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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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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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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42번
펠릭스
(1998~1999)
김광수
(2000)
신경석
(2001~2002)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38번
손혁
(1996~1999)
김광수
(2000~2004)
신재웅
(2005~2006)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20번
박석진
(2007.7.29.~2007)
김광수
(2008)
서성종
(2009)
[[LG 트윈스|LG 트윈스]] 등번호 17번
김재현
(2007~2008)
김광수
(2009~2011.7.10.)
유원상
(2011.7.11.~2017)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유원상
(2007~2011.7.10.)
김광수
(2011.7.11.~2011)
백승룡
(2012~2013)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
안영명
(2011)
김광수
(2012~2015.5.5.)
임준섭
(2015.5.6.~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11번
임준섭
(2012~2015.5.5.)
김광수
(2015.5.6.~2015)
유창식
(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55번
박상옥
(2015)
김광수
(2016~2017)
이민우
(20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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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시절
김광수
金光洙 | Kwang-Soo Kim
출생 1981년 5월 5일 ([age(1981-05-05)]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인천숭의초 - 상인천중 - 인천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0년 2차 2라운드 (전체 11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0~2011)
한화 이글스 (2011~2015)
KIA 타이거즈 (2015~2017)
병역 사회복무요원 (2006~2007)


1. 개요2. 선수 경력
2.1. 입단2.2. 프로 데뷔, 그리고 병역비리2.3. 복귀와 커리어 하이2.4. 2011 시즌2.5. 2012 시즌2.6. 2013 시즌2.7. 2014 시즌2.8. KIA 타이거즈 시절
2.8.1. 2015 시즌2.8.2. 2016 시즌2.8.3. 2017 시즌
2.9. 은퇴 후
3. 연도별 성적4. 피칭 스타일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우완투수.

2. 선수 경력

2.1. 입단

인천숭의초등학교, 상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를 거쳐 2000년 2차 2순위(전체 11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3,500만 원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LG에는 인천고 출신이 많은 편인데, 이름이 있는 선수 중에서는 최원호, 정재복 등의 선배가 있다. 그 외 송현우, 김용우, 김우석, 강지광 등.

2000년의 드래프트는 고졸우선지명이 폐지된 첫 해였고, LG의 1차 지명은 미국에서 돌아오는 최경환. 그 외 입단 동기 중 성공한 선수는 4년 후 입단하는 심수창, 김태완(LG), 박기남 등이고, 타 팀에서는 김상현(야수), 김주찬, 이범호, 박기혁 등이 있다.

2.2. 프로 데뷔, 그리고 병역비리

데뷔한 해인 2000년에는 1군 4경기 출장에 그쳤고, 이듬해에는 팔꿈치 수술로 전력 이탈, 2002년에도 1경기 출장에 그치며 3년을 날려먹었고, 2003년에는 28경기(12경기 선발)에 출장해서 4승 7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5.10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성적을 거둔다. 그나마 1군 전력으로 볼 수는 있겠구나... 했는데,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의 첫 테이프를 끊으며 장렬히 산화.(...) 그래도 이 때 적발된 명단 중 LG 선수들은 9명이었는데, 그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전력에 보탬이 되는 선수였다.[1]

결국 구속 수감됐고, 복무를 마친 후 2008년에야 복귀하게 된다.

2.3. 복귀와 커리어 하이

장기간 쉬어서 그런지 2008년에는 1군 11경기에 출장한 정도.[2] 2009년 들어 봉중근옥스프링 외에는 상태가 메롱인 LG의 투수진에서 3선발의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4승 7패 평균자책점 6.79의 별볼일 없는 성적. 하지만 2009 시즌 나머지 선발이라 해봐야 2년차 신인인 정찬헌이나, 이미 2008년의 혹사로 맛이 가기 시작한 정재복, 시즌 후반 들어서야 대항마로 떠오른 역시 신인인 한희 등이었고 그 중에선 그래도 나았다.

