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1:28

금민철/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금민철
1. 두산 베어스 시절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1. 2010 시즌2.2. 2011 시즌2.3. 군입대2.4. 2014 시즌2.5. 2015 시즌2.6. 2016 시즌2.7. 2017 시즌
3. kt wiz 시절
3.1. 2018 시즌3.2. 2019 시즌3.3. 2020 시즌
4. 독립 리그

1.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external/img.sbs.co.kr/200361115.jpg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나 동산고를 졸업하고 2005년 두산 베어스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원래 드래프트에서는 외야수로 뽑았지만, 프로 입단해서는 동산고등학교 때 던지던 투수로 정착했다.[1][2] 처음에는 평범한 중간계투였지만 두산 베어스 코치진의 꾸준한 지도로 2007년부터 조금씩 만개하여 계투, 선발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 투수로 활약해 준수한 성적을 보여줬다. 이 시절에 금동이, 골든보이란 별명이 붙었다.

특히 2009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6이닝 무실점,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선발승을 거두었다.

2009년 5월 27일 對 히어로즈 전 9회초에 브룸바, 김일경, 송지만을 모두 삼진, 그것도 9구 3탈삼진이라는 대기록(역대 4번째)으로 물러나게 했다.

또한 그 해의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팀내 사정으로 인해 선발투수로 전향했는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어 포스트시즌에서 2승을 올린다. 특히, SK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선 과감한 몸쪽승부로 호투를 펼치는 등 팀의 승리에 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팀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5차전에서 선발 등판을 하였지만 아쉽게도 우천으로 인한 노게임이 되어 두산은 세데뇨에게 운명을 맡기게 되었고 이에 세데뇨는 화려한 불질로 화답하여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두산시절 주로 불펜으로만 활용되었지만 시즌 막판 팀의 빈약하다 못해 처참한 선발진 사정으로 인해 두산 팬들의 기대를 받으며 미래 선발자원으로 주목 받았었다 그러나...

2. 넥센 히어로즈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6082501001671100128721_99_20160825193905.jpg
넥센 히어로즈 시절.

두산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갈 무렵 2009년 12월 30일 이현승과의 현금 트레이드로 인해 넥센 히어로즈로 팀을 옮겼다. 처음 이장석 구단주는 금민철이 2010시즌의 에이스가 될 거라고 발언하기도 했다.[3]

2.1. 2010 시즌

트레이드로 장원삼, 이현승, 마일영이 떠난 투수진에서 희망이 되어 주고 있었다. 초반에는 놀라운 피칭으로 넥센의 에이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4월 대전 원정경기에서 한화를 상대로 2피안타 2사사구 완봉승을 거두며 넥팬들을 희망고문했다.

하지만 풀 시즌 소화를 못 해봐서 그런지, 6월을 기점으로 쳐졌다. 결국 강진 베이스볼 파크로 내려갔다. 2010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 선수로 출전했으나, 7회에 양준혁-홍성흔-가르시아에게 백투백투백 홈런을 맞았다. 시즌이었다면 폭풍으로 까였겠지만 올스타전이어서 그런지 두리뭉실하게 잘 넘어갔다. 그 해 6승 11패 ERA 4.40을 기록했다.

2.2. 2011 시즌

2011 시즌 들어서 부족한 제구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첫 등판을 제외하면 1이닝당 1볼넷을 내 줄 정도. 당연히 이닝도 제대로 못 먹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5월 10일에는 손아섭에게 홈런까지 맞았다... 거기에 덧붙여서 점점 구속이 떨어지는 조짐을 보여서 팬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하였다.

