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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13:41:15

권희영

파일:2013061602074_1.jpg
이름 권희영(權熙英)
출생 1956년 ([age(1956-01-01)]세)
경기도 안성시[1]
학력 신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국사학 / 학사)
파리 제7대학교 (역사학 / 석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 박사)
현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학전공 명예교수
약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한국현대사학회 회장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
프랑스 루앙대학교 객원교수
해군제2사관학교 한국사 교관

1. 개요2. 경력 및 주요 활동3. 연구 활동4. 논란
4.1.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 발언4.2. 일본의 쌀 수탈/수출 발언
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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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2. 경력 및 주요 활동

신일고등학교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하여 파리 제7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해군2사관학교[2] 한국사 교관으로 군 복무[3]하였으며, 프랑스 루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2011년 5월 기존의 한국근현대사학계 주류와 입장을 약간 달리하는 한국현대사학회 발기에 참여했으며,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2014년 5월 1일부터 2015년 3월 22일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으로 재직하였다.

전공 분야는 한국 근현대사이며, 그중에서도 공산주의 운동사, 중앙아시아 지역 코리안 역사를 연구하였다. 자유시 참변에 관한 연구는 학술적으로 중요한 선행 연구로 평가 받는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만큼 아날학파의 영향을 받아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을 접목하는 심성사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한국 라깡과 현대 정신 분석학회 회장을 지냈다.

2008년부터 월간 자유, 문화일보, 중앙일보, 데일리안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활동하였다. 2013년 10월에 그동안 기고한 글들을 모아 『가야만 사는 길 역사는 안보다』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는 특히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용도서 뉴라이트 논란을 대표하던 저자였으며,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용 도서 국정화를 주도한 학자 중 한 명이다.

3. 연구 활동

친일 극우보수주의, 반공, 우익 성향이다.[4] 좌익, 반미 학자들과 대립하지만 권희영 교수의 연구는 주류(=강단)역사학계에서 존중 받고 있다. 과거에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역사비평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러시아 지역 조선인 공산주의 운동사 및 조선인 사회, 자유시 참변, 한러 관계사를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후 근현대 한국 여성사, 미군정기 경제 개편, 한국사에서의 근대성 문제, 번역과 동아시아의 근대에 대한 연구, 정신분석학을 통한 한국사 연구 등을 하였다.

4. 논란

4.1.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 발언

"교학사 교과서는 수정 수용 입장을 밝혔지만, 나머지 7종 교과서는 일부는 수정하고 일부는 거부하였다."
"수정을 거부한 핵심 사항은 바로 인민민주주의 혁명 노선에 관련된 부분"
"스탈린·김일성·박헌영이 공유하는 인식이 중학교 역사 교과서 서술의 기본적 프레임이다."

2015년 국정화 사태에 주목 받았지만 이러한 발언의 시작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부터 계속되었다.

2013년 5월 31일, 한국현대사학회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연 토론회가 그 시작으로, 당시 권희영 교수는 "대한민국의 탄생을 죄악시하는 집단이 80년대 말 교과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스탈린·김일성·박헌영이 공유하는 인식의 기본틀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서술되어있다"며 현행 검정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주장하였다.#

2013년 11월 12일 한국현대사학회 주최로 열린 '8종 역사교과서 비교·분석 세미나'에서 '좌파의 역사 전쟁'을 주제로 발표한 권희영 교수는 교학사를 제외한 나머지 7종 교과서의 기본적인 목표가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당시 권희영 교수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에도 이와 같은 방향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10월 26일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주최한 세미나 '한국사 교과서, 왜 필요한가'에서 역사학계에 극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에서 극우를 배제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극우가 있느냐"
"나는 나치주의와 군국주의를 주장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극우를 배제한다고 하느냐"
"김 위원장이 논란의 핵심의 선 분들을 배제하겠다. 참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얘기했는데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일한 사람은 논란의 중심에 섰으니 배제하고 가만히 앉아있던 기회자의자들이 교과서를 쓰는 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냐"
"국사편찬위원회가 또 같은 오류를 반복 중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은 지금까지 발언 한 것을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헌법 가치에 충실한 사람을 모든 분야에서 초청해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든지 아니면 국회가 강력히 요구해 국사편쳔위원장을 사퇴시키든지 둘 중 하나"권희영, 좌·우편향 집필진 배제 방침에 "김정배 사퇴시켜야"

