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922년 2월 17일, 함경북도 새별군 동림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립학교 중퇴 이후 만주로 넘어가 훈춘현, 왕청현에서 농사를 짓다가 귀국해서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1947년 7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대원, 사관을 거쳐 군관으로 승진하였으며 6.25 전쟁에 참전했다.종전 후인 1956년 1월, 국영목장 행정경리부장에 임명, 조국보위후원회 함경북도 새별군위원회 위원장, 농근맹 청진시 청암구역 위원장으로 일하다가 1968년 5월, 조선로동당 량강도 당위원회 조직비서로 승진, 조선직업총동맹 부위원장을 겸하였으며 량강도 책임비서까지 승진하였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1년 9월, 농근맹 중앙위원장으로 승진, 량강도 인민위원장 등으로 사업하였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상설회의 의원이 되었다.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농근맹 중앙위원장 자리를 장윤필에게 물려주고 1977년 10월, 주 몽골 대사로 부임하였는데 1977년 11월,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했으며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되었다. 이걸 보면 몽골대사로 부임은 좌천일 가능성이 높다. 귀국 후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다시 장윤필의 뒤를 이어 농근맹 중앙위원장 및 농업위원장에 임명되었으나 1982년 4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사무장에 선출되면서 다시 변창복에게 농근맹 중앙위원장 자리를, 농업위원장 자리를 김창주에게 물려준 것으로 보인다. 1982년 3월, 전창철 장의위원,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3년 1월, 강량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4년 1월, 최고인민회의 7기 4차 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에 선출되었다.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1985년 12월, 서기장에서 해임, 리용익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났다. 1988년 6월 25일에 사망했으며 부고 발표는 따로 없던 것을 봐서 말년에는 그닥 좋은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중앙인민위원회 서기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수훈
- 김일성훈장(미상)
4.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