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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9:52:49

역사비평

歷史批評



1. 소개2. 유사역사학자들의 비난3. 참고 링크

1. 소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주관하고 역사비평사가 발간하는 대중학술지로 1년에 4번 간행하는 계간지다.(봄, 여름, 가을, 겨울). 창간 이래 148호(2024년 가을호)를 출간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결호나 휴간 없이 간기를 지켜 왔다.

역사문제연구소는 학술지를 대중학술지와 전문학술지로 나누어서 발간하는데, 대중학술지가 '역사비평', 전문학술지는 '역사문제연구'다. 참고로 전문 학술지인 '역사문제연구'는 1년에 2번 간행.(2022년부터 1년에 세 번 간행)

1987년 9월에 무크지로 창간되었으나, 1988년 3월 26일계간지로 바뀌었다.

주로 역사시사, 정치 등 주요 쟁점 분야들을 역사학 전공 교수 및 학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논문 형식으로 다룬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념편향이 심하다 못해 북침까지 운운했던 흑역사가 있다. 북한이 공표한 기밀자료에 나온다며 6.25 전쟁 남침유도설을 주장하거나 북침 의혹, 미국의 세균전 논쟁을 설득력 있다며 주장한 논문을 게재하고 1994년 핵위기때 북한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했었다. 이런 논문중에는 참고자료로 소설을 인용하거나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추정만 일삼아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논문도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NL성향은 지양하고 좌파들이 싫어할 만한 논문들도 올라오고 있고 기존의 현대사 위주의 정치사에서 탈피했다. 또한 대중적이거나 기자등 언론인보다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전문가를 위주로 섭외하고 있으며 낙성대 학파 등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 논쟁에서도 건전한 학문적 논쟁을 싣고 있으며 기존에 등한시 된 풍속사나 시각사,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와 방관자 문제 등의 다각적인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 성향을 과도하게 드러낸 글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2016년 봄호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을 주제로 한 논문들이 실리기도 했었고, 이 논문들은 나중에 역사비평사에서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이란 제목의 책으로 묶어져 출간되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보유한 박헌영 등 해방 전후 사회주의자 연구 데이터는 국내에서 가장 상세하고 정확해서 이정 박헌영 전집(역사비평사)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

2. 유사역사학자들의 비난

편향논란은 있었을지 몰라도 학술지는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유사역사학자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한다.

김상태는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에서, 박원순을 비롯한 역사비평사 편집위원들이 송호정 교수와 주보돈 교수에게 집필을 맡겼다는 이유로 "역사비평사 편집위원들이 고대사에 무지해서 희극을 보여줬다."는 비난을 했다.[1] 그래놓고 주보돈 교수의 논문은 실제 사실과 다르게 인용해놓고 "역사비평사 편집위원들은 이 말 이해 못 한다"는 이상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보여줬다.[2]

정병설 박사는 역사비평사에 논문을 투고해서 이덕일유사역사학을 직접 비판했는데[3], 이덕일은 어떻게 이런 수준의 논문을 실었냐고 역사비평사를 비판(?)했다. [4] 논문 잘 실었는데? 그러나 역사비평사가 정병설교수의 논문을 실은 것은 오히려 학술지에 충실한 행동이였다. 자세한 건 이덕일/비판문서에서 혜경궁 홍씨노론 음모론에 대한 내용을 참고하자. 정병설 문서도 참고하면 좋다.

3. 참고 링크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사


[1] 김상태, 2013,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 서울;책으로보는세상, 148쪽[2] 자세한 건 김상태 문서 참고하자.[3] 정병설, 길 잃은 역사대중화 -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한 비판, 역사비평 2011년 봄호, 『역사비평사』, 2011, pp329-360.[4] 이덕일,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2011, 역사의 아침, 들어가는 글_누가 사도세자를 두 번 죽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