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제12보병사단 향로봉대대 작전장교 김칠섭 | |
출생 | 1970년 |
전라남도 광산군 (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 |
사망 | 2004년 11월 19일 (향년 34세)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415 강릉아산병원 (現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길 38) | |
학력 | 동신대학교 (물리학 88 / 학사)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92년 ~ 2004년 | |
임관 | 학군사관 (30기) |
최종 계급 | 중령 |
주요 보직 | 제50보병사단 중대장 제12보병사단 GOP 대대 작전장교 제12보병사단 37연대 2대대 향로봉대대 작전장교 |
서훈 | 보국훈장 삼일장[1] |
가족관계 | 부모님, 부인, 슬하 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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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2004.대한민국의 참군인. 제2의 강재구. 학군사관30기로 임관 후 12사단 작전장교로 복무하던 중 감전사고가 발생하자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찰나의 기회 대신 부하 장병을 구함으로써 자기희생을 실천한 참군인이다.
2. 생애
1992년 전남 나주시에 소재한 동신대학교 물리학과(88학번)를 졸업하고 1992년 소위(군번 92-14476)로 임관하였다.50사단에서 중대장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했고 2002년 5월에는 육군 을지부대로 부임하면서 사단 대침투 작전 장교 직책을 역임했다. 2004년 2월에는 혹한과 험난한 지형과 싸워가며 GOP 대대 작전장교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상시 전투준비태세 완비를 위해 교육훈련은 실전과 같이 실시해야 하며, 군인의 책무는 반드시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얘기를 초급장교들에게 강조했고, 항상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특유의 포용력과 애정으로 상하 동료 전우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두터웠다.
3. 안타까운 순국
2004년 11월 19일 오전 9시경, 대대 전술훈련을 마치고 통신장비 철거 작업 중에 23,000볼트 고압전선에 접촉된 안테나를 통해 감전당한 부하 장병을 구하고 자신은 끝내 향년 34세를 일기로 산화하였다.
순직 당시 상황을 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이다. |
사고가 발생한 날은 대대 전술 훈련 마지막 날로 아침부터 자욱한 안개 속에서 4박 5일간 훈련을 종료하며 장비를 철거하는 중이었다. 이때 막사 밖에 설치된 PRC-999K 무전기의 안테나(AS-992K 광대역 안테나 세트)를 철거하던 과정에서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던 고압선에 안테나의 끝 부분이 닿아 통신병 허모 상병이 고압전류에 감전된 상황이었고, 고압전류는 다시 안테나와 연결된 전선을 타고 막사 내 통신장비로 흘러 정모 일병마저 감전됐다.
사태의 위험함을 직감한 김 중령은 정모 일병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로 인해 두 통신병은 고압전류가 발로 빠져나가 다행스럽게도 목숨을 건졌으나, 김 소령은 전류가 심장으로 지나가 강릉 아산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안타깝게도 순국하였다. 김 중령이 구해낸 두 통신병들은 허모 상병이 김 소령의 살신성인 덕분에 오른손에 화상을 입었을 뿐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정모 일병도 경상만 입었다.
김 중령은 불과 3주 전인 2004년 11월 1일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한 사실이 알려져 슬픔을 더했다. 유족은 부모님, 부인 박정숙 여사, 두 아들들이 있었다.(장남 김민준 군, 당시 7세 / 차남 김민성 군, 당시 5세)
4. 사후 추서와 뒷이야기
이후 2004년 11월 21일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사단장(葬)으로 영결식이 엄수되었고 유해는 26일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군부에서는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정부에서는 정찬용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수석이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에게 애도의 뜻을 밝혔다. 사후 중령으로 추서되었고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되었다.2021년 6월 25일, 그의 장남 김민준 소위(학사 66기)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5. 둘러보기
[1] 보국훈장은 평시 상황에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으로 삼일장은 영관급 장교에게 수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