그리고 2010년 박종훈 감독의 부임 후 LG에서는 이동현, 오상민 등과 함께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안 되던 제구가 잡히면서 전년대비 삼진이 +4, 볼넷이 -18이 되면서 K/BB도 2.29로 상승. 선발과 불펜의 확고한 분리를 앞세우던 박종훈 감독의 의지에 따라[3] 68경기 중 선발로 나선 경기는 없었고, 최종 성적은 4승 5패 7홀드 8세이브 평균자책점 3.40.

후반기 들어서는 오카모토가 맛이 간 관계로 이동현과 함께 더블 스토퍼로 활약하는데, 7~8월 성적이 2승 2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1.63, 22이닝 4실점으로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에 비견되는 스탯을 찍었다. 이쯤되면 명실상부한 커리어 하이.

2.4.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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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12 시즌

5월 19일 경기에서 SK를 상대로 6회초에 1아웃 상태에서 나와 0.1이닝 5실점(…)을 하고 장렬히 사망. 그 원아웃도 희생 플라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들어오기 전에 이미 4실점 상태였다는 거(…).

7월 27일 소프트뱅크 3군과의 퓨처스리그 교류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9이닝 116구 4피안타 9삼진 2사사구 무실점으로 완봉승했다.

2.6. 2013 시즌

4월 18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선발 출장의 기회를 잡았다. 2009년 9월 20일 이후 무려 1,306일 만의 선발 출장이다. 사실 3~4월 동안 5경기에 출장하여 3⅔이닝 8실점 8자책점을 기록하며 한화의 화염방사 불펜진의 한 축을 담당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 투수진이 완전히 무너진 덕분에 선발로 나왔다. 1회는 3자범퇴로 막았으나 2회에 2실점했고, 3회초에 바로 교체되었다. 최종 기록은 2이닝 2실점(2자책). 허나 4회 팀이 역전한 덕분에 ND를 기록하였다.

4월 28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연장 12회말 1사 상황에서 팀의 마지막 투수로 등판했다. 박진만을 땅볼 아웃 처리한 후 정상호에게 2루타를 내주고 끝내기 위기에 몰렸으나, 대타 김성현을 라인드라이브 아웃으로 처리하며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5월 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선발 대나 이브랜드에 이어 6회초에 등판했으나, 선두타자 정훈에게 5구째만에 2루타를 허용하며 강판되고 말았다. 본격 출첵 야구 이후 마운드를 이어받은 유창식이 아웃카운트 두개를 잡으며 분전했지만 적시타 2개를 허용하며 역전당했고, 타선이 추가점을 얻어내지 못해 팀은 그대로 패배..

그러던 중 5월을 기점으로 사람이 달라졌다.

5월 9일 NC전에서 3이닝 3삼진 무실점을 시작으로, 5월 14일 넥센전에서는 1이닝 동안 볼넷 하나를 줬지만 삼진 2개를 잡아가며 무난하게 막아내고 내려왔다.

5월 17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5:4 팀의 8회초 1점차 리드상황에서 등판하여 오재원을 견제사로, 민병헌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무사히 넘겼고, 9회에는 선두타자 김현수에게 안타를 맞은 뒤 홍성흔의 번트와 정수빈의 빠른 발로 인해 만들어진 1사 1,3루 위기에서 김동주를 상대로 초구 병살타를 얻어내며 한화로 트레이드 된 뒤 첫 세이브(!!!)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5월 18일 경기에서는 한화 타선이 경기 초반부터 맹폭을 휘둘러 승패가 거의 결정된 8회초에 등판, 오재원허경민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양의지최주환을 플라이로, 이종욱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5월 22일 광주 KIA전에서는 공 10개로 1이닝을 마치고 무실점으로 내려와 홀드 하나를 추가했다. 이 날 경기까지 5월 성적 8.1이닝 1실점으로 1홀드 1세이브 7삼진 방어율 1.08으로 서서히 각성의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부디 아름다운 5월 한 번으로 끝나지 말고 계속 이어나가주길 바랬으나...

