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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01:00:58

다나카 마사히로/선수 경력/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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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다. 개막하기 전부터 공인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개막전에는 약체로 평가받던 브라질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2이닝 1실점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2라운드 대만전에선 6회부터 구원등판에 나섰지만 호투하고 있다가 8회말에 연속 3안타를 맞고 무너졌다. 패배의 원흉이 될 뻔했지만 결국 일본 대표팀이 역전승을 거두면서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 9회초 일본이 동점 적시타를 쳤을 땐 가장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2. 페넌트 레이스

파일:13다나카.png
등판일지

2013시즌 초반에는 WBC의 여파로 컨디션이 조금 늦게 올라오는 듯 보였으나[1] 이후 클래스를 입증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고 전반기 종료 시점까지 2012년에 이어서 17연승을 달성한데다, 42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여 전반기 1점대 ERA(1.22) 와 다승 (13), 최다 탈삼진 (98K)를 지키며 단독선두로 올라서 일본 전체의 에이스로 우뚝서는 기염을 선보였다.

8월 9일 소프트뱅크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일본프로야구 신기록개막 16연승[2]과 개인 20연승으로 연승 최다 기록 타이를 세웠다.[3]

8월 16일 세이부전에서 8이닝 1실점의 투구내용으로 일본프로야구 신기록개인 21연승을 달성한다. 8월 23일 롯데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시즌 18승 무패째라는 업적을 이어갔고 8월 26일에는 22연승을 달성하며 정민태의 선발 최다 연승 세계기록인 21연승 기록을 경신하였다.

8월 31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또 승리하여 시즌 19승 무패와 함께 1982년 박철순의 22연승을 넘어선 23연승을 기록하며 아시아 최다 연승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리고 다음 등판인 9월 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9이닝 2실점 완투로 시즌 20승을 달성, 결국 칼 허벨과 타이 기록을 세웠으며 일본프로야구 기준으론 이나오 가즈히사의 단일시즌 연승 기록인 20연승과 타이 기록을 세웠다. 또한 개막전부터 연승 기록은 종전 1912년 메이저리그에서 루브 마쿼드(Rube Marquard)가 기록했던 19연승이었는데 이를 경신하는데에도 성공(...) 이에 고무된 라쿠텐 구단은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기사

그리고 마침내 9월 13일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선 이나오 가즈히사를 뛰어넘는 시즌 21연승을 달성했다. 동시에 1936~1937년 칼 허벨이 세웠던 메이저리그 기록인 24연승을 뛰어넘어 개인 25연승을 작성하며 세계 기록을 다시 썼다. 9월 21일 닛폰햄전 등판 역시 승리하며 시즌 22승 무패를 달성, 종전 이와쿠마 히사시의 21승을 뛰어넘어 라쿠텐 프랜차이즈 레코드까지 새로 썼다.

9월 26일 세이부전에선 4:3으로 앞서있던 9회말에 구원등판을 감행했는데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세이브를 올리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퍼시픽리그 첫 우승을 본인의 손으로 결정짓고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등판인 10월 8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2실점(1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즌 24승 무패와 28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혹시 모른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해서 류현진의 연속 경기 퀄리티 스타트 기록처럼 29에서 끝날지도... 20승 이상 투수가 무패로 시즌을 마친 건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20승은 커녕 10승 이상 투수가 무패로 시즌을 마감한 사례는 단 4번이며 그나마도 1929년 톰 재커리가 12승 무패한게 최다. 20승 이상의 투수들중 최저 패는 2013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맥스 슈어저 외 5명이 세운 시즌 3패. 한국프로야구에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오봉옥이 13승 무패 2세이브를, 2002년 삼성 라이온즈김현욱이 10승 무패 2세이브를, 2023년 KT 위즈쿠에바스가 10승 무패를 기록한 것밖에 없다. 거기에다 오봉옥, 김현욱이 구원투수라는 점도 고려하자. 물론 두 투수 모두 혹사를 통해 만들어진 꽤 값진 기록이지만 다나카는 로테이션 투수로 이 위업을 달성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8경기 212이닝(리그 2위) 24승 0패 1세이브 승률 100% 183탈삼진(리그 2위) 35사사구 평균자책점 1.27.

3. 포스트시즌

3.1. 클라이맥스 시리즈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열린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 등판, 9이닝 7K 완봉승으로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4차전에선 1이닝 세이브를 거두며 팀을 창단 첫 일본시리즈로 이끌었다.

3.2. 일본시리즈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시리즈 2차전에선 9이닝 12탈삼진 1실점 완투로 생애 첫 일본시리즈 승리를 따내며 시리즈 전적을 1:1로 가져왔다.

