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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7:12:38

괄목상대

1. 개요2. 정사 여몽전3. 강표전의 괄목상대4. 기타 창작물에서

고사성어
긁을 서로 대할

1. 개요

현대 중국어에서는 對(대할 대) 대신에 看(볼 간)을 써서 刮目相看(괄목상간)이라고 한다. 뜻은 일치.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으로 안 본 사이에 부쩍 재주가 늘었음을 의미한다. 윗사람에게 이 성어를 사용하는 것은 실례이다.

노숙여몽을 만나 그의 학식이 크게 진보한 것에 놀라며 과거의 오하아몽이 아니라고 하자 여몽은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마주하여야 합니다(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출전(出典)라고 대답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오하아몽과 그 유래가 같으나 의미는 상반되는 사자성어. 일본에선 이 유래 그대로 관용어로 쓰고 있다 "남자는 3일 정도면 괄목상대한다(男子、三日あれば刮目する。)."#

비슷한 말로 일신우일신()이 있다.

2. 정사 여몽전

오나라노숙은 여몽이 멍청하기만 한 놈이라며 경시하고 있었는데, 주유가 죽어 육구로 가던 도중 여몽의 둔영 근처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여몽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면서 여몽에게 들를 것을 청한다.

어차피 근처고 하니 노숙은 근처에 들려서 여몽과 술을 마시는데 거기서 갑자기 여몽이 질문을 한다.
"공께서 중임을 맡아 관우와 이웃하게 되었는데, 장차 어떤 계략으로 불우(不虞)의 상황을 대비하고 계십니까?"
예전에 여몽이라면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질문. 노숙이 경황 중에 응답하길
"때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할 것이오."
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니 여몽은
"지금 동서(유비와 손권)가 비록이 한 집안이 되었으나, 관우는 실로 곰이나 범 같은 장수인데 어찌 계획을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고는 이어서 노숙을 위해 5가지 계책을 짜 주었다. 노숙이 이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서 그 등을 치며 말하길
"여자명(자명은 여몽의 자), 공의 재략이 미치는 바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내가 미처 몰랐구려."
라 하면서 마침내 여몽의 모친에게 절하고,[1] 우호를 맺고 헤어졌다.

여기서는 오하아몽, 괄목상대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후대의 창작이냐? 그것은 아니다. 손권이 공부를 권한 것도, 이 두 가지 고사성어도 여몽전의 배주(裵注) 강표전(江表傳)[2]에 나온다.

3. 강표전의 괄목상대

일단 강표전에서는 손권이 여몽과 장흠(蔣欽) 둘에게 말한다.
경들은 이제 큰 임무를 맡아 새 임지로 떠나니, 이제는 마땅히 공부를 많이 해서 스스로의 견식을 넓혀야 할 것이오.
라는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말을 한다. 여몽은 이를 듣고 '독서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나는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서 이기면 되는 것이지 공부는 무슨 공부인가?'라고 생각하고 손권에게 대답한다.
군중에 있으면서 항상 고달프고 일은 많아서 책을 읽을 여유가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걸 듣고 손권이 여몽에게 긴 대답을 한다.
내가 어찌 경들 보고 경전을 공부해서 박사(博士)까지 되기를 바라겠소? 다만 경전을 읽어서 옛 사람들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았으면 하기를 바랄 뿐이오. 경이 '일이 많다'고 했는데, 나와 비교해서는 어떻겠소?

나는 어릴 때 시경, 서경, 예기, 춘추좌씨전, 국어 등을 이것저것 다 읽어, 읽지 못한 것은 주역뿐이오. 형님(손책)의 유업을 이어받은 후에도 삼사(三史)와 제자백가의 병서(諸家兵書)를 정독해, 스스로는 많이 안다고 자부하고 있소이다.

경들 두 사람은 의지와 성질이 지혜가 밝아 깨달음이 빠르기(朗悟) 때문에, 학문을 하는데 적합한 성격이라 배우기만 하면 꼭 이를 수 있을 터인데도 어째서 하려 하지 않소? 우선 손자, 육도, 춘추좌씨전, 국어 및 삼사를 읽도록 하시오.

공자께서도 "하루 종일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생각해도 다 무익한데, 오로지 배우는 것은 달랐다(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以思 無益 不如學也)."라고 하셨는데,[3] 한나라의 광무제도 군대를 이끌고 다니면서도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手不釋卷) 조맹덕(조조)도 스스로 "늙어서도 배움을 좋아한다"고 하거늘, 그대들은 왜 자기개발에 힘쓰지 않는다는 말이오?
손권의 말에 결국 여몽은 열심히 글을 읽기 시작해 그 뜻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여몽 주위의 사람들이 이제는 여몽을 학문적으로 이길 자가 없게 되었다. 나중에 주유가 죽어 노숙이 주유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오게 되었다. 이때 여몽하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때 수차례 여몽의 말솜씨에 밀렸다.