5월 30일 잠실 LG 전에서는 여태까지의 기대치의 부응해주기를 바라면서 셋업맨으로 8회말에 등판했으나, 정성훈박용택에게 연속안타를 맞아 무사 1,3루를 만들어줬다. 다음 타자 정의윤을 2루수 정면으로 가는 땅볼로 잘 유도해내 병살로 연결시키는듯 했으나... 한상훈이 알까기를 해버렸다!!! 결국 김광수는 이후 강판되었고 송창식이 이병규에게 우전 2루타를 내주고 최경철에게 2타점 적시타에 이대형에게 1타점을 내주며 무너져 버려 졌다... 이날 기록도 0이닝 3실점 2자책점으로 기록되어 5월 기록도 12.2이닝동안 6자책점으로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6월이 되자 다시 정신을 못 차린다. 클래스 어디 안간다

그렇지만 올스타 브레이크를 기점으로 시즌 후반기에 사람이 진짜로 달라졌다(...) 사실상 팀 내에서 노예처럼 자주 등판하며 불펜에서 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6경기 67⅔이닝 3승 3패 1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5.72.

2.7. 2014 시즌

6월 27일 시즌 처음으로 등록되었지만, 6월 28일 포항 삼성전에서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도 못하고 3실점한 끝에 다음날인 29일 다시 말소되었다. 대신 김혁민이 등록되었다. 그걸로 시즌 끝.

2.8.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tigers_co_kr_20171016_164450.jpg

2.8.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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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2016 시즌

4월 12일 SK전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1 ⅓이닝 1피안타 2K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키는데 한몫을 했으며 홀드를 기록했다.

5월 13일 부터 팀의 마무리로 계속 등판하고 있다.13일 한화전에 마무리로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1K 무실점으로 양현종의 승리를 지키는데 한몫 했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15일 한화전에도 8회 말 심동섭의 뒤를 이어 마무리로 등판해 1 ⅓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1자책점으로 팀의 8:7 승리를 지켜내며 또다시 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20일과 22일 SK경기에서 두 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24일 삼성전에서도 투구수 7개로 삼성 타선을 요리하며 세이브를 챙겼다. 이렇듯 5월에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6월 8일 대전 한화전 24구를 던지는동안 3안타를 얻어맞으면서 3실점하는 와중에 아웃 카운트는 1개밖에 못잡아 패전투수가 되었다. -

6월 30일에서 불펜진이 불을 지렀으나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역시 아웃을 잡지 못하고 동점에 일조했다. 그리고 그 경기의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24일에도 불을 질렀다.

그러나 8월 2일 한화전 구원 등판에서는 1이닝 무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으로 간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올 시즌 첫 구원승을 따냈다.

8월 4일 한화전에서도 3:4로 뒤진 8회 말 구원으로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아줬으며, 팀도 9회 초 김주형의 쓰리런 홈런으로 역전승를 거두며 시즌 2승째를 따냈다.

9월 10일 KT전에서 6:2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 1사 만루를 만들며 대역전패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가끔 거하게 터지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KBO가 유래없는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9월 들어 힘이 부치는지 성적이 좋지 못하며 윤석민, 김진우라는 걸출한 우완투수 두 명이 불펜에 가세하면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최영필과 함께 무더운 여름 타이거즈 불펜의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불펜투수치고는 평균 자책점이 5.16으로 다소 높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제 몫을 해준 시즌이라 할 수 있다. 세이브 7개와 홀드 14개로 세이브는 리그 공동 11위이고 홀드는 리그 공동 8위에 올랐다.

2.8.3. 2017 시즌

4월 1일 삼성전에서 9회 불을 질렀다.

