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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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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사상의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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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의 상징, 붉은 장미.
위 이미지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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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그 분파들의 상징인 적기.

1. 개요2. 상세3.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4. 사상의 흐름5. 사회민주주의의 특징6.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양상
6.1. 유럽6.2. 북미6.3. 동아시아
7. 여건8.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9.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10. 관련 문서

1. 개요

/ Social Democracy

사회민주주의는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켜 확립한 사회주의민주주의 이념의 한 갈래이며,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혁명 등으로 급격하게 무너뜨리지 않고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정책과 소득 재분배 정책,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이익과 복지 정책을 포함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줄여서 사민주의라고도 부른다. 무장봉기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표되던 혁명적 사회주의의 폭력성을 배격하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 평등도 달성하자는 사상이다.[참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사회주의 이념을 말한다.[2] 사민주의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사민주의 우파고 또 하나는 사민주의 좌파다. 사민주의 우파는 중도좌파고, 사민주의 좌파는 중도좌파~좌파 사이다.

2. 상세

무자비한 경쟁으로 문제가 발생하던 19세기 중후반의 고전적(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오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사회주의의 평화적 달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격동기였던 바이마르 시기에는 독일 공산당이나 나치당에 대항하기 위해 준군사조직 흑적금 국기단을 조직했다.

3.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는 본래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내지 수정마르크스주의라고 불렸다. 사회민주주의의 뿌리가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교조주의적으로 떠받들지 않고 마르크스가 이론을 창시했던 시대와는 다르게 변한 세상에 맞추어 마르크스주의에 수정을 기했다.[3]

마르크스주의역사유물론계급투쟁을 핵심 독트린으로 했다. 역사유물론[4]에 따라 역사발전의 기초가 생산활동이라고 보고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역사는 생산활동의 단계에 따라 정해진 경로로 나아간다고 파악하였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하게 되면 자본주의의 모순이 쌓여 계급투쟁이 발생하고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이 상태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자본의 수익률은 점점 낮아지고 불황이 발생하며 프롤레타리아의 수는 늘어나는 반면 그 생활 처지는 갈수록 열악해져 어느 순간 버틸 수 없는 때가 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다는 시나리오다. 즉,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는 자본주의의 성숙이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건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 혁명이 필요하고 초기 자본주의 사회라면 생산력의 발전이 우선 과제가 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다면 가장 발전한 산업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 일어나야 했지만, 프랑스의 파리 코뮌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혁명 등 여러 혁명이 모두 실패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러시아는 후진국이자 농업국가였고 봉건주의조차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은 나중의 일이고, 먼저 제정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산업국가를 세우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레닌 같은 혁명가들은 그런 단계를 건너 뛰고 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려 하였는데, 이런 흐름이 레닌주의나 모택동주의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종의 수정이었다. 이들은 선진화된 산업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제국주의를 통해 제3세계를 착취하기 때문에 모순의 폭발이 지연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수정을 시도한 것이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주장한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였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회이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혁명밖에 답이 없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 예를 들면 노동조합 운동을 통한 근로조건 개선 같은 시도들은 노동자들의 정치력을 높인다는 의미는 있어도 사회적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될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이런 개량적 시도들은 노동자들의 가중되는 처지에 대한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만 하며 자본주의의 붕괴를 지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혁명을 통한 체제의 전복이 아니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통해 공산당 일당 독재 없이, 계획경제 체제의 도입 없이도 사회주의로 이전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와의 큰 차이였고 정치활동의 목표와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일이었다.

