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산대불로 유명한 중국 쓰촨성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러산시 문서
, 탄화수소의 일종에 대한 내용은 부탄산 문서
, 양양군에 있는 사찰에 대한 내용은 낙산사 문서
참고하십시오.한양(現 서울특별시)의 풍수지리 | ||||
구분 | 북 | 서 | 남 | 동 |
내사산(內四山) | 북악산 (342 m) | 인왕산 (338.2 m) | 남산 (270.85 m) | 낙산 (125 m) |
외사산(外四山) | 북한산 (836.5 m) | 덕양산 (124.8 m) | 관악산 (632 m) | 용마산 (348 m) |
낙산 駱山 | Naksan | |||
<colcolor#fff>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북구 | ||
좌표 | 북위 37° 34′ 50″ 동경 127° 00′ 27″ | ||
높이 | 125m | ||
면적 | 199,001㎡[1] | ||
산맥 | 광주산맥 |
낙산공원에서 본 노을. 가운데 약간 오른쪽에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가 보인다.[2] |
낙산공원에서 본 야경. 사진의 중심으로부터 약간 오른쪽에 한성대학교가 있고 중심 부분은 대학로 지역이다. |
[clearfix]
1. 개요
한양도성의 좌청룡 · 우백호 · 남주작 · 북현무의 좌청룡에 해당.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이화동, 동숭동, 창신동, 숭인동, 성북구 삼선동, 보문동 일대에 걸쳐있는 야산.2. 상세
과거엔 낙타의 등과 비슷하다 하여 낙타산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먹을 우유[3]를 공급하는 소들을 이 곳에서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타락산'이라는 이명도 존재.공원이 조성되기 전의 낙산에는 1960,70년대에 조성된 시민아파트와 판자촌이 있었다. 현재의 공원 중턱 주차장이 시민아파트 부지 중 일부였다. 지금의 공원자리 윗쪽에도 이화동까지 이어지는 판자촌이 쭉 있었다. 사실 낙산에는 1970년대까지도 판자촌이 있어, 차마 산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당시 지방에서 올라왔던 사람들로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서울에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시민아파트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대량의 철거민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광주대단지로 강제이주되었다. 다만 판자촌의 규모가 워낙 컸던 터라 모든 판자촌 주민이 소개되지는 않았다. 시민아파트 부지에서 살던 사람들만 강제 이주 대상이 되었다. 그외 판자촌 부지 중 일부는 주민들의 자체적인 정비를 거쳐 '장수마을'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장수마을이라는 호칭은 노인들이 많아 지어진 이름이다.
1996년, 시민아파트를 철거하고 2002년 낙산공원 1단계 공사를 준공했으며, 2008년에는 삼선동 일부 주택을 헐어 2단계 공사를, 2010년에는 3단계 공사를 완료했다. 3단계 공사는 낙산 정상-혜화문 구간의 한양도성 동측에 탐방로를 만드는 것. 장기적으로는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캠퍼스 중 성곽과 접한 부분을 공원으로 편입하는 것이 4단계 계획이다. 공원화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주택이 덮고 있다. 대학로에서 가까운데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기에 주말 저녁만 되면 외국인 관광객들과 커플들이 몰려든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서울의 사대문안 시내를 볼 수 있으며 특히 남산과 함께 야경이 유명하다.
3. 교통
종로5가역, 동대문역, 동묘앞역, 창신역에서 서울 버스 종로03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정상이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서울 버스 성북02를 타고 종점인 한성대에서 내려서 5~10분 걸으면 낙산 정상이다. 물론 상술한 역에서 걸어가도 무방하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시간만 올라가면 정상이다. 혜화역에서 올라가도 되는데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가 다소 가파르다(반대로 마을버스가 다니는 구간이 낙산 등산로로는 가장 쉬운 코스). 네이버 지도에서 창신역이 인근 지하철역이라고는 하지만, 창신역에서 오르막길 감안하면 약 도보 25분 거리이므로 서울 버스 종로03번을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르다.참고로 이 산부터 90~96m 이상의 마천루는 금지된다는 법 때문에 금융관광허브빌딩이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