급기야 5월 25일 KIA전에서는 견제구를 1루수 머리 위로 던지고 번트 타구를 잡아서 송구한다는 게 타자의 등을 맞추는 처참하다 못해 웃음이 막 나오는 액션 끝에 결국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3. 군입대

그리고 수술에 들어갔다. 원래 스프링캠프 때부터 팔꿈치 통증을 느꼈다고 하는데 참고 있었다가 결국 한계가 온 듯했다. 인터뷰에서는 힘껏 던져야 스트라이크가 나왔을 정도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바로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할 계획을 밝혔다. 2011시즌의 부진의 원인은 결국 팔꿈치 부상이었던 것이었다. 평소 금민철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사람들도 이 소식을 접한 이후로는 재활을 잘 하고 오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복무를 위해 2011년 11월 17일에 입소했으며, 우연하게 같은 날 박경수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근무지는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근무했는데 밤에 근무하다가 아침에 퇴근후 목동구장에서 운동했다고
2013년 11월 16일에 소집 해제되어 마무리 훈련에 합류했다. 소집 해제 후 인터뷰에서 이지풍 트레이너의 지시로 복무 초기에는 1년 동안 부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피칭 훈련을 하지 않고 기본적인 재활만 했다고 한다.

2.4. 2014 시즌

4월 2일 LG와의 2군 경기에 등판하여 5이닝 6피안타 3볼넷 1삼진 3실점(3자책)을 기록한뒤 등판 기록이 없다가 4월 16일에 4월 13일 데뷔전 선발승을 가진 하영민이 2군으로 내려가며 1군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선발투수들 중 강윤구, 오재영 등이 부진한 상황에서 4월 22일 이후 선발 등판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4월 2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6.1이닝동안 5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며 1,095일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다.

두번째 선발 등판인 5월 3일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5.1이닝 7피안타 3볼넷 1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며 2번째 선발승을 챙겼다. 공이 살짝 높이 형성되었고 제구도 그리 안정적이진 않았지만 야수진의 좋은 수비와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며 실점을 막았다.

6월 3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에 등판해서 나성범을 뺀 NC의 1,2,3번에게 3볼넷을 내주며 장작을 쌓은 뒤에 에릭 테임즈에게 그대로 만루홈런을 맞고 ⅓이닝 4실점으로 바로 강판당했다. 그리고 팀은 그 4점을 따라잡지 못하고 졌다.

6월 6일 현충일에 선발 출전해서는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는데, 2이닝을 던지고 투구수가 63개로 스트라이크가 29개 볼이 34개로 희대의 막장급 볼질로 1,2회를 어렵게 끝내며 투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강판됐을 때도 그냥 강판된 것이 아니라 볼넷과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들어놓고 강판당했다. 다행히 김영민이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자책점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세부성적은 2이닝 2피안타 4볼넷 1탈삼진.

6월 19일 광주 KIA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놀라운 호투를 선보이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으나 도리어 패전 투수가 됐다. 이유는 이날 7이닝 8탈삼진 1실점의 괴력을 선보인 상대 투수 양현종 때문. 극도의 타고투저 속에서 오랜만에 선보인 투수전이었으며, 금민철은 이날 볼넷공장장의 불안한 피칭을 벗어던지고 팀의 2선발임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6월 25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선발투수로 나와 전날 선발포수로 나섰던 로티노와 배터리를 이루었다. 초반 수비불안과 삼성 타자들의 공략이 겹쳐 12안타를 맞은 끝에 2.2이닝만에 강판되고 말았다. 자책점은 5점에 불과했으나 실책에 의한 실점이 6점이었고, 이 날 6개의 넥센 실책 중 3개가 금민철이 만든 실책이었다. 그리고 이는 김상엽에 이은 한 경기 투수 최다실책 타이다. 결국 이틀뒤인 27일자로 26일에 역시 선발로 올라와서 불을 거하게 지른 강윤구와 같이 말소되었다. 대신 송신영박성훈이 올라왔다.

8월 3일 1군에 등록되었다. 다음 날인 8월 4일 잠실 LG전에 오랜만에 선발투수로 나왔지만 2회에 5개의 사사구를 남발하면서 1.2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다. 팀은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4-6으로 패배했다.