즉,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 독트린인 역사유물론과 행동강령에서 비교적 벗어난 사회주의의 이념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로부터 "개량주의자" 내지 "수정주의자"라는 혐오 섞인 조롱을 들어야 했다.[5]

4. 사상의 흐름

사람에 따라서는 그 출발부터 마르크스주의와 명백히 구별하여 분류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윗 문단에서 설명했듯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중심이론은 물론 그 역사 및 발생계통에 있어서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그것의 비현실적 주장을 일부 수정하며 진화해 온 이론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정주의 논쟁 이전에는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용어 자체가 단지 "사회주의자"의 별칭에 불과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용어부터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이 창당한 "독일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SDAP)"에서 나왔고, 라살이 창당했던 전독일노동자협회가 (라살의 사후) SDAP의 립크네히트의 주도로 통합이 되면서 1875년, 오늘날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신이 되는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SAPD)"이 탄생하게 된다. 이 시점까지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별칭일 뿐이었다.

이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와 오늘날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분리가 시작되는데, 1876년 고타강령을 갖고 벌어진 마르크스(고타강령비판)와, 점진적 개량주의를 들고 나온 베른슈타인의 논쟁이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현대에 와서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1959년의 고데스부르크 강령선언) 공식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와 결별을 고하면서 제도권 의회정치 내의 중도적 정당운동으로써 확실히 자리를 매김하게 된다. 즉, 하이델베르크 강령(1925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독일 사회민주당은 "사유재산에 기반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소유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기본 목표로 제시하고 있었다.

베른슈타인이 들고 나온 개량주의는 폭력이 아닌 설득을 통해 체제를 개혁하자는 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와는 분명 거리를 두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보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와 더 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는데, 특히 파시스트들이 활개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서로간의 관계는 앙숙지간이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즘이 집권하면 그들이 망한 이후 공산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사회 파시즘'이라고 음해하는데 더 열중하였고, 반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독일에서 나치즘이 세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 오히려 그 기회를 틈타 공산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격퇴하려 했다. 왜냐면 애초에 이론 정립화와 결집과정이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마르크스 사이의 이론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가 곧 붕괴할 것으로 생각하였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자본주의 붕괴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대립이었다.

5. 사회민주주의의 특징

  • 민주주의를 강력히 긍정·옹호할 뿐만 아니라 이 사상의 목표를 ‘최고의 형태로서의 민주주의’라고까지 강조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의 민주주의적 본질을 보여준다.
  • 모든 독재정치를 부정·배격한다.
  • 종래의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의 공유를 사회개조의 유일 ·절대의 방법으로 믿어온 것과는 달리, “공유형태 자체를 목적으로 볼 것이 아니고, 사회의 경제생활과 복지를 떠받치고 있는 기초산업과 공공사업의 관리수단으로서, 또 비능률적인 산업의 합리화와 사적 독점을 막는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사회주의적 계획은 전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예상하지 않으며, 농업·수공업·소매업·중소기업 등 중요한 부문의 사적 소유와 양립한다”라고 말하여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사회개조의 유일·절대적인 방법으로 보지 않는다.
  • 종래의 사회주의가 공산주의 비판을 미온적이고 불철저하게 하였던 것과는 달리, 공산주의를 냉엄하고 정당하게 비판하고 있다.
  • 종래의 사회주의가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계획경제 실시로 사회를 단번에 개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던 것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모든 영역에 확대·발전시킴으로써 ‘최고형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 종래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가 인류의 미래는 생산수단 공유의 사회 또는 공산주의 사회라 주장하던 것과는 달리, “미래는 공산주의의 것도 자본주의의 것도 아니다”라고 하여 ‘최고형태의 민주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 종래에 사회주의라는 말이 대체로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계획경제제도에 중점을 두고 이해되어온 것과는 달리, 민주사회주의에서는 최고형태로 발전하였을 때의 민주주의를 가리켜 사회주의라 부름으로써 사회주의의 본질과 방향이 종래와는 전혀 다름을 밝히고 있다.

