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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기업)/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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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업 초기3. 후발사업자에서 1위 사업자로4. 성장하는 국내사업5. 인터넷 공룡, 사회와 부딪히다6. 모바일 혁명 대응7. 벤처기업과 대기업 사이8. 영향력 확대 및 지분 거래9. 라인 관련 경영 위기

1. 개요

네이버 주식회사의 역사 다루는 문서.

2. 창업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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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1997년 삼성SDS의 사내벤처인 '웹글라이더'에서 비롯되었다. 벤처 붐이 일던 당시 이해진을 비롯한 삼성SDS직원들은 사내 공모를 통해 사내벤처로 선발되어 지원을 받아 1998년 1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창업 멤버[1]들은 1999년 분사하여 네이버컴을 설립하게 된다.

2000년에는 네이버가 한게임, 원큐, 서치솔루션을 인수하였는데, 당시 네이버컴의 기업규모는 작았고 자본력도 없었기 때문에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하면서 이해진 대표의 지분은 크게 낮아지고, 피인수 기업의 주주들은 네이버의 대주주가 된다. 한게임과의 합병은 빅딜로 여겨졌다. 네이버는 당시에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한게임은 1999년 12월 출시 이후 5개월만에 300만명의 유저를 모으는 건실한 기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양측 모두 창업 초기라 시너지를 고려하여 합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김범수 한게임 창업주가 네이버컴의 주주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엠파스는 "자연어 검색"으로 대히트를 치는데, 자연어 검색의 핵심 기술을 제공한 사람이 숭실대학교 이준호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다. 이준호 교수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와 서울대-카이스트 선후배 사이였는데, 그의 기술을 눈여겨본 이해진은 그에게 어마어마한 제안을 한다. "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는가, 그게 싫다면 독립 법인을 차리면 내가 10억을 투자하고, 연구비로 월 4,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이준호 교수는 서치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차려 검색엔진 개발회사를 차려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이 많지 않았던 네이버컴은 결국 주식교환 방식으로 서치솔루션을 자회사로 인수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이준호 교수도 네이버컴의 대주주가 되었다. 이것이 13년 후 기업분할의 단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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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을 발표하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김범수 한게임 창업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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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NHN의 CI 창업10주년을 맞아 2009년 변경한 CI
적당히 몸집을 불린 네이버컴은 2001년 NHN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3. 후발사업자에서 1위 사업자로

이 당시까지는 인터넷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인지도도 이미 한메일다음 카페로 대중적으로 확산돼 있던 Daum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만큼 낮았고[3]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일상 생활과 접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신생 중소기업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편이다.

이용자 수도 적은편이라서 네이버는 5위에 불과했다.[4] 그러나 2001년부터 한게임과의 합병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어일으키며 2002년을 전후하여 야후, 다음과 겨룰수있을 정도의 포털사이트가 되었고 코스닥에도 등록되었다.

네이버가 5위 포털사이트에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된 계기는 2002년 10월 출범한 지식iN 서비스 덕분이었다. 이 서비스는 나중에 빅테크 들이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이후 급격히 이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이를 원동력으로 2003년 블로그와 카페 서비스를 개시하여 전지현을 전면에 내세운 광고로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며 1위 검색엔진에 등극한다.

다음이 이미 내놓은 서비스와 내놓지 못한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면서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잡아가는 공룡이 되더니 결국 2004년 6월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오른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자 2002년부터 머물렀던 테헤란로스타타워에서 떠나 2006년 분당벤처타운으로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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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기있던 배우 전지현은 네이버의 모델이 되었다. 전지현을 모델로 쓴 네이버 배경화면이 인기를 끌었고, 동시에 네이버의 상징이 된 날개 달린 모자를 구하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4. 성장하는 국내사업

자본력을 갖춘 네이버는 성장 한계에 다다른 국내를 떠나 한게임을 필두로 해외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2005년에는 NHN USA를 설립하여 미국에서도 한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각종 컨텐츠를 꾸준히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을 묶어두고, 동시에 여러 광고 서비스들을 계속 출시해나가면서 수익성도 올라가게 된다. 또한 공격적으로 게임개발사, 검색엔진 개발사 첫눈 등 많은 벤처기업들을 인수하고 서비스를 늘려나가며 사세로 확장한다.