이런 점들에 대해 유시민토론에서 격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4.2. 일본의 쌀 수탈/수출 발언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일본에) 쌀을 ‘수출’한 것"
"만약 일본과 조선 사이에 교역 조건의 차이에 의해 조선이 불리했다면 이를 수출 과정에서 조선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표현을 해야지 수탈당했다고 하는 건 안 된다."

2015년 개발되어 2016년부터 적용 예정인 초등학교 6학년 사회과 교과서에서 "일본이 의병을 대토벌했다", "조선이 일본에 쌀을 수출하였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10월 14일, JTBC 뉴스룸에서 국정화 찬성-반대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기홍(새정치연합 의원): 이게 뭐냐 하면 내년부터 사용될 초등학교 6학년이 사용할 사회과 교과서입니다. 이게 박근혜 정부 들어서 집필을 시작한 교과서고 내년에 지금 사용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어떻게 돼 있습니까? 일본이 의병을 대토벌했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쌀을 수출했다고 했습니다. 수탈과 수출이 어떻게 다르냐고요? 수출은 정상적인 교역행위입니다. 수탈은 강제로 뺏어간 거죠. 누구나 상식적으로 수탈당했지 어떻게 쌀을 우리가 수출을 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았습니까?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만약에 의원님이 그런 식의 개념을 가지고 한다면 수출이 맞습니다.

유기홍: 여기는 또 뭐라고 했냐면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표현해 놓고 있습니다. 이게 일본 교과서죠. 어떻게 한국 교과서입니까? 우리가 이런 국정 교과서가 나올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희영: 수출과 수탈의 차이는 어떤 우리에게 뉘앙스를 주냐 하면 수출은 돈을 받고서 내보낸 거고, 외국으로. 수탈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간 거라고 하는 뉘앙스를 주게 돼요. 만약에 그 뉘앙스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예컨대 무슨 얘기냐면 뺏어갔다고 하는 의미, 돈을 주지 않고 뺏어갔다는 의미에서 수탈을 썼다고 한다면 그 당시 현실을 잘못 이해한 거란 얘기예요. 왜냐하면 돈을 주지 않고서 뺏어간 거는 없어요. 그 당시에 만약에 일본과 조선 사이에 이 교육 조건이라든가 이런 것의 차이에 의해서 조선이 불리했다는 것을 얘기한다고 한다면 그러한 수출 과정에서 조선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식으로 표현을 해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수탈당했다고 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유기홍: 100원짜리를 10원에 갖고 가는 건 수탈입니다. 어떻게 돈 하나도 안 주고 갖고 가는 것만 수탈이라는… 국어 교과서까지 지금 새로 쓰십니까?

5. 여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 기용해야 했기 때문에 행정 분야에 친일파가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동원하려 했고, 불가피하게 죄악이 심한 사람들만 처벌하는 온건한 정책을 쓴 것"
김원웅 광복회장 발언에 재조명되는 “친일 이승만, 친나치 안익태”

6. 관련 문서



[1] #[2] 우수한 해군 중·단기 복무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해군사관학교와 별도로 1975년에 경남 진해에 설립된 단기사관학교이다. 제7기를 마지막으로 1983년 교육이 종료되었다.[3] 교수들 중에서는 병사 대신에 교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경우가 있다. 정치학자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학사장교 입대 후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복무하였다.[4] 부정적인 서술이 아니라 권희영 교수의 성향을 설명하는 문단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반공 우익이란 개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