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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00:37:30

뇌정노

雷霆怒

1. 개요2. 줄거리3. 특징4. 여담5. 출연진

1. 개요

판관 포청천에피소드 가운데 하나. 여러 화로 구성된 장편 에피소드이다.

1993년 판을 KBS 2에서 방영했을 때 표기되었던 제목은 경천풍운, VHS 출시판에서 표기되었던 제목은 용호풍운이었다. '뇌정노'라는 원 제목은 '벼락(雷霆)의 분노'라는 뜻인데 내용을 아주 잘 드러낸다.

포청천 사상 최강의 아이템인 송태조의 면사패, 단서철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이 면사패는 송태조 조광윤에게 제위를 선양한 후주의 황족 가문의 후예인 시씨 가문의 사람들 중 가주(家主)라고 할 수 있는 소상왕(小商王)에게만 해당된다. 문제는 소상왕의 아들이 중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지만...

2. 줄거리

이야기는 양가보(楊家寶)라는 젊은 서생이 시씨 가문의 금지옥엽 시문정(柴文婷)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혐의[1]로 사형을 받을 위기에서 시작한다. 시씨 가문은 후주의 마지막 황제이자 송나라의 태조 조광윤에게 양위한 시종훈의 자손이다. 시씨 가문의 가주는 소상왕(小商王)이란 칭호를 사용하는데, 송태조 조광윤으로부터 면사패(단서철권)를 받아 반역을 제외한 모든 범죄에서 형을 면제받는다. 황족 다음가는 지체 높은 가문의 귀한 아가씨를 살해했다고 하니, 평범한 서생 양가보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죄목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양가보는 시문정을 강간살해하기는커녕, 기묘한 우여곡절 끝에 시문정과 서로 사랑하여 비밀리에 결혼한 사이였다. 당연히 신분 차이 때문에 쉬 인정받지는 못하였으나 결국 시문정의 아버지이자 현 소상왕인 시정(柴政)에게 인정을 받았다. 아내가 죽은 것만으로도 원통한데 일가친척들까지 싸그리 도륙당했고, 거기에 아내를 죽인 살해범으로 몰려 처형당할 뻔했으니, 양가보로서는 한이 골수에 박힐 만하였다.

포청천은 진범이 소상왕 시정의 외동아들로서 시씨 왕가의 세자인 시문의(柴文意)[2]가 진범이라고 진작부터 짐작하고 그를 조사하려고 한다. 시문의가 포청천 시리즈 사상 어그로 랭킹 1, 2위를 다투는 연쇄 강간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단서철권을 수여받은 시씨 왕가의 세자라 강직하디강직한 개봉부윤 포청천조차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전조가 당금 황제(인종)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방보검을 들고 시씨 가문의 저택에 들어갔지만, 단서철권과 함께 하사된 시씨 가문의 가보인 송나라 개국시조(태조)의 용포를 시문의가 입고 뻗대는 바람에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황제의 용포는 황제의 옥체와 같으므로, 태조의 용포는 곧 태조의 옥체와 같기 때문이었다. 개국시조인 태조의 권위 때문에 현 황제조차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전조도 시문의 앞에 엎드려 "태조 무황제 폐하 만세"만 외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황제조차도 넋이 빠져서 태조의 유언인 '시씨는 죽이면 안 된다.'를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포청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인 황제도 석각유훈(石刻遺訓)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으니 신하인 포청천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문의는 포청천이 자신에게 손대지 못함을 잘 알기에 온갖 추악한 범죄를 다 저지르지만, 결국 포청천이 그를 어찌어찌 체포하여 옥에 가둘 수 있었다. 아무리 시씨 왕가의 세자라지만, 시문의 자신은 차기 계승자일 뿐 아직 소상왕은 아니기 때문에 포청천이 빈 틈을 찌를 수 있었다.

