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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15:00:18

대농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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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002d><colcolor=#fff> 대농
大農 | DAINONG
파일:대농그룹 로고.svg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다국적 기업)
규모 중소기업
유형 복합 기업, 기업 집단
본사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 33-1[1]
(대농빌딩, 現 신한디엠빌딩)

1. 개요2. 역사3. 기업 정신
3.1. 창업 이념3.2. 기업 이념3.3. 사훈
4. 계열사 목록5. 공익 사업6.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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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5년부터 1997년 3월까지 (주)대농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유통/제조업 특화 기업 집단.

2. 역사

1955년 양백 박용학 창업주가 최성모 동아제분 사장[2], 이상순 천일곡산 사장, 최호, 어윤일 천부광업 사장 등 5명과 함께 농산물 업체 '대한농산'을 세운 게 본 그룹의 모태이다. 사업 초기에는 1차 산업과 수출입에 주력하며 1967년 초에 고려원양어업과 대한선박을 설립한 후, 쌍용으로부터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을 인수하면서 면방직에 뛰어들면서 사세 확장의 길을 처음 마련했다. 1969년에는 미도파백화점 운영사 (주)무역회관까지 인수했고, 1973년 대한농산을 중심으로 태평방직, 금성방직, 한일제분, 고려원양어업과 합쳐 '(주)대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72년 경기도 화성군 신관악골프장 부지를 매입해 레저사업에 손을 뻗는가 하면, 1973년엔 세방기업과 합작해 세방해운을 세우고 해운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같은 시기 경공업과 유통업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에 손을 대려고 했으나 1975년 1차 오일쇼크로 은행관리에 돌입해 구 금성방직 공장이나 뉴관악골프장, 부산 해운대호텔 부지 등을 팔아 1980년대 초반부터 경영 정상화를 달성했다.

1977년부터 부회장이 된 장남 박영일은 그룹 정상화 과정에서 방직업 중심에서 탈피하기 위해 1978년 대성건설진흥을 인수했고, 1989년 회장이 되면서 대농창업투자를 세운 후 1992년 메트로콤을 세우고 이듬해엔 미도파를 그룹 중심기업으로 전환시켰다. 뒤이어 같은 해엔 스파메트로, 1994년 메트로프로덕트와 노원케이블TV, KJ산업 등을 각각 인수하고 설립해 사업 다각화를 착착 진행해나갔으나,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부채가 1~2년만에 빛의 속도로 급증했다. 마침내 1996년 10월 미도파가 신동방그룹에 팔리게 되자 1,200여억 원을 투입해서 지켜냈으나 그 후유증으로 불과 6개월후인 1997년 3월에 최종 부도를 맞이하자 임원진 일동이 전부 사임하면서 그 다음달인 4월 초에 그룹이 완전해체되었다.

3. 기업 정신

3.1. 창업 이념

3.2. 기업 이념

3.3. 사훈

4. 계열사 목록

5. 공익 사업

6. 참고 자료



[1]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25[2] 신동아그룹 창업자[3] 이후 서울 답십리공장 터엔 1978년 선창산업 태양아파트가 들어섰다가, 2008년 철거 후 2010년 청계 한신휴플러스 아파트가 들어섰다.[4] 상술한 춘천시의 미도파 아파트에 있는 백화점이다.[5] 다른 미도파백화점들과 인수한 기업이 다르기는 한데, 지금 춘천미도파를 가진 농심은 롯데 창업주 신격호의 남동생 신춘호가 세운 기업이라서 결국엔 다 범 롯데가로 넘어간 꼴이다.[6] 대한유화의 모체.[7] 1973년부터 1980년까지 7년간 무려 184연승의 어마무시한 전적을 일궈냈다. 대통령배 남녀배구대회 여자부 초대 우승 구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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