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올림픽 참사의 범인 중 하나인 칼리드 자와드(Khalid Jawad). |
<colcolor=#fff> 검은 9월단 منظمة أيلول الأسود Black September Organization (BSO) | |
지도자 | 살라 할라프† 아부 다우드 아민 알힌디 |
활동 기간 | 1970년 9월 ~ 1988년 |
활동 국가 | [[독일| ]][[틀:국기| ]][[틀:국기| ]]서독 등 유럽과 중동 지역 |
성향 | 민족주의 |
적대 | [[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 서독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요르단| ]][[틀:국기| ]][[틀:국기| ]] [[사우디아라비아| ]][[틀:국기| ]][[틀:국기| ]] [[그리스 군사정권| ]][[틀:국기| ]][[틀:국기| ]] |
동맹 | 서독 및 동독의 네오나치 세력 파타 폴란드 인민공화국 |
관념 |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반시오니즘 |
테러조직 지정 | [[독일| ]][[틀:국기| ]][[틀:국기| ]]서독 [[이스라엘|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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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منظمة أيلول الأسود(Munazzamat Aylūl al-Aswad)영어: Black September Organization(BSO)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
항공기 납치로 유명한 공산주의 반군인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이다.[1]
2. 상세
1970년에 설립되었으며 1972년 독일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 사건(뮌헨 올림픽 참사)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PLO 계열의 과격 저항 단체다.검은 9월은 요르단을 거점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PLO가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0년 9월을 의미하는 이름인데 아랍 게릴라 4명이 1971년 11월 요르단의 와스피 탈(1919~1971) 총리를 이집트 카이로의 쉐라톤 호텔에서 암살하면서 스스로 검은 9월단이라고 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파타에서 분리된 PFLP 계열의 민족주의 게릴라 조직이다.[2]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표적이 됐던 과격 무장조직인 만큼 지도자나 조직원 등의 신원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며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테러와 요인 암살, 항공기 납치사건(사베나 571편 납치 사건) 등을 저질렀다. 그리고...
3. 뮌헨 올림픽 참사
결국 1972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붙잡는 사건을 일으키면서 이들의 존재를 전세계에 드러냈다. 협상에 실패한 서독 경찰이 강경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질 9명이 모두 숨졌고 테러범들도 사살되거나 생포됐다.자세한 내용은 뮌헨 올림픽 참사 문서 참고.
4. 보복
뮌헨 올림픽 참사는 이후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중동 분쟁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불씨가 타올라서 발생한 중동 분쟁의 결정판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현재까지도 전쟁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세계 각국은 대(對)테러 전문부대가 없어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반성 아래 대테러 특수부대 창설에 나섰고 특히 테러의 무대가 됐던 독일은 GSG-9, KSK 등의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이스라엘 정부도 분노하여 모사드와 이스라엘 특수부대를 동원해 조직원들을 추적하여 차례차례 암살하기 시작했다. 이에 PLO 측은 검은 9월단과 엮여서 국제적인 비난 대상이 되자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이스라엘과 상관도 없는 국제 테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천명하여 1976년에 아랍연맹에 가입했다.
다음은 뮌헨 올림픽 참사에 대한 보복 작전인 "신의 분노 작전"(מבצע זעם האל Operation Wrath of God. 일명 : 총검 작전 Operation "Bayonet")과 "청춘의 샘 작전"(מבצע אביב נעורים Operation Spring of Youth)에서 모사드가 제거한 명단이다.
- 바엘 즈바이터: 로마의 자택에서 12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
- 마흐무드 함쉬리: 파리의 자택에서 전화에 설치된 폭탄 공격으로 사망.
- 후세인 아바드 알 치크: 키프로스의 자택에서 침대 밑에 설치된 폭탄 공격으로 사망.
- 바실 알 쿠바시: 파리에서 12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
- 아부 유세프: 이스라엘 코만도의 공격으로 베이루트에서 사망.
- 카멜 애드완: 이스라엘 코만도의 공격으로 베이루트에서 사망.
- 카말 나세르: 이스라엘 코만도의 공격으로 베이루트에서 사망.
- 자이아드 무차시: 키프로스에서 침대밑에 설치된 폭탄 공격으로 사망.
- 아드벨 하미드 쉬비: 차량이 폭발하여 사망.
- 아드벨 하디 나카: 차량이 폭발하여 사망.
- 모하메드 부디아: 운전석 밑에 설치된 폭탄 공격으로 프랑스에서 사망.
- 알리 하산 살라메: 베이루트에서 폭탄 차량 공격으로 사망.
- 아드난 알 가세이: 뮌헨 공격에 직접 참가한 자로 서독에 체포되었으나 석방되었다.[3] 긴 도피 생활 중 한 걸프 국가에서 의문사하였는데 정황상 분명 모사드에 의해 암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모하메드 사파디: 뮌헨 공격에 직접 참가한 자로 서독에 체포되었으나 석방되었다. 긴 도피 생활 중 레바논에서 의문사했다. 알 가세이와 마찬가지로 모사드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1] PLO는 여러 세력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온건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파타, 마오주의와 좀 더 온건한 공산주의 계열인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DFLP), 진짜 극좌파이자 하마스보다 더 무장투쟁을 좋아하는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이 있다.[2] 그래서 뮌헨 참사 당시 바더 마인호프의 석방을 요구했다. 정치적 동지이므로.[3] 체포되었으나 이후 다른 검은 9월단 단원이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하고 이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협상하여 석방되었다. 사다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