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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7:36:26

광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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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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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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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의 로고.

1. 개요2. 역사
2.1. 신문화운동과 항일정신의 발판2.2. 위기와 극복2.3. 다시 찾아온 위기
3. 특징4. 광주극장 고향사랑기부제 5. 광주극장 등록문화재 추진6. 관련 영상7. 관련 기사8. 여담9. 관련 문서

1. 개요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5가에 위치한 광주 최고(最古)이자 현존하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극장.[1]

현재는 오랜 시간의 개보수 끝에, 856석이 확보되었다. 메가박스 부산극장 1관이 리모델링하면서 좌석이 1/5로 줄어드는 바람에(...) 실내 영화관 중 최다 좌석을 보유하는 영화관이 되었다.

광주극장 네이버 카페 바로가기[2] 광주극장 페이스북 바로가기 인터넷 예약 홈페이지(디트릭스)

2. 역사

2.1. 신문화운동과 항일정신의 발판

학교법인 유은학원의 설립자이자 만석꾼이었던 최선진이 1933년 30만 엔(円)의 자본금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35년 10월 1일1,250명 수용 규모의 광주극장을 개관했다.[3]

사실 당시에 이미 충장로 (구)런던약국 사거리 근처 파레스호텔 자리에 광주좌(光州座)라는 극장이 있었다. 하지만 광주좌는 일본인이 세운 극장 1호였고, 그런 의미에서 조선인이 세운 광주극장은 당시 지역민들에게 큰 충격을 불러왔다고 한다.[4]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제의 검열을 받으면서도 창극단이나 판소리 등을 극화한 공연을 주로 상영하면서 신문화운동과 함께 항일정신을 이어갔고, 해방 후에는 김구의 강연회나 음악회, 연극제를 여는 등 문화교육운동의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하지만 1968년, 극장에 큰 화재가 나서[5] 건물 대보수를 했다. 1997년에는 다시 내부 좌석교체를 했고 개보수 및 건물 전면 일부를 변경했다.

2.2. 위기와 극복

21세기에 들어서자 멀티플렉스가 광주에도 많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밀리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에는 광주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극장 폐쇄 명령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유는 극장이 학교보건법상 유해시설이며, 15m 안에 유치원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광주극장은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야 예술영화 프로그램을 신설해 다른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상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교육청은 행정명령 불이행으로 극장주를 검찰에 고발했고, 극장 측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서 맞섰다. 결국, 2004년 5월 27일, 헌재는 학교정화구역에서의 극장 영업을 금지한 학교보건법 관련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항소심 판결문 전문 헌법재판소 2004. 5. 27. 선고 2003헌가1,2004헌가4(병합) 전원재판부 판결문 전문

2.3. 다시 찾아온 위기

2002년부터 예술영화지원사업을 통하여 영진위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어 극장운영에 큰 버팀목이 되어 왔으나, 2015년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6]으로 변경됨에 따라 지원금이 끊기게 되어 2015년 이후부터 점차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고육지책으로 현재는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자운영이 계속된다면 광주극장의 존속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3. 특징

4. 광주극장 고향사랑기부제

5. 광주극장 등록문화재 추진

6. 관련 영상

7. 관련 기사

8. 여담

9. 관련 문서



[1] 주식회사 설립년도를 기준을 두면 2022년 현재 한국 나이로 89살, 극장 설립년도로 기준을 두면 87살이다! 서울에는 광주극장보다 역사가 오래된 극장이 몇몇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참고로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은 인천 신포동에 있는 애관극장이다.[2] 홈페이지가 따로 없고, 이 카페에서 상영일자와 안내를 한다.[3] 참고로 이 극장이 광주광역시에 조선인이 설립한 최초의 극장이다.[4] 지금이야 별로 건물이 커보이지는 않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큰 건물 자체가 얼마 없으니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5] 2018년 6월 현재가치로 12억 쯤 된다.[6]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 24편 중 매월 2편을 주말 프라임타임에 12차례 상영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라고 한다.[7] 현재는 CGV 전주효자점 IMAX관의 스크린이 호남에서 가장 큰 스크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