한국에서 인터넷은 곧 네이버가 되었고, 네이버는 플랫폼 사업자로서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쥐게 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인터넷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2008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하였고 이로써 완전히 주류 중견기업이 되었다. 2007년에는 창업주 이해진이 이사회 의장 및 최고전략담당으로 머물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최휘영 대표가 경영을 맡았다.

사세가 커지면서 전문회사를 설립하거나 모회사를 분할하기도 했는데, 2004년 게임 개발 스튜디오 NHN게임즈를 설립했고[5], 2005년 인터넷 서비스 전문 기업 NHN서비스를 설립했으며, 2009년엔 NHN의 핵심수익사업인 광고부문을 따로 떼어내어 NHN 비즈니스 플랫폼(NBP)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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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기업집단이 된 NHN.

5. 인터넷 공룡, 사회와 부딪히다

2010년 네이버는 현재 본사 사옥인 분당구 정자동 그린팩토리를 완공하여 입주했는데, 이 시기를 즈음하여 국내에서는 네이버의 독점적 지위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6]

네이버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들 중에서도 신문사들의 목소리가 특히 강했다. 미디어 환경이 매스미디어에서 인터넷으로 완전히 바뀌자 신문사들은 기존의 어젠다 설정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광고수익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네이버뉴스에서 링크되는 자사 웹사이트의 페이지뷰에 따른 광고수익이 사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져갔고, 네이버뉴스팀의 편집팀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 업체가 사실상 편집권을 행사하므로 이들도 신문법에 따른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결국 네이버는 2011년 뉴스 스탠드를 런칭하여 메인화면 뉴스 편집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용자들은 오히려 더 불편하게 여겨 불만을 제기했지만, 미디어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Daum과 달리 플랫폼으로서 정체성이 강한 네이버로서는 골치아픈 일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13년까지는 NHN이라는 사명을 사용했고, 한게임을 운영하는 NHN엔터테인먼트와 인적분할 이후 현재의 '네이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신설법인이고, 네이버는 존속법인이라서 기존 NHN의 역사는 네이버 쪽으로 승계되었다. 분할비율은 네이버 68.49% / NHN엔터테인먼트 31.51%이다. 대략 2 : 1 정도의 비율로 나눠가진 것. 나눠지면서 로고가 조금 바뀌었다.

상생과 관련해서는 네이버가 워낙 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하다보니 벤처기업들이 하고 있는 일과 중복되어서 벤처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거나 창업환경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2013년말과 2014년초에 걸쳐 윙스푼을 비롯한 여러 서비스를 접기도 했다.

한편, 2013년에는 보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강원도 춘천시에 우리나라 인터넷서비스사업자 중 최초로 데이터센터 각을 설립하기도 했다. IDC로는 세계최초로 친환경인증인 LEED인증까지 받았다. 네이버 지도로 각 위를 살피면 네이버 도시첨단산업단지라 되어있다.# 각은 춘천 외곽에 건설되었는데, 현재는 각 주변에 여러 빵집 및 카페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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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바일 혁명 대응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모바일 혁명 이후 모바일로 인터넷 트렌드가 옮겨가자 네이버의 지배적 사업자 지위도 그리 견고하지 만은 않게 되었다. 특히 한게임 창업자 김범수 대표가 카카오톡을 개발하여 모바일 시대의 총아로 떠올랐다. 반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네이버톡은 이미 카카오톡이 장악한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7]

이 때 네이버 자회사인 NHN재팬에서 개발하여 2011년 6월 서비스 개시한 라인일본태국동남아 지역에서 성공하였다. 이용자수는 현재 5억명을 돌파하였고, 동시에 이용자수 세계 3위의 메신저[8]로 등극함으로써 네이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어주었다.