그런데 시문의는 뻔뻔스럽게도 포청천에게 법전을 뒤져보라면서, 대송의 법에 시씨는 구속되더라도 3품 관리 이상으로 대우를 받아야 하니 명주솜이 든 비단 이불과 산해진미를 준비하라고 진상을 부린다. 그런데 법전을 살펴보니 실제로 그러한 조항이 있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포청천이 법을 어길 수 없으니, 결국 개봉부의 감옥에 수감된 강간살인마가 옥 안에서 비단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즐기는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포청천은 자기가 삭탈관직당하고 먼 오지로 유배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시문의를 처형하기로 결심했다. 시씨 왕가의 세자라 그동안 손을 못 대었을 뿐, 저지른 죄만으로는 진작에 사형을 당했어야 마땅한 대악인이었기 때문이다. 시문의는 이를 눈치채곤 가문의 가주(소상왕)에게만 주어지는 단서철권의 면사 효력을 입기 위해 아버지 시정에게 '만약 외동아들인 내가 죽으면 시씨 가문의 대가 끊어질 테니, 아버지께서 가문의 대를 잇고 싶다면 자결해서 소상왕 자리를 나에게 넘겨주는 수밖에 없다.'면서 자결을 강요하는 패륜을 저지른다. 시정은 집으로 돌아가 시씨 조상들의 신위 앞에서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통곡하면서도 가문의 대는 이어야 한다고 결국 자결하고 만다. 차라리 부인을 취해서 애를 더 낳아보지 그러셨수

아버지 시정이 자결함으로써 감옥에 있던 아들 시문의는 자동으로 소상왕의 자리를 승계하였고, 따라서 역모를 제외한 모든 범죄로부터 형벌을 공식적으로 면제받는 신분이 되었다. 포청천은 이런 상황에 분노해서 황명을 거역한 죄로 끔찍하게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시문의를 용작두[3]로 썰어버리려고 하지만, 때마침 방태사[4]가 시씨 가문의 단서철권을 들고 개봉부의 법정에 난입해 처형을 중단시킨다.

방태사는 포청천 앞에서 단서철권의 내용을 읽은 뒤, '천자의 위를 양보한 은혜를 갚고자 태조께서 주나라 천자의 종가에게 하사하신 단서철권이다. 헌데 당신이 그 대를 끊어버리면 태조께서 천자가 되신 위대한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 제위를 물려받으신 황제 폐하까지 포함하여 대송천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니, 포청천 본인은 물론 부하들까지 구족을 멸할 만고의 역적이 되는 것이다.' 하는 논지로 협박하는데, 포청천도 이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역사에서 5대 10국의 혼란기 동안 이전 왕조의 황제가 신왕조의 황제에게 제위를 넘기는 '선양'의 전통은 완전하게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960년에 조광윤이 다시 살려내어 후주의 황제 시씨로부터 선양을 받아 공식적으로 제위를 물려받고 송 왕조의 정통성을 구축했다. 자신은 제위를 무도하게 찬탈한 것이 아니라 천명에 따라 제위를 선양받았다는 것이 송태조 조광윤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반역자라면 뒤가 캥겨서라도 전 왕조를 도륙내지 않겠느냐? 하지만 송은 정당하게 세워졌으니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따라서 후주의 황족 가문을 나라 제일의 귀족으로 예우하며 그 안전을 보장한다.'고 약속한 셈이었다.

만약 포청천이 조광윤으로부터 안전을 약속받은 시씨 가문의 외동아들, 그것도 정식 소상왕이 된 시문의를 해치면, 송나라는 5호 16국 시대로부터 5대 10국 시대까지 선양받지 않고 정권을 잡거나 이전 나라의 황족들과 핵심인사들을 학살한 '무도한' 정권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므로, 방태사 말대로 송나라 건국의 정통성까지도 부정당할 수 있다. 시씨 가문의 당주를 처형하는 일이 생기면 "당장은 사람들의 눈이 무서우니 후대해주는 척 해두고, 시간이 좀 흘러 사람들 관심이 떠나가면 적당히 트집잡아서 숙청하는구나! 원래 찬탈왕조는 다 그렇게 하지!"라고 공격받을 명분이 생겨버린다.

