의 바닷길을 따라 신라로 전래된 유물은 이미 많이 발굴된 바 있으며, 비슷한 예로 북유럽에서도 불상이 발견된 전례가 있지만, 바이킹이 교역품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측할 뿐 불교북유럽에 도입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이킹 불자설 게다가 십자가 '문양'이 곧 기독교 유물이고, 아이를 안은 어머니 상이 곧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상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불교에서도 모자(母子) 불상이 있으며 대지모신, 풍요, 다산, 자애를 의미하는 모자상은 고대에 특정 종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

그리고 딱히 이게 기독교가 들어온 거라고 해도 개신교가 이걸 자랑할 명분은 전혀 없다. 이건 개신교 것은 당연히 아니고 심지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교단의 것도 아닌 이단인 네스토리우스파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네스토리우스파가 그만한 사이비는 아니지만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는 통일교 문선명이 인도네시아에서 통일교를 전도하는 걸 보고 '한국 기독교의 자랑'이라고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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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1운동의 시작은 개신교인이다

2.8 독립선언은 대종교 인사와 학생들의 주도로 일본 도쿄의 YMCA에서 열었고, 3.1운동의 시작은 천도교인들이 먼저다.

그렇다고 조금 뒤에서 거들었다도 엄연한 왜곡이다. 왜냐하면 당시 인구의 1%에 불과한 개신교에서 민족대표 33인중 16인이고 체포자 역시 개신교인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1911년 105 사건부터 개신교인을 겨냥한 일제 탄압이 계기가 되어 대표적인 반일 운동의 거점이었다. 개신교/대한민국 참조.

5. 히로시마의 경고문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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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를 하려고 지어낸 괴담이다. 인류 최악의 비극 중 하나조차도 선교를 위해서 서슴없이 이용하고 고인드립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대한민국/사건사고 문서 참조.

6. 소련이 망한 이유

잘려서 사진은 링크로 대체.

언제부턴가 등장하기 시작한 하나의 떡밥. 소련이 신을 믿지 않아서 망했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국회에 초청받았느니 하는 구라 및 자뻑이 써져있는데 서론 부분 생략하고서도 초반부터 허점이 엄청 많이 드러난다. 우선 소련이 망한 이유를 소련에서 연구하는 것은 제껴두자. 예를 들자면 글에서는 소련 내에서 내란이 없었다고 나와있는데 재밌게도 당시 소련은 저 글에서 나온 전쟁, 내란, 외부세계의 간섭모두 벌어졌다. 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지한건가?[1]

당시 소련은 관료제의 문제점, 무리한 전쟁[2]으로 인한 국력낭비, 석유로 먹고사는 나라임에도 석유 가격이 폭락한 문제도 있었으며[3], 이로 인해서 바깥 세계들은 소련을 계속 콕콕 찔러댔기 때문에 소련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그 후 1991년 8월 18일 강경보수파들이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에 반발하여 보리스 옐친이 서방 세력의 지지와 함께 반쿠데타 투쟁 운동을 벌인 끝에 쿠데타를 저지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중에 추락하지만 옐친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서기장직과 소련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공산당 해체 등등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소련이 해체된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소련에도 정교회가 있었으며 그리고 비록 늘 잘 지켜진 것은 아니었으나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소련 종교 인구 중 20%를 동방정교회가 차지하고 있었고[4] 이오시프 스탈린은 당시 나치 독일을 막는 데 종교적 열의를 사용하고자 정교회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다. 심지어 독일군이 모스크바까지 밀고 들어오자 다시는 사람 안 죽이고 착하게 살테니(...) 한번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는 소문도 있다.물론 그 이후라고 딱히 안죽이지는 않았지만

스탈린 사후 다시 탄압당했긴 했어도[5] 이후부터 소련자의적 믿음에 한해 종교를 인정해 주었다.[6][7]

따라서 정교회는 소련 시절 때도 분명히 그 명맥을 이어온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니까 저들 방식의 기독교가 아니면 진짜 같은 기독교라도 기독교가 아니다.

무엇보다 상식적으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된 나라가 폭삭 망했는데 3년 연구한 결과가 고작 저거라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따지면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대만[8]이 종교를 제한하는 중공에 의해 압박받는 것과, 기독교 신자였던 장제스가 국공전쟁에서 무신론자인 마오쩌둥에게 패한 것도 설명이 안 된다. 한술 더 떠서 이승만은 기독교 신자였고 김일성은 백두혈통 무교였는데[9] 6.25 초반에 대한민국이 대차게 털린 이유도 설명이 안 된다.[10] 세상에서 승패는 그 지도자가 종교를 가졌냐, 안 가졌냐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7. 타 종파, 종교 교리와 역사의 왜곡

선교타임즈에 게재된 원문

얼핏 보면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종교에 대한 나름대로 성실한 분석 같지만(기독교 단락의 내용이 많기는 한데, 기독교 선교활동 관련 글이니 그거야 뭐 당연한 것 아닌가) 꼼꼼히 뜯어보면 여타 종교에 대한 역사왜곡과 비하가 굉장히 심하다.