2014년에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싸융짱문오에 편입되어 싸융짱문오납으로 바뀌었다. 잘 할 때는 금덩이, 못할 때는 납레기라고.

결국 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탈락하였다.

2.5. 2015 시즌

2월 27일 KIA와의 연습경기에 선발등판해 3이닝 1볼넷 4피안타(3점 홈런 포함) 5실점으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7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6회 1사 상황서 갑작스러운 부상을 호소하며 자진 강판하며 팀 패배의 단초를 제공했다,

7월 1일 또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1개월만에 선발로 나왔다. 피어밴드가 전날 우천취소된 경기에서 이미 공을 20개 넘게 뿌린 데다, 송신영은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았고, 김동준, 김택형은 아직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대안이 없었던 듯. 1회부터 볼넷을 남발해 만루 위기를 맞는 등 불안불안한 피칭을 선보였지만 수비진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위기를 잘 넘겼으나 4회초 이승엽에게 홈런 한방을 맞고 5회 들어 다시 볼넷을 남발할 기미가 보이자 급히 김세현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그날 경기는...... 701 대첩 참조.

8월 10일 삼성전에 또 선발등판하였다. 넥센의 선발진이 리그 톱인지라 등판한 듯.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5.2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이라는 좋은 피칭을 선보였고, 결국 460일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다.

8월 22일 LG전에 선발등판, 5이닝 4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리티스타트 했으나, 타선이 5회까지 1득점으로 부진하면서 ND를 기록. 팀은 김택형이 2실점하고 손승락이 끝내기 안타를 내주면서 패배했다.

그 이후는 복귀한 오재영과 같이 함께 부진 중이다. 팀 사정상 그나마 공 좀 던져본 좌완 토종선발이 이 둘밖에 없는데, 문제는 둘다 길게 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두들겨 맞거나 장작을 쌓으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펜 양훈과 김대우, 김택형 등이 버텨주면서 타선이 알맞게 점수를 뽑아낸 덕에 항상 패전투수가 되지는 않는다.

2.6. 2016 시즌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삼성 vs 넥센에서 1회부터 이승엽의 적시타, 보크로 2점 실점, 2회에도 김상수에게 피홈런을 맞아 3실점을 했다.

6월 8일 NC 다이노스 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좌타자들이 많은 NC 특성상 '아무리 못해도 3이닝은 막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안고 등판했지만, 2.1이닝 5실점으로 털렸고 결국 3회부터 불펜이 가동되며 최원태가 올라왔다.

6월 14일 롯데전에 자기 대신 선발로 승격한 최원태가 아쉽게 5이닝을 못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마정길이 뒤를 이었다. 마정길이 6회 초까지 삼자범퇴로 막은 뒤 금민철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으나 2루타 2개를 맞고 힘 빠지는 추가 실점을 하고 만다. 그런데 팀이 8회 대거 8득점으로 기적의 역전승을 거두자 얼떨결에 승리를 먹어버렸다...

이후로는 추격조로 간간이 등판하는 중이다. 팀 내에서 공 좀 던져본 좌완이 오주원 외에는 없다싶이 한 탓에 좋으나 싫으나 계속 기용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래도 크게 털리거나 하는 일 없이 그냥저냥 괜찮게 던져주는 중이다. 사실 전형적인 패전조 투수로서 성적이 딱히 좋지는 않지만 금민철보다 더 심하게 성적이 좋지 않는 이 분이 계셔서 그나마 묻히는 편이다.

