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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9:36:10

김녕 김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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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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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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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9062f> 관향 경상남도 김해시
비조 김알지(金閼智)
도시조 경순왕
시조 김시흥(金時興)
중시조 김향(金珦), 김순(金珣)
집성촌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군위군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경상북도 경주시, 김천시, 상주시
경상남도 창원시[1], 진주시, 의령군, 합천군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순창군
전라남도 고흥군, 함평군, 광양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
황해도 신계군 다미면 중산리
인구 578,233명(2017년)[2] | 국내 13위
웹사이트 중앙 종친회
충의공파 대종회
분성군파 대종회

1. 개요2. 역사 및 특이사항3. 분파4. 항렬표5. 인명
5.1. 고려/조선시대 인물5.2. 25세손5.3. 26세손5.4. 27세손5.5. 28세손5.6. 29세손5.7. 30세손5.8. 미상 혹은 항렬 미사용

[clearfix]

1. 개요

경상남도 김해시의 옛 지명인 김녕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김씨이다. 인구 수는 2000년 조사 기준으로 약 51만명으로 전체 13위. 김해 김씨, 경주 김씨, 광산 김씨 다음으로 많고 안동 김씨보다 더 많다. 부산광역시경상남도 지역에 상당히 많다. 서울특별시경기도 지역에서는 녕 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및 특이사항

본관 김녕은 김해 지역이지만 가야 계통이 아닌 신라 계통 본관이다.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4남 김은열(金殷說)의 5대손인 동정(同正) 김봉기(金鳳麒)의 넷째 아들로, 고려 인종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여기에서 본관이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일:金時興.jpg
김녕은 현재의 김해시 지역으로[3], 이 때문에 김녕의 지명이 김해로 바뀌자 졸지에 김해 김씨가 되어버린 김녕 김씨들은 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결국 김해 김씨가 선김(先金), 김녕 김씨가 후김(後金)으로 불리는 걸로 적당히 합의했다가, 김녕 김씨 쪽에서 본관을 그냥 옛 이름인 김녕으로 되돌리기로 조선 헌종~고종 때에서야 결정되었다. 그 전에는 중간에 사성 김해 김씨까지 생기면서 헷갈리는 게 상당히 심해서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일부 계통은 김녕 김씨로 갈아타지 않고, 그냥 김해 김씨[4]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같은 후김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분관된, 시조를 김인찬으로 하는 익화파(익화 김씨, 양근 김씨), 종남파, 법흥파(법흥 김씨)[5], 종민파와는 과거 통혼을 하지 않았으며, 동성동본 통혼 이후에도 가풍이 엄한 집안에서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6] 이외에도 결성 김씨, 분성 김씨도 같은 계통이라 통혼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사육신 사건 때, 김문기가 단종 절신으로 순절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렸다[7]. 그렇게 단종 복위 운동 때 반역으로 죽은 사람들이 모두 신원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저기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김문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심했으면 상기한 바와 같이 헌종~고종 때 본관을 김녕 김씨로 되돌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 심지어 김문기의 후손도 김녕 김씨 충의공파(忠毅公派), 경주 김씨 백촌공파(白村公派), 김해 김씨 백촌공파(白村公派)로 갈라졌다.[8]

3. 분파

김시흥(金時興)에게는 김향(金珦), 김순(金珣)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후손들이 34개파로 분파되었다.

34파로 계파를 이루고 있다.

4. 항렬표

충의공파 항렬표
<rowcolor=#ece5b6> 세수 항렬자
23世 용○(溶○)|문○(汶○)|광○(洸○)
24世 ○권(○權)|○모(○模)|○주(○柱)
25世 형○(炯○)|병○(炳○)|현○(炫○)
26世 ○규(○圭)|○기(○基)|○규(○奎)
27世 진○(鎭○)|종○(鍾○)|연○(鍊○)
28世 ○연(○淵)|○수(○洙)|○태(○泰)
29世 정○(楨○)|동○(東○)|병○(秉○)
30世 ○엽(○燁)|○섭(○燮)|○열(○烈)
31世 재○(在○)|채○(採○)|지○(址○)
32世 ○호(○鎬)|○현(○鉉)|○건(○鍵)
33世 영○(泳○)|준○(浚○)|호○(浩○)
34世 ○근(○根)|○병(○柄)|○상(○相)
35世 희○(熺○)|환○(煥○)|희○(熙○)
36世 ○곤(○坤)|○준(○埈)|○균(○均)
37世 동○(銅○)|용○(鏞○)|옥○(鈺○)
38世 ○락(○洛)|○한(○漢)|○영(○永)
39世 래○(來○)|병○(柄○)
40世 ○경(○景)

5. 인명

신분과 직위를 넘어서 나열하며, 특정 인물의 강조 표기를 금지한다.

5.1. 고려/조선시대 인물

5.2. 25세손

5.3. 26세손

5.4. 27세손

5.5. 28세손

5.6. 29세손

5.7. 30세손

5.8. 미상 혹은 항렬 미사용



[1] 60년대까지는 존재하였으나 이후 창원시가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당시에는 창원시청과 창원폴리텍대학 사이에 존재했다고 알려진다.[2] 김녕 김씨 290,092명 + 금녕 김씨 287,701명 = 578,233명[3] 금관으로 불리다가 신라 통일 이후에 김해라는 이름을 얻었고 고려 때 잠시 김녕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김해로 바뀐 뒤 오늘에 이른다.[4] 실제로 북한에서 본관을 '김해'로 쓰는 김씨 집성촌 대다수가 실제로는 '김녕' 김씨 계열이다. 이북 지역의 김씨들은 본관의 명칭을 되돌리지 않은 것. 예컨대 김홍일 장군의 집안도 김녕으로 바꾸지 않고 김해 그대로 쓴다.[5] 다만, 법흥 김씨는 족보가 복잡하게 꼬인 상태이다. 법흥 김씨에서는 김은열의 아들인 김염을 시조로 두고, 김녕 김씨의 관조인 김시흥과 법흥 김씨의 시조인 김춘을 중시조로 본다.[6] 위의 파 모두 다 김녕 김씨로 바꾸지 않은 것은 아니고 집안에 따라 김해 김씨로 쓰는 집도 있고, 김녕 김씨로 쓰는 집안도 있다.[7] 실제로 김녕 김씨의 파조 중 대부분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인물들이다.[8] 심지어 전주 김씨 족보에 김문기라는 이름이 나온다.[9] 전서공파(典書公派) 김명로(金命路)[10] 이모부는 정치인, 배우 이덕화다.[11] 국가유공자의 자손이다.[12] 부인은 여배우 최명길이다.[13] 보수당 선거에 편집공신으로 불렸던 1세대 PD 김상근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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