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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19 08:57:20

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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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 자발
子發
최종직위 영윤(令尹)
미(羋)
경(景)
사(舍)
자발(子發)
아버지 불명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기원전 ???년

1. 개요2. 기록
2.1. 《순자》〈강국편〉
2.1.1. 주석

[clearfix]

1. 개요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장군. 초나라의 거족 경(景)씨 사람이다. 《순자》〈강국편〉에 등장한다.

2. 기록

2.1. 《순자》〈강국편〉

公孫子가 말하였다. “〈초나라의〉 자발(子發)이 군대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 채(蔡)나라를 공격하여 채나라를 점령하고 채후(蔡侯)를 포로로 잡았다. 돌아온 뒤에 초 선왕에게 復命하기를 '채후가 그의 사직을 받들어 초나라에 귀순하였습니다. 신 경사(景舍)는 〈동행한〉 두세 명의 초나라 신하에게 요청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뒤에 초 선왕이 그에게 포상을 행하니, 자발이 사양하기를 '훈계를 행하고 명령을 내려 적이 후퇴하였다면 이는 군주의 위력 때문이고, 군대를 이동시켜 공격을 가해 적이 후퇴하였다면 이는 장수들의 위력 때문이고, 교전하여 무력을 사용해 적이 후퇴하였다면 이는 병사들의 위력 때문입니다. 신 경사가 병사들의 위력으로 인해 포상을 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나(순자)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자발이 돌아와 군주에게 復命하는 태도는 공손하다 하겠으나 그가 포상을 사양하는 것은 고지식하다. 대체로 어진 사람을 존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부리며,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어떤 특별한 군주가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라, 저 상벌이란 고대 聖王의 정치 원칙이고 백성을 통일시키는 근본이며, 선한 자는 찬미하고 악한 자는 증오하는 응보이다. 나라를 다스릴 때 반드시 이 원칙을 따르는 것은 고금이 동일하다. 옛날에 명철한 제왕은 큰 일을 거행하고 큰 공을 세웠다. 큰 일이 이미 이뤄지고 큰 공이 이미 세워진 뒤에는 군주가 그 성과를 누리고 뭇 신하들도 그 공을 누렸으니, 사대부들은 작위가 올라가고 관리들은 녹봉이 늘어나고 일반 병사들은 급료가 늘어났다. 이로 인해 좋은 일을 행하는 자는 격려하고 나쁜 일을 행하는 자는 제지하여 위아래가 한마음으로 단결하고 삼군(三軍)이 공동으로 노력하게 된다. 이리하여 각종 일이 이루어지고 공적과 명성이 크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발은 유독 그렇지 않아 고대 聖王의 정치 원칙을 위반하고 초나라의 법을 어지럽히며, 공적을 세운 신하들의 기를 죽이고 상을 받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함으로써 그의 친족에게 모욕을 안기고 그의 후손들에게 지나치게 겸양하여 자기 자신을 낮추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홀로 이것을 개인의 청렴으로 여기고 있으니, 어찌 가장 중대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子發이 돌아와 군주에게 復命하는 태도는 공손하다 하겠으나 그가 포상을 사양하는 것은 고지식하다.'고 말한 것이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2.1.1. 주석

자발(子發)은 초나라 영윤이니, 그 성은 알 수 없다.
《전국책》〈초책〉에“장신(莊辛)이 초 양왕에게 간하기를 '채 성후(蔡 聖侯)가 남쪽으로는 高陂를 유람하고 북쪽으로는 巫山을 올라갔으며, 왼편에는 나이 어린 첩을 끼고 오른편에는 총애하는 여인을 껴안고서 이들과 함께 고채(高蔡) 등지에서 말을 달리고 국가의 정사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장차 저 子發이 곧 초 선왕의 명령을 받아 붉은 밧줄로 자기를 결박하여 그의 왕에게 바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사기》 〈관채세가〉에 의하면 채후 제가 초 혜왕에게 멸망되었다고 하였는데, 장신은 '선왕'이라고 하였으니, 《사기》의 내용과는 같지 않다.

○盧文弨:살펴보건대, 《전국책》〈초책〉에 '左枕'은 '左抱'로 되어 있다. 채나라에는 성후(聖侯)가 없으니, 吳師道는 “마땅히 '영후(靈侯)'로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혹시 옛날에 이 둘을 통칭했는지 모르겠다. 鮑彪가 말하기를 “《춘추》에 소공 11년에 '楚子가 蔡侯 般을 유인하여 申 땅에서 죽였다.'고 하고, 경전에는 자발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자발을 보내 그를 불렀을 것이다. 楚子는 靈王이다. 宣王이라 한다면 〈맞지 않으니 그가 살았던 시기는〉 蔡나라가 멸망한 지 80년 이후이다. 《회남자》〈도응훈〉에 '子發伐蔡 踰之 宣王郊迎(자발이 채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니, 선왕이 직접 교외로 나가 그를 영접하였다.)'이라 하고, 《회남자》〈인간훈〉에 또 '威王에게 죄를 얻었다.'고 한 것은 모두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살펴보건대, 鮑氏와 吳氏의 설은 〈선왕은〉 초 영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인하였다는 것과 공격하였다는 것은 그 일이 같지 않으니, 의문스러운 것을 당분간 보류하여 두는 것이 좋겠다.

王念孫:蔡나라는 초나라 북쪽에 있고 초나라 서쪽에 있지 않으니, '서쪽으로 가 蔡나라를 공격하였다.(西伐蔡)'라고 말할 수 없다. 將은 〈그 음이〉 子와 匠의 반절이다. '西'는 마땅히 '而'로 되어야 한다. 자발이 군대를 거느리고 蔡나라를 공격한 것을 말한다.

자발은 초나라의 대사마 경사(景舍)이다. 王念孫의 주에 “채나라는 초의 북쪽에 있고 서쪽에 있지 않으므로 '西伐蔡'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西'는 마땅히 '而'로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于鬯은 “蔡나라는 고채(高蔡)이다. 《전국책》〈초책〉에 나오는 것으로, 이는 분명히 별개의 한 蔡나라이고 채중의 후손이 주래(州來)로 옮겨간 蔡나라는 아니다. 이 '西'자를 볼 때 충분히 그 근거가 된다. 고채의 蔡나라는 실제로 초나라의 서남쪽에 있었으니, 이 '西'자는 분명히 오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王天海는 “蔡는 高蔡‧湖南‧湖北의 접경에 있었던 나라로서 河南‧上蔡의 蔡는 아니다. 于氏의 설이 옳고 王氏 설은 틀렸다.”라고 하였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