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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오 孫叔敖 | ||
손숙오가 쌍두사를 땅에 묻는 장면이다 | ||
최종직위 | 영윤(令尹) | |
성 | 미(芈) | |
씨 | 위(蔿) | |
명 | 오(敖), 애렵(艾獵) | |
자 | 손숙(孫叔)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기원전 ?년 |
고향 | 하남성(河南省) 신양시(信陽市) 회빈현(淮滨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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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춘추시대 패자였던 초장왕의 명신. 춘추시대 초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명신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초장왕을 춘추오패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손숙은 그의 자인데, 춘추시대의 습관 중 하나가 자+휘로 사람을 부르는 것으로 손숙오도 그 예이다.2. 생애
본래 이름은 위오(蔿敖)로 위씨[1]다. <세본>이라는 책에서는 위씨라는 것에 착안해 초왕 분모 이후로 대대로 유력 세경가 중 하나였던 위씨 일가의 후손으로 만들었다.[2] <세본>의 기록이 틀렸음은 간단하게 알 수 있는데 <사기>, <여씨춘추>, <맹자>, <순자>, <설원>의 기록에서 손숙오의 신분이 비인임을 암시하고 있다.[3]그의 어린 시절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손숙오의 어머니가 손숙오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머리 둘 달린 뱀을 만났기 때문에 운다고 대답했다.[4] 어머니가 손숙오에게 그 뱀은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손숙오는 다른 사람이 봐서 그 사람도 죽을까봐 자기가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몰래 덕을 베푼 사람은 사악한 기운이 덮치지 못한다고 하니 손숙오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고 한다. 손숙오의 덕을 나타내는 일화.
초장왕이 왕위에 오르고, 당시 영윤이었던 투월초(鬪越椒)의 세력이 줄자, 이에 불만은 품은 투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초장왕은 비인[5]이었던 손숙오를 등용한다. 역사를 바꾼 초장왕의 과감한 인사였다.
투월초의 반란이 진압되고 초장왕이 나라를 안정시킬 인재를 뽑았을때 당시 지방관인 심윤에 의해 천거되었다.[6]
그가 세운 업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토지 개간과 화폐 개혁이 있다.
토지 개간은 내전으로 황폐화된 도읍 영[7]의 농지를 복구하고 땅을 다듬어 민생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화폐개혁은 그간 무거웠던 화폐를 경량화시켜 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여 형주지역[8]의 교통까지 자연스레 활발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하였다.[9]
이를 두고 초장왕이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었고, 초성왕에게 자문[10]이 있었듯이 내게는 손숙오가 있도다."라고 할 정도. 게다가 제환공과 초성왕을 본받아 초장왕도 초나라 사람이면 함부로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다만 군사적 능력으로는 정치적 능력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는지 진(晉)나라와 일대 결전을 벌인 필 전투에서는 일개 장수였던 오삼[11]에게 일등공신 자리를 내준다.
후에 죽을 때는 그릇 하나 성한 것이 없고, 또한 가진 재산이 없어 집이 깨끗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생긴 단어가 청빈. 사서마다 민간에 전해지는 내용이 각자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궁중배우 우맹이 손숙오의 아들의 비천한 삶을 구해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12]
[1] 한자 표기는 蔿(애기풀 위)=薳(애기풀 위) 두 가지로 하는데, 薳은 '원'으로도 읽히기에 원씨라고 읽기도 한다.[2] 당시 세경가는 자국의 왕공족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초나라는 그 경향이 아주 심했다. 가장 대표적인 춘추시대 초나라 세경가인 투씨(鬪氏), 성씨(成氏), 굴씨(屈氏), 위씨(蔿씨)와 전국시대 세경가인 굴씨(앞의 굴씨 맞다), 소씨(昭氏), 경씨(景氏) 모두 그 뿌리를 초나라 왕실에 두고 있다.[3] 위씨일가 중에서도 몰락한 쪽이라 비인 생활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4] 당시 초나라에는 머리 둘 달린 뱀을 보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5] 촌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당시에는 국도 밖에 사는 농민과 소읍민들을 일컫는 말[6] 손숙오가 침(沈) 땅에 은거하고 있을 시절 머리가 2개인 뱀(양두사)를 보고 죽여서 음덕을 세워 영윤에 올랐다는 민간이야기가 여기에서 전해진다.[7] 삼국지에 나오는 강릉 근처이다.[8] 중국의 전통적인 구주에서 초나라가 위치한 곳이 형주이다.[9] 사마천의 사기에서 순리열전에 따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10] 관중과 나란히 비견되는 인물로 초성왕 시절의 명신이다. 이름은 투누오도이며, 호랑이 젖을 먹은 사람이란 뜻이다. 역사서마다 곡어토, 누오토 등으로 다르게 기술되어 있지만 초나라의 언어를 음차한 것이기 때문에 투누오도라 읽어야 옳다.[11] 오자서의 증조부이다. 초장왕때 불비불명 고사의 주인공 후보 중 한 명.[12] 역사가들이 각자 다른 버전의 민간전승을 채택해서 기술하였기 때문에 이야기의 차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