물론 작품 내적으로 시문의는 실제로 죽을 죄를 지었고, 건국 직후도 아니고 100년 가까이 흘러 체제는 완전히 안정되고 국력은 절정기의 한복판을 달리는 11세기 중엽 인종 치세에 와서, 굳이 더 이상 위협적이지도 않은 후주의 후예를 숙청한다는 것은 뭔가 좀 이상하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찬탈왕조들이 당장은 전 왕조를 후대하는 척하다가 그 지지세력이 와해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졌을 때 슥삭 제거해버리는 일은 종종 일어났음이 사실이다. '송나라는 그런 찬탈왕조들과는 전혀 다르고 오롯이 정당하다.'는 것이 송태조와 그 후대 황제들의 명분이었다. 따라서 송나라의 신하인 포증이 시씨 가문의 대를 끊어버린다면 송나라 건국의 정당성 자체에 타격이 간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으로는 지극히 타당하다.

게다가 중국 왕조들의 유교적 명분에 따르면, 후대의 임금들은 조상의 유훈을 잘 따라야 하고 이를 어기면 불효자가 된다. 물론 사소한 일이라면 적당히 시간이 지난 뒤에 후대의 황제가 선대의 결정을 바꿀 수 있지만, 송나라 건국 명분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시씨 가문에 내린 단서철권의 효력에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만약 황제가 시문의를 처형하도록 허락하거나 묵인한다면, 송의 정통성에 흠집을 냄은 물론 '불효자'라는 오명도 같이 입게 된다.

거기에 덧붙여 시문의를 처형하면 황실의 정통성이 더 꼬이는 문제가 있으니, 당시 송 황실이 태조 조광윤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976년에 태조 조광윤의 제위를 동생 조광의가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계승해[5] 태종이 되었고, 포청천 시대의 황제인 인종은 태종 조광의의 손자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태종 조광의 대에 정통성 논란 문제로 태조의 자손들이 핍박당해 죽거나 고려로 망명하기도 한 마당에, 만약에 인종 대에 태조의 유훈이 무시당해 시씨 왕가가 숙청당하기라도 하면, 태조가 조상이 아니라서 무시하겠다고 찬탈자의 자손이 천명한 셈이고, 즉시 태조의 자손들이 인종에게 대항해 반정을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이 된다. 즉 태조의 자손이 아닌 인종이기에 더더욱 태조의 유훈을 어기면 안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방태사의 말에 포청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포청천은 눈가에 얼핏 물기를 비치면서도 방태사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강호에서 의협으로 이름 높은 전조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시문의를 베어버리려고 한다.[6][7] 하지만 포청천이 그를 말리며 "자네 한 사람만이 아니라 개봉부가 연루되고, 황실의 체면은 구겨지며 황제 폐하는 불초자손이란 오명을 쓰게 된다." 하고 말하자, 전조는 북받쳐 오르는 분노를 차마 터트리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도 억지로 내리누른다.[8] 시문의는 이 장면을 보고 일부러 포증을 "포 대인"이라고 존칭으로 부르면서 자기는 부와 혈통을 타고났으니 아무도 못 건드린다고 포청천과 부하 관리들을 싱글벙글 웃는 얼굴과 나긋나긋한 어조로 조롱한 뒤, 소상왕으로서 화려한 관복을 입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포청천은 그답지 않게 서글픈 얼굴과 기운 빠진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퇴정을 명한다. 그리곤 사용하지 못한 용작두만이 남은 텅 빈 재판장에서 포청천은 홀로 무릎을 꿇고 관모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은 뒤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듯이 기도한다.

"하늘이시여, 만약 포증이[9] 시문의를 죽인다면 성지(황제의 명령)를 어기는 불충이요, 만약 죽이지 않는다면 천하백성들을 볼 면목이 없사오니 불의입니다. 포증은 두 가지 난관 사이에서 벼슬을 버림으로써 천하를 빛내고 황은(皇恩)에 보답코자 하나이다."