6.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양상

6.1. 유럽

사회주의 및 그 대다수 분파가 유럽에서 발생했고, 현재는 북유럽 및 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집권하는 등 유럽은 전 세계에서 좌익 성향 정당들이 큰 세를 얻을 수 있는 지역이기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못해도 제1, 제2 야당은 한다. 유권자들이 느끼는 거부감도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보다 훨씬 적다. 유럽에서 사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은 정치세력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년 기간의 연속 수권 기간이 있고, 1880년대부터 따지면 프랑스 50여년, 독일 40여 년의 수권기간을 자랑한다. 북유럽 같이 40여년 장기집권한 경우도 있다

1960년대까지 사회민주주의는 (영국을 제외하면) 복지를 베풂으로써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이 증가하고[6] 자연스럽게 경제 성장이 유도되는 선순환 구조를 의도하며 복지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소수자들을 외면한다는 극좌 진영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각국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이러한 비판을 1960년대 말부터 수용하여 경제성장에만 치중하지 않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복지를 넓혔다. 그러나 재정 부담의 증가로 이번에는 우파 진영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는 생산수단의 사회화 대신 사유화를 중시하고 복지 개혁을 외치는 제3의 길[7]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심지어 스웨덴[8],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그보단 덜하지만 역시 일부 민영화와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이런 방향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난민 사태를 전후하여 유럽 사민주의에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독일 노동자들이 전통적 지지정당인 사회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현재 상황이다. 독일 사민당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사회 정의와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주요 이념으로 내세운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블루칼라 노동자가 주요 지지층을 형성했다.

제 3의 길 역시 2008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 이후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로 인해 급진적인 좌파당에게 표를 뺏기거나 중도우파 정당의 중도화(좌클릭)로 인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지지를 잃게 된다. 그러자 제3의 길을 주창한 영국 노동당조차 이 노선에 비판적인 에드 밀리밴드가 당수를 역임하는 등 원론적 사회민주주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유럽 내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상황과 겹쳐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의 정통주의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지지기반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대체로 중도좌파 정도의 포지션을 취한다 볼 수 있다.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현대 유럽 정치에서 좌우수렴현상, 특히 독일의 경우, 종전 직후부터 복지국가를 추구하였던 CDU와 SPD의 차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급진적 유권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해 좌파당(독일), 녹색당, 해적당과 같은 정당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민주의는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존 롤스와 같은 자유적 평등주의 이론가들과 뿌리는 다르지만 결론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광산·철강산업이 주를 이루는 독일 최대 공업지대인 루르 지역 등에서는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압도적 우세를 보여왔다.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며 사민당에 입당하는 것이 관례일 정도로 당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독일 사민당이 당의 정강과 달리 친시장주의 노선으로 갈아타면서 이에 실망한 노동자들이 사민당에 등을 돌리고,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극우정당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지난 5월 치러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에 밀려 패배한 것이 노동자들의 변심을 방증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인구 1천800만의 최대인구주이자 사민당 텃밭으로, 사민당은 이 지역을 지난 46년간 장악해왔다.독일경제연구소도 최근 사민당 지지층이 블루칼라 노동자에서 화이트칼라 근로자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며 사민당 지지자 중 일반 노동자의 비율은 17%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반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대안당)의 노동자 유권자 비율은 3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사민당 지지층이 투표권을 포기하거나 노동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포퓰리스트 정파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민당이 노동자의 외면을 받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민당 출신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추진했던 노동·복지 개혁이 지목된다. 이러한 친시장주의 개혁의 여파로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고, 복지혜택이 줄자 노동자들의 사민당에 책임을 전가하며 반감을 갖게 됐다는 가장 유력한 해석이다. 또 광산·철강산업 쇠퇴에 따른 실업률 증가와 독일의 포용적 난민정책에 의한 이민자 급증도 사민당의 지지율 하락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몰락이 비단 독일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대 중반경에는 조셉 무스카트가 총리로 집권한 몰타, 경제 성장으로 지지층이 커지는 포르투갈를 제외하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황혼기를 맞이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잇단 공장 해외이전과 산업 시설의 첨단 자동화를 감행하는 바람에 유럽의 산업 구조는 변화해 가지만 사민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몰락의 원인으로 꼽힌다.[9]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며 힘을 잃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상기한 조셉 무스카트의 성공을 예로 들면서 사민주의자들은 국민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몰타 노동당 소속으로 총리에 당선된 무스카트는 경제 성장으로 일궈낸 재정 흑자를 바탕으로 도로 등 인프라를 개선하고 세금 감면, 연금 인상 등의 공약을 내세웠으며 파나마 페이퍼 연루에도 굴하지 않고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포르투갈 총선 결과에서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6.2. 북미