또한 10월 29일엔 만장일치로 생애 두 번째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사와무라상의 7개 항목은 다 채운 가네코 치히로가 있었지만 다나카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완투를 제외한 6개 항목만 채우고도 수상했다.

사실상 일본에서의 마지막 고별 선발 등판이자 1경기만 잡으면 라쿠텐이 우승하는 11월 2일에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열린 일본시리즈 6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상대 투수는 당시 신인이던 스가노 토모유키) 홈런을 포함해 4실점을 하는 등 9이닝 4실점 완투패2013년 첫 패전을 떠안았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쳐서 이어가던 30연승도 중단. 또한 투구 내용도 10피안타를 넘게 맞는 등 이전까지의 파죽지세에 비교해 좋지 않은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인 호시노 센이치가 2013년이 끝나면 한동안 안 볼 사이라고 여겨서인지 9회까지 160개를 던지게 하는 등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한다 80년대와 90년대 초중반에나 볼 법한 무지막지한 투구를 하게 만들어 까였다. 그래도 다나카는 150개를 넘긴 상황에서도 150km/h를 넘게 뿌리는 철완을 보여주었다. 그간 토토쟁이의 신이자 재림예수로 추앙받았지만 막판에 자신의 별명인 다낚아처럼 거한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많은 토쟁이들이 스미다 강 정모를 하게 생겼다 카더라.

그리고 11월 3일 7차전에서 9회말 등판.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1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며 라쿠텐의 일본시리즈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4]
이 날 팬들의 등장곡 떼창이 큰 화제가 되기도.

일본시리즈 6,7차전의 연투에 대해 일본의 한 언론에서 미국에서 제기된 지표를 통해 혹사 논란을 정리한 기사를 올렸다.해당 기사(일본어) 'Baseball Prospectus'라는 미국의 스포츠 사이트에서 제안한 'Pitcher Abuse Points'라 불리는 지표로 투수가 투구수 100개 이상을 던졌을 때 '(투구수 - 100)의 3제곱'으로 계산, 이 수치가 한 시즌에 10만점을 넘어서면 어깨에 무리가 올 것이라는 이론이다.[5] 해당 지표에 따르면 다나카는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만 21만 6천점을 획득해, 한 시즌 기준인 10만점의 두배나 되는 공을 던졌다는 계산을 제시했다. 또한 저렇게 무리하고 바로 다음날 연투를 했으니 어깨에 상당한 무리가 갔을 것이며, 정규 시즌에도 총 PAP 수치가 21만 4666점이라는 미국 기준에선 엄청난 혹사를 당한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사실 7차전의 마무리 등판은 일본야구 특유의 헹가래 투수라고 할 수 있다. 胴上げ 投手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한 말로 우승을 책임지는 투수라는 의미다. 웬만하면 팀의 특급 마무리에게 맡기지만 가끔 마무리가 약한 팀의 경우는 1선발이 등판하기도 한다. 이런 헹가래 투수 등판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가 2007년 일본시리즈로,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8회까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고 있던 야마이 다이스케를 강판시키고 9회 이와세 히토키를 등판시켜 논란이 되었다.[6]

이번 혹사 논란에 대해 '무리했다', '아니다'의 의견은 갈리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시 메디컬 테스트를 매우 꼼꼼하게 받게 될 것이란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4. 시즌 후

시즌 이후 2013 아시아 시리즈에 동행은 했지만 등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따라 갔던 것도 대만 측이 요청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MVP 투표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역대 3번째 만장일치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만장일치 MVP는 1965년 퍼시픽리그 MVP 노무라 카츠야[7] 前 라쿠텐 감독 이후 48년만.

5. 밀어주기?

다만, 연승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시즌 중반부터 오 사다하루의 홈런 기록 저지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영웅 만들기의 수혜를 강하게 입었다는 논란이 엠엘비파크 엠게 등을 시작으로 일본도 아니고 한국 웹에서 일어났다. 심판들이 다나카에게는 일부러 넓은 스트라이크존을 제공하고 상대 투수들에게는 존을 좁혔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되었고, 시즌 24연승을 확정한 마지막 경기에서는 상대팀 오릭스가 주전들을 일부러 빼고 2:1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호투하고 있는 선발 니시 유키를 2이닝만에 강판시키고 허접한 투수를 올렸다면서 (이후 라쿠텐이 역전승) "오릭스가 다나카의 연승기록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부러 졌다"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조작설을 주장해 유명해진 블로그 [8]

그러나 그 정체는 정작 일본 현지에서는 아무도 취급하지 않는 한국발 헛소문. 일본 웹에서 다나카 밀어주기설을 검색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조작설 1: 오릭스가 다나카에게 지기 위해 일부러 주전들을 뺐다?
뻥. 그날 경기에서 결장한 4번 이대호는 부상치료를 위해 3경기를 남겨두고 1군에서도 말소되었던 상태였고 일본어 기사 , 3번 이토이는 이틀 전 경기에서 데드볼에 맞아 병원에까지 실려갔으며 다나카 경기만이 아니라 그 외의 경기도 결장하고 있었다.일본어 기사 그리고 그 둘을 제외한 주전들은 평소대로 풀 출장했다.