1. 조로아스터교: 그야말로 거짓말 덩어리다. 일단 조로아스터교는 발흐 지역에서 태동한 종교인데 사산조 페르시아의 국교가 되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종교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주장 자체가 틀렸다. 조로아스터교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시기부터 페르시아의 주도적 종교였다. 그리고, 구전으로 전해오던 아베스타를 사산 왕조가 책으로 엮었다는 것 역시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에 문서화된 아베스타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역사학적 연구와 상충된다. 따라서, 기독교 성경의 확산에 대한 반발로 아베스타가 편찬되었다는 주장 역시 역사 왜곡이다. 또한, 아베스타의 경우 오랜 기간동안 소실되어 현재 남은 분량이 성경의 1/10 정도라는 점을 왜곡하여 아베스타 자체의 분량이 성경의 1/10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로아스터교가 바빌론 포로기의 유대인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오히려 조로아스터교가 주장하는 선행에 대한 종말론적 보상이 기독교 종말론의 영향을 받은 것 이라고 우기고 주장하고 있으나, 종교사를 조금만 공부해 보면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 일단,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 중 어느 쪽이 최초의 일신교인지에 대해서는 다소의 의견대립이 있지만, 대체로 조로아스터교가 먼저 성립되어 유대교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하물며,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라면 이건 성립 시기에서 차이가 워낙 심하니 따질 의미도 없을 정도. 물론, 제임스 다메스테터처럼 역으로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성립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기는 한데, 이런 주장들은 당대부터 격렬한 반론에 부딪혔고, 현대에 와서는 19세기 식민주의 시대의 유럽 기독교 우월주의를 위한 프로파간다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

이 단락의 경우 대체로 사산 왕조 시대의 '국가교단화된 조로아스터교'의 성립을 조로아스터교 자체의 성립처럼 왜곡함으로써 조로아스터교의 역사성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정말 정정당당하게 기독교가 조로아스터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기독교가 세계 최초라고 주장할만 한 영역에서는 그 자리를 기꺼이 조로아스터교에 양보하고 있다는 점이 개그다. 바로 교단의 국가조직화와 국가에 의한 정통 교리 공인, 성직자의 계층화 및 조직적인 이단의 색출 및 탄압 부분.

2. 마니교: 물론 마니교는 중근동의 복잡한 종교적 환경에서 다양한 종교와 철학적 흐름을 포용함으로써 만들어진 종교이고, 기독교나 기독교적 영지주의의 영향 역시 상당히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당 단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마니교가 기독교의 이단분파처럼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마니교는 엄밀히 말하면 조로아스터교의 기반에 다른 종교의 영향을 포용하여 탄생한 종교다.

3. 기독교: 선교활동 자랑이 많은 거야 선교신문이니 할 수 있다고 치자. 괜히 선교하러 가서 사고치지만 마라. 하지만 황당한 건 아프가니스탄 지역 내의 기독교 활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네스토리우스파의 활동 내역을 기독교의 활동 내용이라고 다루면서, 기독교 교세 쇠퇴에 대한 설명에서는 이단인 단성론과 양성론의 경쟁으로 복음증거가 약화되었다면서 네스토리우스교를 이단 취급하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4. 이슬람교: 600년대 중반의 정복활동에서 이슬람 제국(정통 칼리파 시대우마이야 왕조)이 사산 왕조와 비잔틴 로마를 정복했다고 하는데, 정복에 성공한 건 사산조뿐이며, 동로마제국은 아랍 이슬람 제국이 정복하지 못하다가 800년 뒤에 오스만 제국이 정복했다. 하지만 4대 칼리파 알리가 3대 칼리파 우스만의 암살에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한 폭거에 비하면 이정도 역사 왜곡은 별것도 아니다. 알리가 우스만의 암살 배후에 있다는 주장은 당대에도 제기되었지만 이는 거의 무아위야 1세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였고, 실제로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는 발견된 바 없으며, 후대의 연구자들도 알리는 우스만 암살과 무관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걸 '알리가 연루된 자들에 의해 우스만이 암살되었다' 라고 단정적으로 써 버린 건 왜곡이다. 이게 이슬람교도, 특히 시아파에게 얼마나 불쾌한 소리인가 하면... 독실한 기독교도에게 '사도 베드로의 처형은 사실 베드로의 기독교 공동체 내 영향력을 질투한 사도 바울이 로마 당국에 베드로를 밀고해서 일어난 일이다' 라고 이야기한다거나, 한국인 앞에서 '유관순, 김구등의 독립운동가는 사실 일제의 밀정이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하고 비슷한 거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 시아파가 많은 이라크 같은 곳에서 저런 발언은 절대 금물이며 당신이 실제로 저런 발언을 했다면 당신 얼굴에 주먹이 날아올 일이다.

7.1. 가톨릭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종교

성모 마리아 항목과 이 항목을 참고.

8. 극단적 민족주의 또는 유사역사학(환)과의 결합

8.1. 조선은 곧 이스라엘이다

이게 무슨 환 세계관 사학이냐 싶은 내용인데 실제 사례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는 작자가 이런 드립을 칠 정도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다.

