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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04:14:05

김홍빈(산악인)

8000m 14좌 완등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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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는 사망을 의미 }}}}}}}}}

<colbgcolor=#0B5362><colcolor=#FFFFFF> 히말라야 14좌 장애인 최초 완등자
김홍빈
金洪彬 | Kim Hong-Bin
파일:20210719000085_0.jpg
출생 1964년 11월 20일[1]
전라남도 고흥군[2]
사망 2021년 7월 19일 (향년 56세)
파키스탄-중국 국경 카라코람 산맥 브로드피크 7,900m~7,000m 부근[3]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본관 김녕 김씨[4]
학력 순천매산고등학교 (졸업)
송원대학교
직업 산악인, 체육인, 장애인 인권운동가
경력 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장애인 최초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수상 대한민국 산악상 고산 등반상
경기도지사 표창장
체육훈장 中 청룡장추서[5][6]

1. 개요2. 생애
2.1. 데날리 등반과 7대륙 최고봉 완등2.2. 장애인 운동2.3. 히말라야 14좌 완등
2.3.1. 하산 도중 실종과 사망 처리2.3.2. 정부의 구조 비용 청구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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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김홍빈.jpg
그래서 저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산악인.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장애인 산악인 최초로 성공했다.

2. 생애

김홍빈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0m) 단독 등반 중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으며, 장애인이 된 이후에도 장애를 딛고 산악인 활동을 이어갔다.

2.1. 데날리 등반과 7대륙 최고봉 완등

두 손이 없지만 다리의 힘으로 히말라야 올랐습니다 - 오마이뉴스 인터뷰

데날리(구 매킨리산) 등반 당시 해발 5,700m에서 정상 등정을 두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갖고 간 식량은 바닥이 났고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당시 김홍빈 대장은 추위와 탈진 등이 겹쳐 수면 상태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지나가는 산악구조대에 발견돼 눈보라가 치는 악조건 속에서 16시간이나 걸려 겨우 구조됐다.

구조 당시에는 손목째로 모두 절단했으며, 현재의 손목은 뱃살 부분을 떼어 붙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울었다고. 손목 관절만 있어도 상체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제대로 가꿀 수 있는데, 팔굽혀펴기도 힘들었다며 하체운동만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는 광주·전남 등산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해고를 당했다. 이후에는 장애인임에도 고산 등반이 가능한지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다테야마산[7]을 올랐고, 이것이 성공하자 고산 등반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유럽 최고봉 옐브루스(5,642m) 등정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산(5,895m), 1998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2m)와 북미 데날리를 등정했다. 결국 2009년, 7대륙 최고봉을 13년 만에 완등했다. 또한 히말라야 14좌를 차례로 올랐다.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의 기록이라고 한다.

2.2. 장애인 운동

김홍빈 대장은 장애인 체육 진흥운동과 장애인 인권운동, 후원활동도 진행했다.

김홍빈 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장애인들은 대체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낮은 산도 가본 적이 없다며 갈 용기도 없고, 같이 갈 사람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홍빈은 '장애인들의 처우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사회 참여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장애인들은 고립되고 소외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의욕 상실과 무기력, 도움만을 의존하는 성향, 심신쇠약에 대한 문제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했다.#

이러한 연유 등으로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만들기'를 설립해 장애인, 청소년 등을 후원하기 위한 단체를 설립했으며 이 단체를 통해 장애인들과, 청소년, 소외계층 일반인의 체육활동 그리고 야영과 산행 히말라야 트레킹, 원정등반 등 각종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2.3. 히말라야 14좌 완등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기로 결심한 건 1987년이라고 한다. 김홍빈 대장은 1990년 4월께 낭가파르밧을 등반하면서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등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17년에 12번째 봉우리인 로체를 정복했다.#

2019년에는 조철희 충북산악연맹 등반대장과 13번째 봉우리 가셔브룸Ⅰ을 정복했다.# 당시 김홍빈 대장은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대회 마스코트인 수리·달이를 배낭에 매달고 등정했다. 특히 대회 개막일(7월 12일)을 앞두고 정상에 올라 그 의미를 더했다.

2020년 세계에서 12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브로드피크를 등정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연기되었다.

