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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1 23:08:04

계성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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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후 | 桂城侯
왕원 | 王沅
작위 계성후(桂城侯)
본관 개성 왕씨
원(沅)
부모 부친 신안후 왕성
모친 창락궁주(昌樂宮主) 왕씨[1]
형제자매
2남 1녀 중 장남 [ 펼치기 · 접기 ]
계성후 왕원(王沅)
영인후 왕진(王稹)
원덕태후 유씨
배우자 수춘궁주(壽春宮主)[2]로 추정
자녀 4남
장남 - 청화후 왕경(王璟)
차남 - 하원공 왕춘(王瑃)
삼남 - 수사도 왕희(王禧)
사남 - 왕기(王樭)
생몰연도 연대 미상

1. 개요2. 가족 관계
2.1. 조상2.2.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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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왕족.

이름은 왕원(王沅). 작위는 계성후(桂城侯)다.

沅과 沆의 자형이 비슷한 이유로 수춘후(壽春侯) 왕항(王沆)[3]과도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왕원으로 기록된 것이 1번,[4] 왕항으로 기록된 것이 4번[5]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본명은 왕항(王沆)인 것으로 추정된다.

2. 가족 관계

2.1. 조상

평양공파 왕족으로 조부 한남백(漢南伯) 왕기(王杞)는 예종문경태후의 딸 승덕공주(承德公主) 왕씨와 결혼해 아들만 셋을 낳았다. 부친은 그 중 장남인 신안후 왕성(王珹)이다. 모친은 인종공예태후의 딸 창락궁주(昌樂宮主) 왕씨[6]니, 계성후 왕원은 예종의 증손자이자 외증손자다. 신안후 왕성의 딸로 강종의 제2비인 원덕태후는 계성후 왕원의 누이가 된다.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계성후 왕원
(? ~ ?)
신안후 왕성
(? ~ 1178)
한남백 왕기
(? ~ ?)
승화백 왕정
(? ~ 1130)
흥수궁주
(? ~ 1123)
승덕공주
(? ~ ?)
고려 예종
(1079 ~ 1122)
문경태후
(? ~ 1118)
창락궁주
(? ~ 1216)
고려 인종
(1109 ~ 1146)
고려 예종
(1079 ~ 1122)
문경태후
(? ~ 1118)
공예태후
(1109 ~ 1183)
임원후
(1089 ~ 1156)
진한국대부인 이씨
? ~ 1138

2.2. 후손



[1] 인종의 3녀[2] 고려 인종의 왕자 대령후 왕경의 딸[3] 최충헌의 차남 최향(崔珦)의 장인으로 사공(司空) 직위를 가진 아들 왕종(王琮)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4] 《고려사》 종실열전에서 등장[5] 《고려사》 세가, 고려사절요에서 등장[6] 인종의 3녀[7] 아버지인 신안후 왕성이 인종의 딸, 숙부인 한남백(漢南伯) 왕기(王杞)는 인종의 장남 의종의 딸, 동생인 영인후 왕진인종의 3남 명종의 딸과 혼인하는 순차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덧붙여 장남 청화후 왕경의 이름은 대령후 왕경의 이름과, 장손 승화후 왕온의 이름은 대령후의 장인 강릉공 왕온의 이름과 한자까지 공유한다. 신종 초 함께 승작되는 왕평, 왕면, 왕진, 왕우가 모두 의종명종의 사위라는 점도 그 근거다.[8] 희종의 차녀 영창공주(永昌公主)와 혼인[9] 신종의 장녀[10] 강종의 장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