조작설 2: 완벽하게 다나카네 팀을 봉쇄하던 선발투수를 지기 위해 일부러 강판시켰다?
이것도 뻥. 일단 니시 유키는 1회에는 안타-안타-희플로 1실점, 부상강판 직전인 2회에는 볼넷 후 병살로 간신히 위기탈출하는 등 그다지 잘 던지고 있던것도 아니었고, 2이닝만에 마운드를 내려간 것은 2회 수비에서 발목을 삐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스포츠신문 닛칸스포츠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니시가 사고로 인해 강판"이라며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을 때 오른쪽 발목에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또한 "3회 마운드에 올랐지만 연습 투구 없이 그대로 벤치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일본어 기사
조작설 3: 선발을 강판시킨 다음 지기 위해 일부러 허접투수를 올렸다?
이것도 뻥. 니시 유키를 구원등판한 투수 알레산드로 마에스트리는 원래 오릭스의 롱릴리프였다. 한마디로 그런 상황에 등판하는 것이 애초의 임무인 선수. 더군다나 10월 1일 이후 일주일동안이나 푹 쉬고 있었다. 반면 다른 투수들은 보직이 맞지 않거나 불과 며칠 전에 상당한 이닝을 투구한 상태였다. (히라노 요시히사, 사토 다쓰야, 히가는 필승조라 제외. 마쓰바, 가이다는 사흘 전에 이미 2.1이닝, 1.2이닝 투구)

조작설 4: 오릭스가 일부러 지려고 설렁설렁 뛰었고 결과적으로 대패했다?
이것도 뻥. 문제가 된 10월 8일 경기는 시즌 종료를 불과 며칠 남겼으며 오릭스는 이기든 지든 순위도 확정되었고 플레이오프 진출도 한참 전에 좌절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필승조를 초반부터 집어넣어가며 아득바득 뛰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

특히 밀어주기설을 주장한 국내 네티즌들은 승부조작을 모의했다는 오릭스의 감독을 하라 감독이라고 적거나[9] 일본야구협회가 승부조작에 관여했다고 주장하고[10] 일본야구를 공부하기 위해 2ch를 참고했다고 운운하는 등 일본야구에 대해서는 반푼어치도 모른다는 것만 드러내고 말았다. 2ch에서 일본야구를 공부했다는 것은 야갤을 통해 한국야구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보다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2ch는 이승엽이 홈런치면 투수가 재일이라서 일부러 맞아줬고 호시노 센이치의 정체는 재일교포라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게 졌다고 주장하는 곳.

결론적으로 "다나카 밀어주기설"은 일본 현지에서는 야갤루머 수준의 썰에 불과한 정도이니, 적당히 흘려듣도록 하자. 조작설에 대한 엑스포츠 기사


[1] 개막전 선발투수는 신인 노리모토 다카히로에게 넘겨주었다.[2] 이전 기록은 개막전부터 15연승으로 1981년의 마시바 시게쿠니와 2005년의 사이토 가즈미가 달성했었다.[3] 이전 기록은 20연승으로 보유자는 이나오 가즈히사 및 마쓰다 기요시 두 명이으나 이 둘은 구원등판이 포함된 기록이었다.[4] 여기에 대해 메이저리그 선배인 다르빗슈는 6차전에서 160개를 던지고, 다음날 7차전 15구나 던진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걱정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비슷하게 우려를 표시해 메이저리그와 일본야구의 시선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5] 해당 기사에서 제시된 MLB 투수들의 한 시즌 PAP 수치는 1위가 팀 린스컴으로 132,001점, 다르빗슈 유는 98,298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Baseball Prospectus 조사)[6] 다만 이 경우 부상으로 인한 교체라는 의견도 있다.[7] 그 해 노무라는 종전 이후 최초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수상했다.[8] 현재는 슬그머니 스스로 쪽팔렸는지 비공개 처리[9] 하라 다쓰노리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다. 2013년 당시 오릭스의 감독은 모리와키 히로시.[10] 일본의 야구협회격인 전일본야구협회(全日本野球協会)는 일본의 아마추어 야구를 총괄하는 단체이고 센트럴, 퍼시픽 양대리그를 관장하는 기구는 일본야구기구(NPB)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