19세기 후반 들어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서 도시화 현상을 겪게 되었고, 외국에서 막대한 인력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렇듯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열악한 생활환경, 대기업의 독점과 노동자 착취 등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대중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사회주의 단체가 창당되었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두당 모두 사회주의에 반감을 보이고 있었던 터라 세의 확산에 지장이 있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대중주의를 당강령으로 체택한 인민당이 제3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1년 미국사회당이 창당되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때에 시행된 진보주의 정책이 어느정도 성과를 얻으면서 사회주의에도 어느정도 호의적인 의견이 많아졌으며 1910년 들어 미국 사회당은 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고 1912년 대선에서 유진 뎁스가 6%의 득표를 확보하는 등 선전하기도 했다. 허나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다시 1920년대 중반까지는 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1920년대 후반 분열로 인해 의회 의석을 잃고 완전히 망했어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편으로 1918년에 미네소타주를 지지기반을 삼아 창당된 농민노동당이 한동안 하원에서 의석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미네소타주 이 외 지역에 뻗어가지 못해 의회에서 큰 세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29년 경제대공황으로 미국 경제도 파탄상태에 빠지면서 1932년 선거에서 5석으로 약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하면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사라진 노동농민당은 결국 1940년대 중반 들어서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처지가 되었다 다만 당 조직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연합하고 있는 이상 사실상 민주당 미네소타주 지부(...)라고 봐도 별 무리는 없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미네소타주는 미국내에서도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리고 미국 노동당이라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뉴욕주를 기반으로 한동안 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한 적이 있다가 매카시즘으로 당세는 줄어들어갔고, 결국 1956년에 해산하게 된다. 이후에도 미국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활동하기는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나 워싱턴 주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듣보잡에 불과하며 전국적인 정당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1940년대 중반에 일부 사회민주주의 정파를 흡수한 만큼 미국 민주당내에서 사회민주주의계 정파의 활동이 두드러지기는 하다. 물론 80년대-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경제정책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실제 경제정책상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클린턴 정부 들어서 부자증세 같은 법안을 시행하긴 했다. 근데 1994년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의석수에서 뒤졌고, 이 후 클린턴이 안정적으로 재선되었을 때도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다보니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그러다 21세기 들어 부시 정부가 여러 실책을 범하고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목소리를 높여가는 중. 특히 버니 샌더스가 주장한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이 민주당 지지층에게 큰 매력을 얻으면서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앞지른 적도 있다.

또다른 북미 국가인 캐나다에선 1960년대 중도 정당인 자유당과 별개로 진보 정당인 신민주당이 등장하면서 나름대로의 세를 자랑하고 있으며, 특히 2011년 총선에서는 신민주당이 기존 자유당의 자리를 빼았고 원내 2당에 등극하기도 했었다.

멕시코는 원내 3당인 민주혁명당이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다.

6.3. 동아시아

대한민국의 경우, 해방정국에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4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70%가 온건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했다고 한다.[10] 그러나 제1공화국부터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사회민주주의는 거의 멸망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조소앙의 사회당이나 조봉암의 진보당이 어느정도 전진을 보이기도 했으나 각각 조소앙의 납북, 조봉암의 사법살인으로 세가 크게 위축된다. 그 이후로는 사회민주주의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나마 제2공화국 시기에 사회대중당이라는 혁신정당이 창당되어 나름 진전을 보이기도 했었으나 7.29 총선때 심각한 내분으로 대패하고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깡그리 전멸되었다(...) 그나마 김철의 통일사회당이 1967년 창당되었으며 제도권에서 허용된 유일한 좌파정당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활동은 못 했다. 2017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원내 세력은 정의당(강령에 사회민주주의를 명시)이다.

