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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1-27 01:39:00

김실

김실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허규옥(1991~1992) 김실(1994~1995) 박규대(1996~1997)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2번
김주성(1994~1995) 김실(1996~1997) 이동수(1998~1999)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번
이종두(1997) 김실(1998~1998.7.30) 박상현 (1998)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7번
박상현(1998 시즌 중) 김실(1998~2000) 김원섭(2001~2003)
KIA 타이거즈 등번호 74번
김평호(2012~2013) 김실(2014) 김종국(2015~ )
}}} ||

파일:external/pds.joins.com/201403121405778643_531feb596cb40.jpg
KIA 타이거즈 코치시절. 왼쪽은 브렛 필.
이름 김실(金實)
일본명 오오우치 미노루(大内 実)
타나카 미노루(田中 実)[1]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7년 6월 3일
출신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학력 진세이학원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5 드래프트 6순위 지명
소속팀 닛폰햄 파이터즈 (1986~1993)
삼성 라이온즈 (1994~1995)
쌍방울 레이더스 (1996~1998)
OB-두산 베어스 (1998~2000)
지도자 코리안 해치 코치 (2010)
오사카 호크스 드림 감독 (2011)
야마토 사무라이 레즈 감독 (2012)
고양 원더스 타격코치 (2013)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4)

1. 소개2. 선수 생활
2.1. 일본 시절2.2. 한국 시절
3. 은퇴 후4. 연도별 성적
4.1. 일본 시절4.2. 한국 시절

1. 소개

전 야구선수이자 前 고양 원더스, KIA 타이거즈 코치. 일본 닛폰햄과 한국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두산 베어스에 활동했던 재일교포 3세.

2. 선수 생활

2.1. 일본 시절

1985년 닛폰햄에 입단했지만 작은 체구 때문에 1989년까지는 1, 2군을 오가는 처지였다. 그러나 1989년 2군 도루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0년부터 주전 외야수를 차지하며 1991년 말에는 결혼도 했다. 원래 성은 "오오우치"였으나, 아내의 성을 따르며 "타나카 미노루"가 되었다. 그러나 김실의 부인은 여러 스포츠스타들과 스캔들을 일으켰기 때문에 곧 둘은 이혼했다.

게다가 1992년부로 닛폰햄의 감독이 바뀌며 경기출장도 줄었다. 빠른 발에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수비범위가 넓었지만, 파워가 너무 떨어지고 어깨도 약했기 때문에 새감독이 김실의 약점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 것. 가정불화에 주전자리마저 빼앗기자 1993년, 만 27세의 나이로 일본야구계에서 은퇴했다.

2.2. 한국 시절

1994년 삼성 라이온즈가 거액을 주며 김실을 영입했다. 참고로 당시 삼성은 여러 재일교포 아마추어 출신선수들을 영입해서 육성하다가 강태윤 1명을 빼곤 모두 포기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거액을 주면서 거포가 아닌 타자를 데려온 것. 물론 1군 레귤러 출신에 젊은 타자인데다 삼성에는 김실 같은 1번타자감이 귀했지만…….

당시 삼성 팀내 최고 연봉자였지만 첫해에는 .273의 타율을 올렸고 이듬해에는 중견수에서 자리를 옮긴 동봉철 때문에 겨우 2할대 타율로 턱걸이하는데 그쳐 결국 방출되었다. 삼성에서 방출되자 김실은 김성근 쌍방울 감독을 찾아가 사정해 쌍방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게 되었고, 쌍방울에 있던 3년 동안 김실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그에 보답했다.

1998년 시즌 중 OB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성적이 부진했던 게 아니라, 고액의 연봉을 받던 선수 중 하나라 쌍방울에서 그의 연봉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랬던 것. 당시 김실은 재미있는 기록을 세웠다. 126경기 체제에서 127경기에 출전한 것. 그것은 OB가 당시 우천으로 연기된 게임이 많았던 것이 이유. OB/두산에서 쌍방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했으나 전상렬의 이적 등으로 설 자리를 잃은 채 2000 시즌 후 결국 방출되며 은퇴했다.

김실은 재일교포 타자 중 유일하게 한일 양국에서 주전생활을 했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마지막으로 성공한 재일교포 선수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재일교포선수가 팀의 중요전력 중 하나였다면 이후 2000년대부터는 외국인 선수가 팀의 중요 전력 중 하나가 되었다. 김실이 은퇴하던 때는 바로 이 재일교포선수 시대에서 외국인선수 시대로 옮겨가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3. 은퇴 후

일본으로 돌아가 간사이 지방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하다, 2010년 간사이 독립리그의 신생 구단 코리안 해치의 코치를 맡으며 오래간만에 야구계로 돌아왔다. 사실 원래는 코리안 해치의 사무소 설립 등 코리안 해치 출범에 관련된 잡무와 홍보를 돕다가 코리안 해치에 코치가 부족해 코치를 맡게된 것.

2011년에는 간사이 독립리그의 신생 구단 오사카 호크스 드림의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23일, 2009년에 있었던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며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2012년에는 간사이 독립리그의 신생 구단 야마토 사무라이 레즈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 1월 구단 내부 문제로 독립리그 참가를 포기하게 되면서, 고양 원더스의 타격코치로 다시 한국에 왔다.

2013년 10월 17일, KIA 타이거즈의 1군 수비코치로 임명되었으나 이후 재일교포라는 점으로 인해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로 2군 수비코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결별하게 되었다. 김실 이외에도 일본계 코치가 여럿 있는 야구계 특성상 능력이 괜찮으면 통역을 구해서라도 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실질적으로 그의 코칭 능력이 문제고 의사소통 문제는 체면상 보기 좋게 둘러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주류이지만,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알 듯.

4. 연도별 성적

4.1. 일본 시절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8 닛폰햄 파이터즈 30 30 .300 9 0 0 0 1 8 1
1989 3 0 - 0 0 0 0 0 0 0
1990 110 128 .281 36 4 1 0 11 25 5
1991 120 335 .263 88 8 1 0 18 37 14
1992 68 110 .191 21 2 0 0 9 11 5
NPB 통산
(5시즌)
331 603 .255 154 14 2 0 39 81 25

4.2. 한국 시절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삼성 라이온즈 115 337 .273 92 11 5
(3위)
3 33 51 4 47 .362 .361
1995 89 154 .201 31 8 2 1 33 51 4 22 .299 .30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쌍방울 레이더스 124 419 .291 122 19 6
(2위)
0 38 53 6 48 .365 .363
1997 118 359 .267 96 17 5
(5위)
0 38 52 4 34 .343 .32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쌍방울 / OB 127[2] 455 .255 116 17 3 4 45 67 11 52 .332 .329
1999 두산 베어스 103 201 .244 49 3 2 1 23 29 5 21 .294 .314
2000 10 13 .385 5 0 0 0 0 3 0 1 .385 .429
KBO 통산
(7시즌)
686 1938 .264 511 75 23 9 192 273 36 225 .340 .339


[1] 원래 성은 '오오우치'였으나 결혼 후 아내의 성 '타나카'를 따랐다.[2] 이 해의 팀당 경기수는 126경기였으나 시즌 도중 쌍방울에서 우천취소 관계로 연기된 경기가 많았던 OB로 트레이드 된 덕분에 한 팀에 규정된 팀당 경기수 보다 더 많은 경기를 출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한 시즌에 연간 팀당 경기 수보다 더 많은 경기를 출전한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