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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00:55:48

늙은 군인의 노래

김민기의 작품 목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김민기 1집 (1971年)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바람과 나
저 부는 바람 꽃 피우는 아이
아침 이슬 그날 종이연
눈길(연주곡) 세노야* 4월**
김민기 전집 1 (1993年)
가을편지 내 나라 내 겨레 두리번 거린다
꽃 피우는 아이 아침 이슬(연주곡) 아침 이슬
잃어버린 말 아름다운 사람 그날
친구 잘가오 Morgentau
김민기 전집 2 (1993年)
새벽길 나비
혼혈아(종이연) 그사이 고향 가는 길
철망 앞에서 눈산 차돌 이내몸
아무도 아무데도 바다 눈길(연주곡)
김민기 전집 3 (1993年)
상록수 기지촌 가뭄
식구생각 서울로 가는 길 늙은 군인의 노래
강변에서 주여, 이제는 여기에 소금땀 흘리흘리
밤뱃놀이
김민기 전집 4 (1993年)
봉우리 아하 누가 그렇게 백구
작은 연못(연주곡) 날개만 있다면 작은 연못
인형 고무줄 놀이 천리길
아침(연주곡)
이외에 나무위키에 등재된 김민기의 작품(주로 희곡 계열)
지하철 1호선 공장의 불빛 이 세상 어딘가에
소리굿 아구
*갈색 재킷 버전에서 꽃 피우는 아이가 빠지고 들어간 곡. }}}

1. 개요2. 가사

1. 개요

김민기 버전 양희은 버전
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노래.

김민기는 카투사로 군복무를 하던 중, 수사기관의 통보로 군입대를 알게된 높으신 분들의 명령으로 인해 원통의 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로 쫓겨나게 된다. 그곳에서 복무하던 중 30년을 복무하고 전역을 앞둔 병기선임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막걸리 2말을 받고 노래를 짓게 되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1976년 겨울 탄생한 ‘늙은 군인의 노래’이다.

젊은 청춘을 푸른 군복에 바친 한 하사관[1] 의 회한과 아쉬움, 소박한 나라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는 곧 병사들에게 구전되어 불려졌다. 그가 제대한 후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78년 양희은의 이름을 빌려 한국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에는 통과하지만 곧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군부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의 약하고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2]

유신체제하에서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가 된 이 노래가 그 생명을 이어간 것은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현장이었다. 원래 가사 속의 군인은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면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탈바꿈하며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는 원래 의미인 소박한 나라사랑으로 해석되어 정부 행사곡에 사용되고 있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의 가사 내용 때문에 해당 노래가 만들어진 목적 및 가사의 뜻에 맞게 아래에 서술된 사항처럼 제한적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6.25 전쟁 전사자, 베트남 전쟁 전사자를 봉환함에 있어 항공기에서 하기할 때라던지(영상), 호국 영령과 관련된 행사 때 주로 사용된다.[3]


2018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모곡으로 사용되었으며,



2020년 6.25전쟁 제70주년 행사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에서 국군전사자 유해 147구의 귀환 배경음악으로 윤도현이 가창했다.


2021년에도 하와이에서 김석주 일병 등 2명의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이 운구될 때 사용되었다.

노병가, 늙은 노동자의 노래등으로 개사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2. 가사

원곡 '늙은 군인의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4절)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1] 현재의 부사관[2] 게다가 일부 가사만 가지고 문제를 삼은 건, 전체적인 뜻을 해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부사관과 현역병들의 처우가 좋지 않았는데, 늙은 군인의 노래는 부사관 입장에서 만들어진 노래라 장성들 눈에는 눈엣가시일 수 있었다 (실제로 현대에는 가사 내용 때문에 상사 말호봉 ~ 원사, 준위에게 적절한 노래라는 평도 있다).[3] 노래 댓글에는 주로 군인 자녀들이 군인인 (또는 군인이었던) 부모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글과, 군인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국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군인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