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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6 03:41:28

김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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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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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서현만명부인의 딸, 김유신의 첫째 누이, 문명왕후의 언니.

2. 생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어느 날 언니인 김보희가 여동생인 김문희에게 자신이 꾼 꿈을 얘기했다. 꿈인 즉슨, 보희가 서라벌남산에 올라가서 소변을 보았는데, 엄청 많이 나와서 그 소변이 서라벌 시내에 가득 찼다고 한다. 문희는 그 얘기를 듣고 언니에게 비단 치마를 꿈값으로 주며 그 꿈을 샀다. 며칠 뒤에 오라비 김유신이 김춘추를 집에 데리고 와서 축국을 하다가 그의 옷을 잘못 밟는 바람에 그만 솔기가 터졌다. 이에 유신은 보희를 불러 옷을 꿰매어 주라고 시켰는데, 보희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1][2]로 나서지 않았다. 보희의 성격을 잘 아는 김유신은 보희는 포기하고 대신 문희에게 바느질 소임을 맡겼는데, 이후에도 김춘추가 올 때마다 김유신이 문희를 불러서 그녀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춘추가 문희와 정을 통하여 아이를 가졌고, 여차저차하여 문희는 춘추에게 시집갔고, 김춘추가 왕이 되면서 문희는 왕후가 되었다.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1] 일설에는 월경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고, 또다른 바리에이션으로는 본인이 왜 외간 남자의 옷을 꿰매주어야 하느냐고 퉁명스럽고 매정하게 거절해버렸다는 버전도 있다.[2] 옷을 꿰매라는 건 사실 기록상 은유로, 처음부터 밤시중을 명한 거란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신분상 결혼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대와 신세 망칠 각오하고 인생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니 월경을 핑계됐든 뭐가 됐든 거절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긴 하다.[3] <삼국유사>에서 태종 무열왕의 서자라는 개지문, 차득, 마득이 포함되어 있는데 문제는 서자와 후처가 낳은 자식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4] 시즌 1은 문희 편, 시즌 2는 김유신 편.[5] 문희 편에서는 김춘추와 문희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고 김유신 편에서는 김유신을 뒷담화하다가 김유신의 화만 돋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