2021년 7월 19일 광주시산악연맹 등에 따르면 김홍빈 대장은 류재강 등반대장 등을 포함해 현지 시각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 시각 오후 8시 58분) 파키스탄-중국 국경에 위치한 카라코람 산맥 제3 고봉인 브로드피크(8,047m)를 등정함으로써 세계에서 장애인으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최초의 산악인이 되었다. 한국인으로는 7번째로 완등에 성공했다.

김홍빈 대장은 등정 성공 이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홍빈 대장의 브로드피크 등반성공을 축하하는 축하의 뜻을 전했다.#

2.3.1. 하산 도중 실종과 사망 처리

그러나 2021년 7월 19일 브로드 피크 등정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직후 하산 도중 실종되었다. 뉴스에 따르면 중국 방향 경사면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 산악 연맹 회장 이인정은 2021년 7월 19일 언론과의 통화에서 “김 대장이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현지에 있던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장의 몸에 줄을 걸어 끌어올리려 했으나 올리던 도중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 회장에 따르면 김 대장은 정상 등정 뒤 하산 과정에서 조난을 당했다. 김 대장은 해발 7,900m 부근에서 조난된 뒤 현지 시각으로 이날 오전 9시 58분 구조 요청을 보냈다. 정상 등정 뒤 17시간 만이었다.

광주장애인체육회는 “구조에 나섰던 러시아 구조대가 경사면에서 조난된 김 대장을 발견하고 의식이 있는 것까지 확인했다”라며 “주마(등강기)를 내려보내 15m까지 끌어올렸지만 줄이 끊겨 낭떠러지로 추락했다”고 전해왔다. 구체적인 내용은 EBS의 보도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광주장애인체육회는 김 대장이 연락두절돼 퇴근했던 사무실에 모여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체육회 측은 김홍빈 대장이 장애인들의 희망이었다며, “완등 소식을 듣고 광주에 돌아오면 코로나19 여건에 따라 환영식도 계획하고 있었다”며 “준비하고 있는 환영식을 꼭 열 수 있도록 하늘이 도와주길 기원한다”고 이야기했다.#

광주광역시 이용섭 시장은 꼭 살아서 돌아와 달라며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

또한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정세균국무총리,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7월 21일, 실종 지점인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해발 7,900m보다 900m 아래인 7,000m 지점에서 김홍빈 대장이 위성전화로 구조요청을 했던 신호가 포착되었다. 수색당국은 신호가 잡힌 지점 부근을 중심으로 수색을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육군은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실종 지점의 날씨가 맑아지는 대로 헬기를 투입해 수색을 하겠다고 외교부 측에 전했다.

중국 당국에서 한국의 요청에 의해서 수색에 들어갔다.

김 대장의 구조 요청에 제일 먼저 응해 구조를 시도[8]했던 러시아 산악인 비탈리 라조는 이 사고를 당한 걸 인지한 산악인이 최소 15명이고, 그들이 설령 힘이 없어서 구조에 나서지 못했다 쳐도 왜 사고를 알리지도 않았는지 의문을 표하며 "산에 가는 것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도덕성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라고 맹비난했다. #

비탈리 라조의 발언을 통해 김 대장의 최초 조난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 대장은 앞서 하산하던 모 산악인이 실족하여 늘어져있던 로프를 정상 루트로 오인하여 절벽을 내려갔다가 조난을 당하였고, 무전기 고장으로 인해 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위성전화로 한국에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하였다.

이후 비탈리 라조는 동료들과 함께 김 대장을 찾아내어 직접 내려가서 구호 활동을 했고[9] 이어 라조의 동료들이 김 대장을 끌어 올리다 경사가 심한 절벽 윗부분에 이르러 직접 오르던 중 김 대장의 로프가 끊어지며 추락, 실종되었다.# 김대장을 구출하러 들어갔던 라조가 찍은 영상이다. 김대장의 추락 직전 사진과, 캠프에서 김대장의 추락 사실을 들은 대원들의 모습이 나온다.(1:53:00부터 볼 것)

아이러니하게도 김 대장이 조난당한 계기가 된 로프의 주인도 한참 전에 인근에서 라조에 의해 구조되었다. 구조된 사람은 나스야라는 사람이었다. 나스야가 구조될 때 나스야는 김홍빈의 조난을 인지했다. 그러나 고산지에서 구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김홍빈을 꺼낼 여력이 없었다. 김홍빈과 함께 했던 하이포터는 울면서 구조를 요청했지만, 캠프에 가는 길에 만난 이들은 구조를 거절하고 만다. 하이포터는 엉엉 울며 캠프에 돌아와 조난 사실을 알렸다. 비탈리 라조는 이런 모습에 산악인들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이다. 상업등반대는 구조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도움을 줄 수는 없는 사람들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설령 생존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라 저체온증과 탈진에 의한 사망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고.