주된 드립은 조선의 폐기된 영어 표기 'Chosun' 이 '선택받은(Chosen 조센?)' 이라는 단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혹은 Chosen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스라엘 민족)=조선 민족이라는 억지 논리. 원판인 히브리어도 아니고 번역본인 영어판 성경을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한다. 참고로 개정 로마자 표기법에서 조선의 올바른 영어 표기는 'Joseon' 이다.

애초에 이스라엘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11]

8.2. 아리랑은 원래 찬송가다

아리랑 문서 참고. 아리랑은 "알이랑"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여기서 알은 엘로힘의 "EL"이라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하여 한 목사의 적절한 드립을 빌리자면 "이스라엘 민족의 단 지파가 한반도에 와서 단군이 되었다는 소리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라고...

어느 반박 글 참고

8.3. 모세의 아들 욕살은 단군이고 한민족은 유대민족이다

유대인은 예수를 안믿는데 그러면 한민족도 예수를 믿지 말라는건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모세의 아들 욕살이 단군이라며 유태인=한민족 동족론까지 내세우던 교회도 있다. 증거로 제시된 것 중에는 이스라엘의 명절인 초막절과 한국의 명절인 추석이 같은 날이라는 것도 있다. 물론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비롯해 보름을 기리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대전의 모 대학교 신학대 교양과목에서는 신학과목 강의, 그것도 교양과목 중에 아주 대놓고 이런 걸 가르치는 경우가 있었다. 한민족은 유대민족의 한 계통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듣다 못한 몇몇 학생들이 인류학까지 들고 나와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항의한 적도 있었지만 교수는 그냥 개무시했다 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한민족과 단군이 지파의 자손이라면서 성서와 환사관을 연결하려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만일 진짜면 묵시록의 기록을 볼 때 한민족은 선택받지못하고 버림받은 민족이란 뜻이 성립된다. 당장 묵시록에 기록된 십사만 사천 명 중에 어느 지파가 빠져있는지 잘 보자.자폭

이건 아예 민족 신화를 날조하고 있는 수준. 예수쟁이와 환빠가 섞인 악질이다. 사실 창조설 계열의 주장 중 유대 민족이 인류의 선구민족이란 걸 어거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이런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머리가 제대로 돈 경우다.

사실 이런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게 하나님은 종족 같은 건 전혀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인류를 동등하게 사랑하신다는 건 기독교 교리의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 유대교에서야 누구는 저주받았고 누구는 축복받았고 이런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그런 거 없다.

8.4. 샤론의 장미무궁화

성경에 등장하는 '샤론의 장미' 가 무궁화라는 식의 주장도 있다. 물론 근거는 없다.

사실 식물학계나 신학계에서조차 샤론의 장미가 뭘 의미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바다수선화라는 꽃이라는 설이며 영어권 나라들도 전부 제각각 부르는 뜻이 다르다. '샤론의 장미 후보' 만 몇 가지가 있으며 '학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렇게 헷갈린다' 는 논문의 사례로도 등장한 바가 있다. 이 '후보' 중에는 무궁화도 들어 있긴 하지만 무궁화가 샤론의 장미라는 건 아니다. 다만 무궁화가 영어로 rose of Sharon이라 이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아시아경제에서 이 속설을 다룬 적이 있다. #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택받은 민족인가에 대해서 "오직 지혜의 왕 솔로몬만이 알고 있을 것" 이라고 슬쩍 까는 것이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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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몰락해 가던 소련에서 영토와 국제적 신뢰, 피폭된 사람들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자발적인 인력 등 무수히 많은 자원들을 세계 최악의 원자력 사고를 수습하는 데 사용했고, 이후 재기 불능할 정도로 몰락했다. 그래서 체르노빌 사건을 무신론자가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인가?[2]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었다.[3] 출처 - 말하지 않는 세계사(최성락)[4] 물론 실제 신자는 더 많았으리라고 추정. 러시아는 예로부터 정교회를 믿는 국가였다.[5]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밀어버리고 대형 워터파크를 짓는다든지[6] 그러니까 남에게 특정 종교를 믿으라 하거나(믿지 말라고 하는 건 합법) 종교적 상징물을 남에게 보이거나 하지만 않으면 건드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요컨데 신앙은 허락하되 포교 및 포교로 간주될 수 있는 모든 행위는 금지라고 할 수 있겠다.[7] 참고로 이 무렵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 내부에 잔존하면서 소비에트 정권과 타협의 길을 걸은 본토 러시아 정교회와 제정 러시아 멸망 이후 해외로 도피하여 성립된 해외 러시아 정교회의 2개 분파로 나누어져 있었다.[8] 심지어 대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중화민국을 세운 손문과 대만을 발전시킨 장개석은 개신교 신자였다.[9] 한때는 김일성도 개신교 신자였긴 했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는 더 이상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10] 한술 더 떠서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잘먹고 잘산 반면 이승만은 4.19 혁명으로 쫓겨나서 객사했다.[11] 없는건 아닌데 전 인구의 2% 정도 수준이면 극소수라 봐도 좋으며, 더구나 예수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을 배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