NHN 재팬은 라인 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고 국내에는 라인 플러스를 설립하여 라인의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시에 2013년 캠프 모바일을 자회사로 설립하여 밴드를 출시하는 등 모바일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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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벤처기업과 대기업 사이

한편, 회사가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관료화가 되어가고, 반면 대기업만한 관리능력은 못 갖추고 있다보니 업무 비효율 및 의사소통 부족 등과 같은 문제들을 안게 되었다. 또한 기업이 너무 빠르게 성장한데다 합병, 분할, 인수를 거치면서 대주주들의 지분비율이 낮아져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게 됐고, 장차 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대주주의 지분비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직이 커지면서 사내 정치도 횡행하게 되었다. 매출의 양대 산맥인 네이버한게임이 각각 양대 파벌이 등장하면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졌고, 결국 정통성과 세력이 좀 더 약했던 한게임 출신들이 퇴진하게 되었다. 참고기사

그러자 이번에는 2000년 서치솔루션의 피인수로 NHN의 대주주가 된 후 2005년부터 NHN의 경영에 참여한 이준호 최고운영책임자에게로 파워게임이 전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 초기 투자를 받으면서 2002년 상장 당시 이미 이해진 의장의 지분율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주식을 공개시장에 여러 번 매각하여 지분이 4.64%에 불과했다. 반면 이준호 의장은 서치솔루션 매각으로 네이버의 대주주가 된 이후에 주식을 팔지 않아 3.74%로 이해진 의장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지분으로 이해진 의장과 대립했다. 결국 선후배 관계인 둘은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기로 하고 2013년 게임사업 부문과 포털사업 부문을 분리하여 NHN엔터테인먼트(이준호 의장)와 네이버 주식회사(이해진 의장)로 인적분할하였다. 단순히 사업부문 정리를 위한 분할이라면 물적분할로도 충분했을텐데, 인적분할을 하여 아예 별개의 회사로 나눈 것. 당시 네이버 측은 NHN엔터테인먼트와는 중장기적으로 네이버와 협력관계를 바란다고 밝혔다.

분할에 관한 분석기사는 이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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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전 네이버 주식회사의 지분 관계

2020년 당시 네이버의 자산총액은 약 9.5조원으로 거의 대기업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대기업이냐 준대기업이냐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인 '상호출자제한' 규제의 기준은 자산총액 10조원이다. 국내 IT 기업 중에서는 1위인 네이버를 제치고 카카오가 2019년, 대기업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기업 규모(매출)는 네이버가 위지만, 카카오가 종속회사 수가 많고 네이버는 해외 법인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즉,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국내 자본규모로만 따져봤을 땐 네이버가 카카오보다 작다. 네이버가 아닌 카카오가 먼저 대기업이 된 이유 다만 네이버의 성장세를 봤을 때 2021년 정도가 되면 카카오를 따라 '대기업'에 진입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로 여겨졌고 결국 2021년, 네이버도 대기업으로 분류가 바뀌었다.

대기업 지위는 획득했지만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배출한 카카오와 달리 경제단체에 자리가 없다는 핸디캡이 있다. 또한, 네이버와 대비되는 카카오의 정책들이 네이버의 성장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예전과 같이 업계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금 어려워진 상황이다.

8. 영향력 확대 및 지분 거래

기존 대기업들과 투자 및 지분 교환을 통한 동맹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9. 라인 관련 경영 위기

그러나 일본 정부의 라인 압박으로 일본 시장에서 사실상 추방될 가능성이 생겼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도 강제로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의 라인야후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 논란 문서 참고.

[1] 당시 창업멤버는 김정호, 이해진, 최재영, 강석호, 권혁일, 김보경, 김희숙, 오승환 이다#[2] 우리가 아는 그 카카오 창업주 맞다. 2010년대 이후 이 둘은 한국 IT업계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3] 때 마침 90년대 말에 네이버가 다음의 검색외주를 맡기도 했었다.[4] 그래도 당시에는 십수여개의 포털사이트들이 쟁탈전을 벌이던 시기였기에 이 정도도 나름대로 중위권에 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다.[5] 2010년 웹젠에 피인수.[6] 네이버는 검색 트래픽의 7-80%를 가져가는 공룡이 되어 있었다.[7] 2위인 마이피플도 근근히 버텼다.[8] 1위 페이스북 메신저, 2위 와츠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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