북한에선 8월 종파사건과 그 이후의 숙청 작업으로 인해 사회민주주의자의 씨가 말랐다.

일본에는 사회민주당이 있다. 지금 사민당의 입지는 이들의 리즈시절이었던 50년대 중반이나 80년대 말~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인데, 90년대 중반에 의원들 다수가 사민당을 탈당하고 지지기반인 노조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당세가 악화,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일본은 1901년에 아나키스트 운동가 고토쿠 슈스이, 사회주의운동가 가타야마 센 등이 모여 결성한 '사회민주당'이 일본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시초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바람이 대세였던 때라 사실상 묻혔고 일본 당국은 창당 당일 곧바로 탄압해 강제해체시켰다. 그래서 일본 자료를 보면 창당일이 1901년 5월 18일인데, 해산일은 1901년 5월 20일이라고 쓰여있다.# 안습.

대만에선 민진당이 영국 노동당의 신노동당 시기처럼 제3의 길을 추구하며 신중도 노선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시아권은 오랜기간 동안 뿌리깊은 반공사상 또는 반대로 원리주의적 공산사상[11], 사회의 보수성 등 사회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가 힘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조직노동이 약하고 및 노동계급과 진보정당과의 연계가 매우 부족한 것도 사회민주주의의 성장을 어렵게 한다. 역사적으로 뿌리있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모두 20세기 초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성립되어 조직노동을 통한 조직표를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7. 여건

사회민주주의 정책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한 번 궤도에 오르면 매우 안정적으로 동작하는 장점이 있으나 생각보다 실현되기 위한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정책 실현의 실패 시에 돌아올 리스크도 적지 않다.

일단 부유하고 부채가 적은 나라여야한다. GDP가 높은 선진국들은 재정상태와 정치권과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복지국가를 추구하며, GDP 대비 20% 예산을 복지예산으로 사용한다. 특히 스웨덴은 28.9%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부채비율은 41.3%로 세계에서 95위다. 덴마크는 29.2%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부채는 46.7%로 76위에 불과하다. 덴마크는 세계 1위의 GDP 대비 복지예산을 집행하는 국가이기도하다. 거기다가 호주는 18.0%의 복지예산을 사용하지만 부채는 23.6% 136위에 불과하다.[12]

특히 OECD 국가 중에서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들이 있는데 재정과 세순환이 안정적이며 복지예산의 비율은 한국보다 높다. 그리고 이런 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미국, 일본은 부채비율이 양호하지 않다. 이는 복지를 하지 않아서 재정상태가 나쁘다기보다는 부채비율(빚)이 높을수록 복지예산을 적게 책정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나라들이 한국에 비해 국민소득이 1.4~1.5배가량 높고, 직접적인 전쟁위협이 낮아 국방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한국과의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국방비 부분도 영국, 프랑스 국가와 GDP만으로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인구수 대비 GDP로 감안한 국민소득의 차이가 큰 상태에서 동등한 수준인 것이다. 자세한 것은 복지국가/국방비 지출 문제 문서 참조.

사회민주주의적 정책들의 실현을 위해서는 고소득 계층에 많은 세금을 부과 해야하는데 이는 해당 계층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대기업이 공장을 임금과 세금이 높은 자국에 짓지 않고 임금과 세금이 낮은 개발도상국에 짓는다거나, 탈세, 돈세탁 등의 범죄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사실 사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빈부격차가 바로 해소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는 기성 사회주의와는 달리 개인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득 누진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이 빈부격차는 점진적으로 해소된다.

