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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별명)

1. 개요2. 경기
2.1. 김용택이 출전한 대표적인 경기2.2. 김택용과 김용택이 번갈아 출전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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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9년 12월,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매달 발표하는 KeSPA 랭킹에서 프로게이머 김택용의 이름이 김용택으로 오타가 나게 되면서 생긴 별명. 당시 하락세였던 김택용이 이름마저 오타가 나자 많은 스갤러들이 '김용택이랰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완벽한 하락세로 접어들자 일부 스갤러들이 그가 부진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아니 김택용은 어디가고 김용택이 와서 게임하는 거임?'이라고 말장난을 시작하면서 김용택이라는 별명이 정착하게 되었다.

대개 김택용이 경기를 못하면 '오늘은 김택용 대신 용택이가 출전했다'라는 식으로 쓰이며 좋은 경기력을 보일 때 지칭되는 '택신'과는 반대되는 표현이다. 아예 택신과 엮여서 '용택이는 택신의 숨겨진 제자'라거나 '김택용의 안에는 택신의 인격과 용택이의 인격이 공존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정이 붙는다.

본래 비공식적으로만 쓰이던 별명이었으나 그가 하도 아스트랄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코랜드 파일날 드립이 흥하면서 2010년 가을부터는 방송에서도 공공연히 쓰이고 있다. 특히 김캐리는 방송중에서 '이영한 선수는 용택이를 소환하는데 일가견이 있다'며 대놓고 김택용을 디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그는 인터뷰 중 '김용택, 없애버리고 싶다', '김용택, 그는 불쌍한 친구였다, 잘 살아' 등 자신이 용택이에서 탈피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종종 했으나 몇 개월을 주기로 김용택을 귀신같이 부활시켰다. 그때마다 스갤은 축제 분위기...

이후 스타크래프트 공식 대회가 끝나고 스타크래프트 2로 넘어간 뒤로는 출전 빈도가 더 많아졌다.[1]

김택용이 스갤의 친구가 되는데 가장 공헌을 했으며, 또한 온게임넷에서 우승을 못하게 한 원흉이다.

김택용이 주로 등장하는 스갤문학에서는 완전 또 다른인격으로 나온다. 택치미 라든지..

김택용은 실력에 비해 다소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현역 시절에도 동시대 송병구, 이제동, 이영호 등 최정상 게이머들에 비해 패배했을 때 유난히 많은 조롱을 받곤 했다. 당장 게이머들의 별명만 훑어봐도 김택용이 어떤 이미지인지 알 수 있다. 은근히 심한 기복, 중요한 순간 어이없는 실수 등 안정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고, 그로 인해 객관적 지표로 져선 안되는 상대 혹은 상황에서 아스트랄하게 패배하는 빈도가 다른 게이머들에 비해 많았기에 소위 말하는 포스가 느껴지지 않은 것.

여담으로, LG 트윈스박용택 선수와도 얽히게 되어, 박용택이 경기에서 못한다거나 삽질을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면 박택용으로 불린다. 김택용-김용택과 크로스오버 식으로 붙는 별명. 묘하게 세이콘이 떠오른다 박용택과 김택용의 전성기(보다는 인기)가 겹치는 시기가 많지 않아 자주 쓰이진 않았지만[2] 가끔 가다가 둘 다 같이 부진할 때 간간히 나왔다. 공교롭게도 김택용은 LG팬이다.

2. 경기

2.1. 김용택이 출전한 대표적인 경기

2.2. 김택용과 김용택이 번갈아 출전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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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분에 김택용은 2012년과 2013년에 2년 연속으로 스갤 어워드에서 '올해의 먹튀' 상을 수상했다.[2] 박용택의 최전성기는 김택용의 하락세가 시작되던 시기였다.[3] 실제 연습실에서도 대체로 김택용이 우세했다고 한다.[4] 최연소 우승 기록은 불과 4달 후에 이영호가 깨버렸다. 다만 최연소 로열로더 기록만큼은 지켜냈다.[5] 상대 뒷마당 멀티 바로 위쪽이라 가깝긴 했으나 양 선수의 위치상 몰래 건물의 위치가 테란의 전진 경로 바로 옆이어서 몰래 건물을 의식했다면 정찰 1순위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