노숙이 여몽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여섯 살 적은 동생이 단지 전략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학식은 넓고 밝고, 더이상 오하아몽(吳下阿蒙)이 아니구려.
이에 여몽은 이렇게 대답했다.
학자는 헤어져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빈 후에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삼 일을 만나지 않으면 똑똑히 눈을 크게 뜨고 상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이 항목에서 다루는 괄목상대의 유래. 그리고 여몽은 이어서 노숙에게 질문한다.
그나저나 형님(노숙)이 예전에 말씀하신 그 양후(穰侯)는 어떤 방법으로 되실 생각이십니까?

노숙은 이에 답하길
형(노숙)은 지금 공근(주유)의 후임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힘은 임무를 맡으셨는데, 그곳도 게다가 관우와 인접한 곳으로 말입니다. 관우는 워낙 출중하기도 하거니와 학문을 좋아해, 춘추좌씨전을 읽어, 거의 전부를 입으로 줄줄 외운다는데, 그런데 그는 강직하고 웅대한 기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한편으로 자부심이 매우 강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관우와 마주보게 되었으니까, 간단하건 복잡하든(單複) 뭔가를 준비해서 그를 맞설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몽은 은밀하게 노숙을 위해서 세 개의 책략을 말했고, 노숙은 공손하게 그것을 경청해, 비밀로 삼아 발설하지 않았다. 손권은 항상 탄식하며 말했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성장하는 것과 동시에 향상해 가는 것이지만, 여몽, 장흠 정도로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부귀와 명성을 손에 넣고 있으면서도, 더욱더 자제하면서 학문을 좋아해, 옛 책들을 즐기고 재화를 경시하고 도의를 존경하니, 이는 마땅히 따라야 할 규범이 되었으며, 모두 국사(國士, 나라의 선비)가 되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것이 강표전에 있는 괄목상대의 기록.

4. 기타 창작물에서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이벤트로 구현되었으며, 여몽, 장흠이 괄목상대 이벤트를 통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물론 메인은 여몽이고 장흠은 미미한정도). 이 이벤트는 초기 시나리오의 여몽과 후기시나리오의 여몽을 확실하게 구별짓는데, 초기시나리오, 그러니까 괄목상대 이벤트를 보기 전의 여몽의 능력치는 통솔, 무력이 80대, 지력, 정치는 바닥인 멧돼지 스타일이지만, 괄목상대 이벤트를 보고난 후엔 통솔이 90대, 지력은 80대 후반 정치가 80 내외인 괴물이 된다. 삼국지 5에선 원래 지력이 90인 여몽이 이 이벤트를 겪고 지력이 추가로 +5가 되어 지력 95가 된다. 삼국지 10에선 역사적으로 괄목상대 일화가 벌어지는 시점부터 시나리오에 따라 능력치가 점점 오르기까지 한다.(207년 시나리오부터 217년까지 상승) 삼국지 11에서도 미니 이벤트로 구현이 되어있는데 이벤트 조건이 손권이 군주여야 되는 정말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손권이 군주여야 하기 때문에 손견이나 손책이 군주여도 괄목상대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는다. 괄목상대 일화는 여몽 스스로 깨우쳐 나온 것이 아니고 손권이 여몽, 장흠에게 면학하기를 권유했기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기에, 인물 간에 관계를 생각하면 손권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맞다. 다만 게임으로서는 조금 더 융통성이 있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다.

삼국지톡에선 못 먹어서 마른 몸에 기본적인 맞춤법과 산수를 틀려먹어 지켜보던 주유를 혼란에 빠뜨리더니 손책에게 자랑스러운 손가네 군복을 입고는 자신이 무식한 것에 대한 변명은 그만 늘어놓으라며 일침을 들었고 주유를 과외교사로 배치받고는 장흠과 같이 공부한다. 이후 황조 일당을 처리할 때 이전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근육질에 맞춤법도 틀리지 않고 진지한 모습으로 진취의 목을 베어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1] 친구의 어머니도 내 어머니처럼 섬기겠다는 진정한 친교의 의미였다.[2] 강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장강 이남 지역을 말한다.[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으며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서 생각하니,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이는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로, 뭐니뭐니 해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으뜸이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