대개는 대의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체제로 구상되었다. 우선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차별을 당하지 않을 자유와 생산수단의 소유주 또는 폭압적인 정치권력의 대리인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둘째로 으로만 존재하는 정의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 정의를 포괄하고 모든 이들, 구체적으로는 육체·정신·사회적 장애를 겪는 이에 대한 동등한 기회, 평등을 보장한다. 마지막으로 불의와 불평등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 대한 동정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단결을 함의한다. 다만, 그 실제적 적용의 양태는 적용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현실을 잘 아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가끔 사회민주주의가 후기 자본주의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회민주주의는 엄연히 사회주의가 맞다. 이름부터가 사회민주주의. 즉, 선거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다만,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사유재산의 폐지, 프롤레타리아 혁명, 계획경제를 거부하고 사유재산의 허용, 의회제 민주주의 하의 점진적 개혁, 혼합경제를 추구하는 점이 과학적(혁명적) 사회주의와의 차이점이다.

자신들이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는 정당이나 국가들이 정말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는지가 논란이 되는 것일뿐, 사회민주주의란 용어의 개념 자체는 사회주의가 맞다. 내용상 현대적 자유주의의 좌파 계열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 '좌파 자유주의'와 비슷해보여 헷갈릴 수 있는데 진보적 자유주의는 경제에 대한 간섭 및 복지 등을 통하여 불평등으로 인하여 자유가 침식되는 걸 막음으로써 '실질적인 자유'를 이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에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르다.

그리고 이렇게 이론과 현실들이 두루두루 섞인 결과 현재 미국 민주당계 리버럴과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행태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아이콘 국가 같은 경우 이미 30년대 이래 국, 공유화에 대해서 상당 부분 포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공항 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SOC 등도 민영화가 이루어진 상태다. 사실 의외로 미국은 이미지에 비해서 다른 유럽권 국가들에 비해 민영화를 안 한 축에 속한다. 영미권 중에서 민영화를 적극 실천한 동네는 영국이나 뉴질랜드다.

한국고 비교해 볼 경우, 웬만한 유럽국가들은 한국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세부담이 강하다 볼 수 있다. 물론 누진세제도 강하기는 하나, 절대적인 수준에서 볼 때 간접세나 기타 서민 증세의 강도 역시 강한 편이다. 일단 부가가치세율부터 한국, 미국과 유럽국가를 보면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 어떤 나라가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재원 부담 등의 측면에서부터 전국가적 합의가 필요하다 볼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해 저세금 저복지, 고세금 고복지 중에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은 이전보다 복지가 선호되어도 세금을 더 내는 것을 감수할 준비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식민통치와 독재정권의 통치 시기가 길었던 것의 영향일 수도 있겠으나, 한국에서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매우 낮은 편인데 그것이 증세나 정부의 역할 확대에 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내가 낸 세금이 잘 쓰여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증세나 그에 기반한 복지확대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최근의 연말정산 사태나 담뱃값 인상처럼 법인세 외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세금을 올리려는 시도는 큰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렇듯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하여 세심하고 꼼꼼한 준비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특히 세금 내기 싫다는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야 하며, 이를 무시한 정책은 아무리 그 목적이 좋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지옥문을 열 수 밖에 없다. 연말정산 때에 늘어난 세금 부담 정도는 북유럽이나 다른 대다수 선진국들이 지는 세금 부담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인데, 그와 같이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증세에도 저항이 크다면 보편적 복지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13]