결국 2016 시즌은 14경기 2선발 1승 1패 ERA 5.13 으로 마무리 했다.
이번 시즌도 14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는데, 더 큰 문제는 넥센으로 이적한 2010년에 24경기 등판한 것을 제외하면 2011년~2016년(12,13년은 군복무)동안 40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방어율은 7경기밖에 나오지도 않은 2015시즌을 제외하면 5점대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4]

2.7. 2017 시즌

오주원조상우 복귀 전까지 선발 보직을 맡고[5], 김택형이 수술로 빠지면서 팀내 유일한 좌완 불펜이 됐다. 그러나 모두의 우려와 달리 깨알같이 제 몫을 해주고 있는 시즌. 물론 볼질이나 피안타는 여전하지만, 이기고 있을때나 지고 있을때 한 이닝 정도 나와 그럭저럭 잘 막고 있다. 4월 27일 기준 자책점이 3점대 후반이다. 그 와중에 홀드도 2개 챙겼다.

5월 15일 현재 15게임 14.1이닝 3홀드 15삼진 ERA 3.77을 기록하고 있다. 필승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중요한 상황에서 등판하여 1이닝씩 책임져주는 식으로 힘이 되어주고 있다. 게다가 (이닝 수가 적기는 하지만) 피홈런이 0이다! 딱히 BABIP이 낮은 것도 아니고 FIP도 3.30이라서, 표본이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지금 성적만 보면 운이 좋아서라고 보기도 힘들다. 소속팀이 5월 들어 FC 넥센 소리를 들을 정도로 허약한 타선 집중력을 보여주면서도 여전히 5할 & 5강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은 김상수, 이보근의 분전에 더불어 금민철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작년까지의 금민철을 기억하는 팬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금동이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볼넷은 9개로 여전히 제구 면에서는 불안한 게 사실이라서, 현재의 역할보다 더 중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갑자기 호성적을 기록한 데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높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구불안으로 5월 중순부터 원래의 금민철스런 스탯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5월 17일 몸에 맞는 공 2개 포함 사사구 3개, 피안타 2개로 0.2이닝 동안 3실점.

5월 18일 한화전에서 연투의 후유증+수비 실책으로 간만에 거하게 불을 지른 이보근의 뒤를 이어 9회 초 2아웃에 등판, 1구만에 땅볼을 유도해내서 이닝을 끝냈다. 그런데 9회말 이택근이 극적인 대타 끝내기 그랜드슬램을 날려서, 뜬금없이 금민철이 승리를 기록했다. 공 한 개 던지고 기록한 승리인 셈.

5월 23일 NC전에서는 사사구는 없었지만 1이닝동안 안타를 네 개나 얻어맞으며 다시 한 번 3실점. 두 번의 3실점 대폭발로 잘 관리했던 ERA를 다 까먹고 말았다.

5월 28일 삼성전에서는 1.2이닝 동안 안타 두 개, 볼넷 세 개를 기록했지만 꾸역꾸역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 날 경기 후 기준 22경기 1승 3홀드, ERA 5.14. 이건 그냥 다들 알고 있는 평소의 그 모습. 특히 21이닝 16볼넷으로 플레이 스타일에서 언급되었듯 고질적인 제구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돌려 쓸만한 1군급 투수 자체가 태부족한 팀 사정상, 필승조 이외의 역할로 계속 중용될 것으로 전망.

6월 18일 롯데전에서 땜빵 선발로 등판, 5이닝동안 1실점으로 꾸역꾸역 막아내는데 성공했고 678일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우려했던 볼넷도 두 개만 허용하며, 타격전으로 예상되었던 경기를 중반까지 투수전으로 끌고 가는 데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금민철의 깜짝 호투덕에 팀은 시리즈 스윕을 완성. 좀 더 던져볼법도 했지만 투구수가 95개로 많았기에 5이닝으로 잘라준 듯.

이후에도 기존 토종 선발들이 2군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등판일정을 조정받으며 관리받고 있고 조상우는 아예 불펜으로 보직을 변경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끔 땜빵 선발로 좀 더 기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6월 24일 LG 트윈스 전에서 5.2이닝 4실점 2자책, 6월 30일 kt 위즈 전에서 다시 선발 등판하여 5이닝 2실점 2자책으로 각각 2자책 이하로 막는 깜짝 호투를 펼쳤다. 7월 1일 현재 3승 1패 3홀드 ERA 4.22의 괜찮은 스탯을 기록 중. 다만 피출루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42.2이닝 56피안타 27볼넷) 지금과 같은 호성적이 계속될지는 의문.