한편 시문의는 호탕하게 웃으며 개봉부의 문 밖을 빠져 나오려는데, 시문의에게 아내와 일가친척들을 모두 잃은 양가보[10]가 분노하며 칼을 들고 나타난다. 양가보는 소리를 지르며 시문의를 죽이고자 달려들지만, 그는 본디 평범한 서생에 불과한 반면 시문의는 무공을 익혔기 때문에 도리어 반격받아 자기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이 불더니 벼락이 시문의를 쫓아오며 마구 떨어진다. 결국 시문의는 벼락을 피해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천벌을 받아 끔살.[11]

기껏 방면시켰더니 문 밖을 나서자마자 벼락에 맞아 죽은 시문의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방태사. 그는 시문의에게 칼을 휘둘렀던 양가보를 지목하며 '이상한 사술로 소상왕을 죽였으니 당장 저자를 잡아 처형하라.'고 억지를 부린다. 포청천도 이 소동에 관모를 벗은 채로 문 밖으로 나왔다가 방태사의 말을 듣고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공손책에게 "소상왕이 자식 없이 죽었으니 왕위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묻는다. 공손책은 "소상왕에게 형제가 없으니 매부가 왕위를 이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시문의의 매부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양가보 한 명뿐.[12] 게다가 방태사는 조금 전까지 개봉부의 법정에서 '소상왕은 결코 죽일 수 없다'고 포청천에게 조언하지 않았던가. 결국 억지만 부리던 방태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부들거리다가 더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자리를 떠나고 만다.(꼴좋다!!! 방길아!!!)

그리고 포청천은 "하늘의 뜻이로다." 하고 중얼거리며[13] 공손책이 다시 가져다 준 관모를 머리에 쓰고 이야기가 끝난다.

3. 특징

만악의 근원인 시문의는 93년판 드라마 최강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온갖 특권과 꼼수로 매번 빠져나가는데다, 보다 못한 포청천이 본인이 죄인이 되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처형하려니까 황제까지 방태사를 보내가며 말린다. 결국 하늘이 벌하기야 했지만... 처음엔 얼마나 분노했는지 단순 처벌이나 사직이 아닌, 말 그대로 자기 목을 걸고 시문의를 처벌하려 했다. 하지만 방태사가 '단서철권을 어기면 지금의 황제 폐하를 태조의 유훈을 어기는 불효 자식으로 만들게 되며 이는 포 대인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의 9족까지 멸하는 대역죄'라고 주장하며 포청천을 만류하자 끝내 굴복해버린다. 이게 방태사의 억지 논리도 아니고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으니 포청천조차 포기하고 만 것이다. 오죽하면 시문의를 방면한 직후 포청천은 '죽이면 불충이요 죽이지 않으면 불의이니 이를 어찌합니까? 백성들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차라리 벼슬을 그만 두고자 하나이다.'라고 하늘에 기도하며 실의에 빠져서 사직까지 하려고 했다.

이렇게 천하의 포증도 어쩌지 못한 시씨의 단서철권인데 이를 무식하게 완전히 무시했던 수호전고렴이 얼마나 개막장 인간 쓰레기인지 이 에피소드를 보면 더욱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4. 여담

양가보 역할을 맡았던 배우는 찰방욱 편에서 방태사의 외아들 방욱[14][15] 역을 맡았었다.

포증 머리에 있는 달 문신에서 광선이 나가면서 상대방을 제압하기도 한다. 요나라 여인은 한번 사랑하면 평생 배신 안 한다는 설정도 등장한다. 장인과 사위가 요나라 공주 모녀와 썸씽이 생기는데 저 설정 때문에 이쪽도 신세 망친다.

2008년작 신 포청천의 황금몽 편에도 시왕가가 나온다. 여기에서도 소상왕의 자제가 문제인데, 이쪽의 악역인 시옥은 시문의에 비하면 온화하다. 하지만 제도에 기생하여 이익을 취하는 시문의와 달리 옛 황실을 복원하기 위하여 반란을 획책하였고,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가문에서 비밀리에 전승해 온 금광을 찾아 아직까지 옛 황가에 충성하는 후주 충신의 후예들에게 금을 캐게 하였다. 송나라 땅의 모든 광산은 조정에서 관리하는데, 시욱은 당연히 자기 자금줄인 광산을 신고하지 않았다. 또한 노역에 동원할 정도라고 보기 힘든 잡범들까지 은밀하게 빼돌려 매일같이 중노동을 시켰다.