북유럽식 사회모델(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그리고 더 넓게 잡으면 독일권 국가들도 포함)이 영미권식 사회모델(미국, 영국 등등)보다 우월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한국의 형편에서도 가능한 것인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많은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증세를 하냐마냐가 문제가 아니라 총 복지비용 중 비율을 청년복지에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즉, 복지를 그냥 전세대에 죄다 때려박는 개념이 아니라 저출산 극복과 청년 교육 등 취업을 위한 복지 확대에 초점을 맞춰 재투자 개념으로 사회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로 정책을 시행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만,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거대한 사회문제이고 정책 실효성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6년부터 저출산 관련 예산으로 소요된 전체 액수의 합은 123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저출산 노령화에 따라 부양해야 할 노인들의 수가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할 경우 증세가 없이 청년복지 비율을 늘림으로써 청년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망성 역시 날로 회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현대의 사회민주주의는 신좌파와 결합한 특성상 인권보호,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나 50년대까진 이렇지 않았다. 애시당초 19세기~20세기 초 기준으로 '다수'였던 노동자들을 위한 이념으로 출발한지라 '소수'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1930년대~1970년대 초 북유럽 국가들은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에게[14]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는 등 우생학적인 면모를 공공연히 보여주기까지 했다.[15] 이는 당대 유럽 사회가 좌우파를 막혼하고 우생학적, 사회진화론적 사고관이 팽배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군나르 뮈르달 등 초창기 북구형 복지모델 이론을 제창했던 사람들이[16] "선천적으로 일할 능력이 없는 자는 복지 혜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17] 이러한 부조리가 해결된 것은 빨리 잡아도 1960년대 후반부터인데,[18] 68운동의 영향으로 사민주의 진영 역시 급격한 세대교체를 겪었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 대상 불임수술을 폐지한 올로프 팔메도 1970년대 기준으로는 꽤 젊은 축에 속했다.

8.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

  • 고토쿠 슈스이 - 아나키스트 운동가이면서도 사회주의자로 인식되어있으나, 현대 기준으로 보면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하다.
  • 권영길
  • 김약수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당시 제헌국회 의원을 지냈던 인물이다. 소장파 출신. 사상적으로 여러차례 노선변경을 하다가 마지막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입장으로 정착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때는 아나키즘 단체 흑도회에서 아나키스트들과 활동하다가, 얼마 후 사회주의 노선으로 바뀌어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해방정국 초기에는 한민당에 가담한 적이 있었으나, 이는 '반(反)박헌영파'였기 때문이었을 뿐이었다. (김약수는 일제강점기때부터 줄곧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해온 사회주의 운동가였다.) 이듬해 1946년 한민당 내부에서 토지개혁 문제를 비롯해 좌우합작 문제에서 한민당이 소극적 태도를 나타내자, 환멸을 느껴 한민당을 탈당하고 이후 김규식계열 중도우파로 갈아탄다. 이후 국회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다 납북되었다.
  • 넬슨 만델라
  • 노회찬
  • 리오넬 조스팽
  • 마틴 루터 킹 - 마틴 루터 킹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동조한 진보적 성향의 인물이었다. 즉, 킹은 유물론에 근거한 마르크스주의 역사 해석에는 반대했지만,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전형적인 약점들을 지적하고, 대중의 자의식 성장에 기여했고, 기독교 조직의 도의심에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찬성하였으며 자본주의야말로 인간을 생산도구로 여기는 유물론이라고 주장하였다.
  • 말랄라 유사프자이 -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 이 사람의 사회주의 발언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고(영문)
  • 미하일 고르바초프 - 권위주의적이었던 소련 체제를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바꾸고자 하였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소련의 붕괴로 나타났다.
  • 박원석
  • 버니 샌더스 - 버니 샌더스는 자신을 '민주 사회주의'자라고 지칭했으나, 북유럽 모델을 주창하는 것에 비추어보면 사실상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민주 사회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지칭한것은 과거 냉전의 영향으로 동구권의 폭력을 기반으로한 '혁명 사회주의'와 다름을 어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빌리 브란트
  • 심상정
  • 안창호[19]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이론을 체계화한 사회민주주의의 창시자.
  • 여운형
  • 여영국
  • 올로프 팔메
  • 장건상
  • 조봉암
  • 조소앙
  • 조승수
  • 쿠르트 슈마허
  • 클레멘트 애틀리
  • 페르디난트 라살레
  • 프랑수아 미테랑
  • 헬렌 켈러