7월 7일 그동안 상대전적이 괜찮았던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로 다시 등장, 5이닝 2실점으로 또다시 승리를 챙겼다. 이 시점까지 예년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바로 피홈런. 이날 경기까지 합쳐서 29게임동안 피홈런이 단 한 개에 불과하다. 그 덕에 출루를 많이 허용하면서도 비교적 오래 버틸 수 있는 듯. 그래서 좌엘로라는 웃지못할 별명도 생겼다. 주자는 가득 쌓는데 꾸역꾸역 실점없이 막는다는 이유.

7월 1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그동안 모아온 원기옥을 터뜨리며 2.1이닝 6자책으로 대폭발, 그럭저럭 봐줄만했던 ERA도 다시 5점대를 찍고 말았다. 꾸역투의 진수를 보여줬던 넥리티스타트 행진도 마감.

7월 22일 KT전에서는 선발로 등판하여, 1회초부터 선두타자 볼넷, 두번째 타자 사구로 무사 1,2루를 만들어놓고 3번타자에게 쓰리런을 맞았다. 이후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고 1이닝도 채 버티지 못한 채 강판되었다. 이대로라면 부상에서 돌아온 한현희나 이적생 정대현에게 선발 자리를 넘겨줄 확률이 높다.

7월 28일 삼성전에서 다시 선발로 등판했으나 1회부터 스리런 홈런을 맞는 등 역시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강판당하고 말았다. 이번엔 뒤이어 나온 신재영도 털렸고 타선이 2점밖에 내지 못해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3경기 연속 3이닝을 못넘겼고 2경기 연속 1회 강판이라 더 이상 선발 로테를 돌지는 못할듯. 이날 경기를 기준으로 시즌 ERA는 딱 6.00을 찍었다. 스탯만 보면 다시 예전의 으로 돌아갔다고 봐도 손색이 없지만, 오랜 기간 1군에서 버티며 팀이 필요로 할 때 묵묵히 마운드에 올라준 점은 예년에 비해 나아진 부분.

이후에는 퓨처스리그로 자리를 옮겨 간간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8월에 가진 두 게임에서 11실점을 하였다. 올시즌 1군에서 다시 보기는 힘들 듯.

3. kt wiz 시절

2017 시즌 후 열린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 wiz로 이적하게 되었다. 원소속팀 히어로즈가 근근히 젊은 투수들을 여럿 긁어모은 덕분에 당장 금민철이 아쉽지는 않게 되었다. 가서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 팬들의 반응.[6]

스프링캠프에서 컨디션이 빠르게 올라온다며 김진욱 감독이 5선발준비시키는 중이다. 일단 경험이 풍부하고 선발과 릴리프가 모두 가능한 선수이기 때문에 kt 코칭스태프가 고질적인 제구 문제만 어떻게든 완화시킬 수 있다면 좋은 활약이 예상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7]특히 유력한 선발 투수 후보인 더스틴 니퍼트가 시범경기를 앞두고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면서 금민철의 활약 또한 중요해졌다.

3.1. 2018 시즌

파일:금민철썸머.jpg

시즌 종료 후 FA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3월 28일 SK전에 등판해 5이닝 3실점 2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3일 친정팀 넥센전에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으로 또 승리투수가 되었다. 무려 2,847일만의 QS+라고.