7월 26일 수색 8일 만에 김홍빈의 가족들이 수색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위에 언급된 이유들에 의해 생환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평소 김홍빈이 사고 후 수색작업 때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라고. 현재 장례 절차를 준비 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행방불명으로 인한 인정사망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10] 유족 및 지인들은 정부측에 체육장 청룡장을 추서해 달라고 건의할 예정이다. # #

결국 가족 요청에 의해 수색을 중단했다. # 훗날 눈이 녹는 등의 지형변화로 인해 눈에 묻힌 김홍빈의 시신이 밖으로 드러나 지나가던 등산가들이 발견해주지 않는 한 영원히 브로드피크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8월 4일부터 8일까지 산악인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며 빈소는 광주 염주체육관에 마련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황희 문체부 장관이 조문하고 추서된 체육훈장 청룡장을 전달했다.#
8월 29일 김홍빈 대장에 대한 마지막 등반을 기록한 내용이 KBS 특집 다큐로 방송되었다. #

2.3.2. 정부의 구조 비용 청구 소송


2022년 5월 31일, 정부는 사단법인 광주광역시산악연맹 외 5명을 상대로 6,813만 8,000원 규모 구조비용 등 청구 국가소송을 제기했다. 구조 활동을 위해 쓰인 비용을 피고들이 정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근거로 외교부 소관인 '영사조력법'상 자신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고, 국가가 비용을 대신 지급한 경우 그 비용을 상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영사조력법 제19조는 다음과 같다.
제19조(경비의 부담 등)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다만, 재외국민을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1. 사건ㆍ사고에 처한 재외국민이 본인의 무자력(無資力) 등으로 인하여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2. 해외위난상황에 처한 재외국민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없어 국가가 이동수단을 투입하는 경우
2023년 6월, 법원은 시 산악연맹에 2천 500여만 원, 2명의 동료가 500여만원, 또 다른 3명의 동료가 500여만원을 나눠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정부의 승소였지만, 정부는 전액을 내놓아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를 결정했다.[11]

2024년 9월 28일. 광주시산악연맹과 원정대 대원 5명이 6천800만원 전액을 정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원 5명의 경우는 6천800만원 중 각각 300만원씩 1천500만원을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해외위난상황에 처한 재외국민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없어 국가가 투입하는 경우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영사조력법 조항과 관련해 "광주시산악연맹은 해외위난상황을 당한 재외국민 본인이 아니므로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 음력 10월 17일[2] 김녕 김씨 집성촌이다.[3] 김홍빈 대장이 추락한 지점은 7,900m 부근이지만 추락 후 위성 전화 신호가 온 지점이 7,000m 부근이기 때문에 실종 상태에서는 7,000m 부근이 가장 유력한 장소이다.[4] 영돈령공파 29세손 '빈' 항렬[5] 청룡장은 체육훈장 중에서 가장 높고 최고의 예우로 주는 훈장이다.[6] 김대장 수색 종료후(사후) 대한민국 정부가 그를 기리기 위해 제일 격이 높은 청룡장을 추서해주었다.[7] 일본 도야마현에 위치, 해발고도 3,015m[8] 절벽을 내려가 김 대장에게 식수를 건내고, 함께 올라오던 중 김 대장의 로프가 끊어졌다.[9] 이 과정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도 있다https://news.v.daum.net/v/20210726125708971.[10] 박영석 대장을 비롯한 전세계 실종 산악인 대부분이 이 절차를 밟았다.[11] 故 김홍빈 대장 구조비 소송.. 정부 승소하고도 항소, 2023년 7월 16일, 광주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