9.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10. 관련 문서


[참고] 자본론, 공산당 선언등을 저술해낸 마르크시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는 '오로지 혁명만이 공산주의로 이끌 힘'이라고 생각하여 사민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 자신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을 '과학적(현실적)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후 기술.[2] 이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립 불가능한 체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 둘을 적절히 조합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들은 혼합 경제의 방법으로 이를 현실화했다.[3] 이로 인해 발생한 논쟁이 바로 '수정주의 논쟁'이다.[4] 영어로는 Historical Materialism으로, 역사물질주의 정도로 직역될 수 있다. 역사는 "물질", 즉 경제(생산활동)에 달려있다는 뜻이다.[5] 엄밀히 말하면 레닌주의도 마르크스주의에 이상적 사회주의 중 하나인 블랑키즘을 혼합한 수정주의이지만 이들이 사회주의 좌파의 다수를 점하면서 그런 비판은 발생하지 않았다.[6]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렸다는 반대파의 비판을 자주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7] 노동당(영국)민주당(미국)에서 제창된 이념으로,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자유주의에서 이상적인 부분만을 추출해 체제 개혁에 도입하자는 일종의 중도실용주의이다.[8] 다만, 스웨덴 사민당은 직접적 사회화 대신 임노동 기금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기업의 소유권을 주는 방식으로 우회적 사회화를 추진하였다.[9] 연합뉴스 2016-04-01 《유럽서 사회민주주의 급속 퇴보…"병든 장미"》[10]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몰랐기에 글을 알아야만 알 수 있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알수가 없었다. 또한 가난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율도 높았지만 정통 사회주의 노선의 금욕주의적 경향에 질려 그보다는 온건한 온건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11]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에서 묘사한 "동양으로 건너 오면서 아시아의 신비주의, 미륵 신앙과 요상하게 결합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 주체사상의 북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등 아예 이념적 광신성과 반지성주의는 스탈린치하 소련을 능가한 이상한 아시아식 공산권 말이다.[12] 이런 나라들은 정부 부채가 양호한 대신 개인이 지는 가계부채 비중이 높다. 한국에 비해서도.[13] 조세저항은 내가 낸 세금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관료조직이 꿀꺽할꺼란 불신 때문에 나온다. 이가 없는 북유럽 국가들은 대다수가 세금 기꺼이 내겠다고 한다.[14] 스웨덴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강제 불임 시술은 2012년까지도 지속되었다가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결국 폐지했다.[15] 중앙일보 1997-08-27 "스웨덴 6만명 강제 불임 폭로로 파문"[16] 사실 군나르와 알바 뮈르달 부부의 주장은 복지 반대론자들을 회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17] Jenny Andersson, Between Growth and Security가 출처. 대한민국에서는 책세상에 의해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사이에서 - 스웨덴 사민주의, 변화의 궤적》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18] 1967년 덴마크가 강제 불임시술을 먼저 폐지했다.[19] 안창호, 역사공간, 2016 참고[20] 시대역량 탈당파가 창당한 군소정당. 제3의 길 노선을 취한다.[21] 자유주의 계열의 국민참여당과 사회주의/사민주의 계열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당하여 만들어져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에 비해 우파적 성향을 띤다.[22] 명목상으로는 '민족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강령에 내걸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로동당의 관제 야당으로써 주체사상을 표방하고 있다.[23] 여긴 사회민주주의+케말리즘(공화주의(Cumhuriyetçilik), 민족주의(Milliyetçilik), 인민주의(Halkçılık), 국가주의(Devletçilik), 세속주의(Laiklik), 혁명주의(İnkılapçılık))이 짬뽕된 형태다.[24] 프랑수아 미테랑과, 프랑수아 올랑드의 당[25] 유럽 사회당+이탈리아 민주당 등 무소속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로 이루어진 교섭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