5월 30일 7회 리드시 100%의 승률을 자랑하던 NC를 상대로 타선이 폭발해 구원승으로 시즌 첫 승을 얻어냈다.

7월 8일 kt전에서 1이닝 5실점. ERA는 11.57을 기록하며 부진. 결국 경기 후 2군행.

확실히 이전 시즌들에 비하면 노쇠화로 인한 구위 저하가 타격이 큰 모양새이다. 이적 후 2시즌 동안 직구 평균 구속이 143 정도였으나 근래 등판에서는 137~140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KIA 타이거즈에서 방출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구단이 김광수를 포함한 방출선수들에게도 보너스를 챙겨주었다고 한다.

그 뒤에 대만 리그 두 팀에서 영입 제의가 왔지만,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2.9. 은퇴 후

이후 LG트윈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태완, 조학림 트레이너와 함께 엘리트 선수 전문 레슨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3년 FA인 정찬헌의 개인훈련(54K스포츠 트레이닝센터)을 돕고있다는 기사에 나왔는데 현재도 야구 관련업에 종사 중인 것으로 보인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LG 4 1⅔ 0 0 0 1 - 48.60 7 0 4 0 9 9 6.60
2001 1군 기록 없음
2002 1 0 0 0 1 - 13.50 3 1 0 0 1 1 4.50
2003 28 83 4 7 1 0 0.364 5.10 87 12 43 56 52 47 1.52
2004 8 21 0 0 0 0 - 6.86 35 2 7 8 19 16 2.00
2005 1군 기록 없음
2006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7
2008 11 25⅓ 0 2 0 0 0.000 9.95 38 3 17 18 28 28 2.17
2009 34 114 4 7 0 1 0.364 6.71 150 19 55 67 96 85 1.75
2010 68
(5위)
76⅔ 4 5 8 7 0.444 3.40 90 5 36 71 33 29 1.58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LG/한화 37 37⅔ 2 3 6 3 0.400 4.78 53 3 26 24 20 20 2.04
2012 한화 16 15⅔ 0 0 0 0 - 8.04 30 2 6 11 15 14 2.23
2013 56 67⅔ 3 3 1 4 0.500 5.72 75 3 22 41 45 43 1.35
2014 1 0 0 0 0 0 - 99.99 3 1 0 0 3 3 99.99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KIA 41 43⅔ 4 4 0 9 0.500 4.53 53 2 15 22 24 22 1.51
2016 54 52⅓ 2 6 7 14 0.250 5.16 67 5 22 39 31 30 1.70
2017 19 20⅔ 1 0 0 0 1.000 11.76 39 6 6 10 31 27 2.21
KBO 통산
(14시즌)
378 560 24 37 23 40 0.393 6.01 730 64 259 367 407 374 1.77

4. 피칭 스타일

우완 정통파 투수로 생긴 것과는 달리 구속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기사에 따르면 2010시즌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7~8km/h라고 하는데 약간의 뻥튀기가 끼어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2011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2010 평균구속은 142.1km/h로 나와있다. 그래도 평균 140 km/h 중반을 뿌리는 것은 사실이다. 2015시즌 까지도 최고구속이 [4] 147 km/h에 이르는 등 35세라는 나이에 비해 구속저하가 대단히 더딘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제구력은 구속에 비해 정확하지 못한 것이 단점이었으나 10시즌 들어 완벽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쓸만한 수준이 됐다. 더구나 원체 강속구 투수라 로케이션과의 시너지 효과가 나면서 일취월장한 듯. 문제는 패스트볼 무브먼트가 원체 깨끗한 터라 피안타율이 너무 높다는 것.