목표를 50만 냥으로 잡고 지난 3년 동안 20만 냥을 캤으며, 주조한 금괴는 왕부에서 보관하였다. 전모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시옥에게 충성한 신하들은 목숨을 잃고, 시옥 본인도 체포되어 처형을 받을 위치에 처하는데, 소상왕이 송 태조의 면사패를 사용하여 판결을 번복하려고 하였다. 이 면사패는 반역은 사면할 수 없는 단서철권과 달리 한 번뿐이긴 해도 반역죄조차 사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소상왕 본인만 사용할 수 있거니와, 왕위는 세습하는 것이기에 살아서 양위할 수 없고, 만약 자결하여 시옥에게 물려주려고 하여도 정식으로 왕위를 계승하려면 한 달은 걸리기에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포증은 태조의 성지를 거부하였다.

5. 출연진

출연 배우: 시문의 - 이아명, 양가성 - 고관충, 양가보 - 뉴승택, 시정 - 전평춘, 시문정 & 위연화 - 적앵, 양충 - 상산

한국어판 주요 성우 : 이정구(양가성), 오세홍(양가보), 이규화(시문의), 서혜정(위연화), 이근욱(시정), 김정주, 신흥철(양충)


[1] 시문정을 살해한 범인은 시문정의 오라비 시문의였다. 자기가 연쇄강간살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기에 자기가 지은 죄를 덮어씌울 겸, 그의 명예마저 더럽히기 위함이었다. 시문의가 참으로 악랄하기는 하지만 일부러 여동생 시문정을 죽이지는 않았다. 시문의는 양가보를 죽이려 했는데, 시문정이 남편 양가보를 구하고자 사이에 끼어들어 오라비의 공격을 몸으로 대신 받고 죽어버렸다. 천하의 악인인 시문의지만 여동생을 강간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살갑게 대해주었다. 시문의가 양가보를 죽이려고 한 이유도 자기가 고깝게 보는 양씨 집안의 아들 주제에 자기가 아끼는 여동생과 맺어졌다는 것 때문이었다.[2] 국내 더빙판에서는 '채문의'라고 나왔는데 이는 柴자가 '채'로도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무지한 번역자의 오류로 보인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차이(chái)'라서 더 틀리기 쉽다. 보통 채씨에 사용하는 글자는 蔡(이쪽은 cài).[3] 시문의는 전조의 황족이자 현 황실의 다음 서열인 왕공족이므로 용작두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4]방태사는 포청천을 줄곧 방해하곤 했다. 당연히 작중에서의 역할은 악역에 가깝고 이 때문에 방태사를 연기한 배우 두만생은 대중들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욕을 먹었는데 특히 어머니는 "너 같은 아들을 둔 적 없다!"며 아들을 집에 들여주지도 않았다고(...) 결국 드라마가 종영할 때까지 집에 못 돌아갔다고 한다.연기력이 너무 좋은 죄.[5] 이를 가리키는 촉영부성(燭影斧聲)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송태종 항목 참조.[6]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젊고 혈기왕성한 전조가 다소 성급하게 움직이다 낭패를 당하거나 당할 뻔한 적은 있지만, 법이고 나발이고 관아에서 칼 뽑아 범인을 베어 버리려고 했음은 이 에피소드가 유일하다. 혈기왕성할지언정 포청천의 충복답게 준법정신 투철하던 전조마저 분을 못 이길 상황이었던 것.[7] 사실 협객의 정의관이란 법을 어겨서라도 정의를 관철하는 것이고, 관리의 정의관이란 법을 통해 정의를 관철하는 것이라 서로 상충한다. 전조는 포증에게 감복하여 협객의 길을 떠나 관리의 길에 오른 뒤에는 벼슬아치의 직분에 충실하였다. 이런 전조가 법을 어기고 시문의를 베어버릴 뻔하였음은, 단순히 분노를 못 참았다는 정도를 넘어 법을 집행하는 관리로서 정의를 실천하는 데 회의감을 느끼고 다시 협객의 신분으로 돌아갈까 갈등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협객 시절 전조는 강호의 협객답게 정의감은 강하지만 관리들은 철저히 불신하는 인물이었다.)