4월 10일 NC전에서는 수비 도움을 받지 못하고도 6이닝 4실점 (3자책)으로 또 QS를 기록하였다. 타선이 너무 늦게 터지는 바람에 ND를 기록했지만, 팀 타선이 8회와 9회에 각각 2점 홈런과 3점 홈런을 기록하면서 역전승을 거두며 값진 호투가 되었다.[8] 최근의 호투에는 김진욱 감독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기사에 의하면 “10년째 안되는 제구를 굳이 잡으려하지 말고 자신있게 던져 맞혀잡으라”고 했다고 한다. 땅볼 유도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땅볼 투수로의 변신을 권한 것인데, 정작 그럼에도 K/9은 넥센 히어로즈 시절보다 더 올랐다는 점.[9] 금민철 본인 또한 4월 3일 경기 종료 후 “감독님이 ‘볼이 돼도 좋으니까 강하게 던져라’ 하는 조언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라면서 호투의 소감을 밝혔다.

5월 15일 여러차례 위기를 만들고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6이닝 0실점으로 호투했고, 팀이 3점을 지원해주어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3승.

5월 20일 6이닝 10피안타 3탈삼진 무사사구 2실점으로 호투를 하면서 시즌 4승을 거뒀다. 이후 밝혀진 사실로는 금민철의 부활에는 류택현 불펜코치의 지분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때 즈음에 니 공 누구나 다 아는데 뭔 생각이 그리 많냐면서 그냥 던지라 했다고...

6월 1일 6이닝 6실점을 기록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7일 7이닝 2실점했으나, 타선이 상대 에이스 양현종에 무득점으로 막히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24일 수원 SK전 선발 등판해 7이닝 5안타 4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4:0으로 승리해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5승째.

7월 26일 고척 넥센전에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타선의 넉넉한 득점지원 덕분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자신의 개인 최다승이자 시즌 7승.

8월 1일 한화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패전을 기록하였다.

8월 8일 NC전에서 5이징 6실점으로 패전 투수로 기록되었다.

8월 14일 NC전에서 매 이닝 주자를 출루시키긴 했지만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시즌 8승째를 올리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9월 이후 6번의 등판에서 1번도 승리를 하지 못하면서 결국 10승 달성에는 실패하였다.

최종 성적은 29경기 156 ⅓이닝 8승 11패 평균자책점 5.41로 준수한듯 보이나, 세부스탯을 보면 피안타 212개에다가 선발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탈삼진이 79개에 불과하여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다. 다만 KT에서 8승이라 더 돋보이는 것뿐. 참고로, 이 시즌이 금민철의 커리어 사상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이 되었다.

3.2. 2019 시즌

박경수와 함께 구단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해를 넘긴 협상 끝에, 2019년 1월 28일 16시 원소속팀 kt계약기간 2년, 계약금 1억원, 총 연봉 3억원, 인센티브 3억원 총 2년 최대 7억원으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3월 24일 SK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4이닝 동안 6피안타, 1피홈런, 2실점을 기록했다. 3회말 한동민에게 투런홈런을 맞았지만, 4회말까지 버텨내고 신인투수 손동현과 교체되었다.

3월 31일 KIA전에서 5이닝동안 3피안타 2사사구 1실점을 기록했다.

4월 6일 LG전에서 선발등판해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본인의 시즌 첫 승과 함께 팀의 5연패를 끊는 활약을 펼쳤다. 금민철 개인적으로는 2010년 이후 9년 만에 LG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3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하였지만 1회 정주현의 2-1 직구로 솔로 홈런 허용 1실점, 2회 유강남의 1-2 직구로 솔로 홈런 허용 1실점, 이형종김민성 안타, 류형우의 내야안타, 이천웅의 안타로 3실점으로 강판되었으며 이후 배제성이 올라와서 1.0이닝 25투구수 (S:12, B:13) 1피안타 4사구 1, 1삼진 1실점 1자책3실점이 더해져 1.0이닝 28투구수 (S:19, B:8)로 볼넷이 아닌 LG 트윈스 타자들의 맹타로 7피안타 2피홈런 7실점 7자책으로 강판되었다.