변화구로는 슬라이더나 포크볼을 주구종으로 사용하는데 특별히 뛰어난 점은 없다. 주로 맞춰잡는 스타일의 인사이드 피쳐인데 LG 내야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도 피해를 보는 것 같긴 하다. 다만 내야 탓 이전에 본인의 볼 자체도 약간 가벼운 감이 있고, 특히 안 되는 날은 깃털투구로 장타가 뻥뻥 터진다. 이것 말고도 특출나게 뛰어난 변화구가 없다보니 결정구 문제로 2스트라이크 이후 카운트 싸움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선발로 한 시즌을 치러봤기 때문에 불펜에 있으면서도 선발을 오갈 수 있는 스윙맨의 자질이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롱 릴리프로 운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원래는 대부분의 구단에서 중용될 만한 스타일. 그러나 장작을 많이 쌓는 버릇, 특히 새가슴 기질이 있어 믿음을 줄만하다 싶을 때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줘 스스로 평가를 깎아먹곤 한다.

참고로 FIP평균자책점의 괴리가 꽤 큰 선수이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6.00에 육박하지만 FIP은 4점대 후반으로 1 이상의 차이가 난다. 보통 선수들의 통산 평균자책점과 FIP이 비슷하게 가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특이한 사례. 통산 BABIP가 0.334인걸 보면 높은 피안타율이 ERA와 FIP의 괴리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

5. 기타

별명은 패동렬. 각성 전에는 패전조로 많이 투입되었는데, 막강한 투구로 눈도장을 찍고, 그 후 필승조에 투입되어서는 볼-볼-볼-볼넷-볼-스트라이크-볼-볼-볼넷-스트라이크-싹쓸이 2타점 2루타 뭐 이런 식이라 질 때는 선동열(이길 땐 바보)라는 뉘앙스의 별명이다.

박광수의 만화 광수생각의 주인공에서 따온 신뽀리라는 별명도 있는 듯. 최훈이 카툰에 그릴 때 주로 이 캐릭터를 쓰고 있다... 만 어차피 비중은 공기.

위에 언급한 대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의 도화선에 불을 땡긴 장본인.

파일:attachment/uploadfile/naver_com_20110711_112230.jpg
LG 트윈스 시절부터 보인 혀말기 'ㅇ' [5]

파일:/image/076/2011/07/12/2011071201001125600091091.jpg
여기서도 ㅇ 하네

2011 시즌 들어 유난히 혀를 마는 경우가 많아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거기서 문어와도 같다고 해서 문어군이라고도 불린다. 모 증권사문어 캐릭터의 이름을 따 '옥토' 로 불리우기도 한다.

파일:/image/109/2015/08/28/201508282010777841_55e042b075856_99_20150828201603.jpg
기아에 왔어도 여전히 이런다.

유독 투수들의 타자 데뷔(...)의 희생양이 되는 선수이다. 2010년에는 SK전에서 타자 김광현을 상대한 적이 있다. 당시 LG 소속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었을 시기인데, 2사 만루에서 2스트라이크를 집어넣었다가 갑자기 풀카운트를 만들면서 불을 지르나 했더니 3루수 땅볼로 이닝을 종료시켰다. 그리고 한화 소속인 2012년 5월 19일에는 역시 SK를 상대로 타자 정우람을 상대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병살타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2016년 기아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팡수, 쾅수 등 본인의 이름에 팬들의 애정을 담은 별칭으로 불린다. 81년생으로 노장축에 들다보니 쾅수옹 제발 막아주세요 같은 식. 임창용 복귀 전 임시 마무리를 맡을 때는 김광수호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래저래 기아가 자신에게 맞는 옷인 듯.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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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수창은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거의 없는 선수였다. 한양대학교 졸업 후 입단했기 때문에 애초에 1군 출장이 2004년부터.[2] 발목 부상도 있었다.[3] 물론 시즌 꺾이면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졌지만...[4] 2015년 9월 13일 엘지전에서 스피드건의 오류로 164km/h까지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144km/h대였을 정도로 추정된다.[5] 2011시즌 부터 혀마는 버릇이 생겼는데 의식적으로 긴장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저런 제스처를 취하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