[8] 이 장면을 두고 전조가 시문의를 그 자리에서 죽이면 '반란으로 천하가 사분오열되고 다시 난세가 시작될 판'이라고까지 보는 것은 과장이다. 송나라는 960년에 건국되었는데, 작중 배경인 북송 4대 황제 인종이 치세하고 포증이 개봉부윤으로 활동한 시기는 1056~58년이므로 거의 100년이 가까이 지난 뒤이다. 나라의 체제가 충분히 안정되고 내부적으로는 유래를 찾기 힘든 태평기를 맞아 경제와 사회, 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인종 치세에는 국력이 북송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아버지 진종과 아들 인종 두 황제의 통치기를 흔히 함평-경력 치세라 하여 북송 국력의 절정기로 평가하는데, 불야성이라는 말이 이 당시 번영하던 개봉의 풍경에서 나왔다.) 또한 인종을 두고 높게 평가하는 이들은 뛰어난 명군이라고 하고, 낮게 평가하는 이들도 '범군이기는 하지만 좋은 인재를 많이 기용할 만한 포용력은 갖추었고, 통치 전반에서 큰 실책을 범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인물이므로 통치자로서 기량이 부족한 인물은 아니다. 물론 태조의 유훈을 어긴다면 위신이 심각하게 실추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반란이 빗발쳐서 다시 난세가 시작된다고 할 만큼 위태롭다고 할 순 없다. 굳이 과장하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개국황제의 유훈, 그것도 국가의 건국 정당성을 뒷받침한 내용을 어김으로써 위신이 실추됨은 (직접적인 반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큰 타격이다.[9] 본인을 지칭하는 1인칭 대명사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함은 높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중국의 고전적 표현법이다.[10] 뇌정노 에피소드의 실질적 주인공은 양가보이다. 시문의는 여동생과 눈이 맞은 양가보를 미워하여 양가보의 형과 어머니, 형수를 포함한 양씨 일가를 도륙내고 겁탈하면서 악업을 쌓았고, 심지어 여동생까지 실수로 죽였다. 결과적으로 양가보 혼자만 살아남았다.[11] 왜 제목이 뇌정노(雷霆怒), 즉 '벼락의 분노'였겠는가. 이게 바로 결말의 복선이었다.[12] 후주의 초대→ 2대 황위 계승이 비슷했다. 초대 황제 곽위의 자손은 개국 전에 몰살당해서, 곽위는 처조카인 시영에게 제위를 넘겨줬다.[13] 작중 인물들이 시문의를 보고 천벌을 받을 거라고 비난하거나 수군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최후를 암시하는 셈이다.[14] 인간성은 시문의보다 방욱이 그나마 낫다. 방욱은 시문의와 달리 자기 일족에게는 패악질을 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가 어느 노승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여 자신을 살리려던 자기 아버지 방태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연하게 작두형을 받았다. 그러나 시문의는 여동생을 죽이고 그 연인이었던 양가보에게 누명을 씌웠다. 이 죄 때문에 받을 작두형을 피하기 위해 단서철권을 악용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자살까지 종용하고, 천벌로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15] 그리고 두 죄인을 본 포증의 반응도 제각기였다. 결국 엄단해야 하는 대죄인들이지만 마지막에 참회하고 벌을 의연히 받을 각오를 한 방욱을 보며 안타깝게 여겼다. 반면 단서철권의 권력을 이용해 참회하지 않고 안하무인한 시문의를 보면 분노하였고, 자신이 처벌받기를 각오하고 시문의를 처형하기로 하였지만 단서철권의 권력 앞에 무산되자 오만방자한 시문의를 보며 분노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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