6월 12일 SK전에 선발 출장하였으나, 4피안타 1피홈런 4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고 1이닝 만에 강판되었다. 다음날 바로 2군행.

8월 20일 롯데와의 2군 경기에서 4⅔이닝 동안 14실점으로 탈탈 털렸다.

3.3. 2020 시즌

퓨쳐스리그에서 2경기 등판해서 평균자책점 3.27 1승 1패 11이닝 탈삼진 5개 사사구 1개 피안타율 0.244 WHIP(이닝당 주자 출루 허용률) 1.00을 기록하고 있다. 그 이후의 경기 내용도 좋지 못하니 팀의 불펜진이 망해가고 있는데도 감독이 차마 1군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7월 4일 9회에 7:6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친정팀 상대로 등판했는데 1이닝 2실점 1분식으로 신나게 말아먹었다.

7월 11일 결국 부진한 끝에 소형준이 올라오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13일 강장산, 이상화, 이재근, 임지한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었다.

4. 독립 리그

이후 2021년에 창단한 독립구단인 시흥 울브스에 입단한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7월 초 연천 미라클로 이적했다.

2022년에 금유성으로 개명했다.

2023년 독립야구단 경기도리그 사이트의 선수 정보에 다시 금민철로 나와 있으며 3월 21일 시즌 개막전 문자 중계 및 결과 현황판, 기록지에도 금민철로 나온 것을 봐서 다시 원래 이름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스톡킹에서 밝히길 애초에 부모님의 권유로 개명한 것인데다 개명한 이름이 적응이 안되었다고.

선수 생활 막바지이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언급을 보아 선수생활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듯 하다.


[1] 동산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외야수가 주 포지션이었지만 3학년 때 한학년 아래 후배 에이스 류현진이 팔꿈치 수술을 받아 출전하지 못하자 3학년은 주로 투수로 등판했다.[2] 스톡킹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광수 수석코치가 '너 야수할래? 투수할래?' 물어봤는데 본인이 그냥 투수하겠다고 해서 투수로 정착했다.[3] 두산 측도 금민철을 잡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히어로즈 측에서 금민철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서 결국 성사되었다고 한다. 물론 삼성이 추격조로 퉁치고 LG는 후보선수 내놔서 날로 먹은 거 생각하면 두산이 끝까지 안 튕기고 좀 후하게 쳐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현승은 2년 간 아시안게임 승선을 위한 조급증이였는지 두산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병역 문제 때문에 잠시 두산을 떠나야 할 판이라서 결국 10억 원과 금민철을 조공하고 군인을 데려온 꼴이 되었다. 하지만 금민철도 같은 해 공익으로 입대했다. 다만, 2015년 시즌 중에 이현승마무리 투수로 전향해 꽤 재미를 보았고, 첫 국가대표 A팀으로 선발된 프리미어 12 대회 때에도 국가대표팀 마무리를 맡으며 진짜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물론 다음해에는.....[4] 2015 시즌도 1승 1패 4.50의 방어율로 마무리했다.[5] 이후 조상우가 돌아오면서 오주원도 불펜으로 전환되었다[6] 나중에 밝혀진 내용으로는 이 당시 kt wiz가 2차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조현우를 뽑을지 금민철을 뽑을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조현우로 결정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금민철이 2라운드 시점까지 아무 팀에서도 안 뽑혀서 kt 프런트가 아싸 좋구나 하고 바로 2라운드에서 금민철을 뽑아간 것. 그리고 kt는 시즌 내내 2라운드에서라도 금민철을 뽑은 결과를 제대로 증명했다.[7] 작년 선발 등판시 평균자책점이 7점대다.[8] 이 중계 도중에 밝혀진 사실이라면 4월 10일 현재 커브 구종가치 선발 1위라고 한다.[9] 하지만 내야로 가는 타구의 비율이 크게 늘고 외야 타구의 비율이 줄어든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땅볼 투수로의 변신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71
, 3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7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